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적인 연결들 (문명 너머의 사고를 찾아서)

부분적인 연결들 (문명 너머의 사고를 찾아서)

$22.00
Description
생성은 연결에서 비롯되며,
인류학자는 그 연결을 찾아나선다

“인류학의 거대한 방향 전환을 이끈 책”
“독창적인 통찰력으로 인류학 자신을 구제한 책”
서구중심주의의 이분법에 대한 비판은 현대 철학의 오래된 화두다. 그것을 극복하여 새로운 체계를 세우고자 하는 시도 또한 꾸준히 이어져왔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대표적이다. 그는 서구의 전체론적 사고가 서구와 비서구를 가르는 위계 질서의 근본 원인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그들 사고의 중심에 있는 ‘로고스’(logos), 그 절대법칙이 서구와 남성을 중심으로, 비서구와 여성을 주변으로 배치했고 그 ‘중심’이 곧 ‘객관성’을 담보해왔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분법은 자연과 문화에도 경계를 지어, 자연은 하나의 변하지 않는 실재로, 문화는 새롭게 형성된 것들로 각기 다르게 파악했다.

서구 전체성에 대한 이 같은 문제의식은 ‘종합’과 ‘합산’을 거부하는 학문의 흐름으로 이어졌고, 이는 1980년대 들어 ‘포스트모던’으로 통칭되었다. 하지만 전체성이 하나의 수사학일 뿐이라는 인식은 그 인식만으로는 제대로 된 대안이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하나로 모아지길 거부하며 그렇게 많은 조각들로 쪼개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다시 어떤 하나의 전체로서 제시되는 순환고리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대안으로 다원주의가 제시되었다. 다원주의는 보편적 진리에 맞서 부분적 진리를 내세우며, 각자의 다양하고 무수히 많은 세계를 논한다. 이 다원주의는 서구적 시야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너머의 다수성을 지향했으며, 현대 인류학은 이로부터 ‘성찰적 전회’를 이끌어냈다. 1980년대 포스트모던의 광풍이 불던 때에 당대 인류학자들은 다원주의 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기존의 특권적이고 독점적인 지위로서의 인류학을 내던지고 독자를 자신들의 연구에 끌어들이는 방식을 통해 하나의 장르로서의 인류학, 서사로서의 인류학을 제시한다.

《부분적인 연결들(Partial Connections)》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책의 저자 메릴린 스트래선은 다원주의가 하나의 대안이긴 하지만 여전히 ‘전체’를 상정하기 때문에 결국 기존의 전체 대 부분의 틀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다원주의자들은 더 거대한 차원의 세계(전체)가 있고 그 하위에 작은 세계(부분)가 무수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체에 포괄된 부분들은 아무리 탈중심화하고 이질화하고 파편화한다 해도 끝내 전체를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에는 전체의 중심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反)로고스적 성찰 중 21세기 들어 가장 주목받는 관점은 ‘존재론적 전회’다. 이는 현대 인류학을 대표하는 학자인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등이 아마존 원주민 우주론 등의 비서구 철학을 기틀로 삼아 인류학을 서구 형이상학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제시한 실천이론이다. 21세기에 들어 인류학을 중심으로 천착하기 시작한 이 ‘존재론적 전회’는 이제는 인류학을 넘어 사회학, 비판이론, 유물론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저자

메릴린스트래선

1941년영국의북부웨일스에서태어났다.케임브리지대학거튼칼리지에입학해케임브리지정통의사회인류학을수학했다.1964년부터12년동안파푸아뉴기니의하겐산지역에대한현지조사를토대로멜라네시아의친족과여성에관한연구에몰두했다.1976년영국으로돌아온후시대사상에둔감한케임브리지인류학계의분위기에한계를느끼고당대의사상적조류인구조주의,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등을두루섭렵했다.그로부터10여년후21세기의새로운인류학을예고하는기념비적저작《증여의젠더》(1988)와《부분적인연결들》(1991)을출간했다.
특히《부분적인연결들》에서는1980년대페미니즘과미국인류학의문화주의를바탕으로근대유럽중심의전체론적사고를넘어서는‘탈전체론’을획기적으로시도했다.이책은출간당시인류학계에서전혀주목받지못했으나21세기들어인류학계에‘존재론적전회’라고불리는새로운학파가등장하면서그시초로서재평가되었다.옥스퍼드대학,에딘버러대학,코펜하겐대학등에서명예박사학위를받았고,2003년에는인류학자의최고명예라할수있는바이킹재단상VikingFundMedal을수상했다.
현재케임브리지대학명예교수이며,팔순에가까운나이임에도왕성한학술활동을이어가고있다.총15권의단독저술,44편의단독논문,57권의공동저술을발표했고,지금까지도21세기인류와공명하는연구를내놓고있다.

