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성의 각본들 (민족국가의 탄생과 남자-되기 | 양장본 Hardcover)

남성성의 각본들 (민족국가의 탄생과 남자-되기 | 양장본 Hardcover)

$25.00
Description
한국문학의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가?

‘한국남자’라는 보편의 각본,
그리고 그 일등 시민의 세계를 찢고 부순
비非-남성들의 파열음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원본 없는 판타지》 등 한국 현대문학/문화를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탐구한 저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저자 허윤이 4년여 만에 새로운 단독저작을 펴냈다. 한국문학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 텍스트를 젠더적 관점에서 연구해온 그는 이번 책에서 2012년부터 10년간 연구해온 ‘한국의 남성성’이라는 화두 아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주요 문학(소설)과 영화, 연극 등의 대중문화 콘텐츠를 다시금 불러낸다. 주로 ‘남성 지식인들’의 손에서 탄생해 ‘남성 독자들’에 의해 소비된 극중 ‘남성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승만에서 박정희로 이어지는 폭력적인 독재체제가 강조한 영웅이나 용사, 전사로서의 남성성을 충실히 체현하고 있다.
‘한국 남자’라는 하나의 보편 범주를 만들어낸 것은 가부장의 강력한 힘을 근거로 하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이다. 이 책이 초점을 두는 1940년대 후반~1950년대 내내 한국(남한)은 외부의 강대국에게 정치적 결정권을 박탈당했다. 주체성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가는 자기 자신을 희생해 국가를 지킬 ‘일등 시민’의 존재를 요구했다. 가장 강력한 수단은 전쟁이었다. 국가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남성을 ‘일등 시민’으로 명명하고 전사자들을 기념한다. 하지만 민족국가와 지배체제에 충실한 이 남성성 각본은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위계화에 따를수록 일등 시민은 죽거나 다치는 모순에 빠진다.
이 책은 한국문학/문화사를 다시 써내려가며 남성을 ‘전사-일등 시민-가부장(아버지)’으로 소환하는 그 보편의 각본이 누구를 배제하며 어떤 지점에서 실패하는지 탐구한다. ‘이미’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서사들이 ‘여전히’ 충분히 읽히고 다루어지지 않았음을 드러내고, 읽는 주체와 관점을 달리하여 새로운 논점들을 발견해나가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민족국가의 탄생 과정에서 삭제된 비-남성들의 목소리를 복원함으로써 편견과 혐오를 뛰어넘는 다채로운 남성성 각본들을 펼쳐 보인다.
저자

허윤

남성이성별화되는공간에서성장한탓에자연스레젠더의수행성에관심을갖게되었다.보편적인것을의심하라고배운덕택에더많은질문을안고세계를바라볼수있었다.한국현대소설을전공했으며한국문학/문화/역사를동아시아젠더사의관점에서연구하고있다.『1950년대한국소설의남성젠더수행성연구』(2018)등의책을썼고,『문학을부수는문학들』(2018),『을들의당나귀귀』(2019),『원본없는판타지』(2020)등의책을함께썼다.옮긴책으로는『일탈』(공역,2015)과『모니크위티그의스트레이트마인드』(2020)등이있다.지금은부산에있는국립부경대학교국어국문학과에서학생들과함께공부하고있다.

