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 에너지전환으로 가는 가교
국제사회는 파리 기후변화 협약과 후속 협약에서 2050년을 탄소중립 데드라인으로 설정했다. 2021년 10월 기준으로 한국을 포함, 총 55개국이 탄소중립을 문서화 또는 법제화하였다.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는 G20 국가의 탄소중립 정책을 평가하였는데, 한국은 강력한 정책을 수립한 1분위 국가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2019년 기준 1차에너지 발전량 대비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비율을 보면 한국은 2.4% 수준으로, 이탈리아(18.2%), 독일(14.6%), 영국(12.5%) 등 주요 OECD 국가들의 2001년 수준이다. [I부 1장 참조]
천연가스는 2034년 정도까지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가교연료(중간 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천연가스는 다른 화석연료와 비교해 이산화탄소, 미세먼지, 질소산화물 등의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적다. 또한 탄소배출량, 발전 효율, 균등화발전비용 면에서 우위도 있다. 균등화발전비용이란 대기오염, 온실가스 대책 비용, 사고위험 대응 비용 등 외부효과까지를 반영한 비용이다. 이런 이슈로 천연가스 수요는 전 세계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경제 활동 증가와 에너지전환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전력부문 LNG 발전량 비중은 단기적으로는 증가 추세를 보일 것이다. [I부 2장 참조]
한편 천연가스는 가교연료 역할에서 그치지 않고, 다가올 수소산업 시대에 맡은 역할이 있다. 현재는 수소 에너지와 관련해서 탄소중립을 달성할 정도는 아니다. 세계 수소 생산량의 75%가 천연가스를 원료로 사용하는 메탄개질 방식이다. 그런데 메탄개질 과정에서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이렇게 메탄개질로 생산한 수소를 그레이 수소라고 한다. 그레이 수소의 탄소 배출량은 10-19tCO2/H2다. 그러나 탄소포집저장(CCS) 시설에서 천연가스를 개질한 수소, 즉 블루 수소는 1-4tCO2/H2 정도의 탄소만 배출한다. [III부 2장 참조]
에너지산업 전 분야에서 개별적인 탈탄소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하에서의 효율적인 탈탄소를 추구하는 섹터 커플링 접근방식에 따르면, 수송, 항공, 건물 난방, 산업 공정 등 화석연료를 직접 사용하는 난감축 부분 문제를 수소가 담당할 수 있다. 수소는 에너지 운반체 역할을 수행하며 이런 난감축 부분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수소가 활용될 이런 분야가 역시 가스산업이 장기적으로 활약할 부문이기도 하다. [I부 2장 참조]
효율성과 안정성, 그리고 공공부문
1970년대 석유파동의 충격을 피할 수 없었던 한국은 대규모로 신속하게 천연가스산업을 육성하기로 결정하였다. 가스산업은 대규모 초기 설비투자가 필요했고, 민간부문은 이 투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가스산업의 이런 특수성 때문에 한국가스공사는 한국에서 독점적 지위를 부여받았고, 안정적인 천연가스 수급을 보장할 책임을 지게 되었다. [II부 1장 참조]
기후변화 위기 속 에너지전환과 수소경제는 다가올 미래이며, 이 과정에서 현실적인 가교연료는 천연가스다. 석유파동의 위기에서 천연가스산업이 공공부문의 장점을 활용하여 제도화되었듯이, 한국의 에너지전환이 대규모로 신속하게 요구되고 있는 지금, 천연가스 공공부문의 현재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공공부문 가스산업은 천연가스 생산기지와 인수기지에 전국적인 배관망을 갖고 있다. 이들 인프라는 수소산업의 밸류체인의 모든 단계인 생산, 저장, 운송, 유통에 활용할 수 있다. LNG 생산기지, LNG 인수기지와 추가 건설될 천연가스와 수소의 배관혼입 수소 생산기지를 사용해 수소 생산 인프라를 갖추는 비전이다. 천연가스의 저장, 유통에 사용되던 천연가스 배관망은 수소 공급망으로 전환 가능하다. 천연가스 공공부문의 자원을 활용한다면 좌초자산 없이 효율적인 수소 유통구조를 조성하여 경제적이고 안정적으로 수소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III부 2장 참조]
공공부문의 역할은 당장의 안정적인 천연가스 공급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급속도의 에너지전환이 필요한 때, 천연가스시장의 불확실성은 어느 때보다도 더 크다. 불확실한 시장에 대비하려면 국가적 차원에서 단일한 시장을 형성해 도입 규모를 확대했을 때,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구매자가 될 수 있다. [II부 6장 참조]
자가소비용직수입 제도와 우회직수입
그러나 자가소비용직수입 제도가 방치하고 있는 우회직수입 문제가 공공부문이 지닌 합리성과 안정성을 해치고 있다. 자가소비용직수입 제도를 이용하면 발전용, 산업용 등의 목적으로 천연가스를 직접 소비하는 경우에 해외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해 올 수 있다. 이 제도는 경쟁 강화가 천연가스 대량 소비자의 천연가스 선택 범위를 늘려 주면 천연가스의 안정적인 공급 기반이 확보될 것이라는 예상하에 도입되었다. [II부 3장 참조]
현실은 달랐다. 자가소비용직수입 제도는 1998년 이래 거의 활용되지 않았으나, 2015년 구매자우위시장이 등장한 뒤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일단 자가소비용직수입 제도가 활성화되자 ‘자가’소비 목적이 아닌 직수입이 나타났다. 에너지 대기업은 해외에 트레이딩 자회사를 설립하고, 자회사의 중개를 거쳐 한국 내의 다른 회사에게 천연가스를 판매한다. 즉, ‘우회직수입’이다. 법률상 국내 에너지 대기업과 해외 트레이딩 자회사를 동일한 주체로 볼 수 있을지 논란이 있어 생긴 틈을 이용한 것이다.
