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는 여자들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 | Paperback)

도시를 걷는 여자들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 | Paperback)

$19.00
Description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진 리스,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대도시의 기쁨과 위험을 만끽했던 여성들을 따라 걷는 여행
『도시를 걷는 여자들』은 리베카 솔닛의 이러한 작업에 발을 딛고서 이 주제를 더 깊고 넓게 파고든 책이다. 로런 엘킨은 여성이 도시에서 걸을 때 만나는 위험과 매혹을 탐구한다. 이 책의 원제는 ‘플라뇌즈(fl?neuse)’다. 보들레르로 대표되는 근대의 도시 보행자, 천천히 걸으며 도시를 관찰하는 산보자를 뜻하는 말인 ‘플라뇌르(flaneur)’라는 남성형 명사를 여성형으로 바꾼 단어다. 단어의 성을 바꿈으로써 로런 엘킨은 이 남성형 명사를 둘러싸고 형성되어온 걷기의 서사를 전복한다. 여성은 어떻게 도시 환경에서 배제되어왔는가, 그럼에도 도시는 여성들에게 어떤 자유와 기쁨을 안겨주는가, 여성이 도시를 걷기 시작할 때 걷기라는 행위의 의미가 어떻게 뒤바뀌는가를 탐색한다.

엘킨은 분명히 존재했으나 지워져온 여성의 지성사와 문화사를 되찾기 위해 전 세계의 대도시를 두 발로 걷는다. 그리고 자신보다 앞서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베네치아를 누비며 위반하고 창조했던 여성 예술가들을 만난다. “도시의 창조적 잠재성과 걷기가 주는 해방 가능성에 긴밀하게 주파수가 맞추어진, 재능과 확신이 있는 여성”이라고 정의 내린 ‘플라뇌즈’의 초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진 리스,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등의 삶과 작품을 통해 엘킨은 도시와 여성의 신산한 동시에 짜릿한 관계를 생생하고 다채롭게 보여준다.
이 책은 탁월한 도시 비평이자 독특한 여행기이기도 하다. 예술 비평에 더해 책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은 엘킨은 그녀 스스로가 플라뇌즈로서 걸어 다닌 도시들이다. 엘킨의 여행은 우리를 파리, 런던, 도쿄 등의 풍경 속으로 데려갈 뿐만 아니라, 직접 마주하는 것보다도 더 생생하게 이 도시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파리의 도시계획을 일별하고 미국에서 교외의 확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훑어보는 대목은 각 도시 공간의 역사에 대한 입문으로도 손색이 없다.
한편 우리는 도시 안에서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정체성과 입장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관광객이 되기도 하고, 동네 주민이 되기도 하고, 이민자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베네치아에서 “괜찮은 종류의 관광객”이 되려고 애쓰며 느끼는 당혹감을 털어놓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주하게 된 도쿄라는 낯선 도시와 평등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취약해지는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러면서도 “여성이 힘을 얻는 곳도 도시의 중심”이라고 말하며 대도시를 향한 사랑과 매혹을 숨기지 않는다.
저자

로런엘킨

LaurenElkin
작가이자비평가.책,예술,문화,여행에관해쓴다.《뉴욕타임스북리뷰》《가디언》《하퍼스》《르몽드》《런던리뷰오브북스》《타임스리터러리서플러먼트》등의매체에기고하며《화이트리뷰》의객원편집자로도활동한다.1930년대영국의여성문학에관한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으며현재리버풀대학교의명예연구원으로있다.뉴욕태생이고2004년에파리로이주했다.좌안에오래살다가지금은우안에살며벨빌근처를배회하는모습이자주목격된다.파리와리버풀을오가며살고있다.

목차

프롤로그·여성이도시를걷는다는것

롱아일랜드·뉴욕
파리·그들이가던카페
런던·블룸즈버리
파리·혁명의아이들
베네치아·복종
도쿄·안에서
파리·저항
파리·이웃
모든곳·땅에서보는광경
뉴욕·귀환

에필로그·도시를다시쓰는여성의걷기

감사의말
옮긴이의말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펜어워드파이널리스트
★뉴욕타임스주목할만한책
★가디언,파이낸셜타임스,뉴스테이츠먼,옵저버선정올해의책


