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일기

섭식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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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식탐과 밀당하는 채식 지향인의 본격 섭식 에세이
나를 사랑하고 타자를 존중하는 미각의 여정

‘섭식’만큼이나 종을 막론하는 활동이 또 있을까. 먹는 것의 종류는 제각기 다를 지라도, 생명체라면 응당 무언가를 섭취해야만 생을 유지할 수 있으니. 그러나 섭식은 언제나 ‘살생’을 동반한다. 그중 가장 끔찍한 형태는 아마 언제 어디서든 양껏 ‘고기’를 먹겠다며 수많은 동물들을 학살하는 대규모 축산업일 것이다. 인류세 그 어디에도 없었던 광경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셈이다.
인간의 손이 닿으면 그곳이 어디든 남아나지 못하는 세상. 언제나 그렇듯 시작은 ‘죄책감’이지만, 거기 머무를 수만은 없다. 이 거대한 폭력의 고리를 조금이나마 끊어보려 식탁 위 ‘자그마한 저항’을 실천하기로 한다. 무엇보다 그건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죄책감을 가지고 고기를 먹던 사람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되기까지, 모든 음식을 다 먹고 싶어 하는 식탐 많은 사람에서 내 앞의 끼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기까지, 몸의 아픔을 방치하고 몸에게 괜찮을 것을 강요했던 사람에서 좋은 습관을 만들어 몸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되기까지. 그 사이의 기쁨과 슬픔, 번뇌, 불안, 동요 같은 것들을 하루하루의 일기로 써내려간 것이 이렇게 책이 되었다.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 식탁의 풍경이 말해주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거기엔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있고, 나와 관계 맺는 다른 사람들이 있고, 이미 죽음이 되어버린 어떤 생명이 있고, 심지어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땀도 배어 있다. 이 작은 ‘섭식일기’가 식탁 뒤 숨은 풍경들을 하나하나 건져 올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저자

최미랑

경향신문기자.세상온갖일에다관심이있어이직업을택했다.누군가를비판하는기사도많이썼지만누구든지더나아질가능성은있다고믿는편이다.모두자기답게살수있는세상이되도록,그가능성을키우는데힘을보태고싶다.몸을써서무언가를배우고작은깨달음을축적해나가는것을좋아한다.

인스타그램:@swiiimingly

목차

프롤로그무슨먹는얘기를하겠다고5

1.나는먹고,너는죽고:씹고뜯고맛보는동안에

달구14
꽃게의저주24
문어36
인간과짐승46
모기가루학교와뒤주의공포54
반야심경62

2.식탁뒤숨은마음:서로빚지며먹는다는것

언니들마음70
주류감각과이방인감각82
채소를생으로먹으면사람이죽습니다98
가족의외식106
모두의배속사정이제각각다른데도120

3.나메살따구말고:즐거운상상과무한한가능성

무엇이걱정인가,바게트가있는데132
대방어와고통없는밥상140
흑염소와채개장150
흥,내가맛없는것먹고살것같은가156
피드관리164

4.허기와부름사이:밥값아닌밥상을위하여

배고픔에대하여170
영혼의보약,혼밥180
스스로를존중하는법184
죽이나수프는아니니까190
옥상의상추196

에필로그욕망의재구성207

도움받은책210

출판사 서평

나는먹고,너는죽고……
:내가씹고뜯고맛보는동안에

“미안하다고하면그만인걸까.견디는방식,견디기위해나보다약한것을이용하는방식,그러곤어쩔수없다고말하는방식으로살아갈수밖에없는걸까.”

고기를먹은날들의마지막은언제나죄책감으로끝이났다.회사에서종일털린영혼을간간한양념에푹절은KFC치킨으로회복한어느날엔가왈칵눈물이올라왔다.
“견디는방식,견디기위해나보다약한것을이용하는방식,그러곤어쩔수없다고말하는방식으로살아갈수밖에없는걸까.여기서달아나면겁쟁이가되는걸까?”
이때로부터열흘쯤지났을까,더이상고기를먹지않기로했다.푸지게,맛있게먹고죄책감에눈물흘리는그오랜패턴에서나를구출하기로한것이다.
“마당에서닭목을잡아비틀고가마솥에담가털뽑았다는어른들의시대도다지나가고지금우리는닭을컨베이어벨트에거꾸로매달아뎅겅뎅겅목베는시대를살고있다.예로부터먹던것이니잡아먹는게자연스러운것이아니냐고누군가묻는다면,인류세를살아가는인간은이미전과같이먹고있지않으며전과같이먹어야할이유도없다고답하고싶다.”
“동물과의관계를재정립하는것이인간의생존을위해필수적인일이아닌가하는생각이든다.도시와농촌을구분하고흙을아스팔트로덮고오염된내집공기를공기청정기로정화하며살아간다해도우리와가축,야생동물,식물과미생물이모두연결되어있다는사실은변하지않는다.”

