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동성애 (혐오와 억측을 넘어, 성서 다시 읽기)

성서와 동성애 (혐오와 억측을 넘어, 성서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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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성서는 정말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는가?
개신교 우파의 혐오주의 해석을 반박하다
‘반동성애’를 외치는 목소리는 성소수자 인권 보장이 외쳐지는 곳곳에서 동시에 들려오곤 한다. 누군가의 성정체성을 반대할 수 있다는 주장 자체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그러한 주장이 가장 크게 울려 퍼지는 스피커가 다름 아닌 종교계라는 사실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개신교 우파를 중심으로 ‘반동성애’를 외치는 이들은 몇몇 성서 구절을 근거로 혐오주의를 정당화하고, 급기야는 ‘종교적 신념’으로 존재를 반대하겠다는 칼날을 들이민다. 그러한 칼날이 휘둘러지는 곳에 언제나 ‘하느님’과 ‘천국’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성소수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은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찬반’의 문제로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부정적 편견에 개신교가 깊이 개입해왔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반동성애’ 운동이 가능했던 데는 개신교 우파 목회자들의 혐오주의적 성서 해석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혐오주의적 해석의 설교가 반복되며 집회나 시위 등 신자들의 실질적인 ‘반동성애’ 운동으로 이어졌다.

2016년 총선을 기점으로 ‘반동성애’를 주요 정체성으로 내세우며 기독자유당이 창당했다. 극우주의적 담론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동성애 찬반’ 논의를 더욱 열띠게 만들었고, 극우주의적 종교 지도자가 정당 창당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적 인물로 소환되는 과정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각종 미디어와 언론, 또 다른 종교 지도자 등을 통해 계속해서 증폭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성서는 정말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마치 그것은 당연한 전제처럼 가정된 채, 성소수자를 종교적 신념으로 ‘배제’할 것인가, ‘포용’할 것인가, 라는 기이한 선택지만 남은 듯했다. 이러한 논의는 비종교인, 비개신교 신자들 사이에서도 ‘성서에서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주장을 마치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서는 동성애를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성정체성이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는 아마도 가장 정확한 해석에 가까울 것이다. 실제 ‘반동성애’를 주장하는 개신교 우파가 인용하는 성서 구절도 〈레위기〉 20장 13절, 〈사사기〉 19장 22절, 〈로마서〉 1장 26절, 〈고린도전서〉 6장 9절 정도에 국한된다. 겨우 3~4개 텍스트가 전부인 것이다. 이마저도 남성과 남성의 성관계만이 언급되고 있으며, 저자는 이때에도 동성애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본다. 당대의 시대적 상황, 역사적 맥락 등을 고려해 해석한다면 그 구절에는 동성애 비판이 아닌 다른 데 목적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반동성애’를 외치는 개신교 우파가 근거로 삼는 3~4개 성서 구절들을 철저히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더라도 여성과 여성의 동성애를 비롯해 다른 성소수자들을 언급하거나 ‘반대’하는 구절은 찾아볼 수 없으며, 직접적으로 ‘남성과 남성의 성관계’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도 당대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그 비판은 결코 ‘동성애’를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남성과 남성이 성관계하는 것을 비판하는 성서의 구절들에 대해 문맥과 사회, 역사적 맥락을 최대한 충실히 고려하여 재해석하는 시도를 하고자 했다. 이런 시도를 성서 비평학에서는 ‘역사적 해석’이라고 부른다. 좀 더 세밀하게 말하면 나는 이 텍스트들에 대한 정치사적 해석을 시도하였다. 즉, 성서에서 남자끼리 성관계하는 것에 반대하는 구절들은 각기 다른 정치적 의도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면서 그 본문을 해석하고자 했다.”(13쪽)

《성서와 동성애》는 ‘반동성애’의 근거가 되는 성서 구절을 역사적 개연성을 좇으며 정치사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한 책이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성서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해석에 반기를 들며, ‘반동성애’로 해석되는 구절들을 치밀하게 다시 살핀다. 이는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을 논하기 전에, 전제를 의심하는 질문을 건너뛰지 않기 위해서다. ‘성서에서는 정말 동성애를 반대하는가?’ 이 질문은 또한, 종교 여부를 떠나 ‘존재를 반대할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으로 향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저자

김진호

점심가까운아침에깨서늦은새벽까지골방에앉아글쓰는게가장흔한하루일과다.민중신학자로한국사회와교회의불편한공존에대해,그리고민중의숨겨진그림자를찾는것에관한글을써왔다.주요저서로《대형교회와웰빙보수주의》《시민K,교회를나가다》《권력과교회》《리부팅바울》《반신학의미소》등다수가있다.