목차

책머리에|길을잃은아들들의시대:한국남성성의각본다시쓰기ㆍ7

1장
기로에선아들들:불안과공허의식민지를살아가는법ㆍ21

2장
반공전에나선용사들:남한우익의계보ㆍ45

3장
형제들의공동체:남성동성사회와좌우익청년단체ㆍ71

4장
가족재건프로젝트:한국전쟁이만든전선의젠더ㆍ97

5장
무대위의남성성:남장여자가만든세계ㆍ131

6장
전후문학의‘퀴어’한육체들:해체되는남성성신화ㆍ165

7장
냉전체제속여성혐오:너무많이말하거나,말하지않거나ㆍ193

8장
성별이분법의틈새들:병역법과젠더의위계ㆍ235

9장
‘남자없는사회’의남성들:모험을허락하지않는모험서사ㆍ257

10장
슈미즈를입은남자:여장남자코미디영화의정치적불/가능성ㆍ291

11장
상경과귀향의젠더정치학:남성의얼굴을한민중ㆍ325

발표지면ㆍ363
연표ㆍ364

출판사 서평

아버지를처단하지못한아들들의선택:나르시시즘으로서의퀴어

근대문학은프로이트가말하는가족로망스에서출발한다.‘로빈슨크루소’가보여준것도아버지를부정하고자기세계를개척하기위해집을나서는아들의서사다.아버지로상징되는기존질서로부터해방되어개인으로바로서는것,이것이곧근대성의신화이자근대문학의기원이다.프로이트는「토템과터부」에서막강한권력을휘두르는아버지가있던원시시대가아들들의조직적아버지살해를통해해체되는데주목한다.시원적아버지를죽인아들들은죄책감을해소하기위해사회계약을탄생시킨다.아버지가독점하던정치력을아들들이동등하게분배하는이과정이바로‘형제동맹’이다.아버지의권력을물려받은아들들은서로간의평등한관계를위해여성을교환하고,근친상간을금기로확립한다.
그러나조선의청년들은아버지와대결할기회를빼앗겼다.제국일본이등장했기때문이다.이들은아버지를제거하기는커녕아버지와함께거세된다.국가와민족이일치하지않는상황에서청년들은선택의기로에선다.이광수의초기소설인「사랑인가」(1909)와「윤광호」(1918)는제국일본이라는더강력한가부장이외부로부터등장한상황에서전근대적아버지(기존체제)를해체할기회조차갖지못한남성청년의갈등과고통을일종의‘퀴어함’으로풀어낸다.
이퀴어함은사실상나르시시즘에가깝다.여성을교환함으로써자원을획득했던남성동성사회의질서가중지되었을때가시화되는것은성애적측면(동성애)이다.이광수소설의주인공남성들은주로자신의동급생친구를사랑한다.말하자면이애정은자신의자아이상을사랑대상으로택하는경향에가깝다.이들은상대를자신의전부로여기고,자신의목숨이상대에게달려있다고믿으면서도,정작현실을대면하려하지는않는다.상대에게직접고백하는대신편지를통해자신의감정을일방적으로표출하는식이다.그리고사랑에실패하는순간,이들은자살을택한다.

폭력으로똘똘뭉친용사들:‘서북청년단’이라는이름의괴물

어렵사리해방을맞은남한의남성청년들은제국보다더강력한존재와조우한다.제국일본의수도도쿄에가해진공중폭격으로끝을맺은태평양전쟁은식민지조선에도큰충격을안겼다.제국일본이강조했던건강한남성성은더강자인미국에게자리를내주었다.미국이주도하는냉전질서는구일본제국의유산과별반다르지않았다.미국은공산주의확산을막기위해일본과조선을재편하고자했고,아시아전역에경찰예비대를신설했다.그영향아래있던이승만의제1공화국역시“공산주의보다는파시즘이낫다”는신념을내건다.이신념에따라좌파를불법화하고좌익세력을숙청하기위해군경을중심으로한안보기구가확대되고,우익청년단체가조직되어대규모의민간인학살이자행된다.이렇듯해방기남한은전방위적이고무차별적인폭력에노출된상태였으며,반공의식으로뭉친남성들로구성된(우익)청년단체는각종폭력과테러를행사하며국가와민족이데올로기를실천했다.
서북청년단은가장대표적인청년우익단체다.조선시대까지만해도차별과배제의공간이었던서북은해방이후기독교를중심으로한민족주의진영과공산당진영의대립이심화된다.공산당청년단체의습격은신의주학생의거사건으로이어지고,서북의남성청년들은점차자신들이‘용사’가되어서북과형제들을구해야한다는신념으로무장하게된다.갈고리와죽창으로설명되는서북청년단의폭력은국기와애국,용맹이라는남성적가치로추앙받는다.서북청년단의폭력적남성성은무엇보다제주도의민간인학살(제주4·3사건)에서가장끔찍한형태로표출된다.
그러나서북청년단의그맹목적인신념은이미지나버린과거가아니다.임철우의소설「연대기,괴물」(2015)에등장하는남성주인공‘송진태’는서북청년단으로대표되는우익의이데올로기가최근의한국사회에서어떤식으로재건되고있는지명징하게보여준다.어머니가서북청년단원에게강간당해태어난그는사람들이‘괴물’이라부르는자신의생부가서북청년단재건위원회의일원으로활동하는것을TV뉴스에서우연히보게된다.그는그‘괴물’을죽이고자마음먹지만,‘괴물의평범성’을깨닫고는스스로자살을택한다.서북청년단의세계관은‘국기’의이름으로한국현대사의장면마다등장한다.군사주의정권에대한비판과민주화에대한요구가거셌던1986~1987년에는민주화를요구하던청년들을해방기의청년단과비교하여민주화운동을폄훼하는구도가만들어졌다(「청년운동반세기」연재물).
국가를재건하기위해자신들이배운호전적남성성을실천하려고하는세력들은체제가위기에빠지는상황마다등장해‘애국’의노래를반복한다.「연대기,괴물」이그린것처럼,2014년서북청년단은‘서북청년단재건준비위원회’라는이름으로의기양양하게재등장했다.이들은재건총회를준비하는과정에서몸싸움을벌이며무력행사를이어갔고,광화문광장의세월호리본을철거하려했다.

