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계몽주의 (급진적 민주주의와 바다의 유토피아)

해적 계몽주의 (급진적 민주주의와 바다의 유토피아)

$19.50
Description
해적들과 마다가스카르 여성들이 함께 만든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웠던,
가장 멀리 나아간 민주주의 실험

계몽주의는 서구에서 탄생하지 않았다
- 바다의 무법자 해적들과 검은 피부 여성들이 함께 만든 원형적-계몽주의
서구 근대의 위대한 출발점으로 찬미하며 ‘계몽주의’를 떠올리자마자, 몽테스키외와 볼테르 그리고 백과전서파의 디드로 같은 ‘서구’의 백인 남성 사상가들이 저절로 연상될 것이다. 계몽주의를, 과학적 인종주의와 근대적 제국주의, 집단학살의 기초가 되었다고 보는 급진적 사상가마저 이러한 서구 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이 책 『해적 계몽주의』의 저자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계몽주의를 옹호하든 비판하든 그간 이어져 온 논쟁들은 오히려 우리를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진짜 던져야 할 질문은 바로 “계몽주의 이상들, 특히 인간 해방에 대한 계몽주의 이상들이 과연 의미 있는 방식으로 ‘서구적’이라고 불릴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그레이버에 따르면, 우리는 ‘백인’의 완곡한 표현에 불과한 ‘서구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인종적 오만함에 대한 비난을 구실로 ‘백인’으로 분류되지 않은 모든 이들이 역사, 특히 지적인 역사에 미친 영향을 배제해왔다. 그 대신 역사, 특히 급진적 역사가 일종의 도덕 게임이 되어버렸는데,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의 위인들이 저질렀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배외주의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루소를 비판하는 사백 쪽의 책이 여전히 루소에 관한 사백 쪽의 책이라는 사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루소를 비판하는 그 행위 자체도 여전히 루소라는 서구의 백인 지식인만을 부각시킬 뿐, 비서구의 지적 영향과 성취를 배제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계몽주의 사상이 활짝 개화한 곳들이 파리, 에든버러, 쾨니히스베르크, 필라델피아와 같은 도시들에서였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서구의 몇몇 지식인이 만든 게 아니라, 전 세계를 종횡무진했던 대화와 논쟁, 사회적 실험들의 산물이었다.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의 해양세계들은 이 모든 과정에서 특별한 역할을 했는데, 가장 활발한 대화가 이루어졌을 곳이 바로 배 위와 항구 도시들이었기 때문이다. 유럽 계몽주의 시대는 무엇보다 지적 종합의 시대였다. 과거에는 지적으로 후미진 곳이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급작스레 세계 제국의 중심이 되어 그들로서는 깜짝 놀랄 만큼 새로운 사상들, 예를 들어 아메리카에서 온 개인주의와 자유의 이상들, 중국에서 영감을 받은 관료제 국민 국가라는 새로운 개념, 아프리카의 계약 이론들, 그리고 중세 이슬람에서 독창적으로 발전된 경제 및 사회 이론들을 접하게 되면서, 이들을 통합하려 했던 것이다.

이 책『해적 계몽주의』는 그간 은폐되고 무시되어왔던 계몽주의의 비서구적 기원들, 그레이버가 ‘원형적-계몽주의’라고 이름 붙인 것 중 하나로, 해적들과 마다가스카르 선주민들에 주목한다. 17세기 말과 18세기 초 수천 명의 해적이 마다가스카르 북동부 연안을 자신들의 거처로 삼았고, 여기서 최초의 계몽주의 실험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해적들의 민주적인 통치 방식과 마다가스카르 정치 문화의 평등주의적인 요소들을 창조적으로 종합한 것이었다. 바다의 무법자 해적들과 검은 피부의 여성들이 함께 만들어간 가장 급진적인 정치 실험의 현장으로 가 보자. 어쩌면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 뻔한 그 이야기 속으로.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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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데이비드그레이버

저자:데이비드그레이버(DavidGraeber)
인류학자.1961년뉴욕의노동자집안에서태어나,뉴욕주립대학교를졸업.마다가스카르에서의현장연구로시카고대학교에서석사와박사학위를받았다.2005년까지예일대학교에서가르쳤으나,그의대담한사회비판과실천적행동에반감을품은학교측으로부터해고당한다.이후영국으로건너가,2013년부터런던정경대학교에서교수로일했다.‘월가를점령하라’를비롯한세계정의운동에활발하게참여했으며,고고학과인류학을도구삼아자본주의와국가너머의삶을상상하고새로운삶과관계를만드는데앞장섰다.2020년59세의나이로세상을떠남으로써《해적계몽주의》가그의마지막유작이되고말았다.