목차

들어가며5

1부“제발이런수치스런일은마시오.”21
-집단강간사건의소거된목소리

2부“사람들을부끄러운정욕에내버려두셨소.”63
-‘부끄러운정욕’의진짜의미

3부“남자가남자와동침하면사형에처하라.”107
-‘여자와여자’의동침은언급하지않은이유

더하는글동성애문제에서퀴어문제로155
-2016년4.13총선과반동성애혐오동맹출현의종교정치학

출판사 서평

혐오와배제의정당화에서폭력에대한성찰로나아가기위해,
가장낮은곳에임하는시선으로다시출발하기

《성서와동성애》는대표적인‘반동성애’텍스트로거론되는〈사사기〉19장22절,〈로마서〉1장26절,〈레위기〉20장13절,총3개의구절을재해석했다.〈사사기〉19장22~23절의내용은다음과같다.낯선남자방문객을묵게한노인의집앞에동네청년들이몰려들어“노인의집에들어온그남자를끌어내시오.우리가그사람하고관계를좀해야겠소”하고소리를지른다.그러자집주인노인은청년들을만류하며“제발이런수치스러운일을하지마시오”라고말한다.이구절을‘반동성애’로해석하는이들은동네의청년들이남자방문객과‘관계를좀해야겠다’고말하는것을‘집단동성강간’으로해석하고,노인이‘제발수치스러운일을하지말라’며만류하는것을‘동성애는죄악이기때문’이라고해석한다.

이러한해석자체로도의문이남지만,이구절앞뒤의이야기까지모두살펴보면결코타당하지않은해석임을분명하게알수있다.동네청년들에게‘내놓아진’사람은낯선남자방문객이아닌그의아내였을뿐만아니라,동네청년들이노인의집에달려들어남자를끌어내라고소리친이유도다른데있기때문이다.저자는〈사사기〉의필자,시대적상황,정치적이해관계등을종합적으로고려하는해석을시도하며이구절에서소거된한사람의목소리,바로낯선남자방문객대신동네청년들에게끌려간아내에주목한다.기드모파상의소설〈비곗덩어리〉의시각을참고하며,저자는‘집단강간사건’을다루는구절어디에서도발화되지않은한여성의소거된목소리에집중한다.‘반동성애’로해석되는구절을‘이데올로기의폭력’으로,다시말해개인의비극적인죽음을도구화하며공존의질서를구상하는폭력으로읽어내는것이다.저자가〈사사기〉19장을읽는일을애도에서다시시작하자고말하는이유다.

〈로마서〉1장26절은‘영원한하느님의영광’을‘썩어없어질형상으로대체’한죄에관한것이다.이러한‘죄’의결과가‘부끄러운정욕’이라는말로표현되는데,이때‘부끄러운정욕’이라는말이‘동성애’로해석되곤한다.“이런까닭에,하느님께서는사람들을부끄러운정욕에내버려두셨습니다.여자들은남자와의바른관계를바르지못한관계로바꾸고,또한남자들도이와같이,여자와의바른관계를버리고서로욕정에불탔으며,남자가남자와더불어부끄러운짓을하게되었습니다.그래서그들은그잘못에마땅한대가를스스로받았습니다.”〈로마서〉1장26~27절의이러한내용은언뜻보기에정말동성애를죄악시하는것처럼보인다.

하지만저자는이구절역시치밀한해석을시도하며비판의대상을다시찾아낸다.로마의교인들에게보낸바울의서신〈로마서〉는당대의문화적,사회적맥락을고려하면다분히정치적인텍스트라는것이다.즉,당대바울의포용주의와로마의분리주의에대한이해없이이텍스트를문자그대로해석하는데는한계가있다.이러한저자의해석을따라가다보면,〈로마서〉1장26절을통해바울이비판하는것은‘동성애’가아닌‘권력형성폭력’이라는것이드러난다.텍스트를편견으로해석하는것이얼마나큰억측일수있는지알게되는대목이기도하다.

