청소년을 위한 고전 매트릭스: 영웅에 반하다 (비뚤어지거나 모자라거나)

청소년을 위한 고전 매트릭스: 영웅에 반하다 (비뚤어지거나 모자라거나)

$16.80
Description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고전 매트릭스 시리스 두 번째 책!
주제별로 만나는 인문 고전의 새로운 세계
◎ 반영웅들의 서사

반영웅反英雄, anti-hero은 ‘영웅에 반反하다’는 뜻이다. ‘反’은 두 사람이 서로 등진 모습을 형용한 글자다. 이로부터 ‘상반되다’, ‘엇나가다’ 같은 뜻이 생겨났다. 따라서 영웅에 반한다고 하면 이는 다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영웅과 상반된다는 뜻에서 비롯된 ‘영웅이 아니다’이고, 다른 하나는 영웅과 엇나간다는 뜻에서 비롯된 ‘영웅답지 못하다’이다.
반영웅으로서 비영웅은 이렇게 영웅과 연관성이 있지만, 영웅은 아닌 인물 유형을 가리킨다.
반영웅의 또 다른 유형인 ‘영웅답지 못하다’에는 이를테면 흑영웅黑英雄, dark hero 같은 유형이 포함된다. 영웅의 면모를, 영웅으로 발현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영웅이라고 하기에는 비틀리거나 뒤틀린, 혹은 모자라거나 억눌린, 때로는 기꺼이 내지 기질적으로 악한 인물 유형이다.
저자

서울대인문학연구원고전매트릭스연구단

김월회:서울대중어중문학과교수
김헌:서울대인문학연구원HK부교수
권선형:서울대인문학연구원책임연구원
김기훈:서울대인문학연구원선임연구원
김민정:서울대인문학연구원선임연구원
박선영:서울대중어중문학과박사과정
손애리:서울대인문학연구원책임연구원
심정훈:서울대서양고전학협동과정박사과정
안상욱:서울대인문학연구원선임연구원
윤광언:서울대국사학과석사과정
임형권:서울대인문학연구원선임연구원

목차

청소년을위한고전매트릭스를시작하며4
서문그들이영웅에‘반’한까닭7

1부영웅을등지다

1장희극의반영웅주의적상상력
―아리스토파네스의‘평화3부작’읽기_김헌29
2장가치관의전쟁
―소포클레스의『안티고네』의영웅과반영웅_심정훈47
3장인간적인굴레보다숭고한아름다움
―『달과6펜스』의반영웅,찰스스트릭랜드_임형권62
4장현대의소시민:삶과사고의경직성
―파트리크쥐스킨트의『비둘기』를중심으로_권선형75
5장미워할수없는소시민허삼관_김민정89
6장전쟁의시대,보통사람김영철의일생_손애리104
7장나라를무너뜨린악녀였을까,복수를꿈꾼영웅이었을까
―달기이야기박선영_118
8장세상과맞춰가며사랑을찾았는데,그만…
―나탈리Z.데이비스의『마르탱게르의귀향』_윤광언131

2부영웅과엇나다

9장메데이아!영웅인듯,영웅아닌,영웅같은그녀_안상욱149
10장키케로의반反영웅카틸리나
―『카틸리나규탄연설』과그이후김기훈_163
11장다크히어로의측면에서다시보는프로메테우스_안상욱177
12장영웅이기를거부한‘직진直進’장비_김월회193
13장불량영웅저팔계_김월회208
14장자유의가치를되찾은루저들
―켄키지의『뻐꾸기둥지위로날아간새』의반영웅상_임형권223
15장갱생을거부하고기인奇人으로살다
―「유치장에서만난사나이」의왕백작_손애리236
16장허망속에서방황하는반영웅
―루쉰의단편소설「술집에서」와「고독한사람」을중심으로_김민정249

출판사 서평

비뚤어지거나모자라거나

1부에는‘영웅을등지다’라는제목아래영웅서사로흐를여지가없지는않지만,영웅에는전혀또는별관심없는인물들의서사8편을담았다.

