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의해설로다시태어난‘아모르파티’
“삶을사랑하라,즉사랑할만한삶을살라”
시대와공감하는철학자이진경이<수유너머>에서진행한니체강의가‘니체의눈으로읽는니체’3부작으로독자들과만난다.그첫발짝을뗀『사랑할만한삶이란어떤삶인가』는저자가몸담고있는공동체에서겪는일상적인문제들,인간관계의어려움을해소하는방법으로선택한『선악의저편』‘함께읽기’에서탄생했다.이는명시적공동체뿐아니라누군가와함께만나고교차하는삶,피할수없는공동체성을갖는우리모두의삶에적용되는바이기도하다.공부하는사람들만의전유물이아닌,일상에서무기이자도구로쓸수있는니체의철학을소개한다.
니체의‘아모르파티’(amorfati)에는생성을긍정하라는가르침이담겨있다.저자는흔히알려진‘운명애’라는번역대신‘삶을사랑하라!’는의미로이를해석하는것이적절하다고말한다.이는단순히현생의삶을긍정하라는일차원적인뜻이아니라,‘사랑할만한삶을살라!’는외침이다.그진정어린깊이를이해할때‘삶을사랑하라’는구호는‘사랑할만한삶이란대체어떤삶인가?’라는질문으로바뀌어우리삶을돌아보게한다.
이러한니체의물음에저자는‘필로비오스’(philobios)의철학으로답한다.‘비오스’(bios)는삶이나생명을뜻하는‘라이프(life),비(vie),레벤(leben)’에해당하는그리스어이다.‘사랑’을뜻하는‘필로스’(philos)와합치면‘삶에대한사랑’을의미하는말이된다.철학을가리키는그리스어‘필로소피아’(philosophia)가‘지혜에대한사랑’이라면,‘필로비오스’는‘삶에대한사랑’으로서‘소피아’(지혜)에다가서고자한다.
니체가권한니체입문서『선악의저편』
이제는니체의눈으로니체를읽어야할때
니체는자기철학에들어오는입문서로『선악의저편』을권한바있다.니체의글은많은경우‘분열적’사고의집합인데다가,비판대상이뚜렷해전체적인문제설정을보기어렵다.때문에단편화된글을어떻게읽어내는가,어떻게배열하는가에따라아주다른해석이나올수있고,각자의편의에맞춰오해될수있다.이에반해『선악의저편』은주제에따라분류한글의논지를충분히전개하고있어,니체입문자로서전체적인문제의식을읽어내기에용이하다.특히1881년질스마리아호수에서영원회귀사상의'습격'을받은이후,즉성숙기니체의철학이고스란히담겨있다는점에서그의의를더한다.
이책이여타니체해설서와다른점은,니체의사유를따라가기만하는것이아니라,시대적필요에따라니체를주도적으로읽어내고비판한다는점에있다.니체는통상적인사람들이쉽게지나칠것을들리게하기위해일부러자극적인언어를사용했다.여기에19세기의시대적제약이더해지며오해의가능성이커진다.이기주의와악덕을예찬했던니체의주장은모두이런맥락에서이해할수있다.레닌의표현을빌리자면,구부러진막대를펴기위해반대편으로구부리는‘막대구부리기’였던셈이고,그러다보니스스로구부러진막대가되는함정에빠지기도했던것이다.
이진경의니체강의3부작‘니체의눈으로읽는니체’에는이처럼니체의글을니체의문제설정에비추어새로이읽겠다는의도를담았다.가령,‘귀족’이라는단어로‘고귀한자’를표상하는수사는과거에귀족이라고불리던자들의가시적특성을고귀함의요건으로간주하는오류를저지르게한다.그러나이책과함께니체의사유를체득한독자라면‘귀족’을들여다보는방식으로‘고귀한자’를읽는것이아니라,역으로고귀함과강함에대한규정을통해귀족의의미마저재정의하게될것이다.