목차

옮긴이해제21세기인류학의새지평을열다4

서문인류학을쓴다26
신판서문53
감사의글66

Ⅰ.인류학을쓴다
[미학]부분1환기로서의민족지72
[미학]부분2복잡한사회,불완전한지식94
[정치]부분1페미니즘비평114
[정치]부분2침입과비교137

Ⅱ.부분적인연결들
[문화들]부분1나무와피리는차고넘치고168
[문화들]부분2중심과주변197
[사회들]부분1역사비평223
[사회들]부분2인공기관적확장250

부록대담:특정언어의가장자리에서279
주326
참고문헌345
찾아보기359

출판사 서평

“지도는존재하지않고만화경같이한없이뒤바뀌는치환만이있을뿐이다.”

《식인의형이상학》저자비베이루스지카스트루가“인류학의거대한방향전환을이끈책”이라고일컬으며‘존재론적전회’의대표도서로꼽은책이바로이《부분적인연결들》이다.메릴린스트래선은이책을1987년부터집필하기시작해서1991년에출간했다.출간후에뚜렷한반응을얻지못했던이책은21세기에들어서위와같은‘존재론적전회’의부흥속에서사람들에게재평가받기시작했고,2004년에는신판으로재간행되기에이르렀다.
이책은기승전결식으로구성되어있지않고,제목그대로부분부분쪼개져편성되어있다.크게는두부분으로나뉘는데,한부분은포스터모던인류학의대표적개념인‘문화를쓴다(WritingCuture)’를겨냥한‘인류학을쓴다(WritingAnthropology)’이고다른한부분은이제까지와전혀다른인류학의방법론으로서자신의퍼스펙티브를제시한‘부분적인연결들’이다.(‘칸토어의먼지’에서따온이책의구성기법은책의25쪽에일목요연하게제시되어있다.)
메릴린스트래선이《부분적인연결들》을펴냈던1980년대후반의영미인류학계는포스트모더니즘의지리멸렬함에서허우적대고있었다.포스트모던인류학은기존인류학의‘민족지적권위’를무너뜨리고독자를민족지연구에편입시킴으로써‘텍스트-작가-독자’간의상호작용에새로운권위를부여했다.이제는현장연구로부터의‘재현’이아니라,독자들로하여금그현장감을체감케하는하나의‘텍스트’‘장르’로서의인류학을주창했다.이른바‘문화를쓴다’라는개념이이때등장했다.
스트래선은이같은당대인류학의문제의식에기본적으로동감한다.다만그는민족지를텍스트라는장르적차원에내맡기는것으로는당면한인류학의위기를극복할수없다고판단했다.그리하여그는‘부분적인진리’가내포한다원주의에충분히공감하면서도,그에안주하지않고한발더나아가포스트다원주의를주창하게된다.이같은고민은자연스럽게서구/비서구의이분법에대한비판으로되돌아간다.이이분법은우리에게전체가개별적인부분들로이뤄져있으며중심을이루는인간들이중심화의파편으로서의개인을다원적으로통합하고있다고전제한다.우리가아무리이난제를피하려해도,원자론적관점(전체는독립된하나하나의종합이다)과총체론적관점(요소는전체의구조나체계와별도로존재하지않는다)의양자택일의기로에서게되는것이다.