“도시를활보하는여자들이등장하자새로운시대가시작되었다.이책은‘걷기의서사’를온전히여성들의몫으로할당한다.”-장영은(『쓰고싸우고살아남다』)

“그녀가한국의어느도시에와본적없다는사실이얼마나다행인지모른다.이제우리에겐할일이생긴것이다.로런엘킨방식의기록을우리의도시에서우리가해볼수있을테니까.”-김소연(시인)

“로런엘킨은우리시대의가장중요한비판적사색가중하나다.그녀세대의수전손택.”-데버라리비(『알고싶지않은것들』)

‘제2의리베카솔닛’‘새로운세대의수전손택’
로런엘킨이그려낸여성예술가들의초상

여성이도시를걸을때,혁명과전복이일어난다

걷는행위는오랜세월예찬되어왔다.많은사상가들과작가들이걷기가지닌다채로운의미,사색과예술과혁명을가능하게했던이행위가인류에게갖는의미를탐구했다.그러나한편으로공공장소를걷는일은대단히성별화되어있는일이기도했다.여성이보호자를동반하지않고는길을자유롭게다닐수없었던시대,‘거리의여자(성매매여성)’라는낙인이찍히던시대는지금으로부터그리먼과거가아니다.그런금지나낙인이없는지금도홀로걷기는여성에게안전하고자유롭기만한일은아니다.거리를걷는여성들은밤길의잠재적인성폭력의위협에시달리고,대상화하는시선을감내해야한다.걷기의역사와의미를총망라한책『걷기의인문학』에서리베카솔닛도이와같은지적을했다.솔닛은이책의한장을할애해걸을수있는공공장소가여성과소수자에게어떤제약을가하는지를살핀다.
『도시를걷는여자들』은리베카솔닛의이러한작업에발을딛고서이주제를더깊고넓게파고든책이다.로런엘킨은여성이도시에서걸을때만나는위험과매혹을탐구한다.이책의원제는‘플라뇌즈(fl?neuse)’다.보들레르로대표되는근대의도시보행자,천천히걸으며도시를관찰하는산보자를뜻하는말인‘플라뇌르(flaneur)’라는남성형명사를여성형으로바꾼단어다.단어의성을바꿈으로써로런엘킨은이남성형명사를둘러싸고형성되어온걷기의서사를전복한다.여성은어떻게도시환경에서배제되어왔는가,그럼에도도시는여성들에게어떤자유와기쁨을안겨주는가,여성이도시를걷기시작할때걷기라는행위의의미가어떻게뒤바뀌는가를탐색한다.
엘킨은분명히존재했으나지워져온여성의지성사와문화사를되찾기위해전세계의대도시를두발로걷는다.그리고자신보다앞서뉴욕,파리,런던,도쿄,베네치아를누비며위반하고창조했던여성예술가들을만난다.“도시의창조적잠재성과걷기가주는해방가능성에긴밀하게주파수가맞추어진,재능과확신이있는여성”이라고정의내린‘플라뇌즈’의초상을구체적으로그려내는것이다.조르주상드,버지니아울프,진리스,소피칼,아녜스바르다등의삶과작품을통해엘킨은도시와여성의신산한동시에짜릿한관계를생생하고다채롭게보여준다.

나는만들어진환경,도시를좋아한다.도시의경계나도시가끝나는곳이아니라도시자체에관심이있다.도시의심장.여럿으로나뉜구역,지구,길모퉁이.여성이힘을얻는곳도도시의중심이다.여성은도시의심장에몸을던지고걸어선안되는곳을걷는다.다른사람(남성)은아무반응을불러일으키지않고걷는그한복판을걷는다.위반의행위다.여자라면고어텍스를입고쭈그려앉지않아도전복적일수있다.그냥문밖으로나오기만하면된다.(41)

도시에는항상여자들이있었다.도시에대해쓰고자신의삶을기록하고이야기를들려주고사진을찍고영화를만들고등등가능한모든방식으로도시와어울렸던여자들이많았다.[……]도시를돌아다니는기쁨은남자에게나여자에게나다를바없다.플라뇌르의여성버전은있을수가없다고말해버리면,여자들이도시와상호작용해온방식을남성의방식안에가두게되고만다.사회적관습이나제약에대해말할수는있으나여성이존재했다는사실을지워서는안된다.대신도시를걷는다는게여성들에게어떤의미였는지를이해하려고애써야한다.여성을남성적개념에맞추려하는대신개념을다시정의한다면그럴수있을지모른다.
아까했던이야기로되돌아가보면,거리에서보들레르를지나쳐간플라뇌즈가있었다는사실을떠올릴수있다.(28~29)

