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고등어 씨 (권순자 수필집)

사랑해요 고등어 씨 (권순자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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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일상을 보듬는 따사로운 시선”_ 권순자 신작 수필집
사랑해요 고등어 씨
여의도에서 길을 잃었다. 바람결 따라 샛강으로 흘러갔다. 낯선 문이 열리고 복숭아보다 달콤한 향기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문 안으로 들어서니 수필의 묵향이 안개처럼 자욱하여 그 향기에 취해 시간의 흐름을 잊었다. 목련꽃 하얗게 흐드러지고 벚꽃이 노란 개나리와 봄볕을 다투는 정경도 스쳐 지났다. 수박이 제 붉은 마음 무르익어 태양 아래 현기증 앓는 줄도 몰랐다. 밤송이가 속을 열어 알밤을 우박처럼 터뜨리는 가을이 산속에 홀로 물들어 가도록 샛강 도원에서 나는 수필을 쓰고 또 쓰며 머리가 맑아져 갔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지나온 길이 기억의 지붕 아래 잠자는 듯 말없이 묻혀있었다. 다람쥐가 나무 밑에 도토리 숨겨둔 장소를 잊어버리고 주변을 작은 발로 이리저리 파헤치다가 자신의 귀한 식량 한 톨 찾아내듯이 나는 기억이 묻힌 비밀의 세계에서 더듬거리며 때 묻은 기억을 한 올씩 건져냈다. 운 좋게 흙 묻은 도토리 하나 건져내는 다람쥐처럼 모자란 글을 주워들고 기분이 좋았다. 세월에 바래지고 녹슨 부분도 차라리 애처롭고 예뻤다. 그렇게 나는 샛강 도원에서 바람에 춤추는 수양버들을 보며 나이도 잊었다. 버들 옆에 수필나무 하나 심었다.

2019년 늦가을
권순자

시장 생선가게에 갈 때면 고등어가 있는지, 고등어 상태가 어떤지 먼저 살폈다. 고등어는 나무 상자 안에 담겨져 모로 누워 한 쪽 눈으로만 나를 멀거니 보거나 반대쪽으로 누워 꼬리를 내게 향한 채 먼 바다 쪽으로 눈길을 주고 있기도 했다. 검푸른 등은 서늘한 바다를 떠올리게 했다. 꼬리지느러미는 아직도 시퍼렇게 물결을 치며 나아갈 것 같은 기세로 꼿꼿했다. 하얀 배는 자유로이 헤엄치던 바다의 하얀 포말처럼 눈이 부셨다. 짠내와 비린내가 풍기는 어시장은 또 다른 바다풍경이었다. 나에게 말을 거는 고등어 두 마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주머니에게 생선을 다듬어달라고 부탁했다.

- 본문〈사랑해요 고등어 씨〉 중에서-
저자

권순자

시를 쓰고 가끔 수필도 쓴다.
올해 초부터 수필을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시의 맛과 다른 수필 맛에 젖었다.
바람과 햇살이 지나가고 구름과 별, 때로는 빗줄기가 지나갔다.
그동안 글을 썼고 눈부신 가을 햇살 속에 〈사랑해요 고등어 씨〉 책이 태어났다.
시집 『청춘 고래』, 『애인이 기다리는 저녁』 등이 있다.

목차

작가의 말 5

1부 초록, 화장하는 여자

세 살 적 버릇 평생 간다 12
물벼락 17
두고 온 맹꽁이사과 22
지하철 거치대 28
화장하는 여자 32
가든세탁소 37
탁구는 즐거워 42
실수해석법 55
공터 61
멸치허리 인사법 68


2부 파랑, 까마귀와 바닷새

사랑해요 고등어 씨 78
그 여름에 나는 진한 나이테를 새겼다 85
까마귀와 바닷새 91
친구 같은 구두 101
미꾸라지 몰이 107
월담 113
고등어추어탕 112
돼지몰이 125
외눈박이 하얀 개 131
주인 없는 늑대개는 무서워 137


3부 주홍, 꽃밥

가설무대 소녀가수 144
송어양식장 148
살구 152
홍시에게 말을 걸다 156
꽃밥 163
경건한 시간 168
강낭콩처럼 닮았다 173
할머니와 손녀 177
문식이 아저씨 182
대바구니 187
서른 살의 냄비 191

4부 노랑, 아버지의 자전거

휘영청 200
오래된 냄새 204
아버지의 자전거 211
파란 가로등 아래 녹슨 휴지통 216
항아리 속에 숨은 달 223
까마귀는 그냥 지저귈 뿐이다 229
오토바이 타는 여자 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