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시체 문화유산 탐방기)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시체 문화유산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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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장례 문화, 이것이 최선인가요?
세계 곳곳의 죽음 의례에서 대안을 찾다
'나의 시체 문화 답사기'『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 전작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에서 상업화, 기업화된 장례 문화와 죽음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 관행이 고인을 추모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던 저자 케이틀린 도티가 이번 책에서는 좋은 죽음을 위한 구체적인 참조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를 위해 케이틀린 도티는 세계 곳곳의 죽음 의례 현장으로 떠난다. 인도네시아의 마네네 의식, 볼리비아의 냐티타, 멕시코의 망자의 날 축제, 일본의 고쓰아게, 미국의 야외 화장과 자연장까지 그가 직접 목격한 지구촌 곳곳의 죽음 의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낯선 죽음 의례를 결코 혐오하거나 대상화하지 않는다. 무조건 예찬하는 것도 사절이다. 그는 다른 문화권의 의례를 존중하며 겸손한 태도로 장례식에 임한다. 또한 현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외부인으로서 허용 가능한 선까지 적극적으로 의례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난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들여다본다. 죽음 의례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며, 시대와 갈등하고 타협하며 변화해온 역사적 산물임을 전한다.
한국에서도 코로나를 기점으로 장례식 풍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언택트 시대에 발맞춰 조문은 소규모로 진행되며, 성묘도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있다. 3일 내내 한산한 빈소를 지키기보다는 가족끼리 모여서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 가족장을 찾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가부장적인 장례 문화에서 벗어나 평등한 추모 공간을 만들려면, 시신을 자연에 이로운 방식으로 처리하려면, 고인을 사랑했던 이들이 함께 충분히 애도하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구성원까지도 포용하는 죽음 의례를 만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이 책을 통해 보다 나은 죽음에 대해 상상해 볼 수 있다.
저자

케이틀린 도티

현재 로스앤젤레스에서 장의사로 일하고 있다. 어릴 적 쇼핑몰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어린아이의 추락사를 목격한 후 죽음이라는 주제에 사로잡혔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중세사를 전공하며, 죽음을 둘러싼 역사와 문화에 대해 공부했다. 졸업 후 샌프란시스코의 한 화장터 업체에서 하루에 수십 구씩 시체를 태워가며 현대 장례 문화의 최전방에서 일했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미국의 획일화된 장례 문화에 문제를 제기하며 첫 번째 책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을 펴냈다. 장의사 대표가 된 케이틀린 도티는 두 번째 책에서 다른 문화권에서는 시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인도네시아, 멕시코, 스페인, 일본, 볼리비아 등 각 나라의 흥미진진한 의례들을 돌아보며, 새로운 장례 문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케이틀린 도티는 죽음을 부정하는 문화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할 수 있도록 책과 강연, 유튜브 「장의사에게 물어보세요(Ask a Mortician)」를 통해 죽음에 대한 담론을 친숙하게 풀어놓는다. 죽음에 대한 대안적인 문화를 탐구하는 장례업 전문가, 연구자, 예술가 들의 집단인 '좋은 죽음 교단'을 운영하고 있다.

목차

들어가며

야외 화장
: 미국 콜로라도주 크레스톤

마네네 의식
: 인도네시아 남술라웨시 토라자

망자의 날 축제
: 멕시코 미초아칸

인간 재구성 프로젝트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컬로위

알티마 장의사
: 스페인 바르셀로나

고쓰아게부터 라스텔까지
: 일본 도쿄

냐티타 축제
: 볼리비아 라파스

자연장
: 미국 캘리포니아주 조슈아트리

나오며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괴짜 장의사의 ‘시체 문화유산 답사기’

