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로 칼비노의 문학 강의 (새로운 문학의 길을 찾는 이들에게)

이탈로 칼비노의 문학 강의 (새로운 문학의 길을 찾는 이들에게)

$17.00
Description
환상문학과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이탈리아 문호
책, 출판, 문학을 사랑했던 이탈로 칼비노의 유작
문학의 미래에 부치는 미완의 강의록

1984년 6월 6일 이탈로 칼비노는 이탈리아 작가로는 최초로 하버드대학의 유서 깊은 문학 강의(‘찰스 엘리엇 노턴 시학 강의’, 이하 노턴 강의)를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1926년에 시작된 노턴 강의는 전통에 따라 한 학년도 동안 여섯 번의 강의로 진행되며 주제 선택은 강연자의 자유이다. 칼비노는 뉴 밀레니엄을 15년 남겨 둔 시점에서 “2000년에도 보존되어야 할 몇 가지 문학적 가치”를 강의 주제로 선택한다. “문학과 책이 처할 운명에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던 시기였다. 칼비노는 여섯 강의 중 다섯 강의의 원고를 작성하고 미국행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1985년 9월 6일 뇌출혈로 쓰러진 후 일어나지 못했다. 강의도 이뤄지지 못했다. 강의 원고는 타자 원고 그대로 수습되어 1988년 가르찬티 출판사에서 초판이 출간되는데, 부인 에스더 칼비노가 서문을 썼다. 작가의 돌연한 죽음으로 생전에 손수 정리 및 교정되지 못한 원고, 인터뷰 기사, 기고문, 편지 등을 묶고 연구하고 평가하는 작업은 차차 이뤄진 듯하다. 이탈리아 최대 출판사인 몬다도리가 펴내는 세계문학 전집 〈이 메리디아니〉 제1권 『이탈로 칼비노, 에세이 1945~85』에도 칼비노의 노턴 강의 원고가 수록되었다. 1991년에는 같은 전집의 한 권으로 칼비노의 『장단편소설집』이 출간되는데, 이 소설집에는 당시 현대문학 연구자들이 작성한 ‘이탈로 칼비노 연대기’가 실렸다. 몬다도리는 1993년 칼비노의 강의 원고를 단독 단행본으로 펴내면서 칼비노의 문학세계를 함축적으로 내보이는 이 책에 걸맞도록 흩어져 있던 ‘작가 연대기’와 ‘초판 서문’을 한데 모으고, 이전에 수록하지 못한 강의 원고 한 편과, 강의 원고에 대한 해제 성격을 띠는 문학평론가 조르조 만가넬리의 논문까지 수록했다. 한국어판에는 이탈로 칼비노를 한국에 알리는 데 힘쓴 이현경 선생님의 후기도 실어 이 책과 칼비노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저자

이탈로칼비노

1923~1985.쿠바의수도아바나교외의산티아고데라스베가스에서태어났다.어머니는칼비노가이탈리아인임을잊지않길바라며이탈로라는이름을지어주었다.하지만칼비노가두살이되기전온가족이모국으로돌아와산레모에정착해살았기때문에칼비노는자기이름이“호전적인국수주의자”같은인상을준다고느꼈다.청소년기에문학작품을읽었지만만화잡지를더욱탐독했고영화에푹빠져지냈는데,대학진학전까지는희곡작가가되는게꿈이었다.1941년농학자인아버지와식물학자인어머니의뜻에따라토리노대학교농학부에입학했다.영화평론을쓰고,훗날긴인연을맺게될에이나우디출판사에글을투고하고,당시새로운경향의문학작품들을읽으며문학,정치,문화,윤리영역에서식견을길러나간다.제2차세계대전이발발하고한때징집을피해숨어지내기도했으나,1944년이탈리아공산당유격대에합류해나치파시스트에맞서싸웠다.종전후귀환병에게주는혜택을이용해같은대학문학부로옮겨학업을마쳤다.친우들의격려를받으며첫장편소설『거미집으로가는오솔길』을집필해1947년출간하고리치오네상을수상했다.이후그를환상문학의대가로자리매김케한작품을꾸준히발표하며다양한방면의문인,역사가,철학자와우정을나누며지적교유를이어갔다.‘우리의선조들’3부작으로불리는『반쪼가리자작』『나무위의남작』『존재하지않는기사』,우주론에관한환상적인짧은이야기모음집『우주만화』,하이퍼소설『어느겨울밤한여행자가』와『교차된운명의성』,철학소설『팔로마르』등을발표하며문학적실험을멈추지않았다.이탈리아인으로는최초로미국하버드대학교의유서깊은문학강의에초청되어강의록,즉이책의원고를쓰던중급작스런뇌출혈로생을마감했다.

