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과학은 가능하다 느린 과학 선언 (상호의존의 관계를 다시 엮는 과학으로)

다른 과학은 가능하다 느린 과학 선언 (상호의존의 관계를 다시 엮는 과학으로)

$18.50
Description
“적어도 이것은, 이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이
‘당신은 알고 있었으면서 무엇을 했습니까?’라고 물을 때
우리가 들려줄 수 있어야 할 종류의 이야기이다.”

화학자로 경력을 시작해 과학에 관한 철학적 주제들을 연구해 온 벨기에의 과학철학자 이자벨 스탱게르스(Isabelle Stengers)의 사유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책이다. 선언을 표방한 이 책의 주제 ‘느린 과학’은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사려 깊고 진심 어린 호소문이다. 과학계 내부를 향해서는 연구와 교육 환경, 산업계와의 이해관계, 평가 체계 등에 뿌리내린 빠른 과학 관행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하고, 시민을 향해서는 과학의 감시자이자 지성의 대화자로 동행해줄 것을 요청한다. 과학을 위한 대중지성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저자

이자벨스탱게르스

저자:이자벨스탱게르스(IsabelleStengers)
브리셀자유대학교과학철학과교수.1949년벨기에브뤼셀에서태어나브뤼셀자유대학교에서화학을전공했다.일찍부터철학에관심을갖고과학에관한철학적주제들을연구하며약25권에이르는책을썼다.1979년노벨화학상수상자일리야프리고진과함께쓴『새로운동맹(LaNouvelleAlliance』을출간했고,과학철학자로서는200편이넘는논고를저술했다.한국어로번역된책으로는프리고진과의공저인『혼돈으로부터의질서(OrderoutofChaos)』가있다.1993년아카데미프랑세즈로부터철학대상을수상했다.학자인생후반기의연구관심은‘코스모폴리틱스’라는개념으로대표되는데,동명의책이2013년STS분야의대표적국제학술단체4S가제정한루드비크플렉(LudwikFleck)상을수상했다.분석철학계에서도존경받는철학자이며,2022년타계한과학기술학자브뤼노라투르가자신의글을논박하며눈물흘리게할유일한사람,“그채찍이두려운”최고의학자로언급하기도했다.

역자:김연화
포항공과대학교화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석사학위를받았다.대기업연구소에서연구원으로재직하다가과학기술현장이사회적으로이해되는과정을공부하고자서울대학교과학학과(구과학사및과학철학협동과정)에진학하여한의학의경락을연구하는물리학실험실에대한현장연구로두번째석사학위를받았다.졸업후정부출연연구소와대학산하연구소를거쳐,현재는서울대동대학원에서박사과정을수료하고학위논문을준비하고있다.공저로『겸손한목격자들:철새경락자폐증성형의현장에연루되다』『돌봄과작업?나만의방식으로엄마가되기를선택한여자들』이있다.

역자:장하원
서울대학교생물자원공학부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석사학위를받았다.졸업후대기업산하연구소에서신규화학제품개발연구에매진하던중과학의쳇바퀴바깥에서과학을보고싶어서서울대학교과학학과에진학하여자폐스펙트럼장애를돌보는다양한기술과학실행에대한현장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졸업후경희대학교인문학연구원,서울대학교기초교육원을거쳐현재는부산대학교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서한국사회의질병과장애경험에대해연구하고있다.공저로『겸손한목격자들:철새경락자폐증성형의현장에연루되다』『대한민국재난의탄생』『감염병의장면들』외다수,번역서로『판도라의희망』(공역)이있다.

목차


1장과학에대한대중지성을향하여
‘대중’이과학을‘이해’해야하는가?
대중은무엇을이해해야하는가?
과학에는감식가가필요하다
선한의지만으로는충분하지않다
시험대에놓인과학
불편한진실
의심의상인들에게저항하기

2장올바른자질을갖춘연구자들
젠더와과학
진정한연구자들
진정한연구자의구성
동원해제?

