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시간 (서로를 책임지는 느린 존재들의 이야기)

식물의 시간 (서로를 책임지는 느린 존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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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아픈 몸을 가진 내가, 내 몸 하나 책임지기 힘든 내가 이 식물들을 제대로 돌볼 수 있을까?’ 화훼 단지에서 작은 마삭나무 한 그루를 데려온 날부터 조금씩 반려식물들을 들이게 된 저자가 식물과 지내는 사계절의 일상에 대해 적었다. 실내 생활에서 식물의 비중이 그 어느 때보나 커진 코로나19 시대, 식물과 인간이라는 전혀 다른 존재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공존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크론병이라는 자가면역질환 때문에 아프고 약한 몸으로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이 자신처럼 작고 연약한 식물들을 돌보고 그 삶에 개입하게 되면서 느낀 소회와 통찰들을 풀어내고자 했다. 저자와 반려식물들은 느리고 연약한 그 모습 그대로 관계 맺고, 교감하며, 서로를 돕는다. 저자는 작고 사소하다고 치부되는 그 어떤 삶도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의 반려식물들 덕택에 깨닫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그 복잡성을 고민하고자 택한 방편이 ‘식물의 시간’을 섬세히 파악해보는 것이었다. 우리가 포착하지 못할 뿐 식물은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 리듬에 따라 매순간 부지런히 움직이고 성장한다. 반려인간으로서 식물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려면 느리고 불투명한 그 시간을 오롯이 함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어쩌면 이는 생산성이라는 단일한 시계가 인정하지 않는 천차만별의 시간들에 다가가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저자

안희제

〈비마이너〉칼럼니스트이자객원기자.아픈몸으로살아가면서,작고약한존재들의느리고좋은삶을위해무엇이필요한지고민하고있다.작고느린식물들에게공감하기도하고,때로는아픈나보다강하게생동하는식물들을질투하기도한다.문화인류학을통해장애와질병을이해하고더나은세상을상상하고싶다는소망을갖고있다.《난치의상상력》(동녘,2020)을썼다.

목차

프롤로그한서투른반려인간의이야기를시작하며......5

1부한손바닥만큼의책임......15
2부식물의시간,나의시간......31
3부식물들의봄......47
4부바야흐로플랜테리어?......67
5부함께한다는것......87
6부욕심......113
7부식물이낭만적이라고?......147
8부어떤모습으로자랄지알수없지만......163

에필로그봄을기다리지않을도리는없지만......199
주......203

출판사 서평

내몸하나책임지지못하는내가
식물들을돌볼수있을까?

아픈몸을가진한명의인간과
작고연약한식물들이꾸리는,
묵묵하지만평화롭지만은않은일상에관하여

‘아픈몸을가진내가,내몸하나책임지기힘든내가이식물들을제대로돌볼수있을까?’화훼단지에서작은마삭나무한그루를데려온날부터조금씩반려식물들을들이게된저자가식물과지내는사계절의일상에대해적었다.실내생활에서식물의비중이그어느때보나커진코로나19시대,식물과인간이라는전혀다른존재가서로어떤관계를맺고공존할수있는지에초점을두고이야기를펼쳐나간다.
크론병이라는자가면역질환때문에아프고약한몸으로살아가는한명의인간이자신처럼작고연약한식물들을돌보고그삶에개입하게되면서느낀소회와통찰들을풀어내고자했다.저자와반려식물들은느리고연약한그모습그대로관계맺고,교감하며,서로를돕는다.저자는작고사소하다고치부되는그어떤삶도결코단순하지않다는것을자신의반려식물들덕택에깨닫게되었다고털어놓는다.
그복잡성을고민하고자택한방편이‘식물의시간’을섬세히파악해보는것이었다.우리가포착하지못할뿐식물은자신만의고유한시간리듬에따라매순간부지런히움직이고성장한다.반려인간으로서식물들이더나은삶을살수있도록도우려면느리고불투명한그시간을오롯이함께할필요가있다는것이저자의생각이다.어쩌면이는생산성이라는단일한시계가인정하지않는천차만별의시간들에다가가는시도일지도모른다.

한손바닥만큼의책임
시작은2019년가을이었다.몸컨디션이좋지않아학교를쉬던와중아빠손에이끌려가게된화훼단지에서작고아담한청마삭한그루를만났다.그때껏식물을길러본적도,관심을가져본적도없던나였지만그작은나무에마음을빼앗기고말았다.더멋지고화려한다른나무들이많은데도도돌이표처럼마삭나무앞으로돌아갔다.
그렇게녀석을데려온날부터고민이시작되었다.별생각없이데려온나무는나를불안과혼란에빠뜨렸다.마삭나무는분재였기에다른화분보다물이훨씬더잘빠지도록설계되어있었다.흙이너무많은영양소를흡수하는것을방지해아름다운모습을오래유지시키려는의도다.분재는하루도거르지않고주는것이중요해서편한점도있지만,한편으론그렇게물이잘빠진다는사실이나를무척불안하게만들었다.
아침에일어나자마자나무곁으로달려가고,수시로물을주고,외출하고돌아와서도나무부터살피는나날이었다.겨우손바닥만한나무한그루돌보는일인데도생활의리듬을완전히바꿔야하다니.하지만부담이나걱정도잠시,나의발걸음은점점더자주화훼단지를향했다.어느새집은각종화분들로복작거렸다.
식물들이잘못되진않을까하루하루벌벌떨며물을주고,아침저녁으로식물들과흙의상태를확인하면서나는점점내가정말작은존재라고생각하게되었다.‘어쩌면내가책임질수있는영역은겨우한손바닥만큼일지도몰라.’