내가이책에서그리는초상은플라뇌즈가단순히플라뇌르의여성형이아니고,플라뇌즈라는자체의개념으로인지하고그로부터영감을받을수있는존재임을보여준다.플라뇌즈는밖으로여행을떠나고가서는안되는곳으로간다.가정이나소속같은단어가그간여성에게불리하게사용되었음을의식하게한다.플라뇌즈는도시의창조적잠재성과걷기가주는해방가능성에긴밀하게주파수가맞추어진,재능과확신이있는여성이다.플라뇌즈는존재한다.우리가앞에놓인길에서벗어나,우리자신의영역을밝혀나갈때마다존재한다.(44)

우리는개인인가군중의일부인가?우리는두드러지고싶은가눈에뜨이지않게섞이고싶은가?어느쪽이든뜻대로하기가가능하기는한가?성별과무관하게,우리각자는군중속에서어떻게비치기를바라나?시선을끌기를바라나시선을피하기를바라나?현저한존재이기를바라나눈에뜨이지않고묻히기를바라나?돋보이기를바라나무시되기를바라나?(13)

도시가누구나접근할수있고누구에게나동등한가능성을허락하는곳이라고이상화할생각은없다.컬럼비아대학교와주변동네사이의복잡한역사만보아도그렇지않다는사실을알수있다.그렇지만공정한세상을만들최선의기회를구할수있는곳도도시다.그러기위해서는움직임의자유가반드시필요하다.(64~65)

나는걷기가어떤면에서읽기와비슷하기때문에걷는다.걷기를통해나와무관한삶을엿보고대화를엿듣고비밀을공유할수있게된다.거리에사람이너무많고목소리가너무시끄러울때도있다.그러나언제나같이가는동반자가있기마련이다.거리에서는혼자가아니다.도시에서는산자와죽은자가나란히걷는다.(42)

조르주상드에서아녜스바르다까지,새롭게다시읽는여성예술가들

로런엘킨은우리가익히알고있다고여겼던여성예술가들을읽어내는새로운시각을제공한다.19세기작가조르주상드부터얼마전타계한누벨바그감독아녜스바르다에이르기까지,엘킨은여러시대를가로지르며이들의작품을다시읽고이들의또다른면모를조명한다.
이를테면엘킨은버지니아울프의「자기만의방」이여성이방밖으로나갔을때맞닥뜨리게되는경계에대한이야기이기도하다는점을상기시킨다.또플라뇌즈에관한탁월한에세이를쓴작가,도시공간을온몸으로감각하려했고여성과도시의관계에대해깊게생각한작가로서버지니아울프를소개한다.탈식민주의페미니즘의주요텍스트로읽히는진리스의작가로서의삶과작품세계가파리라는낯선곳에서어떻게형성되었는가를지극히생생하게펼쳐보여준다.남장을하고돌아다니고수많은애인을거느린것으로유명한조르주상드는혁명을어떻게바라보았는지,자신의작품안에서사회와젠더에관한이상을어떻게펼쳐냈는지를파고든다.종종헤밍웨이의전부인으로만알려지는마사겔혼,대범하고용감한종군기자였던그녀가‘여성종군기자’로서맞닥뜨렸던제약이나픽션과사실사이에서의고뇌를소설가로서는어떻게다루었는지를보여준다.소피칼에게서는‘추적’이라는남성적행위가여성의것이되었을때어떤새로운의미를생산하는지를,아녜스바르다에게서는카메라와영화라는매체뒤에여성이설때시선의의미가어떻게전복되는지를읽어낸다.
잘알려져있는이예술가들의새로운측면을발견하는엘킨의예리한시선을뒷받침하는것은그녀의따뜻한애정이다.엘킨은선배이자동료인이여성예술가들을가깝게여기고유대감을가지면서그들의이야기와공명하는자신의이야기를발견한다.이러한애정어리고공감적인시선은자신의이야기를한번더경유해,이예술가들에게서관계,고독,시선,창조성,사회적저항등의주제를길어올리는페미니즘비평을가능케한다.