나와세상의거리를긍정하는용기
‘니체의악조건’에서니체를배우다
‘거리의파토스’를언급했던니체는남들과다른자신의감각을긍정했다.가령,‘측은지심’이선한행위의네가지단서(端緖)에속한다고말했던맹자,동정의‘윤리학’을신학의지위까지밀고갔던레비나스등과달리,‘동정’과‘연민’에매우비판적인태도를취했다.현대의사례에빗대자면,5?18민주화운동에서광주시민들이피해자임을강조하는것은,맨손으로무장군대에맞선민중의위대함과사건의혁명성을축소하고포기하게하는면이있다는말이다.소수자를‘피해자’와‘희생자’로다루는시선은이를둘러싼타자의발언을원천차단하고,당사자를피해자란입장의감옥에가두며,고통의당사자를“퇴화시키고왜소화”한다는주장은오늘날의독자에게도생각의여지를남긴다.
반시대적사유를추구했던니체였지만,이진경의날카로운사유는그에게도동시대의뿌리깊은통념이야기한‘편향’이있었다는점을놓치지않는다.당시유럽은자신들이기원이순수하고탁월한그리스문명이라는환상에젖어있었고,이는니체의사유와가치판단에중요한지반이되었다.저자는니체자신이즐겨사용했던‘계보학’(genealogy)의방법으로그리스역사의기원을되짚으며,그리스는수입되어야했던이국문물이자유럽기독교에대한이교주의적외부로서충격을주었을뿐이며,그런그리스문명조차실은이질적인외부문화를수용하며발생했다는사실을지적한다.이는인종주의나민족주의를넘어선‘큰정치’를생각했지만,실은유럽이라는작은관념에갇혀있던사유의제약이다.
니체는데카르트의“나는생각한다,고로나는존재한다”는명제가주어없이쓸수없는동사의자명성을이용한‘문법의환상’이라고지적한바있다.저자는이러한관점을니체에적용해‘투쟁’과‘적응’이라는말에포함된문법의환상때문에투쟁은강자,적응은약자라는표상을만들어냈던건아닌지되묻는다.19세기를지배한‘생존경쟁’담론에따라,자기를억제하고공생하는것이생명의원리에반한다고보았던견해,공격성이나정복욕을강자의징표로보았던관념에대한비판적시선이다.
“오마음이여,잘도견디어냈구나!”
차라투스트라의친구가되기위하여
철학을삶에돌려주고자했던니체는세상의온갖일에참견하고비판하고제안하며,그가치에대해묻는다.그게정말삶을사랑하게하는것인지,사랑할만한삶을위한것인지에대한물음이다.저자는이를함께읽으며계보학적비판을견지했던니체를계보학적으로읽어내고,문법의환상에빠지지않기를촉구했던니체가빠졌던문법의환상을드러낸다.
중요한것은니체의옳고그름을따지기보다,니체의텍스트마저니체적인방식으로다시읽어내는것일테다.‘투쟁’이니‘적응’이니하는말을벗어나진정한강함이란무엇인지고찰함으로써‘주권적개인’에한발짝다가가고,왜그리스주의가이토록배타적이고환상적인형태로굳어졌는지유추해보며,무엇과도섞이지않은순수함이아니라,상이한문화들과교류하고섞이는것이문화적탁월함의발판이라는사실을이해하는것이다.
니체에의하면,‘기다림’이란사건을찾아가는것이고,때를만들어가는것이다.「높은산에서」라는후곡(後曲)의제목처럼,“때”는높은산으로찾아오고,그걸찾아높은산에오르는자만이발견할수있다.고귀함의상징인높은곳은지속적인자기극복을통해나자신으로부터높이올라간곳이다.고독의장소지만,그렇게찾아올친구들로붐비는고독이다.삶을위한철학을꿈꿨던니체의문장은누구에게나열려있다.“사랑할만한삶이란어떤삶인가?”이물음을기억한다면,몰락과탄생의기울기속에서삶에대한사랑으로가는길을찾아낼수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