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당전쟁: 건곤일척의 승부

나당전쟁: 건곤일척의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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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신라의 선제공격으로 7년간의 전쟁이 시작되다!

670년(문무왕 10년) 3월, 2만 병력이 전격적으로 압록강을 건넜다. 목표는 오골성. 옛 고구려의 군사 요충지로 지금의 중국 랴오닝성 펑청이다. 요동, 즉 요하(랴오허) 동쪽은 신라가 건국된 이래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땅이었다. 신라의 설오유 장군과 고구려 부흥군의 고연무 장군이 각각 1만 명씩 거느리고 요동을 선제공격했다.

이 전격작전으로 나당전쟁이 시작되었다. 앞서 나당연합군이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킨 상황에서 당은 신라의 기습공격을 받게 되었다. 고구려 멸망 이후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했다고 믿고 있던 당에게 이는 큰 충격이었다. 약소국 신라는 왜 최강대국 당에게 덤벼들었을까?
저자

이상훈

(李相勳)

우리나라고대전쟁사를전문으로연구하는역사학자다.현재육군사관학교군사사학과교수로재직중이며,사관생도에게한국사와군사사를강의하고있다.
학군ROTC37기로육군제1사단에서군복무했고,경북대학교에서『나당전쟁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일본가쿠슈인대학과중국베이징사범대학에서수학했으며,경북대학교아시아연구소전임연구원과영남문화연구원연구교수등을역임했다.KBS,MBC,EBS,국방TV등역사프로그램에출연하는한편『아시아경제』신문에「이상훈의한국유사」전쟁사칼럼을6년간연재했다.현재고대군사사연구회,북악사학회,한국고대학회,한국군사사학회등에서임원으로활동하면서최근에는군사사콘텐츠에관심을가지고「2023군사사콘텐츠의현재와미래」를기획하기도했다.
개인저서로『나당전쟁연구』(2013년세종도서학술부문),『전략전술의한국사』(2015년세종도서학술부문),『신라는어떻게살아남았는가』(2016년세종도서교양부문),『전쟁이후의한국사』(2018),『신라의통일전쟁』(2021년세종도서학술부문)등이,번역서로『군인수지』(2020)등이있다.

목차

책을펴내며4
프롤로그12


1부ㆍ나당전쟁의전개

1장불타는사비성과평양성21
2장불만과불신의시대31
3장신라의전쟁준비41
4장신라의선제공격52
5장고구려부흥운동과신라62
6장석성전투와웅진도독부72
7장신라수군의활동83
8장당군의남하와석문전투89
9장신라의총체적위기97
10장신라의방어체계강화106
11장나당간숨고르기112
12장결전을향해120
13장매소성전투와신라의승리130
14장기벌포전투와당군의철수140
15장전쟁의종결과전후수습149


2부ㆍ나당전쟁의이해

1장나당전쟁과삼국통일전쟁을어떻게불러야할까161
2장한반도방기론과종번론은무엇일까169
3장나당전쟁을어떻게이해해야할까177
4장신라는백제만통합하려하였을까183
5장나당전쟁개전시점을어떻게보아야할까189
6장말갈병참전을어떻게이해해야할까195
7장번장과객장의의미는무엇일까201
8장나당전쟁기상처치료는어떻게하였을까206
9장구진천이제작한노는무엇이었을까212
10장신라는전쟁포로를어떻게활용하였을까218
11장문두루비법은실제존재하였을까224
12장경주의월지와월성은어떤관계였을까230
13장매소성전투를둘러싼문제는무엇일까236
14장신라는왜전쟁중에인장을배포하였을까245
15장기벌포전투는과연허구일까251
16장나당전쟁기당의군사전략은무엇이었을까257
17장당의군사전략은언제토번중심으로변화하였을까266
18장신라의군사동원능력은어떠하였을까273
19장신라의전략과승리요인은무엇이었을까280
20장나당전쟁승리의의의는무엇일까288

에필로그292
참고문헌302

출판사 서평

[작가의말]

