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이민숙 시집)

지금 이 순간 (이민숙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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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살아있는 언어를 통해 세상 모든 사물에 영혼을 불어넣는 시인”

“물의 품안에 깃든 물질과 정신의 구성물, 이민숙 시집”
이민숙의 시가 각박하게 사회적 현실의식에만 갇혀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넓고 깊은 사려에 열정의 불을 지피는 동작도 보인다. 동작이라고 하는 것은 감각적으로 발산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고 근원적인 본능의 활력이다. 이 활력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시인은 살아있는 언어를 통해 세상 모든 사물에 영혼을 불어넣는다. 언어는 바다의 음향을 전하는 소라껍질의 구실을 한다. 이민숙 시의 세상 순례는 자연과도 같은 고향의 정원으로부터 시작한다.
- 구중서 문학평론가

이민숙 시인의 시어는 물의 품안에 깃든 물질과 정신의 구성물이다. 어느 갈피에서도 물기 없는 것들은 자리를 얻지 못한다. 물의 순환에서 생명의 생로병사를 읽어내고 있다. 세상 모든 생명체는 씨에서 나와 씨로 돌아간다. 물의 가장 고농축 물질이 씨다. 씨의 영원회귀의 진행방향 선상에서 그의 시는 항진하고 있다. 삶의 진정성의 씨는 눈물이고, 눈물의 진정성이 지향하는 것이 생명의 응축 결정체인 씨다. 눈물과 씨의 순환과정에 그의 시가 자리한다.
그 씨는 세상의 어떤 경계들에서 생성하고 소멸하기를 반복한다. 시인의 총화된 주체는 바로 그런 곳들에 서있다. 아침저녁으로 바다와 하늘이 입맞춤 하는 현장에 풀어 놓는 노을과, 대지와 바다가 몸을 섞는 자리에서 생성된 뻘 따위에서 “사랑이라고 황홀이라고 죽음이라고 비극이라고 노래”(「사랑의 스펙트럼」)한다. 요컨대 이런 대립자들이 끊임없이 입 맞추고 연애하는 곳에서 그는 슬픔과 눈물을 발견하고 “생의 씨앗”(「황홀」)을 잉태하는 시를 쓴다. 지금 바로 그곳들의 끊임없는 오늘이 그의 시원, 원천이다.
- 안상학 시인
저자

이민숙

1998년《사람의깊이》에「가족」외5편의시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나비그리는여자』,『동그라미,기어이동그랗다』를펴냈다.샘뿔인문학연구소에서책읽기,문학아카데미를운영하고있다.한국작가회의회원이다.

목차

시인의말 05

1부정치와빵

빵 13
석류가열리는마당엔 14
오월의꽃1 16
오월의꽃2 18
오월의꽃3 20
바람 23
물봉,흰, 24
먼지3 26
죄 28
피아골에서 30
숲의몸 32
찍는다 34
KTX,시베리아 36
예매의기술 37
와온의기술 40
찌개의기술 41
실험의기술 42

2부카르페디엠

축제 47
사랑과이별 48
카르페디엠 51
끈 52
고등어를위하여 54
겨울숲 55
작은배,수평선을건너다 56
왕자와공주 58
시,갯벌에대하여 60
씨앗에게 62
하화도行5 63
하화도行6 64
하화도行7 66
하화도行8 68
하화도行9 69

3부뿌리의시

금서의기술 73
시 74
시인 76
이슬방울 77
조선타래박 78
시마詩魔1 80
시마詩魔2 82
시마詩魔?3 84
시마詩魔4 86
황홀1 88
황홀2 90
황홀3 92
황홀4 94
낭떠러지 96
걸레 98
사랑을위하여 100
문어와팬티 102

4부김치아리랑,맛의이유

맛없는가난 107
풋사랑 108
첫사랑 110
위험한사랑 111
色聲香味觸法 112
날개 113
옛사랑 114
춘향에게 115
맛의이유 117
생명에게 118
삶 120
고소한, 122
갑자기 123
고추 125
연애 127
길 129
뻘 131
꽃게 133
사랑의스펙트럼 135
장미 137