《부분적인연결들》에서말하는‘부분’이전체의일부가아니라는점은이책을이해하는데중요한실마리가된다.우리가‘부분’을생각하면곧바로‘전체’를떠올리는것을설명하기위해기존의서구철학은‘메레오그래피(mereography)’라는개념을제시했다.스트래선은이를대신해서‘메로그래피(merography)’라는새로운용어를제안한다.메로그래피란생물학용어인부분할(部分割,meroblast)에서나온개념으로,‘mero’는그리스어로‘부분’을의미하고‘graphic’은한관념이다른관념을기술하는방식을뜻한다.다시말해,우리가기술하는행위는기술되는어떤것을전체의일부가아닌별개의부분으로만들어낸다는것이다.
메로그래피는전체로회수되지않는부분그자체를이야기한다.스트래선은남태평양의섬지역인멜라네시아를찾아현장연구를하던중에이같은기술방식의필요를절감한다.비서구지역에간인류학자대다수는,그곳의개별사례들을면밀하게조사해서종합적인배치를산출하려한다.문제는중심부에고정적으로배치할수있는것이아무것도없다는혼란스런상황을인류학자들이맞닥뜨리게된다는것이다.“지도는존재하지않고만화경같이한없이뒤바뀌는치환만이있을뿐이다.”(책36쪽)
전통적으로서구의인류학은비서구의비교적작은인구집단에대한총체적인기술을시도해왔다.스트래선은현장에들어가거기서보고들은것을문화나사회를표현하는데활용한다는,인류학자의전형적인인물상이이제효력을잃었다고지적한다.“거기에있었다는것에서오는권위는정당한권위가아니라오히려저자성(authorship)에대한매점매석임이판명되었다”(77쪽)는것이다.
비서구지역의현장연구를통해이론적성취를이뤄낸당대서구의인류학자들은그들자신의문화인서구에대해서는총체적인기술을시도할수없었다.기존의연구방식으로자신들의문화를총체적으로기술하자니고려해야할너무나도많은요소가있었기때문이다.결국인류학자는자기문화를들여다보면서,타문화의연구대상과는다른잣대를찾게되었다.스트래선은바로이같은지점이서구의인류학자와비서구의연구대상간의관계를다시금성찰하게만든다고지적한다.인류학자가자문화를총체적으로기술할수없음을깨달을때그와동시에타문화에대한‘총체적인기술’이라고정의해온그것은과연무엇이었는지를되돌아보게된다는것이다.
이같은상황에서는스트래선의메로그래피가해법을줄수있다.스트래선은이제머릿속에있는‘전체’의상을버리고각부분들간의관계에집중하자고주장한다.이로써우리는분단(分斷)에의한관계,즉명백히연결되어있는자료를,하나의전체를절단해서얻는관계를이해할수있게된다.그리고이절단은새로운전복적사고로우리를이끈다.

