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H. 로렌스 유럽사 이야기

D. H. 로렌스 유럽사 이야기

$24.53
Description
영미 문학의 거장이 펼쳐낸
인간의 이야기, 옥스퍼드 유럽사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백 년 전, 옥스퍼드 대학의 학생들은 궁금증에 휩싸여야 했다. 눈앞에 놓인 이 유려한 문체와 재기 넘치는 서술의 역사서가 도대체 누구의 저작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책은 고대 로마의 성립부터 근대 유럽 국가가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을 그야말로 숨 막히듯 서술해내고 있었다. 마치 욕망이 만들어내는 인간사 스캔들을 탐구하듯, 역사 속 인간과 그 사건을 분석해낸 이 책은 엄밀해야 할 역사책과 흥미로워야 할 소설의 장점을 두루 갖고 있으면서, 교육이라는 목적에조차 더할 나위 없이 충실했다. 거기에 ‘역사란 무엇인가’와 ‘역사에서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질문과 해답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누구의 작품이란 말인가? 알려진 역사가 중에 로렌스 H. 데이비슨Lawrence H. Davison라는 이름은 없었다. 교육자나 문학인 중에서 찾아도 마찬가지였다. 소설가와 평론가, 역사가, 교육자의 역할에 모두 능통한 이 저자의 정체가 알려지기까지는 그로부터 몇 년이 더 지나야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찌할 수 없는 사정이란 것이 있었다.

작가는 당시 창작의 최고 절정기에서 피할 수 없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대학 시절 도와준 은사의 부인과 사랑의 도피를 했다가 도로 잡혀 들어와 몇 년 뒤 가까스로 결혼에 성공했지만, 출간한 책마다 외설 시비를 받고 출간 정지되었고, 독일 국적의 부인은 작가가 활동하는 영국에서 스파이 혐의까지 받고 있었다. 펜을 들 때마다 신들린 듯이 글이 쏟아져 나왔지만, 대부분의 글들은 무차별 검열을 당하거나 출간조차 불가능했다. 손가락질이 잇달았고, 경제 사정 역시 어려워졌다. 그때 그에게 역사책의 집필 제의를 해온 곳이 바로 옥스퍼드 대학이었다. 한때 교육자였으며, 평론가였고, 화가이자 시인이며 소설가인 그에게 고답을 탈피한 일종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의 집필을 맡긴다는 것은 옥스퍼드로서는 새로운 도전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저자를 찾아낸 선택이기도 했다. 작가는 의뢰를 받자마자 일필휘지로 원고를 완성했고, 본명이 아닌 가명으로 출간된 이후 하나의 대학에서 시작된 반향은 어느새 다른 대학과 일반 독자에게까지 퍼져나갔다. 그 책이『유럽사 이야기』이며 작가는 바로 우리에게『채털리 부인의 연인』,『무지개』,『아들과 연인』 등 문제적 소설의 작가로 유명한 D. H. 로렌스다.