역자:고병권
‘읽기의집’과‘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공부하며살아간다.생의최소단위는혼자가아니라‘함께’라는사실을잊지않으려고노력하고있다.『언더그라운드니체』,『다이너마이트니체』,〈북클럽『자본』〉시리즈(전12권),『민주주의란무엇인가』,『묵묵』,『사람을목격한사람』,『“살아가겠다”』,『점거,새로운거번먼트』,『추방과탈주』등을썼다.

역자:한디디
퇴근후이런저런공부모임과사회운동에참여하다가늦깎이유학.문화연구와인문지리라는학제안에서철학과인류학을기웃거렸고,『커먼즈란무엇인가』를썼다.읽기의집,알커먼즈,아소하우스같은공간들에서식하며,‘빈칸’이라는이름의작고하찮은(그러나귀여울지도모르는)커먼즈를운영하고있다.동아시아도시의자율운동을참여/관찰하는현장연구자,소소한커머너.본명은한경애.

목차


옮긴이의말
리베르탈리아로멋진항해를!

서론
해적계몽주의로의초대

1장해적공동체의숨겨진역사
―말라가시북동부의해적과가짜왕들

해적들,마다가스카르에오다
지나치게환상적인약탈품
진정한해적정착지,생트마리
진짜리베르탈리아,암보나볼라
또다른사기꾼왕,존플랜틴
라치밀라호와베치미사라카연합

2장여성,해적의동맹자가되다
―말라가시관점에서본해적의출현

아브라함자손들에대항한성적혁명
해적을상대한모험적인젊은여성들
여성상인들과마법주술들
외국인남편을이용해쟁취한자유
거인다라피피와마녀마하오의대결

3장가장멀리나아간민주주의실험―해적계몽주의

원형적-계몽주의정치실험
1690년대초기상황
최초의도전
위대한카바리가열리다
맹세식
라치밀라호가왕이되다
말라가시의헥토르,어느위대한전사의죽음
왕실과왕국그리고자나-말라타

결론
그들의대화가세상을바꾸었다

부록
해적과계몽주의연표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마다가스카르여성들,해적과동맹을맺고자유를쟁취하다
-비서구여성을남성들의권력게임의장기말로취급해온서구인류학에대한전복

서구인류학에서비서구선주민여성들은각부족간의결속과유대에쓰이는재화나축적가능한부(富)정도로만등장해왔다.마다가스카르선주민여성들도마찬가지였다.유럽인들의기록에서그녀들은남성들이다른남성들에게제공하는성적인‘선물’로묘사되어왔다.여성들은납치되고,되찾아지고,지배혈통에부속되었지만,그들자신이독자적인행위자로등장하는경우는드물었다.『해적계몽주의』는서구인류학이비서구여성들에게덮어씌었던통속적인표준서사를전복시킨다.해적들과의만남을주도적으로개시한것은마다가스카르여성들이었다.말라타,즉해적과마다가스카르여성사이의혼혈은외국인해적들이해안에정착해현지아내를얻었기때문이아니라,마다가스카르여성들이결혼하기위해외부남성들을찾아나섰기때문에생겨났던것이다.실제로여성들은남성들을얻기위해강력한파나포디(fanafody),즉약물을사용하는것도마다하지않았다.

마다가스카르여성들의주된동기는로맨틱한것이아니었다.그들은사랑에시름한것이아니라남편이없는여성이‘아무런대우도받지못하는’사회에서존중받을수있는방법과상업에참여할수있는수단을적극적으로찾아나선이들이었다.그들이매일해변에내려가선원들을찾았던것은우선,이국적외부인들,특히유럽이나아라비아처럼머나먼땅에서온외부인들이높은지위를가진것으로여겨졌기때문이고,다음으로는선원들,특히해적들이막대한양의교역가능한상품들을가져왔을것이기때문이다.이여성들은단순히남성들이벌이는게임의장기말이아니라,자기권리를가진사회적행위자가되기위한수단을찾고있었던것이다.