나당전쟁羅唐戰爭(670~676)은약소국신라가최강대국당을상대로7년간벌인전쟁이다.당에게는여러전장戰場중하나였지만신라에게는전부였다.다시말해신라는국가의명운을걸고‘건곤일척乾坤一擲’의승부수를던진셈이었다.
나당전쟁은삼국통일의마지막단계로,이전쟁에서신라가승리함으로써통일신라가시작되었다.하지만이를두고최근신라의‘삼국통일’이아니라‘백제통합’에불과하며,우리의진정한통일은고려에의한통일이라는주장이역사학계에서제기되고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설인귀서薛仁貴書」에는당이신라영토로인정하는범위가서술되어있다.바로“평양이남平壤以南백제토지百濟土地”라는표현이다.‘삼국통일’입장에서는‘평양이남의고구려토지와백제토지’로이해하고,‘백제통합’입장에서는‘평양이남의백제토지’만으로한정한다.
상식적으로생각해보자.백제토지는당연히평양이남이다.수백년간전쟁을해온신라나당이백제토지가어딘지모를리없다.‘평양이남의백제토지’가성립하려면,평양이북의백제토지가전제되어야한다.그런데백제는평양이북에토지를소유한적이없다.일례로‘의주이남의신라토지’나‘압록강이남의신라토지’라는말이성립할수있을까?신라토지를지칭할때의주나압록강은불필요한단어다.임진강이남의신라토지라면모를까,의주나압록강은또다른의미를지니고있다고보아야한다.
「설인귀서」가작성된시기는나당전쟁이한창이던7세기다.7세기에백제는대동강이남을점유한적이없다.이지역은당연히고구려영토였다.고구려는5세기에평양지역으로천도했고,평양이남황해도지역은수백년간고구려의핵심영토였다.
당입장에서신라에게백제토지를준다고할경우,그냥‘백제토지’라고하면된다.그런데굳이‘평양이남’을추가한이유는무엇일까?당에게는백제토지가중요한것이아니라고구려수도였던평양과방어에유리한대동강이라는자연경계가더의미있었음을알수있다.다시말해평양이남의고구려토지까지는신라가차지하는것에동의한것이다.
후삼국을통일한고려는901년건국된‘후고구려’에서출발했다.신라가삼국을통일한적이없다고가정해보자.삼국을‘통일(676년)’한적이없는신라인데,어떻게통일신라강역내에서그것도200년이나지난시점에서‘후고구려’를지향하며건국할수있었을까?후고구려의인구·영토·유산이통일신라의것이아니라면,‘만주벌판’고구려의것을도대체언제이어받았을까?
이와관련해고구려를계승한발해세자대광현大光顯의존재가제시된다.926년발해가거란에멸망하자934년대광현은발해유민수만명을거느리고고려로귀부했다.고려의통일이‘진정한통일’이라는주요근거다.당시발해의인구는적어도수백만명이었을것이다.그중에서수만명,즉인구만놓고보면채10퍼센트도안되는이들만고려로흡수된셈이다.
발해영토는고스란히거란으로넘어갔고발해유민이발해의후신을자처하며건국한정안국定安國도거란에흡수되었다.우리야당연히대광현의고려귀부로‘완전한통일’을이루었다고강조할수있다.하지만중국입장에서는발해인구90퍼센트이상과영토전체가거란으로넘어왔다고보는것이다.게다가중국왕조인거란이발해의후신을자처한정안국도흡수했음을강조한다.
신라가고구려의유산을이어받지못했다고본다면,고구려-발해-고려로이어지는연결고리를명확히밝힐수있어야한다.우리만의역사인식이아니라중국을비롯한국제사회를충분히설득할수있어야한다.고구려는물론발해의인구·영토·유산을거란이다가져갔다고주장하는그중국을상대로말이다.
‘삼국통일’문제를어설프게대응하다가는‘신라만한국사’라는중국논리에휘말릴수있다.실제중국은2017년동북고대민족이라는이름으로부여,고구려,백제,발해,거란의역사편년을발간한바있다.최근중국은신라는삼국을통일하지못했고한반도남부만병합했다고주장하고있다.삼국이통일되지못한상태에서고구려
는발해로이어지고그발해는거란으로흡수되었다고보는것이다.물론고구려는중국의‘지방정권’이라고강조하고있다.이러한중국의논리에따른다면신라만한국고대국가라는이야기가된다.
