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의 철학

관광객의 철학

$18.00
Description
근대의 태동과 함께 출현한 세계 시민의 이상이 21세기 들어 흔들리고 있다. 배외주의적 정치 세력의 득세,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발, 세계 각지에서 끊이지 않는 테러리즘. 세계는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미 이루어진 지구화를 되돌리는 데는 많은 대가가 따른다. 무엇보다 우리 대부분은 그것을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국민과 세계 시민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다. 『관광객의 철학』은 이 분열을 넘어서는 정치철학을 모색한다. 이때 관광객은 글로벌리즘과 내셔널리즘 사이에서 분열된 현대 세계를 다시 연결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의 상징이다.
『관광객의 철학』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등의 저작을 통해 정보 사회에 관한 독창적인 논점을 제기하며 일약 일본 비평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던 아즈마 히로키가 현시점에서 지난 20여 년의 작업을 결산하고 새로운 전개를 선언하는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칸트와 헤겔, 슈미트와 코제브 그리고 아렌트, 노직과 로티, 네그리와 하트 등 기존 정치철학을 대표하는 이론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또 비판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다듬어진 ‘관광객의 철학’에 도스토옙스키부터 현대 SF에 이르는 문학이 보여 준 전망을 접목시킨다.
흔하고 가까운 관광이라는 현상을 오늘날 우리가 처한 철학적 위기를 돌파할 실마리로 삼고 써 내려 간 이 책에는 공리공론을 넘어서는 호소력이 있다. 다방면에 걸쳐 이어져 온 지은이의 작업이 한 권의 책 안에서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집약되는 것을 독자들은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아즈마히로키

1971년도쿄에서태어났고,도쿄대학대학원종합문화연구과박사과정을수료했다.1993년『솔제니친시론』으로데뷔했고다수의인문과학계열잡지에평론을게재했다.1998년『존재론적,우편적─자크데리다에관하여』로제21회산토리학예상을수상했다.포스트모던에서오타쿠문화에이르기까지,현대사회와문화에대한폭넓은발언과논고를전개하여일본에서가장주목받는젊은논객중한명이된다.그...

목차

들어가며

1부관광객의철학
1장관광
보론2차창작
2장정치와그외부
3장2층구조
4장우편적다중으로

2부가족의철학(서론)
5장가족
6장섬뜩함
7장도스토옙스키의마지막주체

옮긴이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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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관광객,세계곳곳을기웃거리는불손한산책자
관광그리고관광객은근대와함께태동했다.19세기대중소비사회의형성은노동자계급에여가를가져다주었고,이에따라근대이전의여행과는구분되는관광이출현했다.대중관광사업의시초인토머스쿡은계몽과사회개량의신념을갖고귀족의전유물이었던여행을대중관광상품으로만들었다.여기에는당연히많은반발이뒤따랐는데,관광을경박한행위로여기는시각또한그영향이남긴결과라볼수있다(중국등신흥강국의단체관광객을향한따가운시선도그현대적예가될수있다).
오늘날까지관광객을긍정적인사유의대상으로삼은경우는찾아보기어렵다.1990년초판이간행된이래관광연구의대표저작으로자리매김해온『관광객의시선』(존어리·요나스라르센지음)조차2011년3판에서는관광산업의확산이가져올생태계파괴와테러위협등에대한경고로논의를마쳤다.이런시각에서보는한관광객이란글로벌리즘의이면에무지하고탈정치적인‘들뜬존재’에지나지않는다.
그러나지은이는관광객의출현을발터벤야민이말한산책자의출현과병행하는현상으로포착하며,관광객이함유한가능성을적극적으로드러내고자한다.벤야민은쇼핑몰의기원이라할수있는파사주를목적없이걸어다니는사람을산책자라불렀는데,지구화의진전으로전세계가쇼핑몰을닮아가고있는오늘날에는산책자의다른이름이관광객인셈이다.그리고관광객=산책자는세계를‘우연적시선’으로파악한다.다시말해이들은“갈필요없는장소에가볼필요없는것을보고만날필요없는사람을만나는”존재,우연을촉발하는존재다.

