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변과 만변 (거젠슝, 중국사를 말하다)

불변과 만변 (거젠슝, 중국사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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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만변(萬變)의 황하, 불변(不變)의 중국”

푸단대학 석좌교수 거젠슝,
흥망성쇠, 전승 그리고 변천 과정에서 중국 역사의 근원과 흐름을 찾다
고대 중국 역사는 사람의 몸처럼 정밀하고 방대한 협력 시스템과 비슷하다. 토지는 뼈, 사람은 피와 살, 조정과 정치는 신경과 중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유장한 중국 역사는 이런 요소가 서로 영향을 끼치고 서로 맞물리는 과정에서 이어지고 발전하며 생생불식(生生不息)하는 가운데 오늘날의 중국을 형성해왔다.

모든 역사서는 기실 저자가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기록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원리를 인지하고서 사료의 표면 아래 드러나지 않은 진상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가치관을 적용해 옛 역사를 연구하고 복원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역사 공부다.
저자

거젠슝

葛劍雄

푸단대학(復旦大學)석좌교수,중앙문사관(中央文史館)관원.특히역사지리,인구사에정통하다.일찍이푸단대학중국역사지리연구소소장,도서관장을역임했다.저서로『서한인구지리(西漢人口地理)』,『중국인구발전사(中國人口發展史)』,『통일과분열:중국역사의계시(統一與分裂:中國歷史的啓示)』,『중국역대강역의변천(中國歷代疆域的變遷)』,『황하와중화문명(黃河與中華文明)』등이있고,주편(主編)한책으로『중국인구사(中國人口史)』,『중국이민사(中國移民史)』등이있다.

목차

제1편고대중국의뼈대

이끄는말‘중국’이란두글자는3천년전에출현했다10

제1장강역_중국인이생활하는땅
제1절‘거대한구주[大九州]’와‘한자길이방망이[一尺之?]’18
제2절고대중국은도대체얼마나컸나?26
제3절고대중국의강역은어떻게변화했나?33
제4절고대중앙정부는어떻게주요행정구역을나눴나?42

제2장도시_몇차례변화를겪은도성
제1절한나라의장안과낙양50
제2절북위효문제의천도와한족화58
제3절수·당시대의양도66
제4절명나라의양경병행75

제3장건설_토지의연결과분리
제1절장성은군사방어용으로만세운것이아니다83
제2절식량공급의생명선,운하91
제3절고대의교통시스템,치도99
제4절부패에의해‘잠식된’역참106


제2편고대중국의혈육

이끄는말본적과출생지:당신은어디사람이오?116

제4장이주_우리는어디서와서어디에머무나?
제1절고향은어디인가?이주의출발지125
제2절이주민의영향을깊게받은도성문화구조133
제3절강호의남쪽이주와오호의중원교란141
제4절유목부족의북방이주와흉노의남하약탈149
제5절고대인은왜이주해야했나?157

제5장인구_정책에의해영향을받는인구수
제1절고대중국의인구는도대체얼마였나?166
제2절정절관념과당나라의과부개가174
제3절송나라호구자료에는왜호구당평균인구가3명에미치지못했을까?182
제4절명나라호적제도와10년뒤호적부를미리편집한일189

제6장인물_인간이‘주조’한시대현상
제1절공자:역대통치자들이긍정한‘춘추필법’198
제2절복생:문화의보호자겸계승자206
제3절해서:왜해서한사람만청백리가되었나?214
제4절왕이:비정규막료가정식관리를통솔한특이한현상224
제5절연영:“위에는정책이있고,아래에는대책이있다”234

제7장외교_“외국인입국은허용하면서도중국인출국은불허하고,중국에온외국인에게는중국문화를전하면서도중국인을외국에보내문화를전파하지않은”고대인
제1절‘개방’을했으면서도눈앞의좋은기회를놓친한나라242
제2절고대중국의대외영향은어떠했나?249
제3절당나라장안은세계의중심이었나?258


제3편고대중국의정신중추

이끄는말영명한개국황제는왜폭군이되기도하나?268

제8장천하_천하를얻음과천하를다스림
제1절호복입고말위에서활쏘기그리고기병시대276
제2절중국고대의대규모학살,장평전투285
제3절진시황과표준화정책293
제4절항우는초·한쟁패의실패자인가?300
제5절유방이백성에게반포한‘약법삼장’은믿을만한가?314
제6절‘추은령’배후의정치적지혜321
제7절최초로‘중앙에서파견한순시제도’328
제8절유수는어떻게한나라를연장할수있었나?335
제9절조광윤의송나라는어떻게오대를끝냈나?347
제10절송나라때는왜군사정변이드물었나?356
제11절애산이후에는중국이없는가?364