마지막으로〈레위기〉20장13절은‘반동성애’로해석되는성서구절가운데서도가장폭력적인것으로읽히는구절이다.그이유는앞서의두구절과달리“남자가같은남자와동침하여여자에게하듯그남자에게하면,그두사람은망측한짓을한것이므로반드시사형에처해야한다”고직접적으로말하기때문이다.바로이구절때문에개신교우파의혐오주의적해석도신빙성을얻는다.

하지만저자는이구절역시‘동성애’가아닌다른곳을향한다고말한다.그이유는우선,문자주의적으로보더라도여러성적관계들을극형에처하라고말하는〈레위기〉20장에서‘여자가같은여자와동침’하는항목은발견되지않는것이첫번째다.그렇다면‘남자와남자의동침’만을언급한이유는무엇일까?저자는유대왕국의멸망이후옛유대왕국의땅으로귀환한유대귀환공동체내부의정치적갈등,구체적으로지방성소와중앙성소의제사장간갈등에주목한다.

당시지방성소에는‘히에로스가모스’라는예배가있었다.제사장들이신의역할을대행해숭배자들과만드는‘가상결혼식’이었다.이의례는제사장과숭배자들이서로얽혀노래하고춤추며함께식사하고,그절정에신부와신랑이동침하는것으로마무리되었다.그러나당대정치나종교지도자중에서이미여성이사라진때에,이‘가상결혼식’의례의대미를장식하는‘동침’은남성제사장과남성숭배자였을가능성이높다고저자는말한다.지방성소에서이뤄지던‘히에로스가모스’를타락한우상숭배로간주하기위해,중앙성소의예배만을‘성결’한것으로말하기위해‘남자와남자가동침하면사형에처하라’는구절로“공포의퍼포먼스를위한법적알리바이”를확보하려했다는것이다.

저자는이러한해석위에서〈레위기〉20장13절의비판이결코‘동성애’를가리키는것이아니며,이구절에는당대유대귀환공동체지배세력의분리주의적이데올로기가담겨있다고해석한다.이같은순결주의정치학이만들어낸배제와폭력을돌아보는데서이구절의해석을다시출발하자고요청한다.

개신교독자정당의명분이된‘반동성애’와
과장된포용의제스처를취하는‘계몽적보수주의’의등장
한국사회극우주의와대형교회사이에서성소수자인권을돌아보다

혐오와배제를정당화하는성서해석은거기서그치지않고,‘반동성애’를종교적신념으로내세우며타인의존재를‘반대’하는폭력으로까지이어지고있다.‘반동성애’를외치는목소리는동성애자를구금하거나치료해야하며,심지어실형에처해야한다는등의점점더극단적인주장으로달려가고있다.과연성서에대한오해에불과한것일까.그러한해석을반박하는것으로충분할까.

2016년4.13총선과반동성애혐오동맹출현의종교정치학을살피는‘더하는글’은한국사회극우주의와대형교회를가로지르는자리에서성소수자인권문제가정치적으로어떻게이용되는지를살피는글이다.2016년총선을기점으로창당한기독자유당과함께혐오주의의부상으로떠오른‘반동성애’논의는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내세우는어젠다가운데가장확장성이큰것으로분석된다.“2017년4월25일대선후보초청4차토론회당시홍준표자유한국당후보가문재인더불어민주당후보로하여금‘동성애에반대한다’‘동성애를좋아하지않는다’라고말하게끔유도한것은‘동성애’문제가정치에서여전히중도층을보수와접맥시키는요소라는인식이뿌리깊게자리잡고있음을의미한다”는저자의말처럼,‘반동성애’는개신교독자정당이기존의극우주의정당과연합하지않고독자정당노선을고수하는명분으로기능한다.

저자의논의는개신교우파의정치적의도와‘반동성애’의연결고리를분석하는데서그치지않고한발더나아간다.개신교우파의‘반동성애’운동과평행하는,‘계몽적보수주의자’들의등장과정치적‘신상품’으로서기능하는성소수자인권의대두다.계몽적보수주의자들은‘반동성애’를주장하는목사들의“논리가막무가내로퍼부어대는비난과다름없다는사실”을알아채고그것이‘관용’의태도와충돌한다는것을인식한이들이다.