전선의젠더:가족재건프로젝트

전쟁터에는여러종류의분할선이존재한다.적과아군을가르는물리적,심리적분할선도있지만,국가내부에서국민의범주를가르는이데올로기도존재한다.승리와국가회복및재건이라는슬로건이그기능을수행한다.일제말제국일본은국가/국민을전선과후방으로나누어조직하고,서로가각각의영역에서전쟁을위해힘쓸것을강조했다.이각각의영역이란곧전쟁의현장인전선을남성이,그전선을보조하는후방을여성이담당하는이분화된구도를뜻한다.즉여성들은후방에서남성들의전쟁참여를독려하고물자절약을강조하는등선전,선동을담당해야했다.문단은이성별화된구도를그대로이어받았고,남성작가들이전쟁터를직접방문할때여성작가들은후방에서총후부인부대를위해연설하고학병지원을강조하는등의역할을맡게된다.
이후한국전쟁(1950)이발발했을때는여성의역할이후방을책임지는‘가장’혹은전쟁터에참여하는‘간호사’등으로좀더확대되기도하지만,여성이(참전하는)남성을보조하고지원해야한다는이른바‘후방론’은한결같이반복된다.1952년육군종군작가단이만든기관지『전선문학』에서그젠더이분적인구도가명징히드러난다.『전선문학』은창간사에서부터전쟁시국에서의문인의역할을강조하며전쟁프로파간다를자임한다.이때제기된작가들의발화는제국일본이강조했던방식을그대로반영하고있다.남성문인들이전쟁을독려하는글을작성할때,여성문인들은수필과논설등을통해후방에서여성이담당해야할역할에대해이야기하는식이다.무엇보다장덕조가강조하는‘아들을기꺼이국가에바칠수있는어머니’라는이데올로기는총력전체제의모성담론과매우유사하다.그는전사한아들의영결식앞에서눈물한방울흘리지않고굳세게서있는시골어머니의모습등을묘사하며전시를살아가는여성들의자세에대해강조한다.「선물」과같은소설에서도사랑하는연인과아들을따라종군간호사가될것을결심하는두여성을그림으로써전쟁에대한낭만적이미지를투사한다.
『전선문학』이성별을중심으로한위계질서를뚜렷하게보여준다면,한국전쟁이한창인1951년창간된『희망』은그위계와더불어한국전쟁이어떤식으로남성성의질서를소환하고구축했는지엿볼수있는매체다.『희망』의논조는전반적으로‘남한이전쟁에서승리할것’이라는자신감으로가득차있다.창간호권두에실린이승만과맥아더,트루만의웃는얼굴은『희망』이직조하는남성성이무엇인지단박에파악할수있는단서가된다.헬싱키올림픽특집을꾸려소련과의알력을가시화하는방식도흥미롭다.『희망』은승부에서‘야비한짓’을하는소련복싱팀에대한분노를부각하며이데올로기를선전한다.선수들의경기력과결속력은남성성을‘건강한청년’의이미지로박제하는유용한수단이되었다.