첫편은고대그리스를대표하는극작가아리스토파네스의‘평화3부작’속주인공들에대한이야기다.이들은영웅적시선과기준에한없이낮아보이는사람들이지만,소소한일상속에서평화를누리며따뜻할수있는삶에대한그들의소박하고우직한의지가영웅들도못해낸또는안해낸일을해냈던것이다.비영웅의길로영웅다운성취를일궈냈음이다.
이들아리스토파네스의‘평화3부작’의주인공이반영웅주의적상상력을해학적으로풀어냈다면영웅주의에정면으로대결했던여성이있었다.또한명의대표극작가소포클레스의비극『안티고네』의주인공안티고네가그다.그녀는그저가족애에충실한젊고연약한여인이었을따름이다.안티고네는불의한국왕에맞선비극적영웅으로비춰진다.‘정통적’영웅들이취한길과무관한길을걸었음에도영웅으로추인됐음이다.그런데이러한시선을안티고네도원했을까?
이러한시선에‘빅엿’을먹이는인물이있다.비영웅마저도영웅의자장안으로끌어넣으려는그시선에말이다.『달과6펜스』의찰스스트릭랜드가단적으로잘해야기인奇人정도,심상하게는광인이나악인정도로비칠수있는인물이다.그러한스트릭랜드의영혼앞에도덕이니영웅이니신이니하는모든가치와잣대는그저벗어나야할바에불과했다.
‘현대의소시민’요나탄노엘은스트릭랜드와는사뭇다른방식으로그러한가치와잣대로부터비켜나있다.파트리크쥐스킨트의소설『비둘기』의주인공인그는자신의의사와무관하게인간관계의철저한단절속으로던져진삶을자신이예측가능한동선과통제가능한최소한의활동을구축하고는그속에서기계처럼일상을반복하는방식으로버텨낸다.그야말로그렇게해도살아지기에기계처럼작동하며살아가는삶이다.그런데그의삶에역설적이게도도덕이나영웅,신등이개입하지못한다.통상적삶에서는큰위력을발휘하는그들이요나탄노엘의삶에서는도리어존재감제로가되고만다.
현대중국은통치의필요성에서적잖은‘시대적영웅’을만들어선전하곤했다.하지만허삼관은그러한영웅과는거리가한참먼지극히평범한인물이다.그저먹고살기힘든시절을맨몸으로부딪쳐살아간현대중국의전형적소시민이다.그는법으로금지되었음에도피를팔아생계를유지한다.피를판다는것은생명을판다는것이다.인간성에대한근본적모독이고파훼이다.도덕이나신등은이러한그의선택앞에무기력하다.그런데허삼관은자신의생명을판대가를하나도못누린다.희생정신이투철해서도도덕심이남달라서도아니다.그저자신의못남과지질함탓에그렇게됐을뿐이다.그럼에도그는국가가휘두르는거대폭력과그로인한굴곡속에서도가족을건사하며나름살만한노년을맞이한다.마치요나탄노엘이자살을결정하고잠든다음날천둥소리를듣고깨어나다시삶의의지를되찾았듯이,못나고지질한삶에서삶을지속할,버텨낼동력을찾은셈이다.도덕이나신,
영웅에게서가아니라!
17세기동북아시아에서연이었던전쟁속에서도삶을버텨냈던조선인김영철에게도고되고풍진삶을이어가는동력은도덕이나신,영웅이아니었다.그건살아돌아와대를이어야한다는할아버지의말씀이었다.김영철은이를지키기위해후금에잡혀만주로끌려가가정을이루고살게됐음에도,우여곡절끝에중국으로탈출하여그곳에서중국여인과가정을이루고살게됐음에도,기회가생기자머뭇대지않고조선으로돌아온다.조선에서대를잇기위해만주와중국의가족을헌신짝처럼팽개친채말이다.
언뜻영웅과는참으로무관하다싶은이들요나탄노엘,허삼관,김영철이펼쳐낸삶을어떻게볼수있을까?다시말해이들의삶에대한평가차원을그자신,그가족으로좁히고평가의잣대를그가지닌신조의실현여부로한정한다면이들이자기삶의,가족의영웅일가능성을딱잘라없다고할수는없다.
이러한면에서달기와베르트랑드라는여성의이야기는주목할만하다.주지하듯이근대이전은동양이나서양할것없이여성에게는남성보다사회적억압기제가한층복합적으로둘러쳐있었고,그렇게자기삶을자기가통제할수없는조건아래서최대치로자기삶을자기주도적으로펼쳐내려애쓴이들에게도덕이니영웅이니신이니하는잣대와가치를적용한다는것자체가또다른폭력이기에그러하다.
전하는바로는그녀는새로이천자가되고자했던주나라무왕의최측근강태공에의해당시천자인은나라의주왕을타락시킬목적으로철저하게훈련된인물이었다.주왕에게바쳐진그녀는소임을다하였고타락과폭정의극을치닫던주왕은결국무왕과강태공에의해죽음을맞이한다.이과정에서도덕등은역시무기력하다.한나라의군주를타락시킨다는부도덕은여성달기에둘러쳐있던삶의조건에서는또다른억압기제에불과했다.
이는『마르탱게르의귀향』속두남편을두었던정숙한여인베르트랑드드롤스에게도마찬가지였다.마녀의저주등으로여의치못한삶을살던그녀의남편마르탱은아버지의자산을훔쳐가출한다.중세후기프랑스농촌사회에서남편없이어린아들을양육해야하는여인에게처져있는사회적억압기제아래서베르트랑드는오히려주류남성들의무기인정숙을적극적으로취해자신의삶을
지탱해간다.그런데남편인척하며나타난가짜마르탱을진짜남편으로인정하는반전을선보인다.마르탱의진위를의심한집안어른의고소로법정에섰을때는가짜남편을적극적으로옹호하여승소직전에까지이르기도한다.그러다판결직전에진짜마르탱이법정에나타나자그녀는순순히진짜남편을인정하고그를따라나선다.드러난양상만으로는정숙함을가장한부도덕한인물로단정될여지가적지않다.달기가그러했던것처럼말이다.그런데전근대시기여성에게둘러쳐있던억압기제의실질적위력을과소평가할수있는권리는누구에게도없다.그러한삶의조건을주체적으로깨뜨려나오지못하고주어진조건안에서취할수있는삶의경로를취했다는이유로그삶을폄하할수있는권리말이다.
요나탄노엘,허삼관,김영철,달기,베르트랑드의서사가통념상의영웅과는참으로거리가멀지만,그러한통념을떠받치는도덕이나신이오히려이들의삶에서무기력했다는점에서이들의삶은그것자체로반영웅적이었던것이다.