포스트모던철학의유산
타자의철학을관광객의철학으로갱신하다
이책은들뜬존재로서관광객의정치적가능성에주목한다.지은이는카를슈미트,알렉상드르코제브,한나아렌트등의‘진지한’정치철학을비판적으로검토하며,이들이공유한‘개인이한국가의시민이자국민이된후세계시민으로나아간다’라는성숙의신화가가진맹점을짚는다(이런신화의뿌리는헤겔철학에서찾아진다).세계시민이되기를거부하는테러리스트(나아가서는‘불량배국가’)같은미성숙한존재들을이해할수없는타자로서원천배제하는이론이라는것이다.지은이는이러한배제가가져올악순환을우려한다.
20세기말의포스트모던철학(대표적으로지은이가연구했던자크데리다등)은이런근대정치철학의맹점에대한비판의식에서타자의철학을탐구했으나정치적실효성을거두지못한채퇴조했다.지은이는관광객의철학이이타자의철학을갱신하려는시도임을감추지않는다.특히일본비평의앞선세대를대표하는가라타니고진의사상(그는『윤리21』,『트랜스크리틱』등에서타자의철학을역설했다)을발전적으로계승하려는의도를분명히한다.“타자를소중히하라는말은지겹다”고말하는이들을진보적명제(‘타자를소중히하라’)로돌려보내기위한“뒷문”으로서관광을활용한다는것이다.

검색알고리즘이우연을몰아낸세계
21세기의최선설을비판하다
현대세계는우연을배제한다.인터넷이일상구석구석까지침투한오늘날,우리는알고싶은사실이있으면관련검색어를검색포털에입력하는것만으로무수한정보를접할수있게되었다.더구나IT대기업이운용하는검색알고리즘은검색어와연관성이높고사용자평가가좋은웹페이지를우선적으로찾아보여주기때문에우리는더이상필요한정보를찾아도서관이나현장을헤맬필요가없어졌다.그러나돌아보면이러한헤맴의과정이종종우리에게알고자했던정보이외의생생한지식을전해주곤했다.검색알고리즘은이런우연의생산을소거한셈이다.
이러한현실은극도의합목적성이만드는오류없는세계라는점에서철학적으로는라이프니츠의최선설을연상시킨다.기술발전과지구화는세계에풍요와건강을확산시켰다.세계적으로큰인기를모았던한스로슬링의『팩트풀니스』같은저작이보여주듯글로벌리즘의성과는오늘날자명해보인다.그러나지금우리가동기를규정하기어려운무차별테러나배외주의의확산같은부정적경향성을목도하고있는것도사실이다(『관광객의철학』일본어판은트럼프가미국대통령에당선되고영국의브렉시트가결정된지얼마지않아출간되었다).지은이는이런상반되는두방향의현상이공존하는원인을글로벌리즘과내셔널리즘이동거하는세계의‘2층구조’에서찾는다.그리고과거볼테르가『캉디드』를통해라이프니츠의최선설을반박했듯관광객의철학을통해이현실의타개책을모색하고자한다.

내셔널리즘과글로벌리즘을왕복하며
세계에오배를발생시키는‘우편적다중’
2000년대정치철학가운데안토니오네그리와마이클하트의『제국』,『다중』등공동작업이글로벌자본주의에저항하는이론으로서각광받았다.이들은글로벌리즘의확산과내셔널리즘(국민국가)의쇠퇴가만들어낼세계질서를‘제국’이라명명하고이런흐름을저항적으로전유하는전망을제시했다.또한인터넷이나미디어전략을적극적으로활용해국경을넘나들며제국과대결하는새로운정치주체로서‘다중’을호명했다.그러나네그리와하트의예상과달리실제로내셔널리즘은쇠퇴하기는커녕(그럼으로써누구나가세계시민으로직행할수있는통로가생기기는커녕)글로벌리즘의확산에반발하듯오히려기세를높이고있다.더불어실천주체인다중의정의도지나치게모호했다.낭만적인수사와구호를걷어내면이론을실천으로이어나가기위한전략의부재가드러난다.냉전이후이념의시대가저물면서급진정치철학은기묘한‘부정신학’적논리에빠져들었다.부정신학은신의존재를‘신은~이아니다’라는부정의중첩을통해증명하려는신학논리를뜻한다.지은이는네그리와하트의다중이적극적규정을기피함으로써내용이비워진개념이라는의미에서‘부정신학적다중’이라는평가를내린다.
그러나글로벌리즘이가능하게한글로벌리즘의대안이라는점에서다중은관광객에선행하는기획이었다.따라서관광객이새로운저항의철학으로서실효성을가지려면다중을극복할필요가있다.이를위해지은이는먼저자크데리다철학에서추출한‘우편’개념을제시한다.관광객은말하자면‘우편적다중’이라는것이다.우편은간단히말해언제나배송사고즉‘오배’의가능성을함축하는상태를의미한다.관광객은자기국경안에머물때는국민이지만다른나라에체류할때는세계시민의체험을한다.관광은내셔널리즘과글로벌리즘을왕복하는운동이다.관광객의목적없는발길은종종우연한마주침을가져오고,이들은그우연의경험을갖고서다시국민의경계안으로돌아가게된다.이런경험의누적이사회관계가고착화되어가는현실에변화의가능성을열어준다는것이다.지은이는이러한철학적논의에실질성을더하기위해현대네트워크이론의성과(라슬로바라바시와레카앨버트의‘무척도’,던컨와츠와스티븐스트로가츠의‘스몰월드’개념등)를도입해관광객개념을뒷받침한다.

