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글쓰기 (당신의 노동을 쓰는 나의 노동에 관하여)

두 번째 글쓰기 (당신의 노동을 쓰는 나의 노동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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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노동자, 쓰러지다》 등의 르포집을 통해 노동하는 사람들의 삶과 투쟁을 기록해온 작가 희정의 기록노동 에세이. 지금껏 인터뷰이-노동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아 글을 쓰고 책을 내왔던 그가 처음으로 그 노동에 대해 듣고 쓰는 ‘자기 자신의 노동’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그가 털어놓는 기록노동이란, 타인의 노동에 관해 듣고, 더듬어보고, 이해해보려 애쓰고, 그러기 위해 자신 역시 말을 건네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소수자’로 범주화되는 이들, 즉 보이지 않는 사람의 주목받지 못한 삶을 발굴해내는 작업이 아니다. 누군가를 언어 없는 자, 말할 수 없는 자로 상정하면 아무 이야기도 들을 수 없다. “들었다고 착각하는 자신”만 남을 뿐. 기록자는 일방적으로 ‘묻는’ 사람이 아니다. 기록노동 혹은 인터뷰란 기록자와 인터뷰이가 서로 말을 건네고, 서로의 청중이 되는 일이다. 그렇게 얽혀 애를 쓰는 과정에서 말이 ‘만들어지고’, 그 말들이 글에 담긴다.
그리하여 이 《두 번째 글쓰기》에서 희정은 인터뷰이의 말이 자신에게 전달되고, 해석되고, 그 독해와 해독이 인터뷰이에게 다시금 새로운 말을 낳게 하는 기록 작업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언어란 무릇 사람 사이에서 작동하는 것이기에. 완결된 글에 미처 담기지 못한,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담겼을 기록 과정에서의 기쁨과 슬픔, 오해와 이해, 외로움과 두려움, 설렘과 긴장, 공감과 버거움에 관해 써내려갔다.
저자

희정

기록노동자.살아가고싸우고견뎌내는일을기록한다.
저서로는반도체직업병문제를다룬르포집《삼성이버린또하나의가족》(2011),일하다죽고병드는사회를기록한《노동자,쓰러지다》(2014),청구성심병원이정미노동열사평전《아름다운한생이다》(2016),성소수자노동에대해다룬《퀴어는당신옆에서일하고있다》(2019),싸우는사람들과그에연대하는사람들의이야기를담은《여기,우리,함께》(2020)가있다.
그외《밀양을살다》(2014),《섬과섬을잇다》(2014),《기록되지않은노동》(2016),《416단원고약전》(2016),《재난을묻다》(2017),《회사가사라졌다》(2020)를함께썼다.

목차

프롤로그사라지는조각들을주워담는일ㆍ4

1부기록,서로얽혀빚어진15
1.취재현장:삶의토막하나를건져올려ㆍ17
2.인터뷰:‘물으러’온사람이아니다ㆍ32

2부오늘,인터뷰를망치다51
1.외국어는다영어인줄알지ㆍ53
2.내이름은글에넣지마세요ㆍ66
3.트랜스젠더처음봐요?ㆍ78
4.그런말불쾌합니다ㆍ86
5.믿어져요?ㆍ100

3부싸우는여/성들113
1.싸우는여자는어디든간다:
톨게이트요금수납노동자들의217일파업ㆍ115
2.우리또해고야:
네번째해고를맞은시그네틱스여성노동자들ㆍ130
3.‘나자신’으로노동하기:
퀴어세사람과의A/S인터뷰ㆍ141
4.다른몸들,장르가바뀐삶:
연극〈아파도미안하지않습니다〉를보고ㆍ159

4부그럼에도기록하기까지173
1.오늘이제일좋아,제일재밌어:
대학청소노동자노조설립ㆍ175
2.몹시도중요한이야기:회사가사라진사람들ㆍ187
3.타인의고통앞에서:고통을적는일의역설ㆍ199
4.노동대신죽음을보다:
일하다죽는사람들,그후이야기ㆍ213