제9장제왕_황제의사생활
제1절태자:가장결정하기어려운황실구성원374
제2절황후:황제에게가장영향력이큰사람382
제3절태상황:황궁안의‘유명무실한직위’390
제4절종실:결코쉽지않은삶을산황실친척399
제5절사후의일:‘죽음을삶처럼여기는’관념의전승407
제6절기록:역사서의‘공식판본’415

맺음말우리는중국의역사서를어떻게보아야할까?426

옮긴이의말436

찾아보기442

출판사 서평

[맺음말]

우리는중국의역사서를어떻게보아야할까?

세계몇대문명중에서중국문명은가장일찍발생했다고말할수없다.중국의갑골문은지금부터3,700년전에출현했으므로우리가이미알고있는세계의고문자중에서최초에속하지않는다.그러나고대중국인이갑골문을사용한이후계속전해진한자로역사를기록한전통은거의중단된적이없다.이런점에서중국문명은세계에서유일무이한존재임이확실하다.다른문명을살펴보면어떤곳은역사기록이아주일찍중단되었고어떤곳은문자가일찍이죽은문자가되었지만,중국은지금까지세계에서가장많은역사서를보유하고있다.
예를들어‘이십사사(二十四史)’의분량은3,300권2,400만자에달하고『자치통감』은294권300여만자에달한다.이외에도분량이아주큰역사서가매우많은데지금까지잘보존되어있다.왜고대화하(華夏)사람들은역사를중시했을까?한가지학설이있다.“그나라를멸망시키려면먼저그역사를없애라.”나는일찍이우리대학원생들과이문제를토론한적이있다.어떤학생은역사서가중요한것은당연하지만그역사서를훼손하거나전승을끊어버린다고설마국가가멸망하겠는가라고생각하며명확한인식을갖지못했다.역사서가없다면다른방법을생각해조사하고연구한뒤다시역사를쓸수있다.한걸음물러나생각해보자.역사기록이없으면물론큰손실이라할수있지만그렇다고어찌국가가멸망할수있겠는가?
그학생은중국의최초역사서및그로부터형성된전통이무슨역할을했는지전혀이해하지못했다.
기실최초의역사기록은후세사람이보라고쓴것이결코아니며또오늘날우리역사연구자나역사이해자를위해제공된자료가아니었다.그렇게막대한정력을써서전문적인사관이역사를기록한목적은하늘,신,조상에게보고하기위해서였다.갑골문중에서많은내용은무당이기록한것이고오직무당만이하늘,신,조상과소통할능력을갖고있었다.그들이기록한일은하늘만이알수있었고하늘의뜻도오직그들의기록을통하거나점술을통해서전달할수있었다.후대로오면서기록해야할일이많아지자무당은그모든일을기록할겨를이없었다.그래서비로소기록을전담하는‘사(史)’가분화되어나왔다.
‘사(史)’는상형문자로사람이서서손에기록을위한목판을들고있는모습을그렸다.이것이바로‘사(史)’,즉‘사관(史官)’이다.소위역사(歷史)의‘역(歷,력曆과통용)’은바로역법으로시간에따라사건을기록한다는뜻이다.
일찍이춘추시대에통치자신변에는사관이하나에그치지않고기본적으로업무를나눠서“좌사(左史)는말을기록하고,우사(右史)는일을기록했다”라는설이있었다.기록한내용은군주자신이볼수없고밀봉한상자에넣어뒀다가군주가죽거나퇴위하면비로소대중에게공개했다.그뒤에는축적한원시기록에근거해역사서1부를완성했다.예를들어공자가편찬한『춘추』는바로춘추시대노나라역사다.각국의역사서는서로상이한명칭이있었는데노나라에서는『춘추』로불렀다.
이러한기록은공문서기록관에보존하거나후인에게남기기위한것일뿐아니라가장중요한목적은사관의기록을통해하늘에보고하기위한것이었다.흔히융숭한의식을거행하고기록물을불태우며하늘에보고하기도했다.때로는높은산에서의식을거행하기도했는데당시사람들은산위가하늘에가까워서하늘이쉽게받아들일수있기때문으로여겼다.지금의쑹산(嵩山)정상에서일찍이무측천이그곳에묻은금책(金冊)이발견되었다.이것이바로이와같은목적을위한유물이다.따라서사관은하늘,신,조상에게보고할책임을졌다.군주나통치자의언론과행위를기록해그들의언행이하늘의뜻에부합하는지,그리하여하늘,신,조상의보우를얻을수있는지비춰보았다.