2부에는‘영웅과엇나다’라는제목아래영웅서사로볼수도있지만그렇지도않은서사8편을담았다.

첫편은고대그리스의3대비극작가로꼽히는에우리피데스가쓴『메데이아』의주인공메데이아의서사이다.메데이아는고대그리스의다른영웅처럼신의혈통을지닌여성이다.그녀는마법같은신적능력과남다른지략,과단성등을지니고있어영웅으로치켜올려질여지가풍부하다.한편메데이아는목적을위해서동생을토막내죽인다거나친자식을살해하는등의패륜을서슴지않는다.그녀가선뜻영웅으로치켜세워지지못하는까닭이다.그런데메데이아의이러한영웅과엇나는면모는남편이아손의성공을도모하는대목이나자신을배반한이아손에게복수하는대목에서발생한다.이아손의영웅등극이그녀의패륜을딛고일어난셈이며,그러한하자를안은채영웅이된이아손을좌절시키는데그녀의패륜이활용된것이다.그렇다면이아손은과연영웅일까?그가영웅이라면메데이아는왜영웅이어서는안되는것일까?이아손이하자있는영웅에불과하다면그를좌절시킨메데이아가영웅이못되는이유는또한무엇일까?
이물음은로마의악한정객카틸리나에게도적용된다.그는영락한귀족가문의야심가이나정치적·도덕적으로상당히저급하고타락한이로전해진다.카틸리나는로마공화정의수호자로또정치적순교자로평가되며영웅적면모가드리웠던키케로와같은시대를살았다.결국그는노련하고지혜로웠던키케로가영웅의길을걷는데제물이된다.키케로는그가로마의전복을꾀했다며신랄하게비판하며정치적중심으로우뚝섰고그반대급부로카틸리나는로마사상가장유명한반역자로각인된다.반전은세월이흘러정치적으로실각한키케로가정치적재기를위해정적안토니우스를카틸리나처럼처리할때일어났다.키케로는안토니우스를역모로몰아갔지만,실패하고역으로안토니우스에의해숙청된다.이는카틸리나에게다시볼여지가있음을시사해준다.이를테면그또한영웅이될수있었지만,키케로라는영웅적인물의등극을위해억울하게희생된인물로말이다.
결국메데이아나카틸리나모두어디에서서보는가에따라평가가엇갈릴수있는인물인셈이다.제우스를속이고인간에게불과밀을몰래갖다준대가로매일같이독수리에게간을쪼아먹히는형벌을받는프로메테우스처럼말이다.그는교활한속임수와계략을쓰면서까지최고신인제우스의명을어겼다는점에서신들에게그는신계의질서를어긴사악한존재와다름없다.그러나그로부터큰도움을받은인간에게그는이론의여지가없는영웅이다.
영웅과엇나갔다고하여항상보기에따라영웅이기도하고그렇게보기어렵기도한것은아니다.『삼국지연의』의장비와『서유기』의저팔계만봐도그렇지않음은쉬이드러난다.『삼국지연의』와『서유기』안에서장비와저팔계는영웅이라기보다는각각의주인공인유비와손오공을영웅답게해주는보조적역할에충실하기때문이다.이들에게도분명영웅의면모가적잖이존재한다.영웅이라충분히칭해질수있다는것이다.그러나이는어디까지나『삼국지연의』나『서유기』에서벗어났을때가능한얘기다.장비와저팔계는적어도『삼국지연의』나『서유기』에서만큼은보기에따라참영웅이거나흑화된영웅이되는인물이아니다.또한실패한영웅이나내몰린영웅처럼누군가에게는영웅이지만이해관계를달리하는이들에게는역적인경우도아니다.그저유비와손오공의영웅면모를부각하는데진심인반영웅이었을따름이다.