이여성들은스스로의힘으로성공한상인들이기도했다.당시마다가스카르의베치미사라카영토의해안도시들은‘여성들의도시라고불릴정도였다.이도시들에는울타리로둘러싸인공간안에대략20~50채정도되는‘큰집들’이자리하고있었다.그중가장커다란집에는바딤바자하(‘외국인들의아내들’)와자주부재중인그들의남편들,그리고여러친족과하인들이살았다.이여성들은진정한의미에서이공동체의중추를이루었고어떤중요한결정도그녀들을빼놓고내려질수없었다.해적들은진취적인마다가스카르아내들에게서자신들이가진기본적인문제에대한해결책을찾았다.불법적으로획득한막대한부를안전하고편안한생을보장받을수있는방식으로처분하는것을둘러싼문제말이다.단지부에대한처분권을야심찬여성상인들에게넘기기만하면되었던것이다.

해적들은다른외국인들과달리아내의결정을간섭할어머니나다른가족구성원과함께오지않았다.그리고그들에게는이곳과관련된아무런사회적지식도없었으며대개는주변사람들이이해할수있는언어로말할능력조차없다.이런상황은여성파트너들을단순한중개자가아닌그들의멘토로만들어주었다.이또한그녀들에게는지역사회를효과적으로재창조할기회가되었다.항구도시의건설,성적관습의변혁,결국은해적과낳은아이들을새로운귀족으로신분상승시키는것,이런것들이마다가스카르여성들이해낼수있었던일이다.

해적선에서시작된민주주의,육지에서새롭게되살아나다
-지배자없이모두가평등한관계그리고우아한수사와대화의즐거움

흉포한이미지와는달리실상해적들은새로운형태의민주주의통치의발전을선도했다.해적단은온갖종류의사람들로구성되어있었고,매우다양한종류의사회적배치에관한지식을갖고있었다.이를테면한배에영국인,스웨덴인,도망친아프리카노예,카리브해의크레올인,아메리카선주민,아랍인등이함께있었다.이들은임시변통적평등주의에헌신했으며새로운제도적구조를신속하게창출해야하는상황에함께던져졌기에,어떤의미에서는민주주의를실험하는완벽한상황에있었다고할수있다.역사학자들중일부는북대서양세계에서계몽주의정치가들이이후에발전시킨민주주의형태의일부가1680년대에서1690년대사이해적선에서먼저시도되었을것이라는주장을펼치기도했다.

해적선장들은흔히외부인들에게는무시무시하고권위적인악당으로서의명성을얻기위해노력했지만,자신들의배위에서는다수결로선출되었을뿐아니라마찬가지방식으로언제든해임될수있었다.그들은적들의추격이나전투중에만명령을내릴권한을가졌고,그외에는다른사람들처럼평등하게회합에참여해야했다.선장과항해장(항해장은회합의사회를보았다)을제외하면해적선에는아무런서열도없었고,그권력또한부분적이고,일시적이고쉽게철회될수있었다.

마다가스카르에정착한해적들이열심이었던것은배위에서처음발전시킨민주주의적제도들을육지에서도실행가능한형태로전환하는것이었다.그들과함께어울리고소통했던마다가스카르선주민들도해적들이만들어낸본보기에실제로영향을받았다.이를테면당시마다가스카르에서는직접적인전쟁의수행을빼고는공동체의문제들에대한결정은카바리(kabary)라고불리는회합에서정교한합의도출과정을통해이루어졌는데,주로마을,씨족단위로또는외국의침략가능성이나해안가에서유럽선박이목격된경우처럼더중대한사안은지역단위로이루어졌다.숙의과정(deliberations)은며칠이걸릴수도있었다.때로는회합을위한임시오두막이지어지기도했다.

역사적으로인간은일하고,놀고,쉬고,서로이야기나누는데대부분시간을보내왔지만,마다가스카르에서는특히대화의기술이매우높이평가되었다.어느역사자료에는“소문을좋아하고시간에구애받지않는이흥미로운사람들에게는모든것이카바리의소재가된다”고기록되어있기도했다.마다가스카르에서는실제로토론과논쟁,재치,이야기하기,우아한수사의즐거움은그들의문화에서누구에게나매력적으로여겨지는것이며,그렇게여길만한것으로간주되었다.

『해적계몽주의』에서그레이버가주장했듯이,해적선들,암보나볼라같은해적마을,해적들과긴밀히협력한마다가스카르선주민들이설립한베치미사라카연합은여러측면에서급진적민주주의를실험하는의식적인시도들이었다.그들은이후정치철학자들에의해발전되고한세기후혁명정권들에의해실행될관념들과원칙들을탐색했던것이다.바다위의해적선과땅위의베치미사라카연합둘다고집스럽게평등주의를추구하며어떤지배자의권위도받아들이기를거부했다.리바이어던의빈자리는우아한수사와대화의즐거움이채워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