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많은사람들이알파고를얘기하고,인공지능과뇌과학에몰두하며,이른바제4차산업혁명이화두가되던어느날,나는지난세기말에보았던영화매트릭스(1999,Wachowski)를떠올리게되었다.그리고그당시가졌던여러가지의문중하나를다시기억해내게되었다.‘네오와함께하였던그들은왜그곳으로가려하는가?그리고그곳은어떤곳일까?’
“나는이스테이크가존재하지않는다는걸알아.이걸내입속에집어넣으면매트릭스가나의뇌에다이게즙도많고맛있다고말해주는걸알고있다고.9년이지나고나서내가뭘깨달았는지알아?무지가곧행복이라는것이야.”(사이퍼,매트릭스)
완벽하게설계된가상의일상속에서여하한위험도위협도없는삶들을지속하였어도그리나쁘지않았을텐데,왜굳이생명의위험을무릅쓰고저리도각다분하게고생의길을자처하려는것일까?모두가인류를구원하도록운명지워진네오가아닐텐데,차라리가상의것일망정눈앞에놓인육즙가득한스테이크를욕망하였던사이퍼가더현명한것은아닐까?비록영화적설정이기는하였지만,네오와동료들의그곳에는빛과쾌락의여유가허용되지않았기에,나의저러한의문은당시에는쉽게해소되지않았었다.코드화된거대한기계시스템의일부이기를거부하고,자신들의인간적정체성을지키기위해기꺼이숨죽이고피흘리는그들.말끔히구조화된가상의세계를거부하고,헤진옷과전쟁의비참이뒤엉킨인간의세계에서살아가기를갈망하는그들.그들의동기가자못궁금했었다.네오와그동료들이가려고하였던그곳이도대체어떤곳이기에?
이제시간이이만큼지나인간의교육을고민하는학자의관점에서의미를부여해보자면,그곳이비단장소적의미에국한되는개념은아닌것같다.그곳이어떤궁극적진리의처소라거나혹은모종의지고의이데올로기라는해석은어쩐지그들의저치열한일상과는괴리가있어보인다.어쩌면그곳은인간의삶이펼쳐지고포개어지는모든시간과공간이자,인간적삶그자체가아닐까.그들이힘을다해가려던그곳은결국인간이온전히인간으로있을수있다는사실,즉인간성·인류성(Humanity)그자체가아닐까.기계의일부가아닌인간적인간으로일상을영위하고자하였던그담백하고숭고한바람을한낱가상의스테이크와맞바꾸지않으려던의지의총합이곧휴머니즘이고,인간과세계에대한무지의유혹을과감히극복하고앎과지혜를추구하려는휴머니즘적자세가곧그들의고향이자미래상이라할수있을것이다.이은유를활용하여교육을정의하자면,교육은인간의이오래된고향을보존하고그위에미래의새로운터전들을개척해나가는일이다.
포스트휴머니즘과인간의교육?이라는제목으로선보이는이책의주제는역설적이게도“휴머니즘과인간의교육”이다.독자들의이해를위해부연하자면,현재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용어아래진행되고있는논의는크게두갈래이다.그첫째는‘포스트?휴머니즘’으로표기되기도하는그것인데,이것은문자그대로‘휴머니즘?이후’를의미한다.포스트?휴머니즘은전통적휴머니즘이인간이라는존재만과도하게중시하였고,그마저도모든인간이아니라특정인종과성별과그룹의이해를대변하는폐쇄적방식의인간중심주의의관점을견지해왔다는비판적성찰에기반한것이다.즉세계속에는특정부류의인간만있는것은아니고,또한더넓게는인간이라는생명체만있는것도아니며,아울러인간은이거대한생태구조중일부에불과하기에,인간?비인간이라는이분법너머에있는인간과비인간적존재들사이의공존과상호의존의가치가재고될필요가있다는것이다.이에더하여현대과학기술의비약적발전에따라미래에등장하게될다양한양상의새로운기계적존재들도공존과상호의존의영역속으로포함될경우,기존의휴머니즘은아주편협한개념틀이될것이다.‘휴머니즘?이후’라는의미의포스트?휴머니즘은이러한맥락에서등장하였고,보다넓고개방적인개념의휴머니즘을지향하는가운데,학계의공감을확장해나가고있는상황이다.
