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쏟아지는외부’는집중을요하는가치있는대상과의마주침이외에도,놀랍도록팽창한미술제도의윤리적결함과,세계의위기를가속하는[프랑코‘비포’베라르디의표현을따르자면]신경전체주의시대에대한경계심을담고있다.이것은양가적이다.마치온종일대낮이이어지는백야의경이로움과피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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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성취불가능성이아닌욕망하기자체의불가능성을환기하는동시에,끊임없이욕망을추구하는주체의모습을보여주는것은어떤의미가있을까?어쩌면작가주체의이러한무능과범속함을상기하는것이야말로퍼포먼스의동시대성,더나아가동시대미술의급진성을찾아볼수있는대목이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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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와도시는닮았다.둘다오래된것이라는점에서.(...)도시가자신의오랜역사를지우고계속해서새로운것을욕망하는속도의주체인데반해,회화는자신이더이상새로울것없으며역사를더써내려갈만한주체가아니라는점을받아들이고있다는차이가있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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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미술계에서부상하고있는세대론은‘예술가의생존권’투쟁과결합하며빠르게지지층을넓혀가고있다.그러나세대론은미술자본의독특성을교묘하게은폐하고만다.미술계에서노동착취의문제는단한번도젊은세대나작가에게만한정된것이아니었으며,그보다는‘업계’전체의오랜관행이었다.계급양극화와적자생존이야말로현재의미술생태계를설명하는키워드라고할수있다.체제의왜곡을세대의억압으로가장함으로써얻을수있는것은도대체무엇일까.새로운것을젊은것과동일시하려는태도는거의자동적이며,젊음과나이듦을우열로구분하는이데올로기는현대미술의‘역사적전통’이자자본의확장근거이다.청춘이든잉여든88만원세대이든‘새로운세대’를표방하는이들은‘새로운시장’혹은‘시장의확장’을바라는욕망을내비친다.자본에대한미술의욕망이더욱세련되어지고있다는현실인식이야말로최근의세대론논쟁에서깨우쳐야할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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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섹슈얼리티를재현하는두가지다른태도를보여주지만모두남성과여성‘성기’의형태와형상을반복적으로강조한다.마치페미니즘과퀴어미학-정치의투쟁이성기형상을둘러싼이미지전쟁에있는것처럼,선명한주제만큼단순한방법적선호처럼보이는것이다.동시에이들이선택한도상의상투적인인상은내밀함의부재로부터온다.예술이세계에대한예술가의주관적해석을담고있다할지언정,그것이그들자신의정체성과상호투과적인개인서사의구축으로흐를필연성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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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는「장난감의모랄」(1853)에서아이들이장난감을고장낼까봐염려하는부모들의어리석음을지적하며,아이들이장난감을내동댕이치고쪼개고부술때그들은헛되지만그장난감의영혼을붙잡으려노력하고있는것이라고말한다.장난감은이렇게단순한놀이의대상이아니라제의적대상이된다.만약우리가예술을대할때부모의위치에서그것의물질적가치를유지하기위해한없이조심스러운태도를취한다면,예술은상품경제의논리에편입했다가한물간유행상품목록에자리잡을것이다.예술이다행히아직어린아이가놀다질려창고에처박아둔고물덩어리가되어버리지않았다면,예술은어린아이의천진한놀이속에서박살나면서도영혼을지니게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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