에필로그혼자하는사랑의면모ㆍ233
후기ㆍ241
발표지면ㆍ243

출판사 서평

당신의노동과나의노동이
만나고얽혀빚어진글

그글에담긴,혹은미처담기지못한
기쁨과슬픔,외로움과두려움,
설렘과긴장,공감과버거움

‘진실’보다중요한것:인터뷰이에관하여

취재는늘현장에가닿지못하고멈춰버리곤한다.처음접한현장을알지못해서이기도하지만,기록자에게존재하는‘낯선곳으로가흔한이야기를듣는’관성때문이기도하다.우리사회의이면이자,세상이없는것으로취급하는,그래서아무도쓰지않는이야기를듣겠다고가서는‘흔한이야기’를듣고오는일이잦다.기록자또한익숙한이야기에귀가열리는사람이므로.이런관성은인터뷰이스스로가메우지않은틈새를기록자가앞서메우려하는일로이어지기마련이다.인터뷰이는세상혹은기록자의욕망을아는존재다.알고답한다.인터뷰이가기록자의관성에조력하는셈이다.이는청자를고려한말하기이며,소통에대한믿음이자,목소리를키우려는전략이다.
그럼그들이기록자앞에서진정으로하고싶은말을했다고말할수있을까?그렇게믿기는어렵다.그의욕망조차그자신의것이아니다.“특정한서사를원하는세상의욕망”에서자유로운사람은없다.더불어한가지더기억할것이있다.인터뷰이는한자리에머무는존재가아니라는것.기록자는현장이나인터뷰이곁에머물고싶어하지만,그곳을살아가는이들은같은자리에머물지않는다.사람은생물이기에운동하고,욕망또한변화한다.오늘의진실이곧내일의진실일수는없다.
그들은내게자신의노동에대해세밀히털어놓았다가도,돌연자신의이름을글에넣지말아달라고한다.자신이등장한구술을지워달라고요청하는이도,후일내게과거의인터뷰가부끄러웠다고털어놓는이도있다.그런인터뷰이의마음을모르지않으면서도,정말로알수없다.간혹망망대해를떠내려가는기분이다.하지만몰라도끄덕인다.“글의주인공이자기록대상자,자신의공간에서일하고관계맺는인터뷰이의삶자체를존중하지않으면황폐한돌섬에조차당도할수없”기에.
그럼에도인터뷰이의삶을존중한다는것이말처럼쉽지않다.목소리를내야할절박한이유가있을때,혹은말의힘에이끌려자신의내력과사연을털어놓는것은종종있는일이지만,그만큼후회도크다.“자신이마련해둔자리는한평인데,자꾸만기록자나기자들이자리를넓게쓰려고몸을밀고들어”오니,긴장이발생할수밖에.그럴때면인터뷰이가(인터뷰를마치고)느꼈을헛헛한감정을조금이라도더듬어보려고노력한다.친밀한사이도아닌기록자에게‘너무많은’말을털어놓은사람의마음이어떨지.
“그말들이빠져나간자리를채울무언가를인터뷰자리에서건넸던가.”