목차

서문_에스더칼비노
이탈로칼비노연대기
작가연대기참고문헌

1강가벼움
2강신속성
3강정확성
4강가시성
5강다양성
부록_시작과끝에대하여

후기_조르조만가넬리
인용출전
옮긴이후기
인명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과학자집안의미운오리새끼
시대의진폭속에서다르게사유한작가
강의를여는말이되었을책의짤막한첫머리에서칼비노는다음과같이지난(당시에는지금)천년기를정의한다.“이제문을닫기시작하는지금의천년기는서양의근대언어들뿐만아니라,이언어의표현적·인지적·상상적가능성들을탐색한문학이탄생하고확장한기간이었다.또한책의천년이었다고도할수있는데,책이라는매체가우리에게친밀한형식을취한시기이기때문이다.”(p.77)칼비노는1923년에태어나예순두해의삶을영위한20세기인물이다.과학자집안에서장성해유일한문학가인자신을미운오리새끼라고여겼다.고등학교를졸업하기전까지소설을읽고유머잡지를즐겨보고영화에는푹빠져지냈다.단편,시,희곡을지었으며희곡작가가되는게꿈이었다.고교재학중에2차대전이발발하면서서서히정치적으로각성해갔다.1944~45년에는이탈리아공산당이조직한유격대에자원입대하여나치파시스트에맞서싸우는여러전투에참가했고,이탈리아공산당의지역기관지에활발히기고했다.종전후귀환병에게주어진혜택을이용해전공을문학부로옮겨졸업했다.칼비노는“나는전쟁중에지적으로성숙해졌습니다”라고술회한다.출판사와잡지에꾸준히투고하면서‘문학공부’를제대로시작했다.1946년12월,첫소설『거미집으로가는오솔길』을완성했다.첫소설은이듬해10월에이나우디출판사에서출간되어큰성공을거두었다.칼비노는투고하던출판사에서책을내고입사까지하여당대여러분야지성들과교류하며책을만들었다.“내인생의대부분을내책이아니라다른사람들의책에바쳤어요.출판업은우리가살아가는이탈리아에서아주중요한일이기때문에나는만족합니다.그리고이탈리아출판계의모범이되었던에이나우디출판사에서일한것은적잖이소중한경험이었습니다.”(p.29)주로는단편을발표하고,드물게장편을쓰면서문예·정치·영화잡지에기고하고,출판프로젝트를이끄는가하면,새로운소설에대한평론을쓰는등작가·편집자·문학평론가로활동했다.리얼리즘경향의소설들을발표하던중1951년여름“거의단숨에『반쪼가리자작』을집필한다.”〈우리의선조들〉3부작으로불리게되는연작의첫작품이다.1956년이후로는정치적으로공산주의와도결별한다.같은해11월『이탈리아민담집』출간을계기로참여지식인의모습과대조된다는평가와함께‘우화작가’의이미지를얻었다.이듬해『나무위의남작』을,1959년에『존재하지않는기사』를펴내며〈우리의선조들〉3부작을완간했다.이로써리얼리즘계열문학이주름잡던세계문학판도에한획을그으며현대문학과환상소설의거장(보르헤스,마르케스와함께)으로서명성이높아진다.그런후에도당대문학의핍진한세계관에서희망을발견할수없었던칼비노는새로운실험을멈추지않았다.1960년대들어활동반경이더욱넓어지고,과학에더관심을기울이며,프랑스의울리포(‘잠재문학작업실’,p.48)그룹과교류가활발해졌다.이시기에“기상천외하고역설적인희극성(항상유희와동일시되는것은아니다)에대한취향,과학과언어조합기술에대한관심,실험주의와고전성이공존하는문학에대한장인적사고”를실험하는,『우주만화』『티제로』로묶이게될단편들을꾸준히발표했다.칼비노는문학가이력의정점에이른1981년프랑스의정치·경제·문화등의발전에공적이있는사람에게수여하는최고권위의훈장인레지옹도뇌르훈장을받았다.