또하나의포스트휴머니즘은이른바‘포스트휴먼?이즘’으로표기되기도하는담론이다.이것은‘포스트?휴머니즘’에비하면그대상범위가다소제한적이다.포스트휴먼이즘은현대과학기술의발달로인해가능하여진혹은미래에가능하여질인간의변형태혹은업그레이드된인간상을‘포스트휴먼’으로통칭하고,이들포스트휴먼의출현이갖는인류사적의미와사회구조변화의가능성및이와관련된생명윤리적·사회윤리적함의와준거들을현재의기준에서그리고미래를전망하는가운데성찰하려는일련의학술적흐름이다.특히과학기술의비약적발달로인한기계의인간화및인간의기계화현상이가속화할수록인간과기계사이의경계가모호해지고,이둘의섞임을통한각종혼종적존재의출현이가시화할수록세간의흥분과염려는증폭되어갈것이다.과연포스트휴먼·포스트휴머니즘이현존의휴먼·휴머니즘의영역과가능성을더욱확장해나가게될것인가혹은이것이기존의휴먼·휴머니즘에게오히려회의와불안과위협의요인으로귀결될것인가가중심쟁점이라할수있다.그리고이쟁점은주로인간본성론과생명윤리의차원에서가장첨예하게드러난다.인간인가혹은기계인가,호모사피엔스인가혹은로보사피엔스인가등의표현들은이러한쟁점을단적으로보여주는수사(修辭)들이지만,일상적경험의영역에서는대조적으로표기된이들존재들사이의경계를확정짓기어렵다는점이난제로남아있다.예방과보정과치료의목적으로수행되는인간의포스트휴먼화(化)는긍정적으로수용할만한것이지만,그임계점에관한사회적논의와합의는또지난한여정을앞두고있는것이사실이다.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제하에진행되는위두가지담론들을보노라면,그주제가공히인간과휴머니즘으로수렴되는것을알수있다.이들의공통된관심은결국인간이어떤존재인지,또한인간이급격히진보하는과학문명의와중에향후어떤모습으로변모해나가게될지그리고이것이인간자신과인간의사회에시사하는바가무엇인지등이기때문이다.즉인간의인간적정체성과사회적관계성의문제들이포스트휴머니즘의주요주제라할수있다.물론여기에는여러상이한관점과주장이공존한다.즉앞서간략히언급된바와같은휴먼·휴머니즘에관한개방적관점이있는가하면,휴먼·휴머니즘의미래적이름으로명명되기도하는포스트휴먼·포스트휴머니즘에관한낙관적·기술지상주의적관점과비판적관점의병존이포착되기도하며,동시에휴먼·휴머니즘에관한전통적견해들도여전히선명한목소리를내고있다.이들에대한명명이어떠하든,그주제는인간의본성과인류의미래상에관한것이며,그러므로이것은결국휴머니즘의문제이다.동시에이것은곧교육학의주제이기도하다.교육학은,넓게정의하자면,인간의본성과인류의현재상뿐아니라인간의개선과인류의진보에관한담론들의체계적뭉치이기때문이다.
이책은인간과휴머니즘에관한위와같은관심과관점에서지난2년여동안집필한논문들을묶은논집이다.우선제I부에서는인간을기계적존재로이해하였던사례들을교육적관점에서탐구하고있다.주지하는바와같이교육학은전통적으로신또는동물과의비교를통해인간의교육적본성을파악하고,이를바탕으로인간교육의필연성과가능성에대한논거들을구성하여왔다.그러나근래에들어새로운비교대상,즉기계(류)가등장하면서교육적인간에대한새로운이해의필요성이제기되고있다.이제인간은전례없이유능하고쉼없이학습하는기계와비교되기에이르렀고,심지어그러한기계적시스템의일부혹은기계와섞인혼종적존재가되어갈것이라는전망도제시되고있다.그러나이러한관점이21세기에갑자기등장한것은아니다.인간을기계적관점에서규정하려는시도는시계와해부학으로은유되는17세기교육학의담론들속에서도찾아볼수있으며,이후에펼쳐진교육학의역사에서인간신체의기능적부품화라는관점으로재등장하기도한다.제I부에서는이와관련된몇몇사례들을소개하고,인공지능과뇌과학이빈번히회자되는오늘날의맥락에서이러한현상의교육학적의미를성찰하였다.