“대체로요즈음급성장하고있는대형교회들에선전광훈과기독자유당,그리고한기총유의반동성애혐오주의적담론에공공연히동조하는분위기를거의엿볼수없었다”고말하는저자는전작《대형교회와웰빙보수주의》에서정의하고분석했던‘웰빙보수주의’(품격있는라이프스타일에대한성찰,웰빙적문화실천이대형교회의보수주의적정치성과결합함으로써나타난태도)가정치적영역으로확산된것을‘계몽적보수주의’로정의한다.‘계몽적보수주의’는대형교회의엘리트신자들이중심이되며,미국을비롯한서양의모더니즘을원전처럼인식하는경향이있다고진단하는데,이에따라“섹슈얼리티에대한실제인식은보수적이지만대외적행동은개방적인것처럼보이도록과장되게주장”하는모습을보이게된다는것이다.동성애반대주장을펴는목사들의비논리와시대착오적독선이그것을알아챈이들의계몽적자의식을부추겼을것이라는분석이다.

강남권대형교회를중심으로사회적,경제적자본을가진이들의‘계몽적보수주의’는‘관용’의가치를더많이적용시키는방향으로성소수자인권향상에기여하기도할것이다.동시에문제는바로거기에있다.‘관용’이나‘포용’의흐름이자본주의가말하는‘상품가치’와만나고있다.이미광고나영화,드라마등에서성소수자는꽤잘‘팔리는’소재가되었고,한국에서도그시장은성장세를보이고있다.이러한상품화의이면에는누가있는가?최근소비자본주의가성소수자를상품화하는것은경제적,사회문화적자본을가진계몽적보수주의자들의영향력과과연무관한가?“동성애는기괴한것이아니라멋진것,진보적인것이라는의미코드가작동하고있는것이다”라는저자의진단을쉽게지나치기어려운이유다.

“소비자본주의의영향으로성소수자의인권이잘존중되고있다고생각하게되어도,그것은상품가치를인정받은일부의성소수자들에대한선별적존중이다.”(185쪽)

저자는‘포용’의원리와소비자본주의의영향이공존하는현재의상황을우려하며,결국그때문에포용이냐배제냐하는분리주의적질문을넘어서야한다고말한다.성다수자대성소수자라는이분법을넘어,우리사회에작동하는무수한편견과차별의메커니즘자체에중심을두어야한다는것이다.

동성애문제를넘어퀴어문제로나아가기
“그리하여퀴어한존재는혐오스런존재가아니라
우리모두에대한신의축복이다“

‘반공’에집중했던증오의정치는이제‘반동성애’라는새로운혐오를내세우고있다.극우주의개신교정치세력이기존의극우정당과연합하지않을수있는주요한명분이자,종교적신념으로자기기만이가능한주장이기때문이다.‘반동성애’는개신교우파의정치세력화수단으로이용되고있다.그러나한국사회전반에존재하는성소수자에대한뿌리깊은혐오가없었다면,‘반동성애’또한정치세력화의수단으로선택되기는어려웠을것이다.

그렇다면성찰과반박이후는무엇일까.저자는동성애문제를넘어퀴어문제로나아가는,퀴어적사유와실천이필요하다고강조한다.‘기괴한’‘비정상적인’이라는혐오와배제의뜻이담긴원래의의미를전복해정체성의용어로사용되는‘퀴어’.정상과비정상의기준을가르는편견과차별의메커니즘을사유하고,여기에중점을둔실천들이필요하다는이야기다.부조리를교정하는데만족하는것이‘퀴어를위한’시각이라면,부조리한세계너머의세계를꿈꾸게하는것은‘퀴어의’시각이다.

“퀴어,곧‘기괴한’존재는친숙한것에매몰된문화가필연적으로내포하고있는낯선존재에대한편견과폭력을돌아보게하고,증오와전쟁의위기에빠져있는세계를변화시킬하나의동력이다.그리하여퀴어한존재는혐오스런존재가아니라우리모두에대한신의축복이다.”(186쪽)

동성애혐오주의에반기를드는것을넘어성다수자대성소수자라는이분법을벗어나는것,포용도관용도아닌편견과차별에대한문제의식으로질문하는것.혐오의무기가된성서를다시읽는출발점도,반박과분석이후를고민하는출발점도바로여기에있다.퀴어한존재가신의축복이아니라면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