이에비해『뻐꾸기둥지위로날아간새』의주인공맥머피는소위‘별’이주렁주렁달린전과자로서수감중에도폭력을행사한인물이지만,비정상적이고비도덕적인그의면모는‘반영웅맥머피’라는서사를구축하는데온전히투입된다.맥머피는과도한폭력성으로인해정신병원에수용된다.정상적이라면정신병원에서의치료를통해비정상이정상으로돌아와야한다.그러나맥머피가수용된정신병원은정상을비정상으로만들고는정상이라판정하는비정상의정신병원이었다.그가갇힌정신병원이자본주의현대문명의알레고리로읽히게되는이유다.이곳에서맥머피의비정상적·비도덕적면모는비정상을정상으로강제하는자본주의현대문명과의싸움에실질적자산이된다.그리고이는자본주의현대문명에의해사회적패배자로낙인찍힌이들이자신에게둘러쳐있는억압기제에맞서서자유라는가치를드높이는영웅적면모로읽히게된다.비록맥머피는전두엽절제술이라는강제조치를통해비정상적으로정상화되었지만맥머피의반영웅적싸움은자신의상처를극복하지못한채정신병동에들어와언어장애인,청각장애인행세를하던브롬덴에게옮겨져결국정신병원으로부터의탈주를완성해내게된다.맥머피를전과자로또루저로만들었던요소들이반영웅맥머피의서사를빚어내는원천이된셈이다.
그런데여기비정상의영역에갇힌이가하나있다.일제강점기에발표된김사량의단편소설「유치장에서만난사나이」에등장하는왕백작이그주인공이다.맥머피가갇힌곳은자본주의현대문명의알레고리인비정상의정신병원이었지만왕백작이자기를가둔곳은‘비정상적자신’이었다.왕백작은일제강점기시절,아버지가조선에서도지사급으로있는등넉넉한집안배경을지닌인물이다.그러한그가사상범을즐겨자처한다.일제에기생하여든든한삶의터전을지닌이가독립운동을한다는것인데,실제로는전혀그렇지않다.그저사상범인척하며체포되어수감되는것이목표인양행동하는정상적이지않은인물이다.결국왕백작은자신의바람대로동경에서수감된다.그렇게1년남짓흘렀을무렵그는만주로행하는열차에서술에잔뜩취한모습으로발견된다.열차안은빼앗긴조국에서삶의터전을잃은채절망과두려움을안고만주로이주하는사람들로빼곡했다.그들틈에끼어있음으로써이번에는일본제국주의의억압아래삶의기반이파괴되어만주로내몰린이민자인척한셈이다.겉만봐서는정신분열자로몰려도할말없을행동이다.그런데그의내면은어떠했을까?현실에서는실현불가능한삶을자신의내면세계에서구현하는,그럼으로써현실에서는불만자체였을자신을내면세계에서는긍정할수있게됐던것은아닐까?그렇게자신을자신에게가둠으로써사상으로제국주의에저항하는영웅이,식민제국의폭력에시달리는이들과함께하는영웅이되어살게되는삶을연명하고자했음은아닐까?
어쩌면왕백작은뤼웨이푸나웨이롄수같은삶이더두려웠을수있다.이들은2,000여년간지속한봉건전제체제를끝낸신해혁(명1911년)에투신했다가혁명의좌절과함께갈피를잡지못한채절망과무력감속에방황하는지식인의전형이었다.루쉰의단편소설「술집에서」와「고독한사람」의주인공인이들은한때뜨거운열정과이상을품고사회개혁에뛰어든영웅적청년지식인이었다.그러나번번이부딪히는현실의벽아래열정과이상대신생계에발목잡힌채로근근이살아지는삶을이어간다.자신들이이전에증오하고반대했던모든것들을기꺼이행하면서,전에는숭배하고주장했던것들을이제는온통거부하면서말이다.이들의삶은왕백작의삶에비해어떠했을까?자신을자신에게가두는,하여겉으로는비정상의삶으로현현된왕백작이취한삶의방식과생계를위해과거자신이선택한삶을부정하며좌절과무력감속에살아가건만겉보기에는비정상이라고할수없는뤼웨이푸와웨이롄수가걸었던삶의방식.이러한삶의방식을과연우리는재단할수있는자격을,또역량을지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