(생략)

이들은청나라가이미이민족정권이아니라화하의전통적가치관을계승하고천명을얻은정통왕조라고인식했다.즉청나라가이전의한나라,당나라,송나라,원나라,명나라와전혀다르지않다는것이다.
이제우리는왜역사서가사라지면국가도멸망하는지분명하게이해할수있게되었다.왜냐하면역사서는정권과국가의정치적합법성을증명하고천명을증명하기때문이다.따라서이러한역사서가단절되면정권과국가의정치적합법성을증명할수있겠는가?이것이바로요점이다.
이러한역사서가오늘날에는필요없을까?우리생각과는달리매우쓸모있다.어떤역사서든후인들이이미발생한사건을의식적이고선택적으로기록한결과물이다.이러한원리를알면사료가운데서표면을뚫고내면의진상을파악할수있으며역사에대한오늘날의가치관으로옛역사를해석하고인식할수있다.하물며이러한역사서에진귀한원시자료가다량보존되어있어서다른그무엇으로도대체할수없음에랴!
이밖에도역사서는오늘날역사를연구하고복원하고재구성하려는우리에게여러가지조건과풍부한도전성을제공해준다.이러한과정도우리가역사를연구하고선택하고인식하고학습하는과정이다.
따라서중국의역사서는선인이후대에남긴매우귀중하면서도대체할수없는유산이므로세계에서유일무이한것이다.

[옮긴이의말]

