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창

빗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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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반도 남쪽 섬, 한가롭던 해변에 정부가 거대한 항구를 만들기로 결정하자 마을 사람들은 반대 운동에 나선다. 환경 보호의 명분 뒤엔 육지인들에 대한 해묵은 거부감 또한 똬리 틀고 있다.
비대위 농성 천막이 세워진 바닷가 너럭바위에 마을의 마지막 심방(무당) 고장생이 홀로 진혼굿을 벌인다. 오래전 그곳에서 떼죽음 당한 원혼들을 위로하는 의식이다. 농성장에서 지켜보는 석준은 어릴 적 굿을 따라다니던 기억을 되살리며 장생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서울에서 광고 회사에 다니던 석준은 민간인 사찰 사건에 연루되어 서른넷 나이에 실직하고 빈털터리로 귀향했다. 석준의 형, 명준은 집 마당에 들여놓은 컨테이너 공장에서 농기구 만드는 일을 한다. 한쪽 다리를 절며 늘 남의 눈치나 보던 그가 마을 비대위원장을 자청해 활동하다 구속되기에 이른다. 석준에게 농성장은 구속된 형을 대신하여 마지못해 참석하는 자리다.
1949년생 심방 장생은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서 사람들의 병까지 고쳐 주던 어미 심방 문막례의 뒤를 잇는 마을의 마지막 심방이다. 젊은 시절 스스로의 사상을 증명하기 위해 해병대에 자원하고 월남전 참전 후 직업 군인으로 1980년 빛고을에 파견되었다. 5월 난리통에 자신의 아이까지 배 속에 품은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좌절하던 그는 결국 세상을 등지고 귀향했다. 어미 심방을 이어 무가에 입적하지만 잃어버린 여인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하고자 하는 처절한 욕망을 어미에 못 미치는 신기(神氣) 대신 묘약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 애쓴다. 마침내 과거와 미래를 꿰뚫어 보여주는 관시탕을 얻었으나 제 몸에 반복된 시험으로 끝내 건강을 잃어 정작 본인은 그 묘약의 효험을 경험할 수 없다.
석준은 베트남 출신 어린 형수 응옥이 환청과 두통에 시달리자 수감 중인 형을 대신하여 병원에 데리고 다니지만 원인 모를 병의 치료에 실패한다. 며느리의 증상이 향수병인가 싶은 어머니 부탁으로 형수 응옥을 데리고 베트남 친정에도 다녀왔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그러는 사이, 석준과 응옥은 서로에게 애정을 느낀다.
명준과 결혼한 지 6년이 됐지만 응옥에겐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산부인과 진단 결과 그녀에게는 이상이 없다. 그녀는 평생을 해녀로 살아 온 시어머니에게 물질을 배운다. 연로하여 더 이상 물질을 할 수 없게 된 할머니는 손자며느리의 손에 빗창을 쥐어준다. 두통으로 실신하기에 이른 손자며느리를 보다 못한 할머니가 석준에게 고 심방을 찾아가 보라고 권한다. 응옥의 신기를 첫눈에 알아본 고 심방은 석준에게 일종의 거래를 제안한다. 형수의 병을 고쳐줄 테니 몸이 쇠락해진 자신을 대신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한 잔이면 과거로, 두 잔을 마시면 미래로 간다는 고 심방의 얘기에 호기심이 발동한 석준은 관시탕을 받아들고 과거 여행에 빠져든다. 그리고 해방 후 이어진 비극의 가족사와 질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저자

권행백

한의학박사.내장산기슭에서태어나전주고,경희한의과대학을졸업하였다.해외의료봉사등진료와사회활동에전념하던중일중독에빠져허우적대는자신을발견,모든활동을접고홀연히‘자기다움’을찾아떠났다.몰입과성찰의십여년여정끝에본명을버리고‘행복한백수’를의미하는‘행백(幸白)’이라는이름의이야기꾼으로돌아왔다.이제그의삶을지배하는화두는두가지이다.실존하는인간의행복한삶이란무엇인가?그리고현재의한국사회를규정하는굴곡의현대사는어떻게해석할것인가?첫번째질문을진화생물학에서찾은『이기적유전자,반격의사피엔스』로정리하고,후자에대한답을구하고자얽히고설킨한국현대사를지배와저항,허위와진실의핍진한서사로풀어낸십여편의소설로찾아왔다.