응답과알아챔:기록글이빚어지는과정

“그저말을원했다.꼭완결된말일필요도없다.말을쉬는타이밍,생각을가다듬는헛기침,침묵,떨림.이모든것이섞인‘말’을원했다.‘몰라’도좋고‘아니’도좋았다.꼭음성언어일필요도없다.그가‘하고자하는’말을내가해독할수만있다면.그래서내가그(들)의대화에동참할수만있다면.그런바람이있었다.”
그러나정작응답이라는것이무엇인지몰라난감할때가많다.때론너무많은것을물어자책했고,때론중요한무언가를묻지않은것을한탄한다.무엇을들어야,얼마나알아야응답할수있을까.잘듣는다면응답할수있을까.
기록자와인터뷰이가나눈대화가글이되는아름다운순간은도통오지않는다.인터뷰이가슬쩍보여주는것은그의삶의한토막일뿐이다.기록자는겨우그토막을엿보고서그의삶을아는척적어내려야한다.다른한편으로기록자에게는불안이있다.세상역시자신이읽어내린방식으로그를읽어내릴거라는(바로이것이세상의응답이다),그러나정작자신역시인터뷰이에대해잘모른다는불안감.기록자가끊임없이자신의해석을의심할수밖에없는이유다.그러나어쩌면해석과해독이라는것은어떤대단한지적행위가아니라사소한알아챔에서나오는것인지도모른다.
“매일술을마신다는나이든현장노동자가쓱짓는웃음이무엇을뜻하는지정확히알수는없어도,내가가닿을수없는낯선곳을슬퍼하지않기로한다.그저같이웃는다.돌아서저이의웃음속에숨겨진시스템과제도를파악하려애쓰며,그가짊어지고가야할위험을헤아리고,이로부터이득을얻는이를생각한다.”
내게말을들려준이들이보여주는시선과관계가기록자인나의세계로들어올때나또한다른언어를가지게된다.나의세계또한그들에의해확장된다.그들의세계를올곧게전할자신은없지만,공간과사건,삶과시대에대한해석을들려주는인터뷰이에게나또한응답할수있길꿈꾼다.
“기록이란상대의손에도흙묻히는일이라는것.어떨때는잔뜩흙이묻은상대의손에내손을가져가그릇을만드는과정이기도하다.어차피괴로움도갈망도흙묻은손으로내가감당해야한다면,화자의손을감싼그내몫의손만이라도인간의체온을유지한채바지런히움직여야겠다.말하는이의세계와기록자의세계가서로얽혀빚어진기록이나올때까지.”

인터뷰를망치게하는것들

정작현실은녹록지않다.취재현장에는기록자가통제할수없는상황이만연하다.사소한실수로인터뷰내용이하나도녹음되지않는무서운일도있지만,이런것과는비교도되지않을만큼큰내상을입게되는사고도있다.인터뷰이와의관계를망치게되는사고.그런일은“서로가동등하지않음이과하게드러날때”발생한다.
인터뷰를망친어떤날이있었다.그날만난고려인인터뷰이의말을통역해주는(마찬가지로고려인인)통역자는나를줄곧불편하게만들었다.통역에앞서자기생각을말하기바빴다.사달이난건,인터뷰이가들려준학창시절이야기에내가“제1외국어로독어를배우셨다니신기하네요.영어는외국에과목에없었나요?”라고답했을때였다.통역자는내게거칠게항의했다.지금도생각한다.그때왜그랬을까.당시나는고려인들이누구인지는고사하고어떤감정을가지고한국사회를살아가는지조차감을잡지못했다.그들의말을알아듣지못하는나자신에게화가나있던날들이었다.러시아권에서자란인터뷰이에게“독어를배우셨다니신기하네요”라고맞받아치다니.그건분명나의무지였다.
나의무지를지적한통역자는옳았지만,그방식이너무거칠었기에나는지켜오던예의를내려놓고불편한감정을표출했다.그때나는내가폭력을당했다고생각했다.그가내게그럴수있었던이유는분명했기에.“내가여자여서.심지어자신보다나이가어리고공적인권력이없어보이는여자여서.”그럼에도그분노보다스스로의무지함에대한자책의비중이더컸다.
“당시나는사람들에게‘그를어떻게보자’고말하는것이기록자의역할이라생각했다.그들을어떻게봐야한다또는보지말아야한다고답을내리고싶었다.‘정당한’시선이라는강반이나를조급하게했고가장중요한일을잊게했다.저들은나에게보여지기위해살아가는사람이아니라는사실을.”
때로는나조차‘나답지않은’노동을하기도했다.상대(인터뷰이)의기대에어긋나지않는사람으로비춰지고자스스로‘무난한여자/사람’을연기한적이있었다.처음찾아간농성장에서중년남성들이나를농담삼아‘자신의애인’으로소개할때,나역시그들을따라웃었다.내가불쾌함을표했을때싸해질분위기가인터뷰에어떤영향을줄지염두에두지않을수없었으니까.또한진심으로그곳에있는사람들의말을들어주고싶었으니까.“그런데돌아보니그노력은너무‘여성적’이었다.”