내가알지못했던,식물의시간
집에서하는작은원예는정해진매뉴얼이라고할만한게따로없다.대규모농장에서는‘조온습’(조명,온도,습도)을조절하는방식으로식물을속여빠르게길러내지만,집에선식물과흙의상태를관찰하며식물이어떻게성장하는지가늠해보는것정도가가능하다.심지어그마저도어려울때가더많다.식물이잘자라는지확인해보려면흙을파보는것이가장좋은데,섣불리그렇게하면식물이죽을수도있기때문이다.그래서늘안절부절한다.
나는아픈사람이다.크론병이라는자가면역질환때문에매일같이면역억제제를먹어야하는데,그약때문에다른사람들보다몸이약하다.“아프고약한몸으로살다보면조금씩몸의속도가느려지는걸느끼게”된다.걷는속도도느려,신호등을미리부터기다리고있지않으면제시간에횡단보도를건너지못할때가많다.식물과의일상이더없이특별하게느껴지는건그때문이다.약하고느린인간으로서작고연약한식물들에게이입하게되는날들이적지않다.
나의반려식물들은내몸하나책임지기도버거운내가나아닌여러생명과삶을책임질수있다는것,또한그책임이결코가볍지않다는것을알려주었다.우리는느리고연약한그모습그대로교감하며서로를돕는다.
식물과지내는일상에익숙해지니어느덧새로운시간감각이생겼다.식물의시간은‘50분수업,10분휴식’‘버스도착까지2분’‘지하철을놓치게만든10초’‘유튜브광고5초’같이촘촘히분절되어있고예측가능한시간과는다르다.씨앗이발아하고새싹이돋아내는때는정확한예측이불가능하다.가을에심어봄에날싹을기다려야하는경우도부지기수.가진돈을다쓴다해도마음대로조절할수없는것이식물의성장이다.
“식물은아주느리게움직인다.일정수준을넘기면성장속도도아주느려지고,겨울이되어잎이다떨어지기라도하면살았는지죽었는지조차알수없다.하지만나는그느림을인정하고그것에익숙해지기로했다.겉으로는이렇다할변화가없어보여도나름대로관찰하며기다리고물을주는것이식물의시간을경험하는나만의방법이다.섣불리판단하거나포기하지않으면서식물의시간에적응해가고싶다.”

플랜테리어너머의삶
바야흐로‘플랜테리어’의시대다.실내공간에화분을두는일이별로생경한일은아니지만,처음부터식물을염두에두고인테리어를기획한다는발상은어딘가새롭다.
흥미로운건플랜테리어용으로선호되는식물들이따로있다는것이다.대부분물이나햇빛이충분치않아도잘자라는식물들이다.그런데이‘플랜테리어용식물들’에는불편한진실이있다.사실여기엔인간이별로주의를기울이지않아도‘알아서잘자라는’식물이플랜테리어에적합하다는함의가내포되어있다.
플랜테리어용으로흔히선호되는다육이를두고사람들은이런말들을주고받는다.“그냥들이기만하면돼.물도거의줄필요없고엄청편해.너도한번길러봐.”이런사고방식이묘하게익숙한건왜일까.‘다육이’의자리에‘고양이’를넣어이렇게말하는사람들을나는너무자주본다.“산책시킬필요도없고,개처럼훈련시킬필요도없어.독립적이고엄청편해.너도한번길러봐.”
‘별로신경쓰지않아도된다면’혹은‘신경쓰고싶지않다면’식물이든동물이든굳이들일필요가있을까.나역시언젠가저런말을아무렇지도않게내뱉었던적이있었다.누군가에게로즈메리를추천하며“별로신경쓰지않아도잘자라는식물”이라고이야기했던것이다.내가그말의무게를깨닫게된건로즈메리를죽게만든뒤였다.그때나는로즈메리의쓸모에만집착했지로즈메리에게어떤환경이필요한지에는관심을기울이지않았다.
“반려동물이나반려식물을들일때가장먼저숙고해야할것은얼마나책임을다할수있느냐다.식물이좀더나은삶을누릴수있도록최선을다할결심이되어있는지.인간의좁은앎에서비롯된오해처럼식물에게필요한건그저물이나흙,햇빛따위가아니라,자신이살아가는환경에충분히관심을기울일‘반려인간’이다.이사실을깨닫기까지나는생각보다많은식물들을떠나보냈고,내무지에대한책임을식물들은언제나‘죽음’이라는형태로떠맡아야했다.”
마치사물처럼,인간이아무신경을쓰지않아도잘자라는식물은없다.식물을자신이머무는공간가까이에두고보고싶은마음,인테리어와조화를이루도록만들고싶은마음자체가그릇된것은아닐테지만,적어도식물을인테리어의요소로치환하지는않으면좋겠다.인테리어소품처럼두고가끔훑어보는것이전부라면,그게굳이생명이있는식물이어야할이유는없을것이다.
“인간뿐아니라식물역시그나름의방식으로쾌적하고즐거운삶을누려야한다는게내생각이다.풍요로운삶이란인간만의것이아니니까.그러려면내가먼저식물에게‘반려인간’이되어야한다.”