“내작업의대부분은무거움을제거하는것이었다”
언어와문학의실험을멈추지않았던칼비노의문학세계
칼비노가노턴강의록에붙인제목은‘다음천년기를위한여섯가지메모’다.“2000년에도보존되어야할몇가지문학적가치”를가벼움,신속성,정확성,가시성,다양성,일관성이라는여섯가지주제어에담고자했다.강의(책의)순서는“칼비노가중요하다고생각하는순서”대로결정되었다(옮긴이후기).첫강의의주제를‘가벼움’으로선택한이유는글의첫머리에밝혀져있다.

“픽션을쓴지40여년의세월이지나고나니,여러길들을탐색하고다양한실험을해보고나니,그동안실행한내작업에대한총체적인정의를해야할시간이찾아왔다.나는이렇게말하고싶다.내작업의대부분은무거움을제거하는것이었다고.나는때로는인간의모습에서,때로는천체에서,때로는도시에서무게를제거하려했다.그리고무엇보다도이야기의구조와언어에서무게를제거하고싶었다.”(p.81)

칼비노는당대의문학사조에기꺼이투신할수없었다.2차대전종전후이탈리아에서는네오리얼리즘이문학은물론예술전반에큰영향력을행사하고있었다.전유럽의상황이비슷했다.전후청산과복구의방편이네오리얼리즘이되었건사회주의리얼리즘이되었건다큐를찍듯현실을냉엄하게직시해야할의무가모든젊은작가들에게주어진정언명령이었다.

첫소설을비롯한칼비노의초기소설은리얼리즘의영향을받았다.하지만자신이겪은삶의사건들과“나의글쓰기에생명을불어넣길바랐던재빠르고예리한민첩성사이에뛰어넘기힘든틈이벌어져있다는사실”을곧깨달았다.이틈을마주하는어떤순간에는세상이돌로변해가는것처럼보이기도했다.마치메두사의냉혹한시선을피하지못해돌로변한듯말이다.논지를여기까지풀어간칼비노는다른주제의강의보다‘가벼움’을다루는1강에서가장많은고전작품을예시로들며고대문학과이탈리아문학의전통안에서‘가벼움’의가치를입증하려한다.그편폭은시간적으로는고대그리스신화와철학에까지거슬러올라가며,이탈리아어로쓰인문학이형성되던초창기의시인은물론셰익스피어,베르주라크,스위프트,『천일야화』,카프카를아우른다.

칼비노는가벼움의가치를칭송하기위해무거움을배제하지않는다.오히려그의가벼움은무거움에서나온다.가장먼저그는오비디우스의『변신이야기』에서페르세우스와메두사의이야기를가져온다.메두사와돌,헤르메스의날개달린신발을신고하늘을나는페르세우스와거울(아테나신의방패),메두사의피에서탄생하는날개달린말페가수스.칼비노의신화해석은다음과같다.“페르세우스의힘은그가살아야했던괴물세계라는현실,항상함께해야하고짐처럼짊어져야할현실을거부하는게아니라언제나직접보기를거부하는데에서나온다.”(p.84)

칼비노는신화의이야기구조와상징에대한과도한해석을경계한다.공포스런모습의메두사,그의눈을마주치면돌로변하는두려움.메두사의가공할힘에맞서기위해페르세우스는무게를버리고우회하는전략을선택한다.현실이여러가지얼굴로대적해올때매번정공법만으로맞설수는없다.치명상을입지않고그무게에도잠식되지않으려면때론페르세우스처럼고도와각도를변화시키는지혜가필요하다.