자기삶의저자

내가쓴글에는주로아픈사람들의이야기가담겼다.일하다다치고병든사람들.그들의삶이왜‘그렇게’변해야했는지,인터뷰를하고글을쓰며분노하곤했다.
“나는선량한얼굴로찾아가서는그들의‘변해버린장르’를인정하지않았다.그들이‘내가왜!’라고할때,나또한‘이사람들이왜!’라고했다.‘왜’가해명되어도그들이‘원래’대로돌아올수없음을알았다.”
지금에와서돌이켜보면,그‘원래’란무엇일까싶다.나는그들의후일을염려했으나정작내가그의새로운장르를읽어나갈‘독자’가될생각은하지못했다.아니,애초그를저자로서인정하지않았다.일터에건강한몸으로들어갔다건강하지않은몸이되어나온이들,직업병을인정받더라도더는예전처럼살수없는이들이자신의처지를비관할때,나도같은마음으로그비극을바라보았다.그들의삶을계속해서‘비극’으로써내려갔다.나는그것을공감이라여겼지만,착각이었다.
나자신이아픈몸의권리를직시하거나인정하지않으면서직업병피해자들의이후를걱정하는것은어떤의미일까?다른그누구보다내가이들을예외로만든건아니었을까?
“나의인터뷰이들은더는내앞에서“내가왜!”를묻지않았다.살아있는순간을살아가기에바빴다.세상이직업도없이휠체어에만앉아있다고여기는사람에게집은가족간권력투쟁의장이었고,동시에돌봄의공간이었다.병원이나관공서를오가는좁은행동반경에서도무언가와갈등하고조율하는일은빈번하게일어났다.환대를받건아니건자신이발뻗을장소,그러니까자기영역만들기는그네들인생에걸쳐부단히이뤄지는일이었다.이것이노동이아니면무엇이노동일까.”
“기록이무슨의미가있을까.그이의달라진몸앞에서나는입밖에낼수없는의문을가졌지만,그럴필요가없는일이었다.그의인생에의미를부여하는것은나와나눈한두차례의인터뷰가아니었다.그가말하고움직이고관계맺어온시간사이에나와의만남도놓여있을뿐이다.그시간이쌓여삶이되고,살아가는일자체가우리에게의미가되고답이된다.”

이노동,‘두번째글쓰기’를놓지않는이유

누군가의말을글로만들어내야한다는막막함과힘겨움을견디고계속쓰는까닭은,나에게이야기를들려준사람이있기때문이다.이러니저러니해도이건결국‘애정’이다.“자신의삶의어떤부분을꺼내내게보여준이”에대한애정.애틋한마음끝에는늘인터뷰이가들려준말을제대로적고싶다는생각이남는다.
때로이것은외사랑이다.노동자의권리를위해파업에동참하고몇년을싸워해고될위기에처한이가속상한마음에술을마시고집에가서아내와아이를때린다는사실을알게될때,이웃과애틋하게살아가는삶에대해말한이가어느날외부에서온여성에대한비방과가해를멈추지않을때.이럴때회의감에빠진다.“식는마음은식는대로놔둔다.쓰기위해사랑하는것도아니지만,사랑하려고쓰는것도아니다.”
그럼에도기쁜것은,“서로낯설어말과생각을정제하는것이가능한그처음”에서보지못한인터뷰이의모습을발견할때가있기때문이다.그정갈하지못한삶을좋아한다.자신을찾아온이에게고운찻잔만내어주며초라한세간살이를숨길수없는사람들.애정하는이유는역시나단하나다.나에게자신의말을들려준사람이라서.“그삶을살아내지않으면결코나올수없는말”을듣기에,“삶에서건져올린언어”가얼마나귀한지알기에.
“여전히나는내가기록하는이들을잘모른다.내가기록한어떤이의내면이단단해지는지무너져내리는지쉬이알지못한다.다만오늘도누군가에게다가갈뿐이다.당신과내가내일은지금이자리에머물지않을거라는믿음으로.”
이것이살아가고싸우고견뎌내는일을기록하는이유다.그렇게오늘도누군가의노동을좇아쓰는‘두번째글쓰기’가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