인간의욕심이란
이런이야기를건네는나조차미관에대한집착으로나무를죽음에이르게한적이있었다.그나무와보낸2주일남짓의시간은지금까지도내게가장아픈기억으로남아있다.사철내내푸릇한나무를보고싶은마음에소나무를들일까하다너무비싸서차선책으로고른진백이라는향나무였다.분갈이부터다듬기까지그기회에익혀보자는심산으로정면을정하고,그모양에따라가지와잎들을쳐냈다.그다음날에도여지없이가위질을이어갔다.
나무껍질을벗기고유독성물질을발라뽀얀흰색을덧입히니마침내근사한사리舍利가연출되었다.“수백년에걸쳐말라백골화된노목의모습을인공적으로표현”하는기법인사리는특히소나무나향나무분재에서높이평가받는다.하지만말그대로멀쩡한껍질을일부러벗겨내유독성물질을발라야하는만큼자칫하면나무를죽일수도있는위험천만한작업이기도하다.
길게는몇주의기간을두고찬찬히진행해야하는일들을나는단며칠만에끝냈다.그러나결과물에급급한나머지나는내가그모든과정을불과일주일만에끝내버렸다는사실조차잊었다.결국진백은분갈이와쉴새없이이어진가위질,유독성물질을견디지못하고생을다했다.죽은나무가담긴화분을정리하며보니뿌리가분갈이를하며잘라주었을때이후로거의자라지않은듯했다.나무가죽어가는줄도모르고결과물에만취해있었다니.
“왜나는처음의그작고어린나무의모습그대로아끼지못했을까.”

분재혹은가로수라는딜레마
분재는식물의삶보다인간의취향을앞세운다는점에서사실상플랜테리어와다르지않다.미학을추구한다는명목으로식물의성장을억제하고,식물을미용하는것이분재다.“식물에대한전족”같은표현은어떤면에서분재의본질을적확하게건드린다.나역시이런주장에공감하기에분재를사모으는일을한동안중단할수밖에없었다.
하지만분재를사지않는다고해서고민이해소되는건아니었다.길가에심긴가로수들을볼때마다마음이한없이복잡해지기때문이다.전에는무심히지나쳤던가로수들이식물을기르는요즘유독눈에띈다.가로수들이관리되는방식은분재와별반다르지않다.밝은가로등옆에서장시간빛을받아단풍이늦어지고이로인해수명도짧아지며,가지와줄기들이주기적으로잘리고,자신의크기에걸맞게뿌리를뻗을공간조차갖지못한다.아스팔트같은자재들이사방에서나무를옥죄기때문이다.
“공간은부족한데몸체는거대하니때로뿌리가인도까지뻗어나가보도블록이솟아오르는일도흔하다.이런상황을해결하기위해설치하는것을우리는‘가로수보호틀’이라고부른다.하지만이보호틀이보호하는것은보행자이지가로수가아니다.”
‘분재’는우리가생각하는것보다훨씬더폭력적인형태로세상곳곳에존재하고있는지도모른다.말도안되는환경에서살고있는가로수들이잘보여주듯말이다.“인간이점유한공간에서식물은언제나부차적인대상”일뿐이다.

봄을기다리지않을도리는없지만
식물과관계맺는방식을고민하며글을썼지만,풀지못하는문제들이여전히더많다.나의힘으로어떻게할수없는수많은가로수들은말할것도없고,당장집에있는반려식물들과올해겨울을어떻게나야할지조차잘모른다.
식물과의관계를더욱깊이고민하게되는건절체절명의순간에서다.극한의기후가지속되는겨울이나여름혹은내가자주아픈가을같은때말이다.오히려그럴때식물들과의미래를더섬세하게그려보게된다.여전히봄을기다리지만,막연히기다리기만하는대신적극적으로나서서할수있는일을찾는다.
“봄아닌계절이얼른지나가길바라지만,그럴수없다는걸잘안다.그래서내가물을잘조절해주지못하는,식물들을제때볕에내어놓지못하는서투른날들,나와식물과에어컨과보일러가안전하게함께하기위해더욱부지런해져야하는날들을고민한다.그런고민들을놓지않는다면어설픈반려인간과반려식물들의시간이조금씩조율되고,우리가서로의다른시간을좀더존중하고이해하게될거라고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