그러나동시에채식은무엇보다‘더많이더많이’를외치는세계에서나를지키는방법이기도하다.기름진것,좋은것,비싼것을탐하면탐할수록나는나를더착취할수밖에없다.처음채식을결심하게된건윤리적동기에서였지만,때때로찾아오는방황과혼돈의순간을담담히버텨낼수있었던건이선택이다른누구보다나자신을더욱사랑하는방법임이틀림없다는확신이있었기때문이다.

나메살따구말고
:즐거운상상과무한한가능성

아직까지도세상은‘고기를먹지않는’일상을재미도영양가도없는따분하고금욕적인무엇으로상상한다.그러니까‘채식’이란건그저지독하게맛없는것을건강상의이유혹은윤리적인이유로감내하는실천인것만같다.
하지만이것역시하나의편견이아닐까?꼭‘나메살따구’(남의살)를씹어야훌륭한한끼식사가완성된다는믿음,누군가를대접할땐꼭‘피를봐야’한다는문화적고정관념같은것들을근본적으로바꿀순없는걸까.
“육식을줄이는것은다른종을착취하지않고공존하는일과,나와나의소중한사람들또는혹시있게될지모를자손의미래를지키는것둘다를위해필요한일이다.그러니부디모두원래의먹던방식만고집하지않았으면좋겠다.적어도하던대로하고싶은게으른관성과기득권을유지하고싶은마음을‘자연스럽다’‘필수적이다’같은말로포장하지는않아야한다고생각한다.고기를안먹고도잘살아온사람들이세계곳곳에많이있다.”

《섭식일기》를통해널리공유하고싶은건,세간의편견과달리채식의세계는무궁무진하며,즐겁고도창발적인상상력으로가득하다는점이다.고기없이도얼마든지맛있는음식을탐하고욕망할수있다는것,심지어는더창의적이고더맛있는것을개발해낼수있다는걸좀더많은사람들에게알리고싶은마음이다.
“채식을하려고마음먹었을때나는인간이만든이다채로운문화,원칙과융통성,잔머리와끼부림의총합인그것,‘레시피’를잃는것이솔직히겁이났다.그러나바꿔생각해보면,육식중심으로쏠리게되면서우리가외면한,그놈의고기에가려져저평가된장구한역사의식문화는아깝지않은가.어떤면에서채식을지향하는것은짐승을착취해돈버는자본이밀어낸맛있는것들을되찾아오는과정이기도하다.”

채식요리를익히는재미라는건,‘무엇은어떠해야한다’를깨나가는과정자체인것같다.
“버터와우유없이어떻게고소하고바삭한파이를만들어내지?아이스크림의부드러움은또어떻고?나는이제노루궁뎅이버섯탕과양배추스테이크,배추찜,쑥버무리를탐낸다.탐구할영역이널려있다는것에매일감동한다.치킨을보면생각한다.이맛있는튀김옷안에버섯이있으면어떨까,왜안될까,최강의식감을개발해내고싶다.”
“기름넘치는최상급소고기를사서어떻게그값이안아깝게먹을까고민하는건별재미가없다.그런재료를안쓰고,값싸고흔한재료로어떻게맛있는걸만들어낼까하는문제가더도전적이다.창의성이란무한정의자유가아니라적절한제약조건이있을때발휘되는것아닌가.”

식탁뒤숨겨진마음을찾아
:먹을것내어주는분들을생각하며

‘무엇을어떻게먹을지’의문제만큼중요한게또있다.
하루하루나만의‘섭식일기’를써내려가며먹을것을내어주는분들생각을참많이했다.고기를먹지않겠다고다짐한날부터“시커먼새벽에나와돼지와소사체를해체하는정육점사장님”과“하루몇마리생선목을땄는지알수없을수산시장의노동자분들”이늘마음에걸렸다.
이뿐인가.외식비용을조금이라도아껴보겠다고여행가는아침에도일찍일어나이것저것지지고볶고,그렇게한음식을보자기에바리바리싸챙기는엄마,“나무틀에얹힌무거운돌솥몇개씩”을겹쳐나르면서도금새또새로운반찬으로새상을차려주시는식당언니들의“프로페셔널리즘”엔언제나혀를내두르게된다.
“음식만큼이나놀라운게언니들의손놀림이었다.큰냄비에가스불을붙여놓고방에앉아있으면언니들이먼저전복을싹싹썰어한입에쏙쏙들어가게해주고우리가그것을먹는동안에문어를슥슥잘라주었다.이모든것을낼름낼름받아먹는자리에내가앉아있는것이좀어색하게느껴졌다.”
어쩌면‘고기를먹지않겠다는’나의선택,지금껏꾸준하게이어지고있는나의채식생활은전부이분들에게빚지고있는게아닐까.이젠밥먹을때“남의먹을것을제것처럼살뜰하게챙기는분들”의그수고로움을잊지않으려한다.밥상위를장식한온갖음식들사이에존재하는그것을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