직수입이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2013년 3.5%에 불과하던 천연가스 자가소비용직수입 물량은 2020년 전체 비중의 약 22%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비중은 시장 상황에 따라 장기적으로 더 늘어나 4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 12월에는 SK E&S, GS에너지, 포스코에너지 등이 참여한 LNG직도입협회가 창설되었고 2022년 3월에는 민간LNG산업협회로 명칭을 바꿨다. 이런 가운데 판매용 천연가스 도입을 허용하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통과되지는 않았다. 다만 현행법의 틈새를 활용한 우회직수입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우회직수입이 자가소비용직수입 제도 입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이나, 직수입 자체가 공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직수입자들은 일정한 물량의 천연가스를 예비로 갖고 있어야만 하는 비축의무가 없다. 가스산업 공공부문에서는 9일분의 비축의무가 있으며, 도시가스용, 발전용 천연가스 공급 의무를 진다. 따라서 직수입자들은 천연가스 현물 가격이 오르게 되었을 때 언제든 물량 확보나 발전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에 대한 페널티가 없다. 즉 구매자우위시장이 판매자우위시장으로 전환되면, 직수입자들은 싸게 구입하던 가스 수입을 중단하고 한국가스공사에게 수입을 요구할 것이다. 심지어 갑자기 발전 자체를 포기해 에너지 공급 안정성을 해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유사한 사례들은 2006~2008년, 2011~2013년, 2021년 이후의 판매자우위시장에서 이미 일어났다. [II부 2장 참조]
2021년 산업통상자원부는 직수입 물량 급증 대안을 내놓았다. 정부가 조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도시가스사업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공고한 것이다. 2022년 2월 8일에는 ‘도시가스사업법 시행령’ 제20조제3항에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자가소비용직수입자에게 필요한 경우 조정을 명할 수 있게 정했으나, 동시에 제20조제4항에서는 해당 조정을 명할 때 미리 자가소비용직수입자의 의견을 듣도록 명시되었다. 우회직수입 문제는 여전히 법령이 개정되지 않았다. 도시가스 시장의 경쟁체제 도입 요구, 도시가스 사업자의 도매시장 진출 기회 요구 등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은 시장이 변해가고 있다는 증거다. 문제를 방치한다면 정부가 정책적으로 도시가스 가격을 낮게 유지하면서 전체 천연가스 도입량을 안정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공공부문 산업구조와 우회민영화, 그리고 ‘우회’
2004년, 대통령 직속의 종합 에너지 정책 심의기구 설치에 대한 제안이 있었다. 공공부문이 중심이 되어 에너지산업을 주도하면서 민주적으로 의사 결정을 수렴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장기적으로 높여 다가올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구자들은 당시 한국전력공사 배전분할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리며 중단해야만 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전력산업 민영화 계획이 1999년 발표되었지만 2004년 중단되었다. 민영화는 중단되었으나 행정부 관료들의 공공부문 역할에 대한 관점은 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회적인 방식의 민영화가 추진된 것이다. 2020년, 〈혁신더하기연구소〉와 연구자들이 주축이 되어 전력산업 민영화 문제를 다루는 〈에너지전환과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내놓았다. 민영화 계획 발표로부터 21년, 민영화 중단으로부터 17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천연가스산업과 전력 가격은 뗄 수 없었기에, 이 연구자들은 천연가스산업도 연구해 결과물을 내놓았다. 필진이 전력산업 연구와 가스산업에서 발견한 공통 키워드는 ‘우회’다. 민영화 우려로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중단되었으나, 관계자와 국민 합의 수렴 없이 ‘우회’민영화가 추진되었다. 발전부문에서 정부가 LNG 발전, 석탄발전까지 민자발전의 진입을 허용한 결과, 발전설비용량 기준으로 2002년에는 발전설비 비중의 6.0%를 민자발전사가 차지하고 있었으나, 2020년에는 약 33.4%까지 민자발전사 비율이 늘었다.
천연가스산업 역시 비슷하다. 큰 주목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소리 없이 ‘우회’직수입이 진행되고, 돈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2017년 주요 민자 LNG 발전소 가운데 자가소비용직수입 제도를 이용하는 SK E&S, GS파워, GS EPS 등은 당기순이익을 거두었다. 반면 자가소비용직수입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민자발전소인 드림파워, 포천파워, 에스파워, 포천민자 등은 순 손실을 보았다. 이는 코로나19 상황과도 맞물려 계속되고 있다. 공공부문도 손실을 보고 있다. 가정용 가스요금과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으려는 정부 정책과 맞물려, 관련 공기업들은 적자 누적이라는 최종 부담을 떠안고 있다. 이런 일이 사회의 공공부문과 깊은 관련을 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