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그리운 말 : 사라진 시절과 공간에 관한 작은 기록

집이라는 그리운 말 : 사라진 시절과 공간에 관한 작은 기록

$13.35
저자

미진

산이바라보이는방에서글을쓴다.싹싹비운식구들의밥그릇과밤새쉬어가벼워진눈으로책읽는시간을좋아한다.작고평범한것들에감사하며,아무도돌보지않는것들에더오래시선을둔다.〈문학의봄〉에서단편소설〈아들이사라졌다〉로등단했다.

목차

프롤로그|어떤사소한기쁨과그리움

PART1어디에도없는집

하늘과맞닿은집
완벽한복수
술래잡기
허수아비내친구
굴레방다리를건너며
피아노를얻는명쾌한방법
선택의문제
슬픈딜리버리
뒹구는고양이
타이거소년의팬티
겨울어느좋은날

PART2골목길모퉁이에서

담장너머놀이터
딸부잣집황씨네
소풍날의도시락
죽도록걸을래
흔들리는나날
연극보러가는길
덕수궁돌담길
꽃으로필거야
도바로옆에레

PART3우리집가는길

반지하에서
눈치없는도둑
아파트에서
어느추운날
자기만의방
아빠와집짓기
세상에서제일예쁜얼굴
어떤기억
남은자들
아빠의이름으로
소심한세입자
느리게걷는동네한바퀴

에필로그|사라지는것은말을걸고

출판사 서평

집이라는공간에얽힌내밀하고단단한기억

“우리집은좋으면서도슬펐다”라고작가는고백한다.비바람에슬레이트지붕이들썩이고송충이가비처럼내리던만리동꼭대기집,가을비가내릴때마다세상모든낙엽이모여드는아현동의반지하연립주택,엄마의평생소원대로마침내장만한봉천동의네모반듯한집,결혼후세입자로서아홉번의이사를하며거쳐간때로는춥고때로는따뜻했던집.작가는세상에태어나가족이라는이름으로지친몸을누인그모든집이라는공간에촘촘하게엮은그물을깊이내려단단한기억을길어올린다.

삶의결핍이빚은다정한생의의지

크든작든,춥든온화하든,모나든반듯하든,집은누구에게나간절한바람과자기몫만큼의생의의지가깃든공간일것이다.작가의집도그와다르지않았다.씻기고치우고무언가를깨끗이하는데평생을쏟은바지런한엄마는언제고떠날허름한집에서평범하기짝이없는그릇과화분과항아리를윤이나도록쓸고닦았다.짓고고치고땜질하는일에익숙한아빠는계절이바뀔때마다집의어디를고쳐야한계절을또무사히넘길수있을지살피고손봤다.그시절의부모가그러했듯,작가의엄마와아빠는오직내집갖는것을목표로묵묵히내핍을감내하고,유일하게햇살이들어오는방을자식들에게양보한채컴컴하고어두운무덤같은방에서서로의등을맞대고잠을청했다.삶은고되었으나누구도서로를탓하지않고묵묵히자신의자리를지켰다.

사라진것들에서끌어올린무수한감정의타래

행복과슬픔,분노와기쁨이조금씩뒤섞인기억의풍경속에서작가는특유의문장력으로집너머,공간너머의것들을한껏탐험한다.그곳에는스케치북만한창을통해해가뜨고지는모습을지켜보던아홉살의나와,중학생이던어느봄에교실창문을타고환청처럼들린포클레인소리와엄마의울음소리에러너가되어달린길이,단짝친구와함께밤늦도록차가운풀밭에뒹굴며올려다본까만하늘이들어있다.지붕갈이를하려고사다리에위태롭게디딘아빠의상처투성이다리아래로보이는여기저기빠지고두꺼비처럼자란검은발톱이,몸의기능을조금씩잃어가며몇알남지않은쌀자루처럼사방으로쓰러질것만같은엄마의쇠약한등이,가난과모순에고개를외로돌리면서도결코아래로숙이지않았던어린시절의내가있다.검은하늘에박힌별처럼이름모를무수한감정이잘게부서지던시절에관한비밀스러운고백은우리를곧장각자의과거속으로불러들인다.

우리는모두집으로돌아온다

마른나뭇가지에새순이돋듯,세월은걷잡을수없이순식간에지나가버렸다.그시절의동네와집은이미허물리고사라졌다.내것네것따로없는열두가족이한데어울리며살아가던곳에는대단지고층아파트가우뚝서서위용을뽐내고,시장에서산짐을보자기에싸서머리에이고오르던만리동고개에는재개발을알리는노란현수막이당당하게휘날린다.그럼에도,아니그럴수록작가가사라진집을애써기억하는이유는우리가세상에처음으로존재했던그곳에다른무엇도대신할수없는무언가가깃들어있기때문이다.작가는기억할것을권한다.사회적쓸모혹은미추와상관없이나라는존재를나로살아가게하는기억은그자체로값지다고이야기한다.어떤삶을살든,아무리애쓰거나어디를방랑하든,우리의피로한희망은평온을찾아집으로돌아오는법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