3장과학과가치:어떻게하면속도를늦출수있을까?
평가의지배속에서
동료는누구인가?
‘과학’,용해되어야할결합물
대비
공생
속도를늦추기…

4장루드비크플렉,토머스쿤그리고과학을느리게하는과제

5장‘다른과학은가능하다!’느린과학을위한호소

6장코스모폴리틱스:근대적실천을문명화하기
보장의부재
정치생태학
정치를문명화하기

옮긴이후기

출판사 서평

이것아니면저것을빠르게구분하고선택하기를추동하고동원해온
‘정상과학’을향한호소이자모든근대적관행을겨냥하는시의적제언

2018년2월,한온라인저널에실린이자벨스탱게르스의『다른과학은가능하다』에대한서평을먼저짧게살펴보자.서평가는스탱게르스의책이당면한비판으로,미국대학의한약리학과교수가<타임스고등교육(TimesHigherEducation)>에기고한리뷰의일부를인용한다.“약리학자로서나는,한쪽에서환자들이새로운치료제가각종규칙과절차를지켜사용승인이나기를기다리다가죽어가는데도,재차과학을느리게하자는주장에열렬히반박하고자한다.”(2017)서평가는이약리학과교수가책전체를찬찬히읽었는지의문시하지만그의이의제기는역설적으로스탱게르스의진단중많은부분을확인해주는증거라고서술한다.그약리학과교수의주장은스탱게르스의‘다른과학’을오독하는전형적인방식에다름아니다.이책의여섯개장에서다뤄지는주제들은하나같이이같은오해와오독의가능성을노정한다.상상력을작동시키는것을철학자의임무로받드는스탱게르스의실천은견고한통념에균열을내고경계를교란해어느하나의사실(증거)에권위를부여해온‘빠른과학’(혹은‘빠른학문’)의성공방정식에서의식적으로벗어나는사유방법을보여주려는것으로보인다.

빠른과학은과거의영예로운훈장일까

과학지식을만들어내는데는많은시간이걸린다.혼자할수있는일도아니다.비단실험적입증이필수적인분야만그런것도아니다.그렇기때문에스탱게르스의기본입장을듣고처음에는납득되지않을수도있다.하지만책에서누누이강조되지만빠르고느림은속도의문제가아니다.사실상빠른과학을최초로모델링한화학자유스투스폰리비히의사례와저자가말하는느린과학의대비를보아야한다.

디드로(Diderot)와달랑베르(d’Alembert)의『백과전서(Encyclopaedia)』중‘화학’항목에서,화학자가브리엘프랑수아베넬(GabrielFrancoisVenel)은화학을‘광인의’열정으로묘사했다.그는조향사부터금속공,약제사에
이르기까지화학의여러기예와기법에관련된미묘하고복잡하고종종위험한화학적작업들에대한실질적인지식과능력을습득하는데에는평생이걸린다고썼다.반면에,리비히의실험실에서학생들은4년간의집중적인훈련을받으면박사학위를취득했다.하지만이들은이러한수많은전통적인기예와기법에대해서는아무것도배우지못했다.대신,정제되고잘식별된반응물과표준화된실험절차만을사용했으며최신방법과기술만을배웠다._176쪽

이런체계를확립한리비히의대학실험실은오늘날대학들에서일반적인모델이되었다.어떤창시자의지위에있는그가발명한‘빠른화학’은다른한쪽에서새로운화학산업이창설되는데크게기여했다.즉그는오늘날우리가‘선형모델’이라고부르는개념의창시자다.이선형모델은유명한‘황금알을낳는거위’비유를동반한다.

산업계가학문연구로부터거리를두고과학계가스스로의질문을결정할수있는자유를보장하는것이산업계자신에게도최선의이익이된다는것이다.왜냐하면오직과학자만이각단계에서어떤질문이유익할지,어떤질문이빠른누적적발전으로이어질지,어떤질문이아무런성과없이단순한경험적사실수집으로끝날지를판단할수있기때문이다.산업계가자기만의질문을설정하려든다면,이는곧거위를죽이고알을잃는것과같다._177쪽

리비히의시대를뒤로하고시간이지나자빠른과학모델은부메랑이되어돌아와거위를위협한지오래되었다.순수과학(은없지만편의상이렇게부르겠다)과응용과학혹은대학연구실과산업계의선형적관계혹은밀착외에다른속성도있다.빠른과학은‘지식경제’도래후‘탁월성’에대한인정을얻기위한경쟁이학문적생존의조건이되었고이러한경쟁은일류학술지게재라는희귀한자원을둘러싸고이루어진다.저자는이주류학술지출판을통한평가를매우혹평하는데,폐쇄적일뿐만아니라연쇄적인부작용을낳고,궁극적으로는이체계가과연과학자신을위해지속가능한가라는근본적인의문과염려를불러일으킨다.

어떻게하면과학의속도를늦출수있을까

그렇다면느린과학은어떻게하는것인가.프랑스어원서의부제는Manifestepourunralentissementdessciences인데,영어slow의명사형에해당하는ralentissement은발생한현상의정적상태(느리다)에대한묘사라기보다는느려지기(감속하기),느리게하기에가깝다고한다.하지만가속페달에서발을떼는것은“정직하고훌륭한연구자들이동료들에게공정하게인정받던다소이상화된과거”로의회귀도아니거니와관행을바꾼다는것은분명정치적사안임을정확히인식해야한다.

스탱게르스는빠른과학에대해서도느린과학에대해서도깔끔한명제로서정의하지않는다.빠른과학은우리가일궈왔고현재가진것이므로비판적으로검토된다.느린과학은가져보지못한것,상상의이미지조차합의된바가없다.대신저자는하나의대비를통해설명을시도하고자들뢰즈를예시한다.