여성혐오와‘가짜국민’만들기:다변혹은침묵의수사학

다른한편으로『희망』은친근한‘대통령할아버지’이승만을부각함으로써대통령을가부장으로형상화하는방식의정동을드러낸다.흔히가족은민족국가의재건에서핵심적인상상력으로서,‘가족’을이루는것은국가를건설하는것과동일시되곤한다.이뿐만아니라정치인,예술가등사회지도층의가족이자녀와함께등장하는‘가족화보’지면을꾸려정상가족모델을더욱더강화한다.그러나이때여성들의목소리는삭제된다.『희망』이납치명사부인혹은‘미망인’들의이야기를듣는다는취지로마련한좌담회에서여성들은그저남편의마지막모습이나부부사이에관한질문을받을뿐이었다.
여성들은‘공론장’으로소환된듯했지만,여전히‘주체’가아니었다.남한사회는여성을가부장의권위를회복하고전쟁의명분을강화하는수단으로동원했다.게다가한국냉전체제의기틀이형성된1950년대는남성연대를구축한다는명목아래여성혐오가끈질기게생산되던시기였다.급속히진행된미국화,북한과의관계에서비롯된반공주의등냉전체제에종속된남한은사회를통치하는‘손쉬운’방법으로여성혐오를선택했다.여성혐오의정치적효과는공론장의언설과대중서사에서선명히드러난다.
특히미군과UN군을상대로일하는기지촌여성들에대한혐오는공론장의담론과여러소설들에서반복적으로등장한다.해방이후남한에주둔한미군정은부녀국을설립하여일본이만든공창·사창제폐지에힘쓰는듯했다.하지만한국전쟁종결과함께미군의주둔이영속화되자(한미상호방위조약)도리어기지촌이확장되는결과가나타난다.이때공론장은기지촌여성들의존재를비난하면서도,국가가기지촌을합법적으로활용하고있는현실에대해서는침묵한다.기지촌은남한과미국이맺은계약관계에따라존재하는,국가가주도하고관리하는산업이었으며,기지촌여성들없이냉전질서속에서안보를유지하기란불가능했다.남한과미군은이여성들을거래함으로써자신들의연대를강화했다.
기지촌여성들에대한혐오는이남성연대를교묘히가리는데동원된다.『희망』에연재된최정희의『끝없는낭만』(1956년1월~1957년3월)은여학생과장교등지식인의입을빌려미군상대의성매매여성들을비난한다.국가(남한)가미군에게한국여성을‘위안부’로제공함으로써얻는이익을숨기고,정치경제적구조를개인의선택과책임으로환원한다.‘양공주’가된딸이나여동생은가부장의무기력함을드러내는소재로소설이나영화에등장할뿐,목소리를갖지못한다.1950년대최고의베스트셀러인정비석의소설『자유부인』역시주인공여성을통해연애와섹슈얼리티를민주와자유의본뜻을훼손시키는시대풍조의표상으로젠더화한다.아내를(남편을)언제배반할지모르는‘호랑이새끼’에비유한『자유부인』의엄청난성공은1950년대에여성혐오가대중의전폭적지지를받는텍스트였음을짐작할수있는단초가된다.여성들이추구하는‘자유’를가짜국민의자질로간주하며이로부터강박적으로‘진짜국민’을상상해내려는메커니즘이다.‘진짜국민’은언제나‘가짜’를통해만들어진다.
기지촌여성에대해이토록많은혐오발언을생산한한국사회는정작일본군‘위안부’여성들에대해서는침묵으로일관했다.남한은미국이재편하는냉전아시아의질서를강화하기위해‘위안부’로끌려갔다가돌아오지못한여성들에대해묻지않았다.당시미군정은조선인군‘위안부’여성들에대한담론의유통을막았는데,이른바성노예화된‘위안부’의존재가드러나국제법상손해배상이발생할경우아시아의공업생산력을끌어올리는데방해가될것이라는정치적판단때문이었다.이런침묵속에서‘위안부’라는표상은점차자발적성매매여성으로치부되는미군‘위안부’로옮겨갔고,일본군‘위안부’의존재는거의드러나지않게되었다.그누구도“사라진여자들”에대해말하지않기에홀로서울역에나가매일같이자기또래의여성들을기다리곤했다는윤정옥(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발기인)의증언은당시한국사회가끌려간여성들의문제를일체공론화하지않았음을말해준다.국가는일본군‘위안부’의존재와운영방식을분명히알고있으면서도침묵했다.

슈미즈를입은남자:스크린위의(비)남성성

초남성성은역설적으로언제나주변적남성성을불러오게마련이다.‘조국’과‘민족’을위해전쟁에나서는용맹한전사혹은가정을‘떠받치는’생계부양자의역할을강조하는초남성성은사실상하나의거대한허구이다.가부장의강력한힘을근거로한‘헤게모니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