제II부에서는휴머니즘과포스트휴머니즘의경계로장을옮겨논의를이어간다.우선1980년대에최초로제기되고최근다양한학계에서중심화두로부상하고있는포스트휴머니즘의인간관을고찰하되,이것을인간의기능주의적환원그리고완전을향한욕망이라는관점에서조명한다.구체적으로는,지난세기말유럽지성계·언론계에서큰논쟁을야기하였던이른바“슬로터다이크스캔들”(1999)을중심으로,다양한휴머니즘들사이에서그리고전통적휴머니즘과포스트휴머니즘사이의경계에서벌어지고있는철학적논의를소개한다.이러한경계적논의들이교육학적으로유의미할뿐아니라이에관한고찰이불가피한이유는,이러한논쟁들속에휴머니즘과교육의종언에관한담론들이포함되어있고,아울러모종의새로운휴머니즘의탄생에대한예고가담겨있기때문이다.지난20여년동안교육학은이러한철학적논쟁으로부터한걸음비켜서있었지만,이제는이에관한교육학계의관심이점증하고있기에,해당논쟁을교육학적관점에서복기하고성찰할수있는기회를마련하고자하였다.
제III부에서는포스트휴머니즘의하위담론이라할수있는인간향상론(HumanEnhancement)을교육학적관점에서고찰한다.이른바BNIC(Bio·Nano·InformationTechnology,CognitiveScience)의시대라고표현되는오늘날,포스트휴머니즘에관한담론들은유토피아적미래에주목하고,또그것이과학적이고미래지향적인자세라고막연히생각하는경향이없지않다.아울러포스트휴머니즘일각에는인간의본성과인류의개선에관한전통적이해체계인교육·교육학을대체할만한것으로유전공학적·생명공학적·기계공학적인간향상론을제안하기도한다.물론그러한생각이현실로이어질지혹은어느정도로실현될지는현재로서는불확실하다.아울러‘과학적·미래지향적’이라는수사가지난세기인류파국의위험성을가중시키는데일조하였던철지난우생학의현대적부활을미화하는수단으로활용될가능성역시배제할수없는상황이다.이런맥락에서인간향상론이추구하는인간학적지향점과이를뒷받침하는논리구조들,그리고이것의사회적·정치적적절성여부를교육학의관점에서검토하는일은필요하고도중요하기에,제III부에서관련논의를진행하였다.이것은,거칠게표현하자면,포스트휴머니즘이내포하고지지하는인간의기계화에대한교육학적대답의시도라고말할수있다.먼미래에인간의모습이어떠할지감히예견할수는없으나,적어도2019년이라는시점에교육의영역에서공유되기를바라는잠정적생각들을여기에담아두었다.
앞서도언급한바와같이,이책은비교적짧은기간동안관련학술지들을통해발표된소논문들의모음이다.매논문은각각의기승전결(起承轉結)의구조로작성된것이기에,독자들께서는관심과필요에따라현재의순서와무관하게읽으셔도될것이다.다만처음부터한권의책으로구상된것이아니기에,때로한논문의결(結)이다음논문의기승(起承)의일부가되기도하고,한곳에서인용된문헌이여타논문에서재인용되는등의부분적반복이불가피하였다는점을미리일러두고자한다.
이책의여정에함께해주신분들께사의를표하고싶다.우선아홉편논문을성실히읽고비평과조언을아끼지않으셨던익명의동료학자들께진심으로감사드린다.여전히거친논리가남아있다면,그것은오롯이나의학문적소양의부족에서기인한것이라는점을삼가말씀드린다.아울러대학과가정을오가며자신의소임에최선을다하는아내에게도고마운마음을전하며,함께라야가능한행복의날들을감사함으로이어갈수있기를소망한다.그리고눈부신현(晛)!이경이로운존재는이책의글들이집필되던동안가장가까이에있었던지음(知音)이다.지면을빌어그에게진심어린고마움을표하며,이제여덟번째늦가을생일을맞는그에게축하와축복의마음을전하고싶다.마지막으로,투박한글에고상한책의옷을입혀준박영사관계자들의세심한노고에감사드린다.
2019년가을
우정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