중국의정사(正史)‘이십오사(二十五史)’는전체분량이모두2,730만자를넘는다.이를완독하려면하루에8만자를읽는다고해도1년이넘게걸린다.따라서중국역사의특징을명확하게인식하기란매우어려운일이다.이처럼복잡다기한중국역사를소개하기위해이미다양한도서가출간되어있다.왕조교체의시간순서에따라하(夏),상(商),주(周)에서원(元),명(明),청(淸)에이르는역사를기전체(紀傳體)식으로정리한책이있는가하면,정치,경제,사회,문화,문학,예술,제도등의영역을분야별로정리한미시사(微視史)저작도출간되어있다.
그런데거젠슝(葛劍雄)의이저서는위와같은기존의역사서술방법과는달리땅과인간과정신의어울림이야말로역사의주요얼개라는독특한관점에근거해이와연관된키워드를중심으로새로운역사서술방법을선보이고있다.이책의저자가특히중국고대지리와인구연구에평생을바쳐온만큼이러한얼개는전문성과대중성을융합하는매우효과적인장치로기능하고있다.
우선저자는땅을다루면서지금부터3천년전에출현한‘중국(中國)’이라는어휘의의미가확대되어온과정을서술한뒤각왕조의강역이어떻게변화했는지를밝히고이에수반해중국의역대행정구역이어떤과정을거쳐현재의모습으로변모해왔는지드러냈다.또한중국각왕조도성과식량수급문제의밀접한연관성을밝혔으며,이어서만리장성,운하,치도,역참에얽힌난관,사회적장단점,부패상황,유관일화등을흥미롭게서술했다.
아울러저자는중국땅에서역사를일궈온중국인의모습에관심을기울이며이민,인구,인물,외교등을주제로그들의활동양상에시선을집중하고있다.특히중국인의이주과정을서술하면서현재쓰촨,윈난,구이저우에사는사람들이모두자신들의선조가후베이마청샤오간향에서왔다고주장하는점,또지금의화베이일대에사는사람들이자신들의선조가산시(山西)훙동다화이수아래에서왔다고하는점등중국고대인의이주와관련된서사를설득력있게풀어냈다.이는정사의이면에묻혀있던중국인의이주사를생생하게복원한내용이라고할만하다.또당나라때는과부의개가를자유롭게허용하다가송나라이후로과부의수절을강조한것은유가의이념보다인구의포화상태때문이라고주장한부분도매우흥미롭다.그리고중국정사에서“수렵을나갔다[狩]”로기록한역사의이면에는기실천자가외부세력에의해치욕을당한역사의실상이숨어있음을밝힌부분,또명나라청백리해서(海瑞)를통해관리사회의부패상을드러낸단락,비정규관리인막료왕이(王二)를통해중국명·청시대의기형적인관리제도를폭로한대목도매우신선하다.
이어서저자는고대중국의정신적중추라는제목아래‘천하’와‘제왕’이란주제를잡고중국의통일을추구하고유지해온관념과제도의특징을논술했다.그중에서도장평대전(長平大戰)이후수십만명을생매장해서죽인대학살의주요원인이군량미부족때문이었다고주장한점,초한쟁패시기에유방이함양을점령하고포고했다는‘약법삼장(約法三章)’이기실허구적인선언에불과했음을논단한점등도일반독자의역사상식을깨뜨리기에충분한견해라할만하다.그리고황제의사생활을다루는마지막장에서는태자,황후,태상황,종실,능묘를키워드로화려한황실이면에묻힌인간군상의비극적실상을핍진하게드러내고있다.
또하나간과할수없는것은중국관방에서정사로인정하는역사서의가식을분명하게인식해야한다고주장한대목이다.이미앞에서저자는역대사관(史官)들이공자의‘춘추필법(春秋筆法)’을준거로정사를편찬할때객관적역사사실을있는그대로기록하기보다집권세력의가치관을선양하기위해일차사료를의도적으로선택하고분식했음을논술했다.이대목에서그는이런사실을증명하기위해중국역대최고의성군으로평가받는당태종의사례를인용해지금의『구당서』와『신당서』에실린‘현무문의변’의진실이당태종의정치적욕망과의도에의해왜곡되고분식되었음을설득력있게증명하고있다.그는맺음말에서도이렇게주장한다.
어떤역사서든후인들이이미발생한사건을의식적이고선택적으로기록한결과물이다.이러한원리를알면사료가운데서표면을뚫고내면의진상을파악할수있으며역사에대한오늘날의가치관으로옛역사를해석하고인식할수있다.
저자거젠슝은이러한입장에서있으므로중국역사의견고한껍질을뚫고그내면에숨어있는진실을밝혀내는데뛰어난솜씨를발휘하고있다.
역사를바라보는저자의이러한관점은그의이저서를읽는우리의입장에서도똑같이견지해야할관점이다.왜냐하면저자가다루는중국역사는중국사관(史官)의관점에의해의도적으로선택된기록일뿐만아니라저자거젠슝도의식적이든무의식적이든그렇게형성된중국역사관에의해영향받은중국역사학자이기때문이다.
몇가지점이눈에띈다.우선저자는중국고대의강역을설명하면서“한(漢)나라의강역이동쪽으로오늘날한반도북부와중부까지포괄했고,여기에는한국의수도서울까지포함되어있었다”라고주장했는데,이는중국측의일방적인시각에불과하다.한나라가위만조선(衛滿朝鮮)을멸하고한사군(漢四郡)을설치한일은역사에기록된사실이지만한사군의정확한위치에대해서는지금도학계의논쟁거리로남아있기때문이다.이를둘러싸고현재한반도이남과이북의역사학자들이견지하고있는입장을이짧은「후기(後記)」에소개하기는어렵지만,현재논쟁의대상이되고주제를확정적이고일반적인견해로진술하는것은진정한역사학자가취해야할태도가아니다.
또저자는북위효문제의한화(漢化)정책을거론하는가운데효문제가“자각적으로한족과융화하기위한중대개혁을단행했고마침내찬란한성과를거뒀다”라고찬양했지만,중국소수민족입장에서는자기문화의고유성과다양성을스스로폐기한굴욕적인조치로인식할수도있다.이는소수민족의다양성과고유성을인정하고존중한다는중국정부의정책이사실은매우은밀하고패권적인동화정책임을드러내는언설인셈이다.이는인종과문화의다양성유지에도반하는논리다.이런입장을견지한다면해외화교도중국언어와중국문화를유지하지말고가능한한빨리현지인으로동화되어야마땅하다.
그리고저자는한고조유방,후한광무제유수,송태조조광윤등이수단과방법을가리지않고상대와의신의조차내팽개친일을천하통일을위해서는어쩔수없는상황이었다고합리화하고있다.정의와진리를숭상해야할학계에까지패권주의적논리가깊이스며있으니우려할만한일이다.
우리는5천년역사동안중국과이웃해서살았고앞으로도이웃으로살아가야한다.따라서이책의저자거젠슝이보여주고있는사관을우리입장에서주체적으로소화하고이해하려는노력이반드시필요하다.그가기존사료의표면을뚫고역사의내면을생생하게분석해내는것처럼우리도그가지은이책의표면을뚫고그내면에잠복해있는인식과의도를간파해야한다.이런면에서위에서분석한이책의장단점은모두우리에게유용한타산지석으로작용할수있을것으로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