2013년진화생물학에세이『이기적유전자사용매뉴얼』발표
2015년단편<샤이레이디>《한국소설》신인상
2016년<불교신문>,<광남일보>신춘문예당선
2017년단편<오동의꿈>경북일보문학대전금상
2018년장편『한옥마을남쪽사람들』발표
2018년중편<바람이깎은달>서귀포문학공모전대상
2018년중편<악어>제26회전태일문학상
2018년소설집『악어』발표
2019년소설집『아버지의우상』발표
2019년계간《동리목월》신인상
2019년『이기적유전자사용매뉴얼』의수정증보판『이기적유전자,반격의사피엔스』발표
2023년소설집『타인의삶』발표

목차

1.귀향
2.어린형수
3.베트남
4.미여지벵뒤
5.관시탕
6.까마귀하르방
7.빗창의혼
8.악몽
9.잃어버린여인
10.신내림
11.장두
12.종이꽃
13.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제주4?3에서베트남전,5월광주를거쳐오늘에이른핏빛한국현대사를헤집는본질적물음.
‘빗창’은제주잠녀(해녀)들이‘물질’에사용하는가장중요한도구이다.바닷속바위틈깊숙이파고든소라전복은맨손으로따기힘들뿐더러무리하게따려하다가는다치거나심지어는목숨이위태로울수도있다.목숨을담보로가족의삶을일구기위해제주여인들이소중이(물질할때입었던옷)허리춤에매고바닷물속을누볐던빗창은밭일에쓰던골갱이(호미)와더불어삶의질곡을표상하는도구였을뿐아니라권력에맞섰던저항의도구였다.
전태일문학상수상작<악어>등이미발표한작품에드러나듯,작가는실용주의와신자유주의적파고에이념과서사가꺾인시대에도끊임없이굴곡진우리현대사에천착해왔다.우직하리만치역사의고갱이를부여잡고민초들의삶의현장을발로누빈끝에마침내제주4?3에서오늘우리삶을규정하는본질적질문을끌어냈다.

“성님,그놈덜이누구편이꽈?우리편마씸?경허민그‘우리’는대체누구꽈?날만새민우리제주사롬덜싹쓸어다죽이는데그놈덜이어떵우리영혼패란말이꽈!”

해방후혼란의틈바구니에서이념의균열을파고들어강자를등에업고변신에성공한리바이어던은자신들만의공고한카르텔구축에성공했다.한끼니에삶을걸어야했던인민들이고대했던새로운세상은없었다.한가마쌀의무게에도미치지못할권력의욕망이곳곳에서처참한억압으로드러나고,희망의끈을부여잡고자했던공동체적삶은처절하게무너져내렸다.그렇게제주에서시작된핏빛저항의현장은여수순천으로,이나라청춘들의고통스런희생을담보로국경넘어베트남인민의피까지머금더니다시이땅광주의5월로이어졌다.그역사의과정어디에같은시간한하늘을이고사는인간애를찾을수있었던가.

한때‘명의’소리까지들으며편안하게안주할수도있었던한의사의길을내려놓고실존적인간의행복을찾아나선작가이다.그러니통한의세월을거슬러왜곡된오늘의정치경제사회적실존을규정하는근원적질문이소설로드러난건당연한귀결이리라.거대담론이사라진자리에정치적허무주의와실용주의적욕망이들어앉은시대이지만,역사는반복되고나락에서도희망은언제건공기처럼스며들므로인간적삶에대한작가의근원적의문이이소설을통해독자들의가슴에서서히스며들수있으리라믿는다.