언어에서무게를제거한예로는이탈리아문학태동기의두시인카발칸티와단테가비교된다.이대목을읽는독자라면칼비노가단테가아니라카발칸티를더높이평가한다는사실에놀랄수도있다.카발칸티가지은소네트의한행(“그리고바람한점없이내리는하얀눈”)과단테가『신곡』「지옥」편에서쓴비슷한시행(“바람없는높은산에내리는눈같이”)을인용하며시어의선택과배치등을세세히따져분석한다.“단테가가장추상적이라할수있는지적인사색에도물질적고체성을부여하는반면,카발칸티는명백한경험의구체성을운율을맞추고음절을나눈시구에녹여버린다고말할수있다.”(p.100)

인간의실존적조건은삶의무게를회피할수없다는것이다.그것이존재의기본값이라면삶의무게에대한반동으로서의가벼움에대한탐색은문학의본령에도기본값으로입력될것이다.문학사에등장한모든작가가추구한방향은아니었을지언정,현실세계를미궁으로인식하고“작가의역할이복잡한현실의미궁을이성적으로파악하고언어를통해그지도를그리고출구를찾는데도움이되는가장좋은태도를제시하는것”(p.291~2)이라고생각한칼비노에게가벼움은자기문학의출발점이었음이분명하다.


미궁에도전하는글쓰기
미궁에서길을만드는방법
칼비노가옹호하는문학적가치들은대비되는관념을묵살하지않는다.무거움이가벼움보다가치가덜하거나무가치해서가아니라“그저가벼움에대해할말이더많다고생각”한다.이런열린태도는다른특질들에대한논의에서도유지된다.

신속성은“문체와구조,이야기의경제성,리듬,이야기가전개되어가는본질적인논리”를결정하는정신적인속도의문제이다.따라서“서사에서의시간은늦춰질수도있고순환할수도있으며움직이지않을수도있다.”

정확성은,작가라면누구나추구하는테그닉이자가치이지않나싶은데,칼비노가보기에글쓰기의정확성과연관된설계/이미지/언어라는요소를살펴보면마치페스트에감염된것같은증상들이발견된다.

가시성은언어의조합과조탁을통해구현된다는측면에서정확성과함께가며,상상력(“정신적인이미지형태로소유하고있는어떤생각”,p.201)을언어로써표현하려고궁구하는과정에서획득되는특질이라는점에서는어떤형식의문학에서든공통적인가치라고할수있다.

다양성(Molteplicit?)은세계의다수성과다의성을적극적으로포용하는인식론적특성을함축한다.칼비노는다양성강의에서“백과사전적소설”혹은“소설-백과사전”이라는명칭으로여러작가의작품을소개하며현대소설에서뚜렷이드러나는다양성의양상을풍부하게보여준다.

일관성원고는작성되지못했다.이원고는하버드에도착한후쓰려고했으며허먼멜빌의『필경사바틀비』를다룰계획이었다.초판에미처포함되지않았던부록〈시작과끝에대하여〉에는이원고‘일관성’에포함될예정이었다는편집자주석이첨부되어있다.비록현재부록원고에『필경사바틀비』가인용된흔적은없지만이야기를어떻게시작할것인지고심했을작가들이선택한첫문장의향연이펼쳐진다.실로이야기의시작은무수한가능성으로열려있지만,오늘밤들려줄이야기를결정하는순간다양한가능성으로부터분리되므로,“시작지점은탁월한문학적장소”라고한다.이책은문학에관해이야기해야하는칼비노가아름다운문장과깊이있는사유로엮은탁월한문학적장소가되었다.문학의보편적본질을톺아보는동안자신의문학까지아울러해설해내는신속성,정확성,가시성,가벼움,다양성은마지막책장을덮고나면불현듯깨닫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