삼국통일당시신라가흡수한대동강이남,즉황해도·경기도·강원도등고구려영역의인구는적게잡아도수십만명에달한다.고려보다더많은인구와영토를일차적으로흡수했다.물론그과정에서고구려유산도적지않게흡수했음은분명하다.통일신라강역내에서후고구려가건국되었고,결국후삼국을통일하고발해유민을추
가로흡수했다.그후고구려를지향하며북진정책을펼쳐통일신라강역에서조금더북상했다.조선또한고려강역에서조금더북상해현재의국경선을완성했다.
‘삼국통일’이라는주제는역사학계내부의단순한논의에그치지않는다.감상적으로접근해서는안된다.우리가의도하지않아도중국은우리빈틈을파고들수있기때문이다.현재중국이지속적으로진행하고있는‘동북공정東北工程’의속내를모르면곤란하다.현실생활에도움이되지않는고리타분한수천년전이야기지만,북한정권붕괴시중국의한반도개입명분으로둔갑할수도있다.타국을침략하는것이아니라중국의옛영토,즉‘고토故土를수복한다’는명분으로작용할수있는것이다.이것은아주현실적인문제다.
우리가삼국통일과정을제대로인식해야만중심을잡을수있다.나당전쟁은삼국통일의마지막단계로우리삼국이단일국가로변모하는획기였다.우리는660년에멸망한백제역사,668년에멸망한고구려역사에대해서는관심이높다.하지만백제와고구려멸망이후신라와당이한반도의주도권을두고벌인전쟁에대해서는잘모른다.
왜이런현상이벌어진것일까?한마디로말해너무어렵기때문이다.관련사료는부족한데한·중·일학자별견해가제각각이어서하나의사안을이해하는것도쉽지않다.전쟁이라는다이나믹한사건이지만여러학설을따라가다보면길을잃고만다.여기에더해신라라는국가에대한부정적선입견마저적지않게작용한다.과거사실이현실정치의연장선에서‘지역감정’을부추기는도구로전락하곤하는것이다.
2012년『나당전쟁연구』로박사학위를받은지만10년이지났다.그간적지않은연구성과가축적되었고다양한논의가전개되었다.하지만나당전쟁이라는주제는대부분한국고대사를전공하는역사학계내에서만소화되었다.일부교양서나인터넷자료에서다루어지긴했지만일반대중에게그리친숙한주제는아니다.
“신라는왜전쟁을시작했고어떻게승리할수있었을까?”“나당전쟁은우리역사에서어떤의미를지니고있을까?”“어떻게하면나당전쟁을대중에게제대로설명할수있을까?”나당전쟁공부를시작한이후지금까지끊임없이고민하는물음이다.이책은이러한물음에답하기위해수년간고민한결과물이다.박사학위논문을근간으로『나당전쟁연구』(2012),『신라는어떻게살아남았는가』(2015),『신라의통일전쟁』(2021)등의저서와『아시아경제』신문에연재한「이상훈의한국유사」(2017~2022)칼럼등을엮어재구성했다.
책은크게두부분으로나뉘어져있다.1부는나당전쟁의흐름을파악할수있도록시기순으로편성했다.최근개별사건의연도를조정해서이해하려는연구가활발한편이지만,학술논의가아니기에『삼국사기』의기록을따라그대로정리했다.2부는나당전쟁과관련된여러논의와의문점을필자견해를중심으로서술했다.시대순으로된1부를먼저읽은후주제별로된2부를읽으면나당전쟁이해도가높아질것이다.
세상에완벽한책은없다.이책에는각주를따로두지않았다.이를불친절한것으로여기는독자도있을테지만,딱딱한학술서가아니라옛날이야기처럼머리속으로상상하는책이되기를바랐기때문으로이해해주었으면한다.참고문헌은개인연구성과를중심으로밝혀두었다.보다심도있는내용이궁금한독자는나당전쟁과관련된학술서와연구논문을참고하면좋겠다.
또한개인의박사학위논문과연구성과를중심으로서술하다보니최근연구성과를제대로반영하지못한아쉬움도있다.다만나당전쟁이라는주제자체가잘알려지지않은상황에서보다쉽게접근할수있도록노력한결과물이라는데그의의가있음을알아주면감사하겠다.이책을통해나당전쟁에대한관심과이해도가조금이나마높아지기를기대해본다.

2023년8월화랑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