작가의말
소설에입문할때들은말이있다.이야기란제스스로앞장서이끄는힘이있으므로쓰다보면글이저절로풀려나오게되어있다고.나역시작품이거듭될수록그런기분으로동력을얻기도했다.하지만장편『빗창』을쓰기시작할즈음,종잡을수없는힘이수시로나를붙잡고더이상나아가지못하게했다.탈고뒤곰곰생각해보니그건역사의무거움때문이었다.소설가란본시그럴듯한거짓을꾸며독자를진실의문으로인도하는업고를진자가아니던가.동시대인들이바로세우지못한현대사에묻혀있던상처들을들추어내반추하는작업에나는진땀을흘렸다.취재과정에서표토를걷어내자눈앞에마주한진실은저마다다른빛깔이었고잘만다듬으면훌륭한의미로거듭날원석과들여다볼수록구역질나는오물이마구뒤섞여있었다.발굴한고대유물에서옥석을가리듯나는그렇게정리한재료에의미와방향성을부여했다.잠시는아플지라도길게보아그것이옳다는믿음에한점의심이없을때까지나자신을거울에비추어보아야했다.
빗창을퇴고하면서유난히작품속김순경에게애정을느꼈다.그는여순과제주를넘나들며역사의현장을증언하고연결시키는통로이다.여순의한(恨)과제주의그것은데칼코마니임에도그동안마치별개의사건인양그연결성을주목받지못했다.긴세월국가폭력세력이만들어놓은이념의부정적이미지에서로가엮이고싶지않아서였을것이다.그것은비교적표현이자유로운문학의영역에서도마찬가지였다.항쟁의도화선에불을붙인세력이한쪽은인민들이었고한쪽은군인들이었다는점이다르다면다르겠으나둘다해방된세상을제대로세워보려는인간애의발로였음을나는의심하지않는다.더구나여순항쟁은이나라정규군이외세의존적신생정부의반민족반헌법적명령에분연히저항하여민중과연대한세계사적으로도드믄사건이었다는확신으로나는빗창을완성할수있었다.
제주해녀들의생계수단이자저항의상징인빗창은소설속에서해녀사대를거치며그상징성을돋보이게하는장치다.나는소설속오석준에게과거와현재를오가며당시민초들의애환을드러내는역할을부여했다.종장에서그가골리앗에게도전하는나름의저항방식을찾아낸것을다행으로여긴다.써놓고보니소설한권에너무많은이야기를욱여넣은듯싶다.할말이많았나보다.작품에대한판단은오로지독자의몫이다.소설『빗창』이현대사를재조명하는데제역할을다할수있기를바랄뿐이다.

추천사

이것은싸움의기록이다.강정의오늘에서제주4?3과광주,그리고베트남전쟁에이르기까지잊힌기억들을기록하는분투이자,잊혀서는안되는말들을되살리는싸움이다.그싸움의기록에서우리는제주와베트남을,그리고광주를,동아시아의처절한역사를오늘의눈으로바라볼수있다.그것은오늘의현장에서어제를말하는일인동시에어제의기억으로내일을쌓아올리는영계울림이다.죽은자들의목소리들이생생히살아나는지극한오늘이자,기억을여전히오늘의일로되새기는지독한되새김이다.
김동현|(사)제주민예총이사장,문학평론가

소설『빗창』은70여년전제주섬에서뚝뚝부러져간4?3원혼들을위한진혼굿을시작으로섬사람들의애환과굴곡의한국현대사를명징하게드러낸다.탄탄한취재와소설적상상을더해살려낸제주민들의아픈역사는‘우리’라는가짜명분을앞세워일방적으로가해진국가라는리바이어던의폭력에다름아니다.간결하면서속도감있는문체로제주어의맛을살려낸대화들은억지스럽지않아더욱좋다.소설이모든폭력으로부터희생되어야했던원혼들에게진혼곡이되길빌며,제주의아픈역사가올곧은이름으로역사에새겨지길기대한다.
양성주|제주4?3희생자유족회사무처장,(사)제주다크투어(www.jejudarktour.org)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