관광객의철학에서가족의철학으로
배외주의와테러리즘의시대를넘어
연민의전파로맺어지는‘우연한가족’의확산을꿈꾸다
철학서로서이책의도드라지는특징중하나는철학텍스트에대한독해못지않은비중과중요도로문학을다룬다는점이다.라이프니츠의최선설을비판한볼테르의『캉디드』,헤겔패러다임을냉소한도스토옙스키의『지하생활자의수기』,기술유토피아의악몽을예견한필립K.딕의『발리스』등이그대표적사례다.특히『관광객의철학』이제시하는정치적전망과관련해도스토옙스키는큰무게를가진다.『지하생활자의수기』에서『악령』을거쳐『카라마조프가의형제들』에이르는그의작품세계는고독한테러리스트의내면에서출발해연민으로맺어지는새로운연대성에이르는변증법적구조를가지고있기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를경유해『관광객의철학』이제시하는‘새로운연대성’이란무엇일까.우선지은이는관광객의철학이공리공론에그치지않기위해서는튼튼한정체성의토대를갖추어야한다고말한다.과거공산주의가힘을가질수있었던것은정체성의중요성을간파하고서계급을강조했기때문이다.네그리와하트의다중론이형해화된것은다중에이렇다할정체성이없었기때문이다.지은이는기존정치이론들에서나아가에마뉘엘토드등의인류학적논의까지검토한끝에“개인도국가도아니면서자유의지로변경할수없고정치적연대에활용할수있는확장성을갖춘개념”으로서‘가족’을말한다.관광객의철학이말하는새로운연대에실체성을부여하는것은가족(의철학)이다.부정신학적다중은고독한개인들의결실없는단발적연대를거듭할뿐이지만우편적다중은우연한마주침을가족의형성으로이어간다.
여기서가족은관광객이새로운정치적주체의은유였던것처럼도래해야할정체성의은유로이해될수있다.오늘날가족을말하면혈연이라는불변의요소에기반한집단으로서가족을중시하는보수이데올로기의옹호자로받아들여지기쉽다.그러나지은이는오히려(일본의)진보진영이원래는중립적단어였을‘가족’을되찾아오려하지않는다는사실을비판한다.엄밀히따졌을때가족은언제나우연의산물이다.도스토옙스키의표현을빌리면“모든가족은언제나우연한가족”이다.가족을가족이게하는본질적인요인은결코혈연이아니라우연한마주침에서발생하는연민의감정이기때문이다.따라서가족은혈연,성별만이아니라때로는종의벽까지넘어선다.즉가족의철학은연민에서시작해주워온길고양이와만들어나가는관계까지가족으로포괄할뿐만아니라오히려그런관계를적극적으로가족이라부르자고제안한다.
우연을향해자신을열어젖히는관광객이되어라.우연은때로섬뜩한모습으로우리를찾아올수도있다.마치신생아의얼굴처럼.그만남에서연민을느끼고책임을배워새로운가족을만들어나가라.책마지막부분에서지은이는‘나’의죽음이라는절대적필연을중심으로구축된(그럼으로써나치즘과도가까워졌던)하이데거철학을비판한다.하이데거철학에는가족이없었고부모됨에대한고민도없었다.그를전율케한‘나’의죽음은끝까지아이로머물려한고독한존재의죽음이다.“아이로죽는데그치지말고부모로서도살아가라.”그리고“세계는아이들이바꿀것”이다.관광객의철학을거쳐이른가족의철학이말하고자하는바는이렇게요약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