저자

D.H.로렌스

저자:D.H.로렌스DavidHerbertLawrence
영국의소설가,시인,극작가,수필가,문학비평가,화가.
영국중부의탄광촌인노팅엄셔카운티의이스트우드에서광부인아버지와교사인어머니사이에서태어났다.문맹에가까운아버지와지적으로대조를이루는어머니,그리고극도로빈궁한어린시절은더없이찬란해순수해보이기까지하는자연환경과함께이후그의작품에두고두고큰영향을미쳤다.외설시비와함께민감한소재를거침없는어조로써내려간문제작가라는선입견이있지만정작로렌스의관심은아들에대한어머니의과도한집착을그린『아들과연인』,산업화에따른인간의변화를3대에걸쳐추적한『무지개』등급격히변화한사회속에서흔들리는인간군상을욕망이라는화두아래풀어가는일에기울어있었다.유명한『채털리부인의연인』역시자본이권력이되는사회속에서중산층과하층에집중하여,이들이일상속에서갖는위선과기만그리고변질된욕망속에억압되어있는날것그대로의사랑을회복하려는시도이기도했다.
1912년어머니를여읜뒤여섯살연상이자은사위클리의부인인프리다를만났고,곧사랑에빠져사랑의도피를하다스파이라는죄목으로체포된다.1914년정식으로이혼을한프리다와결혼했으며이해에소설『무지개』를출간하지만비도덕적이라는이유로발매중지를당한다.
이책,『유럽사이야기』는교양으로서의역사를보여주자는옥스퍼드대학의의뢰를받아쓰여졌다.단순한연도의나열이나사건의인과관계만을보여주는역사서술을넘어역사그자체를관통하는탁월한시각과분석을보여주기에로렌스는그야말로안성맞춤의작가였고,로렌스역시흔쾌히승낙한다.그러나이미영국내에서외설작가라는낙인이찍힌상태였기에이책은오랫동안본명이아닌가명으로출간되어야했다.
책은고대로마의성립에서부터중세를거쳐근대유럽국가가탄생하기까지의과정을그야말로‘로렌스답게’풀어낸다.로렌스에따르면역사가가말하는역사적사건의인과는사건보다먼저가아닌나중에덧붙인것에지나지않는다.사실을확인하고검증하여거기에순서와질서를부여하는능력을역사가들이자부심으로삼고있지만결론적으로그것은사실의발견이아니라유추이며,극단적으로말하자면가설을‘진실이라고우기는것’에지나지않는다.역사의사건은찾아낼수있을지언정,그사건의동기는어떻게설명하든진실이되지못하며,후대인우리가할수있는것은그저감동에잠겨역사라는드라마를지켜보는것밖에없다는것이다.한때교직에있었으며문학비평가이자소설가인로렌스말고이런작업을이토록매혹적으로완수해낼수있는사람은달리없었을것이다.
『하얀공작』,『침입자』,『무지개』,『사랑에빠진여인』,『채털리부인의연인』,『아들과연인』,『처녀와집시』등의소설과천여편의시,수십편의단편소설과여행에세이,평론,그림작품등을남겼고,45세가되던해폐결핵으로생을마감했다.
“그는진정한의미에서창조적인사람이었다.그리고예술가이기도했다.그는가슴깊이존경심과경탄을불러일으키는소수의인물가운데하나이다.”
-올더스헉슬리AldousHuxley,『멋진신세계』의저자

역자:채희석
서울대학교서양사학과를졸업하고도서출판풀빛주간및기획위원,한겨레신문사출핀부장등을역임했다.저서로는『사람됨의철학』(도서출판풀빛)역서로는『강좌철학』(세계사)등이있다.

목차

서문7
I로마13
II콘스탄티노플29
III기독교47
IV게르만족81
V고트족과반달족101
VI훈족125
VII갈리아147
VIII프랑크족과샤를마뉴171
IX교황과황제들197
X십자군231
XI호엔슈타우펜왕조이후의이탈리아266
XII신앙시대의종말289
XIII르네상스319
XIV종교개혁349
XV대군주371
XVI프랑스혁명393
XVII프로이센425
XVIII이탈리아451
XIX독일의통일491
옮긴이의말515

출판사 서평

인간의욕망이사건을만들어내듯
역사는설명할수없는인간의행동이만들어낸다

2500년유럽의역사를한권에담아내며,로렌스는지금은정론이지만당시에는어느역사가도하지못했던야심만만한주장을책속에선보인다.이를위해로렌스는정확히세가지의역사서술방식을비판하며자신의책을시작한다.
첫번째는사실만을나열하며담백하게쓰여진기존의역사서다.이런방식은역사를이야기가아닌책속의죽은지식으로전락시켜버린다.두번째는사진처럼생생함을추구하는역사서다.이런역사서는역사속인간들을마치소설속주인공처럼묘사한다.위대한인물,영웅혹은희대의악인들이음모와갈등에휘말리며,사랑에빠지고,지극히일상적인대화를나누며역사의한면을장식한다.적어도흥미면에서는,특히독자가어리면어릴수록더매혹적으로읽힐수있는방식이지만로렌스는이방식이오히려역사에서역사성을제거해버리는악영향을끼친다고반박한다.셰익스피어의카이사르는로마시대가아닌엘리자베스시대의카이사르이고,버나드쇼의카이사르도빅토리아시대의카이사르이며,이중어느쪽도비록매력적일지언정진짜카이사르와는거리가멀다는것이다.그리고세번째는마치과학처럼논리와인과를중시하는역사서다.역사가는하나하나의사건을밝혀낸후그사건을관통하는커다란고리를만들어낸다.훌륭한학자가작업한다면그결과얻을수있는것은지극히논리적인역사다.사건의원인과결과,전개모두‘논리적으로는’흠잡을데가없다.그모든논리가실제사실이아니라고작해야유추의결과일뿐이라는문제를애써외면할수만있다면말이다.로렌스에따르면과학적인역사는다르게말하면‘사실이아닌것도그럴듯하니사실로인정하라’는억지에지나지않는다.“역사의진실은하나가아니다”라는말은요즘시대에는상식처럼떠올리는말이지만,그요즘시대조차그말을엄밀히적용해서술한역사책은로렌스의이책,??유럽사이야기??말고는찾아보기가쉽지않다.