도시를더민감하게알아가면서여성의역사,문학,정치에도민감해졌다.하나를알려면다른하나도알아야만하는것같았다.시몬드보부아르부터수전브라운밀러까지읽어나갔다.다른역사를알게되자어딘가향해갈목표가생겼고그래서전세계에흩어진단서를수집하기시작했다.(64)

리스는버지니아울프가“관점의차이”라고부른것으로세상을봤다.리스가만들어낸여성인물에게서이런면이드러난다.이들은옷을제대로입지도말을제대로하지도질문에제대로답하지도못한다.너무이야기를많이하거나너무적게하거나잘못된이야기를한다.도시에오면우리는이제야나자신으로살수있구나싶지만,파리에서조차다른사람의판단에서자유로울수는없다.리스가쓴단편중에프랑스에있는병원에입원해수술을기다리며우울증에시달리는젊은영국여자가나오는단편이있는데,거기에우리중어떤사람들은“기계밖에서”산다는말이나온다.여자는간호사나다른환자들이“기계의일부”라고생각하고그래서그들에게는“힘,확신”이있지만자기에게는그런게없으며그들이자신의결함을알아차릴것이라고생각한다.(96)

댈러웨이부인이소설에서가장처음으로하는대사가이렇다.“‘전런던거리를걷는게좋아요.’댈러웨이부인이말했다.‘시골길을걷는것보다훨씬좋아요.’”울프에게혼자도시를걸을수있다는것은아직까지상상해보지못한자유였고,울프가본격적으로작가가될수있었던계기가이사였다면글쓰기의소재를제공해준것은산보였다.거리에는울프가필요로하는모든것이있었다.도시를돌아다니면서울프는머릿속에서장면들을그려보았다.주변에서보는삶이“거대하고불분명한재료덩어리”같았고“나에게전달되어그것에상당하는언어가되는듯했다.”눈에보이는사람들에대해궁금해하다보니“삶자체”를종이위에어떻게재현할것인가의문제에몰두하게되었다.(127)

『자기만의방』에는조용하고분리된개인공간이필요하다는이야기만나오는게아니다.이글은여자가방밖으로나갔다가부딪히게되는경계에대한이야기이기도하다.또지금까지다루어지지않았던여성과허구,여성과역사에대해대담한질문을던지는지적무단침입이기도하다.(138)

바지에부츠를신고나오면날씨도시간도주변도신경쓰지않고군중에섞여들어진정한‘플라뇌르’답게도시한쪽에서다른쪽으로‘날아갈’수가있었다.눈에띄지않으려고택한방법이상드의가장두드러지는특징이된셈이니생각해보면참얄궂은일이다.크로스드레싱이오로르뒤드방을조르주상드로재탄생시켰고,그뒤로상드는평생남의시선을받는존재가되었다.
나는상드를시가를물고애인들을거느리고으스대며도전하는크로스드레서로서생각하는것보다이모습으로떠올리기를더좋아한다.높은이상때문이아니라좌절을겪었기때문에남자옷을입게되었다는점이마음에든다.(170)

이영화에서진정한주체성의순간은클레오가화면에서사라질때다.이런순간이클레오가보여지는대신보는순간이다.바르다는이런자유를한단계더넓힌다.우리는카메라뒤에있는사람이바르다라고상상한다.실제로카메라를다루는사람은바르다가아닐지라도카메라가언제어디를향하고무엇을포착할지를결정하는것은바르다이다.카메라앞에서플라뇌즈가진화하는과정을보는것만으로도가슴벅찬일이지만,클레오가한걸음나아갈때마다우리는카메라뒤에있는사람에대해서도생각하게된다.(326)

그녀는멈추어있으나언제라도어디로든,지금읽은바에따라,혹은문득떠오른생각에따라,알수없는충동에따라떠날수있다.그녀는햇빛때문에눈을가늘게뜨고가이드북을보고있다.겔혼이보는책이가이드북인지아닌지는사실알수없지만.그렇지만이사람은외국에유람온미국관광객이아니다.유명한종군기자마사겔혼이다.계속집을만들려고하지만언제나집이없었던사람,소설가,도망자,이혼녀,자신만만하고건방진기자,집나온계집.(362)

『귀환불능지점』이중요한책이면서도그만큼널리읽히지는않는책이라면,『리아나』는위대한작품은아닐지라도겔혼이무언가를알아내려고하며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