상위철학학술지(일반적으로분석철학성향의)에서그의인용횟수는미약할것이다.그의생산성에대해말하자면,그는많은논문을발표하지않았고발표한논문의대부분은인정되지않는학술지에실렸기때문에하찮게평가될것이다.그의저서역시인정되지않을텐데,‘진짜연구자’는심사위원이정한범위내에서동료들을위해출판하기때문에그의저서는‘평가바깥에’있다.따라서‘동료들에의한’빠른평가는들뢰즈의방식으로철학을하는것을비난한다.(…)들뢰즈자신에게는‘빠른철학자들’의학문적번영은철학의훼손과거의동일하기때문이다.

선명한대비를통해손쉬운이해를획득하지만,‘유능한동료’에의한평가모델은사실상모든학문분과에걸쳐적용되고있다.그럼에도과학이여타학문과확연히다른점은있다.다른분야들은“유능한동료라는개념이학문공동체를하나로묶는데실패”하는데비해과학은“이른바근대과학의참신함을만들어내는동료간의연결이라는문제를중심으로과학들의차이라는문제를조명한다.”바꿔말하면과학에서는“교리상의분열”이좀체일어나지않으며,판단의준거를정의함에있어충돌은없고,(실험적)사실이가치를향해승리를선언할때사실에대한조직적인반격은일어나지않는다.이는‘다원성’의결여로이어진다.

느리게하기,되찾기,문명화하기

스탱게르스는과학이동원되고경쟁하고벤치마크평가에굴복하는등일련의속도전에익숙해지면서“저항,마찰,주저함등우리가이세상에서혼자가아님을느끼게만드는것들에대해”둔감해져왔다는사실을안타까워한다.거듭강조되지만그런이유로빠른과학은단지속도의문제에그치지않는다.
속도를늦춘다는것은다시배울수있는능력을갖게되는것이며,다시사물들에친숙해지는것이고,상호의존의관계를다시엮어가는것을의미한다.그것은사고하고상상하며그과정에서타자들과포획의관계가아닌관계들을만들어내는것을의미한다.즉우리사이에서그리고타자와함께,병든자들에게효과적인종류의관계를만들어내는것을의미한다.타자와함께,타자로부터,타자덕분에배우기위해서로를필요로하는사람들을위한관계속에서,우리는살만한삶이무엇을필요로하며가꾸어야할가치가있는지식이무엇인지를배울수있다._130쪽

인용문에내포된내용은마치인클로저가무자비하게지워버린집단지성과연결의감각을상기시킨다.그러나느린과학은과학자들이세계의복잡한난맥상을온전히감안하라는명령어가아니다.“과학자들이자신들의사고양식이지니는특수성과선택적인성격에대해집단적으로인식하고이를발전시키라는도전을직시해야함을의미”하며,수련과정에서이러한내용이실현되려면“과학자들을문명화하는것”이요구된다.근대적기획의문명화는진정한문명화가아니었다.스탱게르스의문명화란“특정집단의구성원들이다른집단의구성원에게모욕적이지않은방식으로,즉관계형성을가능하게하는방식으로자신을표현하는능력을갖추는것이다.”

저자는흥미로운비유로이관계맺기를설명한다.내가(인간이)마주보는엄지를가졌다고해서타인에게나를그런존재로표현하는것에대해우리는거리낌이없다.왜냐하면그것은‘사실의문제’이기때문이다.과학은입증할수있는하나의사실에권위를부여하는방식으로자신의영역을공고히하고발전해왔다.그러나그것이사실이어도그것을표현하는방식에제약을가한다는것은객관성과합리성이라는준거(벤치마크)대신지식의부분적특성을인식하고‘관심의문제’를향해열린태도를함양하는것으로나아갈수있게한다.

이자벨스탱게르스는누구인가
스탱게르스가한국에이름을처음알린것은노벨화학상수상자일리야프리고진과의공동저작『혼돈속의질서』(민음사,1997;2011년자유아카데미에서『혼돈으로부터의질서』로재출간)을통해서였다.이책과저자를소개하는몇몇자료를살펴보면,그는현재과학기술학계의핵심적문제의식과연구관심,주요개념을공유하는과학사가이자과학철학자임을알수있다.저자의연구관심은‘코스모폴리틱스’라는개념으로집약되어나타난다.그가오해를무릅쓰고다시꺼내든‘가이아의침입’이라는화두는우주지정학으로풀어서표현할수있는코스모폴리틱스를‘위치짓는’중요성을갖는다.또한화상미팅을통해그를만난인터뷰전문온라인매체에는과학기술학자브뤼노라투르와의지적교유를짐작할만한내용이포함되어있어흥미롭다.라투르가그를최고의학자(ultimatemaster)로꼽으며글에대해논박하면서자신을울게할수있는“그채찍이두려운유일한사람”으로표현했다는것이다.과학기술학에대한관심이고조되어가는지금,세학자의학문적영향관계가이책의번역을계기로한국과학기술학계의연구를통해대중적으로알려지길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