부분과절편으로넘쳐나는세계,불안의공간에던지는메시지

개인화되고파편화된세계에절망한사람들은그조각난것들을다시모아내려한다.그렇게애쓰는모습들에서는어떤‘서구적인불안’이감지된다.아마도이불안은부분과절단이파괴적인행위이며그로인해어떤사회적인전체가반드시다수화되고파편화되고말것이라는인식에서비롯되는듯하다.즉“신체가수족을잃어가는느낌”(267쪽)을받는것이다.이에대해스트래선은본인이관찰한멜라네시아의일부사례들을제시하며사고의전환을촉구한다.
스트래선이택한사례들은얼핏보기에는여타인류학의현장연구와다를바가없다.멜라네시아의나무와피리는서구사람들의눈으로는본래부터인간과분리된사물이다.다시말해,나무와피리는본래부터개개인격의신체와분리되어있다.그러나멜라네시아사람들은스스로가나무와피리에직접연루되어있다고생각한다.스트래선은멜라네시아사람들로부터,우리가나무든피리든그어떤물질의안을보든밖을보든상관없이,그것이인격에속함과동시에인격을넘어선다는이야기를듣게된다.다시말해그조형물들은인간들이만들어내는관계들에없어서는안될확장물이다.또한물질로서의한인간의신체는그것이수많은외부의것들과맺는관계들로구성되는것과마찬가지로,나무와피리,카누와말뚝같은조형물들에의해서도확장되고재편된다.
스트래선은이처럼오히려절단이관계를만들어내고응답을이끌어내는장면을우리에게제시해준다.다시말해절단이하나의창조적인행위로여겨지는곳이어딘가에는분명히존재하며,그곳에서절단은인간의내적인역량과그가맺는관계의외적인힘을선보인다는것이다.
절단이창조적인행위라는사실은좀더커다란사실로우리를인도한다.즉,정보의파열은곧하나의확장이기도하다.이로써멜라네시아사람들은자신의“어머니의형제들이누이의아들들과부분적으로연결되어있다고느”낄수있으며,또한이같은정보의파열은“개인의정체성이위치한장소들을차이화”(276쪽)함으로써한인격을다른인격의확장된부분으로드러낸다.즉절단과확장은똑같이영향력을발휘하는것이다.
이쯤에서자연스럽게,‘인간과유기체괴물의혼합으로신체를확장한다’라는주장으로세계를충격에빠뜨린도나해러웨이의사이보그론을떠올릴수있다.스트래선은이책에서도나해러웨이의사이보그론을빌려우리가사는현실속에는사이보그,즉수많은잡종들이있음을일깨워준다.우리가사는세상에서는타인과관계를맺거나다른이를자신의세계속에불러들여와참여시키는것이쉽지않다.우리가관계를맺는다고할때에는,자신의경험에하나의관계를덧붙이는것을뜻하지않는다.그보다는오히려지배와권력,사회관계등등이서로작용하면서만들어내는사회적대상에대해새롭게깨닫게될뿐이다.
스트래선의이론은서구의수많은학술담론의설명-탐구의틀로부터멀찌감치떨어진것처럼보인다.다만그는“현재의정식화가순간적개념화에불과하고현재의대처가부분적인연구일뿐”이라는점을분명히한다.스트래선에게인류학적글쓰기란“복잡성에서무한한복잡성을만들어내는필수적이고활력적인방식”(277쪽)이다.우리는채울수록점점더많은공백을만들고있다.

“나는형식을지지하지,과정을지지하지않는다”

이번한국어판번역은원서에는포함되어있지않은메릴린스트래선과의대담을함께수록해그의이론에대한이해를한층더높이고자했다.대담은비베이루스지카스트로,아마존의샤머니즘을연구한인류학자카를로스파우스토와함께진행되었다.1998년가을브라질국립박물관에서치러진이대담에서스트래선은미학적감각으로서의‘형식’을제시한다.그에게형식이란“사물의출현이며가시화된성질과속성”(313쪽)이다.그‘형식’은그가연구한멜라네시아사람들이이론이전에선험적으로체득한것이다.다시말해멜라네시아사람들에게는형식을취한다는것이곧더이상논의할계제가없는단하나의삶의증거다.그들에게어떤물건은그들자신이방금한행동의증거로만이야기된다.이같은스트래선의형식론은,형식은곧생각을담는틀이라는기존의판에박힌전제를깨뜨린다.
스트래선의형식에관한이야기는,지식이세계를어떻게‘전체’로구상하는가에주목하지않는다.오히려그것은‘어딘가’에서온세계들과어떻게관계할것이며그속에서무엇이생성되는지에주목한다.현대사회의쏟아지는정보속에서우리가찾아야할것은그정보각각의디테일이아니라그것들을연결해주는‘관계’다.“계몽주의와과학혁명궤도바깥의사회들에서는관계가사물의반대편을능수능란하게해명한다.인류학자는세계를설명하는다른방식을그리어렵지않게발견해낼것이다.요컨대관계는사라지지않는다.”어쩌면서구의전체론이문명적인간의사고를지배할수있었던이유는문명이생긴이래로인류가비대칭적관계,즉힘의불균등한관계를용인하면서힘있는자의시야를세계에대한앎과등치해왔기때문일수있다.그러나인류가자신의통념을버리려하기에,비대칭적관계와시선을허용하지않기에지금우리는새로운관계와앎을모색해야한다.《부분적인연결들》은그관계를찾아내는데에서하나의열쇠와도같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