삶의 방식은 모두 다른데, 죽음의 방식은 왜 같아야 할까? 종교가 있든 없든, 고인이 어떤 정치적 지향을 가졌든 간에 한국의 장례식은 하나같이 비슷한 모양새다. 3일 동안 남성은 상주가 되어 양복을 입고 빈소에서 문상객을 맞이하며, 여성은 한복을 입고 홀을 분주히 오가며 음식을 접대한다. 과연 지금의 장례 문화가 최선일까? 매장이나 화장 외에 시신을 처리하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우리에게 시체는, 죽음은 어떤 의미인 걸까?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는 죽음을 둘러싼 관습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서 출발한다.
저자 케이틀린 도티는 20대에 화장터에 취직해 여성 장의사로 일한 경험을 담은 전작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으로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전작에서 그는 상업화, 기업화된 장례 문화와 죽음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 관행이 고인을 추모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런 관행을 넘어서기 위해 그는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유튜브 채널 「장의사에게 물어보세요」를 개설해 백만 명이 넘는 구독자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죽음 교단’이라는 단체를 설립해 전문가들과 함께 대안적인 죽음 의례를 연구했다.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는 그간의 노력이 담긴 ‘시체 시리즈’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전작에서 죽음을 직면하는 과정을 다루었다면, 이번 책에서는 좋은 죽음을 위한 구체적인 참조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를 위해 케이틀린 도티는 세계 곳곳의 죽음 의례 현장으로 떠난다. 인도네시아의 마네네 의식, 볼리비아의 냐티타, 멕시코의 망자의 날 축제, 일본의 고쓰아게, 미국의 야외 화장과 자연장까지 그가 직접 목격한 지구촌 곳곳의 죽음 의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는 특유의 블랙유머를 구사하며, 독자를 다시 한 번 이 기이하고도 친근하며 애틋한 시체들의 세계로 초대한다. 긴 여정을 마치고 자신의 장의사로 돌아온 저자는 말한다. 당신이 속한 문화권의 의례는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우리에게는 더 나은 죽음을 상상하고 선택할 권한이 있다고.

전화기 너머 호스피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간호사 말로는, 조세핀이 10분 전 숨을 거두었는데, 시신을 만져보면 아직도 따뜻하다는 것이었다. 간호사는 죽은 여인의 침대 맡에 앉아 조세핀의 딸과 언쟁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 딸이 우리 장의사에 전화를 걸기로 한 것은, 어머니가 마지막 숨을 거두자마자 누군가가 와서 영안실로 시신을 냉큼 가져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딸은 어머니의 시신을 집에 두고 곁에 있고 싶어 했다. “그렇게 해도 되나요?” “물론 그래도 되지요.” 내가 대답했다. “시신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고인의 따님이에요. 호스피스나 병원이나 요양원이 아니고요. 장의사는 더더욱 아니지요.”(10~11p)

미국에서는 20세기 초부터 죽음이 커다란 비즈니스가 되었다. 옛날에 장례를 치르던 방식, 그러니까 가족과 공동체가 이런 일을 전담해왔다는 것을 시민들이 단 한 세기 만에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지금이 19세기였다면 조세핀의 딸이 자기 어머니의 시신을 다루는 것에 대해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놀랄 만큼 짧은 시간 안에, 미국의 장의업은 지구상 다른 어떤 나라의 장의업보다 더 값비싸고 더 산업적이며 더 관료적으로 변했다. 우리가 가장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면, 그건 슬픔에 잠긴 유가족을 고인으로부터 떨어뜨려놓는 일일 것이다.(12p)

물론 벨리즈의 대도시에는 미국식 사업 모델을 채택해, 가족들에게 값비싼 마호가니 관이나 대리석 묘비 같은 것을 사게 하는 장의사들도 있다. 이와 똑같은 ‘현대화’의 물결이 벨리즈에 있는 병원에도 들이닥쳤는데, 이런 병원에서는 가족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검이 이뤄지기도 했다. 루치아노의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부검을 거부했다. “그래서 우리는 할머니 시신을 병원에서 훔쳐 냈답니다.” 그들은 할머니 시신을 병원에서 훔쳤다. 시트 한 장에 둘둘 말아 시체를 빼낸 것이다. “병원이 우리한테 뭘 어쩌겠어요?” 루치아노가 물었다.(15p)

내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루치아노가 할머니의 죽음 과정 하나하나에 얼마나 함께했는가 하는 점이다. 할머니 시신을 병원에서 탈취하던 것부터 가족들이 럼주를 마시고 밤새 할머니가 좋아하던 란체라를 연주하던 것이며, 몇 년 후 살뜰히 할머니 무덤을 돌보는 것까지.(21p)

루치아노는 자기가 죽으면 그저 구멍이나 하나 파서, 무덤 벽에는 나뭇잎을 늘어뜨리고 동물 가죽을 수의 삼아 그 속에 묻히기를 원한다. 그는 동물 가죽 수의를 직접 디자인할 계획이다. 그는 자기가 ‘항상’ 친구들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덧붙였다. 그들은 서로 묻곤 한다. “야, 넌 죽은 다음에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루치아노는 물었다. “당신 나라에서는 그런 얘기를 나누지 않나요?”(15~16p)

내가 일하면서 부딪히는 주요한 질문 중 하나는, 어째서 내가 속한 문화에서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도 꺼리는가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들이 죽으면 시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그런 대화를 거부하는 것일까?(16p)

