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가치 혁명」으로 10만 독자를 감동시킨
김원태 목사의 또 다른 인생 역작!
당신 인생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우리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을 바꾸는 것,
그것이 곧 인생 혁명이자 최고의 성공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인생의 주인이 나인 줄 착각하며 산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되면 성공해도 망한 것이다.
한 번밖에 살지 않는 인생,
내가 주인 되어 살다 망할 것인가?
아니면 인생의 주인을 바꾸어 최고 성공의 삶을 살 것인가?
늦기 전에 지금 선택하라!
예수를 믿는 것은 죄의 뿌리인 나를 빼내고 내 안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것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법정적 칭의라고 말한다. 이 법정적 칭의는 자칫 잘못하면 한 번 구원을 받았으니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이상한 믿음을 낳게 한다. 이런 사람은 삶과 믿음을 이분적으로 생각하는 모순을 낳는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 아니다. 정말 올바른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내 아들”이라는 법정적 칭의와 함께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아버지와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관계의 회복이란 탕자로 살다가 아버지 집에 돌아온 아들처럼 다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탕자는 자기 스스로 아버지의 아들이라 칭함받을 자격이 없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탕자를 아들로 받아주었다. 이것은 아버지가 탕자에게 베푸는 은혜이다.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탕자는 아버지의 집에 돌아온 순간 법적으로 아들의 자격이 회복됨과 함께 아버지와 관계가 회복되는 두 가지가 동시에 시작되었다. 이제 탕자는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여야 한다. 탕자가 아들이 되었다고 자기 마음대로 다시 허랑방탕하게 산다면 아버지의 은혜를 헛되이 하는 것이다. 아들이 되었다면 당연히 아들답게 살아야 한다.
구원은 하나님의 집에 돌아온 탕자가 아들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계속 아버지의 집에 살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탕자가 다시 아버지 집을 떠난다면 구원이 없겠지만 아버지의 집에 거하면서 아들로 산다면 그 자체가 구원이다. 아버지 집에 거하는 탕자의 선한 행위가 구원을 결정하지 않는다. 구원은 전적인 아버지의 은혜로 되는 것이다. 아버지 집에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된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순간 구원을 얻는 것은 법정적 칭의에 해당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은 관계의 유지에 해당한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에겐 구원이 있다. 예수를 믿어도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죄도 지을 수 있다. 육체를 가진 우리는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연약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성령님을 보내 주신 것이다. 내 힘으로, 내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을 받은 사람만 구원받을 수 있다. 구원은 아버지를 떠나 내 힘으로 산 것이 모두 죄인 줄 알고 아버지 품에 돌아와 아버지 집에 거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혜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그 얻은 구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매 순간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며 살면 된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이다. 또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것도 은혜이다. 천하고 천한 우리 몸에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사시는 것 자체가 엄청난 기적이며 크나큰 은혜이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예수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삶의 열매는 저절로 나타난다. 내가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열매에 신경을 쓰지 말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이것이 인생 혁명이며 최고의 성공이다. 당신은 나 혼자 힘으로 사는 초라한 인생이 되길 원하는가? 아니면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왕의 삶의 일부가 되길 원하는가? 나 혼자의 힘으로 사는 천 일보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하루가 되는 게 더 좋다.
김원태 목사의 또 다른 인생 역작!
당신 인생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우리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을 바꾸는 것,
그것이 곧 인생 혁명이자 최고의 성공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인생의 주인이 나인 줄 착각하며 산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되면 성공해도 망한 것이다.
한 번밖에 살지 않는 인생,
내가 주인 되어 살다 망할 것인가?
아니면 인생의 주인을 바꾸어 최고 성공의 삶을 살 것인가?
늦기 전에 지금 선택하라!
예수를 믿는 것은 죄의 뿌리인 나를 빼내고 내 안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것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법정적 칭의라고 말한다. 이 법정적 칭의는 자칫 잘못하면 한 번 구원을 받았으니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이상한 믿음을 낳게 한다. 이런 사람은 삶과 믿음을 이분적으로 생각하는 모순을 낳는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 아니다. 정말 올바른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내 아들”이라는 법정적 칭의와 함께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아버지와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관계의 회복이란 탕자로 살다가 아버지 집에 돌아온 아들처럼 다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탕자는 자기 스스로 아버지의 아들이라 칭함받을 자격이 없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탕자를 아들로 받아주었다. 이것은 아버지가 탕자에게 베푸는 은혜이다.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탕자는 아버지의 집에 돌아온 순간 법적으로 아들의 자격이 회복됨과 함께 아버지와 관계가 회복되는 두 가지가 동시에 시작되었다. 이제 탕자는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여야 한다. 탕자가 아들이 되었다고 자기 마음대로 다시 허랑방탕하게 산다면 아버지의 은혜를 헛되이 하는 것이다. 아들이 되었다면 당연히 아들답게 살아야 한다.
구원은 하나님의 집에 돌아온 탕자가 아들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계속 아버지의 집에 살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탕자가 다시 아버지 집을 떠난다면 구원이 없겠지만 아버지의 집에 거하면서 아들로 산다면 그 자체가 구원이다. 아버지 집에 거하는 탕자의 선한 행위가 구원을 결정하지 않는다. 구원은 전적인 아버지의 은혜로 되는 것이다. 아버지 집에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된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순간 구원을 얻는 것은 법정적 칭의에 해당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은 관계의 유지에 해당한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에겐 구원이 있다. 예수를 믿어도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죄도 지을 수 있다. 육체를 가진 우리는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연약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성령님을 보내 주신 것이다. 내 힘으로, 내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을 받은 사람만 구원받을 수 있다. 구원은 아버지를 떠나 내 힘으로 산 것이 모두 죄인 줄 알고 아버지 품에 돌아와 아버지 집에 거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혜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그 얻은 구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매 순간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며 살면 된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이다. 또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것도 은혜이다. 천하고 천한 우리 몸에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사시는 것 자체가 엄청난 기적이며 크나큰 은혜이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예수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삶의 열매는 저절로 나타난다. 내가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열매에 신경을 쓰지 말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이것이 인생 혁명이며 최고의 성공이다. 당신은 나 혼자 힘으로 사는 초라한 인생이 되길 원하는가? 아니면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왕의 삶의 일부가 되길 원하는가? 나 혼자의 힘으로 사는 천 일보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하루가 되는 게 더 좋다.
인생 혁명 : 인생의 주인을 바꾸는 것이 인생 혁명이자 최고의 성공이다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