■해설_구체성과영혼의시/구중서 138

출판사 서평



빵을좋아하진않았다떡을좋아하는내가어느날빵냄새에환장하게된건,다도스또예프스끼때문이다죽음의집시베리아에서보낸5년동안,그가먹었던아니먹을수없었던빵,냄새가사시사철폴폴솟아나고있는우리동네빵가게에가서빵서너개를사다가식탁위에올리던날,그빵이얼마나감격이었는지모른다배고픈날,한조각의빵을아끼기위해외투주머니속에꿰매어넣고그빵을사모하며옥살이를했던,
어떤국가든인간을굶주리게한다인간의굶주림은바로국가로부터다법도제도도인간의타락과죄와굶주림의원천적구제책을모른다아니그럴생각이없다빵은위대하다저고소한냄새때문에죄를지어야한다는생각,유형의시간들이빵을위대하게한다그빵의힘으로자유를바라보며견딘시베리아형무소의문을열고,마침내태양아래로걸어나오고있다

석류가열리는마당엔

아무나에게양파를나눠주는엄마의웃음보다더고혹적인입매무새를본적없다그곁,석류터지는새빨간소리가가을을끌어당기면대문밖들판엔노란벼타래가참새를유혹하다석류는유혹적이다

아버지는나무키우기를좋아하고엄마는양파감자심기를유난히좋아하다석류나무는해마다홍보석을터트리다새큼달콤한여름이익어가는고즈넉한마당엔햇살도다정히양파뿌리를쓰다듬곤하다

아름다운건유혹적이다그대내손잡고가만히귓볼에입맞추던시절,유혹만이대세라는듯,가을바람은아침부터고구마뿌리를유혹하다엄마는호미와엉덩이를흔들며밭으로가고,아빠는애기낳을듯펑퍼짐한엉덩이로노랗게언덕을뒹구는호박을몇덩이나꺼내오다

쓸쓸한건유혹적이다바야흐로딸은연애에빠져엄마가살큼섭섭하든말든동구밖꼬리나보여주며사라져가다하마삶의희로애락이부질없다고하는부처의연필과빈칸으로낡아갈실연의편지,사랑은갯벌에서나과거에서도오리무중

비극은유혹적이다삶이희극으로가려고발버둥칠수록상당히비밀스럽고미안하다눈물같은건흘리지못했던일찍자식잃은젊은부부처럼끝내엄청난통곡같은것도공유되는건아니다홀로골방에서유혹을견뎌야하다

오월의꽃1

꽃이꽃인것은
저대지의용암에꽂혀있는탓이다
가장뜨거운곳에뿌리내려뜨거운눈빛으로건네주는
시간의불

꽃이꽃인것은
그불의맞바람을꽂고있는그대의가슴때문이다
온허공을불지르며날아오는숨죽인바람이
바다의갈기에서태어나고있는
오월흰찔레한송이를꺾어훅!
날려보내고있다

금남로,자유라는용암의새
팽목,침묵이라는노란깃발의새
체르노빌,죽음의강을어둠의바다를
끝없이파도쳐도소멸될수없는아우성의새

꽃이꽂혀있는대지가펑펑터지고있다
오월,이팝의흰배고픔을벗어던지고
또다시오월,쪽동백향기로날아가고있다

꽃이꽃인것은핏방울로나그렁그렁맺혀있는
댓잎이나,녹두꽃이나죽창의기억*
한시인이그곳에꽂아둔한평감옥의족쇄때문이다

그러나꽃!
피어라꽃!오월의놀라운평화
그대가슴에꽂혀있는환생의빛과날개
명멸하는시간에결코무릎꿇지않는별꽃

오월의오리온좌는
오열하면서오열하면서무위無爲의배를젓는그대
빛사라진그날부터빛의씨앗품은쇠별꽃으로반짝이는
우리사랑신새벽!

*김남주의시‘죽창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