다른 문화에서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지 직접 관찰할 수만 있다면, 죽음을 ‘맞이’하거나 이해하는 단 하나의 정해진 길이란 없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 몇 년간 호주,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멕시코, 볼리비아, 일본, 그리고 미국 전역을 돌며 죽음 의례가 어떻게 실행되는지를 관찰했다. 내가 찾아간 장소에는 어디나 극적이고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다. 내가 발견한 것이 우리 공동체가 장례의 의미와 전통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러한 회복은 장의사로서도 중요하지만, 한 사람의 딸로서 그리고 친구로서는 더욱더 중요하다.(16p)

이 책에 나오는 의례 중 많은 것들이 독자가 속한 문화권의 의례와 매우 다를 것이다. 그 차이에서 아름다움을 보았으면 한다. 당신도 어쩌면 죽음에 대해 진정한 두려움과 근심을 느끼는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여기에 있다. 이제 만나려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당신도 죽음을 마주하는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23p)

인도네시아 마네네 의식부터 미국의 자연장까지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시체를 응시하다

케이틀린 도티는 낯선 죽음 의례를 결코 혐오하거나 대상화하지 않는다. 무조건 예찬하는 것도 사절이다. 그는 다른 문화권의 의례를 존중하며 겸손한 태도로 장례식에 임한다. 또한 현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외부인으로서 허용 가능한 선까지 적극적으로 의례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난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들여다본다. 죽음 의례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며, 시대와 갈등하고 타협하며 변화해온 역사적 산물임을 전한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가 모호한 곳으로 인도네시아, 볼리비아, 멕시코를 꼽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타라토라자에서는 미라화한 시신을 가족들이 몇 년간 돌본다. 멕시코에서 망자의 날 축제가 벌어지는 11월 1은 죽은 자가 산 자의 세상으로 넘어오는 날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축제 형식을 빌려, 죽음을 삶의 일부로 가져온다. 죽음을 두고 함께 울고 웃는 공동체의 풍경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볼리비아의 소원을 들어주는 두개골인 냐티타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주술적 존재다. 저자는 이 냐티타와 가톨릭교의 대립에 주목한다. 이 냐티타는 삶과 죽음을 축복하는 권한을 독점하려는 남성 사제로부터 여성과 민중이 그 권한을 가져오려는 시도로 본다. 평등한 죽음 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은 기술과 만나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다. 미국에서 시신을 퇴비화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도시 죽음 프로젝트를 이끄는 이들이 여성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에 더해 미국의 친환경적인 시신 처리 방식으로 야외 화장과 자연장을 소개한다.
화장 후 유족들이 뼈를 추려 모으는 고쓰아게 전통을 이어나가는 한편, 화장터에 최신 기술을 도입하고 시신 호텔 ‘라스텔’을 만드는 등 죽음 의례를 다방면으로 발전시켜나가는 일본의 사례도 흥미진진하다. 이 외에도 티베트에서 독수리가 시신을 먹게끔 하는 하늘장, 고인의 두개골을 기리는 이탈리아의 폰타넬레 묘지 등 세계 곳곳의 죽음 문화가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로라는 몇 년 동안 크레스톤에 살았고, 그날 아침 장작더미 근처에 그 도시의 주민이 다 온 것 같았다. 로라의 아들 제이슨이 첫마디를 꺼냈다. 그의 시선은 줄곧 타오르는 불꽃을 향해 있었다. “엄마, 사랑해주셔서 고마워요.” 그는 갈라지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 걱정은 말고, 훨훨 날아서 이제는 자유로워지세요.”(37p)

토라자에서는 죽음과 장례 사이의 기간에 시신을 집에 둔다. 여기까지는 그리 놀라운 얘기가 아니지만, 문제는 그 기간이 몇 달에서 몇 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족들은 그동안 시신을 미라로 만들며, 시신에게 음식을 갖다주고 옷을 갈아입히고 말을 걸고 보살핀다.(60~61p)

폴은 토라자에서는 죽음을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견고한 경계’가 아니라 넘나들 수 있는 경계로 본다고 했다. 그들의 애니미즘 체계에 따르면, 자연계의 인간적인 측면과 비인간적인 측면, 그러니까 짐승, 산, 심지어 망자들 사이에도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시신에 대고 말을 거는 것은 영혼과 연결되는 방법이었다.(61p)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뉴욕, 파리, 런던 같은 서양 도시 시민들은 ‘죽음’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만 해도 “입술이 부르틀 만큼 부정을 타는” 반면에 “멕시코인은 자주 죽음을 넘나들고, 놀리고 어루만지며, 죽음과 함께 잠들고 재미로 그걸 갖고 논다. 죽음은 그가 좋아하는 장난감 중 하나이며 그의 가장 오래가는 사랑이다.” 이 말은 멕시코 사람들이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