야심만만한?서문?에어울리게책은흥미롭지만,엄밀하고,엄밀하지만생생한역사의장면과장면들로가득하다.소설가라면으레할법한지어낸장면은하나도없이,건조한역사의기록만으로역사에생동감을이끌어내는재주는왜외설작가라는오명에도불구하고대다수평론가들이로렌스를영미문학의거장으로꼽는데주저하지않는지실감하게만든다.예를들어로마역사의주요사건인콘스탄티노플천도는그많은역사적사료를참고해본들조각난사실의파편일뿐이지만,이를통해묘사하는로렌스의콘스탄티노플은대리석을실은배가정박해있고,목재를실은상선이입항하는동안석회를굽는가마솥에연기가피어오르는가운데수천명의노예들이짐을나르고돌아다니며건축가와기술자들이활개치는생명력넘치는역사의한장면이다.그배경속에는자주색옷을입고하역을지켜보는콘스탄티누스황제가있고,그의시야저편으로는갓건설을시작한콘스탄티누스성벽의해자가비친다.아치를두른광장으로짐을실은마차가들어오고,포장을벗기자그안에서그리스와아시아의조각들이모습을드러낸다.


‘지나치게교과서적인’역사서는넘볼수없는대가의힘
교훈이담길곳은역사책이아니라역사다

그러나생동감넘치는이러한묘사보다더욱돋보이는것은고대에서중세를거쳐근대에이르러오늘날우리귀에도익은독일,프랑스,영국등의국가가생겨나는긴호흡의서술들이다.로렌스는간략하게말한다면역사속인간에게는두개의충동,즉행동의동기가번갈아존재한다고이야기한다.하나는생산에의한번영이라는평화에대한욕구이며,다른하나는군대에의한승리하는전쟁에대한욕구다.이두욕구가서로번갈아적용하며인간을그시대에맞는인간으로존재하게한다.그러나역사는다양한인간이모여만들어가기에이모든것이모인역사를하나의논리로설명하기란힘들다.그러니까,“십자군운동처럼너무나거대하고미친듯한사건에는어떤세속적인이유가없”으며.같은의미에서“르네상스가일어난원인에대한‘이유’도지빠귀가우는이유를설명할수없는것과마찬가지로없다”는것이다.그러니당시를살지못한후대인인우리가할수있는일은오직역사를관찰하며,그속에서인간이만들어내는충동의소용돌이,이른바역사의흐름그자체를감동에잠겨지켜보는것말고는존재하지않는다.하지만그러는가운데기존의‘지나치게교과서적인’역사서들이해내지못한어떤작용이관찰자이자후대인이며이책의독자인우리들속에서일어난다.인간과인간이만들어내는때로는이성적이고때로는비이성적인드라마와그결과,그것을관찰하는것만으로독자는흔하디흔한교훈을넘어역사에서길어올린진정한무언가를얻어낼수있을것이다.혹자는‘역사의교훈’이라부르며어떤이는‘삶의지혜’혹은짧게줄여‘통찰’이라부르는그것을.

“생명은그자신의커다란몸짓을만들어낸다.인간은이몸짓의구성요소이다.역사는이몸짓을반복한다.그래서인간은그몸짓을다시한번되살리며과거속에서자신을실현한다.역사의교훈을깨닫지못하는사람은과거속에서스스로를실현하지못하는사람이다.”
-저자의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