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P.18
그숱한죽음의날짜,시신의숫자가역사가들에게소중한것이라면,문학가들에게는죽음이가져다준상처와고통,그리고애도의서사가중요하다.왜냐하면문학은살아남은자들이죽은자들을위해베푸는제의와같은것이기때문이다._오대혁,여리디여린눈송이와새가피워내는불꽃中
P.27
제주도민들은실재하지않는개념의세계에갇혀그들을구분한세상의경계를넘어가는걸두려워하며죽은것처럼살아야했다.그세상은개념화로구분하여강요된세상이었고,도민들은그세상의질서를따르지않으면배척되었다.지배층의동일성집단에들어가야살아남을수있는세상이었다.경계밖의세상은절멸되어야할세상으로인식되었던것이다._이광용,세상을개념화하여구분하는경계를넘어서中
P.41
사랑한적도없는새를필사적으로구하려다실패한경하는‘아마’라불리는앵무새의주검을위해예의를갖추어정성껏묻어준다.폭설이내리는어두운밤에새를장사지내기위해삽을들고홀로고투하는장면은학살자들에대한준엄한고발이었다._김양훈,지극한사랑을탐구한소설中
P.53
제주에는바다에도무덤을쓴다는작가의상상이제주4·3을떠올리게하며송곳처럼나를찌른다.제주4·3은한라산이나오름이나불탄마을이나쓰러진산담에만있는것이아니라눈내리는모든곳이제주4·3의현장이다._윤상희,공간을시간으로바꾸는언어中
P.67
제주4·3영령들이한강작가를영매로선택하였구나생각했다.경하는보이지않는거대한칼이허공에떠서몸을겨누고있는형국이자신의삶을당겨말해주고있는지도모른다고받아들이게된다.피할수없고써야만극복되는천형과도같은작가의운명을생각해보는이장면에서박경리가『토지』를쓸때의심경을토로한글이떠올랐다._양경인,연약한생명에바치는영가(靈歌)中
P.76
이소설은고통에대한이야기다.고통은심리적,육체적으로기존의안정과평화가깨어졌을때드러나는감각이다.소설안의인물들은모두고통을가지고있다.경하는작가로서의고통과새를구하러가는과정에서의고통을,인선의어머니정심은자신과언니만살아남고동생의죽음과오빠의시체를찾지못한고통을,인선의아버지는살아남은자의고통을가지고있다.그러나고통은통증과두려움으로남을수도있지만단계를거치며나아가기도한다._임삼숙,연민은다른이의고통과내고통의결합中
P.87
눈은차갑고가볍고연하고부드럽다.새는작고연약하고,생명이고영혼이고사랑이다.밤은죽음이고바다밑과같이어둡다.불꽃은사랑이다.꺼질것같이가녀리지만과거와현재를이어가는사랑이다.신이있어야할자리에신의공백위로인간의유한성을환기하며작가는묻고있다.
“과거가현재를도울수있는가?죽은자가산자를구할수있는가?”라고._현민종,우리의현재가과거가될때中
P.90
먼곳에서내렸던눈송이가구름속에서응결된다.살육이벌어지던날얼굴에쌓였던눈이오늘내리는눈과다르지않을수있다.가해자와피해자가어디선가결국다시이어지고닿는관계,인드라망의세계다.그살상이결국내가족을해치거나어쩌면나자신을죽이는일인지도모른다.작가는폭력과살상으로뒤엉킨세계를표현하고싶었던것일게다._양영심,아픈역사를직시하는한강의사랑법中
P.115
계속피가흐르고통증을느끼게하려면주인공인선이한것처럼신경이죽기전에삼분에한번씩봉합된손가락에바늘을찔러야한다.우리가단지당장아프기때문에제주도의비극을기억하지않고고통과마주하기를외면한다면역사의신경한부분은죽을수밖에없다.그러므로N차회독은계속되어야한다._김영준『작별하지않는다』가끄집어낸국가폭력과제노사이드中
P.118
산자들의삶은고통의연속이며,그고통은쌓이기마련이다.그게한이된다.그한을풀어주는사람이무당이다.무당은마음속에앉은아픔을치료해주는사람이다.이사람을제주에서는심방(心房)이라한다.심방은마음의방이다.마음의방이기에마음을거울처럼맑게가꾸는이가심방이다.그렇기에심방은거울에비친타인의아픔을읽어주고치료해주는영적존재다._강법선,큰심방한강이풀어내는4·3굿中
P.135
제주4·3을둘러싼항쟁의서사가지워짐으로인하여생길수있는문제의하나는애도의위계일것이다.즉애도할수있는죽음과애도할수없는죽음이구별된다.소설속에서종종언급되는노인과어린아이를비롯하여이른바무고하게희생된양민의죽음은애도의대상으로인정받지만,항쟁을주도했거나이에동조하여입산하거나입산자들을지원한이들의죽음에대한애도는금지되거나보류된다.소포클레스의비극에서왕의명령을어기고오빠폴리네이케스의시신을몰래매장한안티고네의항변을크레온은아마도현실적인이유에서뒤늦게나마인정했지만,그렇다하더라도외국군대를끌어와조국을혼란에빠뜨렸다는폴리네이케스의반역죄가테베시민들의기억에서지워진것이아니라면과연그의죽음은애도를받은것인가?_김정주,애도할수없는섬의유령들中
P.148
경하가새아마에게찾아가는길의눈보라속에버스에서내려미끄러진건천이가시천이며,“폭우와폭설에만흐르는마른물길(127쪽)”을경계로마을이나누어진곳에바로이새가름공원과위령비가있다.한때20여가호에100여명의주민들이살았던새가름마을은제주4·3으로전소되었고,재건되지못한마을을굳이위령공원이름으로채택한것은사라진마을의기억을회복하기위함일것이다._김성례,포토에세이,성근눈발속에만난‘작별하지않는’사람들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