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만든 나라의 과학자 (대한민국 1세대 과학자 정근모 박사가 전하는 과학기술입국의 생생한 역사)

기적을 만든 나라의 과학자 (대한민국 1세대 과학자 정근모 박사가 전하는 과학기술입국의 생생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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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최빈국에서 세계의 희망이 된 대한민국
초일류 과학기술입국의 기적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최연소 물리학 박사로 한국 최초 핵융합 연구를 시작한 제1세대 과학자.
카이스트를 세워 과학자를 키워내고, 산업화를 위해 달려가는 조국에 한 알의 밀알이 된 그의 삶은
그대로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역사가 되었다.

경기중·고 수석 입학, 서울대 행정대학원 수석 합격, 만 23세 최연소 물리학 박사, 소년 교수, 한국인 최초 핵융합 연구 등 줄곧 ‘천재’란 수식어가 따라붙은 정근모 박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기관 대신 가난했던 조국으로 돌아와 과학 인재 양성을 위해 카이스트를 설립하고, 한국형 표준 원전을 설계하고, 두 차례 과기처 장관을 역임하며 과학기술입국 대한민국의 과학사를 써 내려갔다.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의 희망이 된 대한민국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길을 함께한 1세대 과학자들의 헌신이 생생하게 소개된다.
저자

정근모

한국과학기술원(KAIST)설립의산파역을한대한민국1세대과학자이자,한국형표준원전을제안하고초기설계사업을주관한원자력분야의세계적권위자다.
6.25전쟁중에치러진제1회국가고시에서전국수석을차지하며경기중학교에입학,경기고등학교1학년때대학입학검정고시에수석합격하여서울대학교물리학과에입학했다.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만23세에응용물리학박사학위를받아최연소박사기록을세웠고,프린스턴대학교핵융합연구소에서한국인최초로핵융합연구를수행하였다.1966년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핵공학과연구교수를거쳐,뉴욕공과대학교전기물리학과부교수겸플라스마연구소장을역임했다.1969년대한민국정부와미국국제개발처(USAID)에카이스트설립을최초로제안하여600만달러의차관을받아카이스트설립을주도하였고,카이스트초대부원장겸교수로부임했다.카이스트과학기술사회연구실을설립하고캐나다국제개발연구센터의지원을받아과학기술입국의정책수단연구를수행하여1980년대와90년대의대한민국과학기술입국정책의기반을구축하였다.
과학기술처장관을두차례(12대,15대)역임하며우수연구센터(SRC/ERC),고등과학원,한국과학기술한림원및국가핵융합연구소를만들었으며항공우주종합개발계획을수립·추진하였다.국제원자력기구(IAEA)총회의장,대한민국국민으로는제1호미국공학한림원회원및미국원자력학회펠로우및이사로선임되었고,세계원자력한림원회장및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을맡아온한국의과학기술발전의산증인이다.
호서대학교,명지대학교총장을역임했고,한국해비타트(사랑의집짓기운동연합회)초대이사장으로20년간조직을맡아국내외로무주택가정을위한집을지으며봉사와나눔의삶도살아왔다.이책을통해최빈국에서한강의기적을이루어오늘날의대한민국에이르는과정을생생하게그려냈다.

목차

추천사_한민구(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추천사_신성철(KAIST총장)
추천사_박형주(아주대학교총장)
저자서문

Chap1.가난한나라의과학자,한알의밀알되기로
흑백사진속원자로기공식,에너지기술확보염원의시작
미국의한국원조프로그램‘미네소타프로젝트’로서울대행정대학원신설
행정대학원에서처음경험한미국식학문과교육제도
원자력원초대원장된독립운동가김법린,나의‘인생멘토’가되다
중국최초노벨상수상자는중국대신미국을선택했다
가난한나라과학자는인생걸고조국잘살게해야
미국과학자되지말고한국과학기술의문익점돼라
1960년,새로개관한김포공항청사에서많은이의격려받으며미국으로

Chap2.각나라우수인재모이는미국에서본격적인과학자의길로
전세계우수학생모인미국대학,책20권나눠주고“한학기뒤시험”
잠안자며공부한다는소문에수면제들고찾아온지도교수
소련의세계최초인공위성‘스푸티니크1호’에충격받은미국
미시간주립대해너총장과의특별한인연
23세에사우스플로리다대조교수로부임하자‘소년교수’라고주목
프린스턴대핵융합연구소구인광고본순간“바로이거다”
세계최고의핵융합시설‘스텔라레이터’실험팀에들어가다
원폭의아버지오펜하이머가이끌던프린스턴고등연구소의목요학술세미나
무선통신을산업으로키운마르코니,숱한문명의이기와거대한관련산업만들다
천재물리학자이휘소박사와의교류

Chap3.무엇을배우고돌아가조국발전에어떻게도움이될것인가
MIT에서‘플라스마난류’를연구하다
MIT에서날키워준로즈교수,방한3개월뒤세상떠나
강대국미국이과학기술정책을세우고집행하는법
인재를찾고키우고지속적으로후원하는미국과학기술계
뉴욕공과대학웨버교수,독일군U보트잡는탐지기개발
‘과학기술이곧국력’이라는국민동의가이루어진미국
미국기밀프로젝트맡은뉴욕공과대학,레이건의‘스타워즈’중심지로
뉴욕공과대학나의첫박사제자는동갑내기대만계,당수10단

Chap4.카이스트설립,두뇌유출방지라는목적을이루다
물자지원대신인재육성나선미국,박정희에게‘과학대학원’제안
한국과학원(현KAIST)설립을교육예산이아닌경제개발특별예산으로추진
국민소득257달러의대한민국에서시작된‘과학기술입국’의꿈
한국과학원설립타당성조사위해미국과학기술계최고의인물들파견
과학기술처관료들은밤낮없이뛰고,미국은한국과학원에600만달러를원조
터만단장이한국과학원설립을위한최종보고서작성을의뢰하다
한국과학원초대원장으로이상수박사,초대부원장으로는내가임명
“450만달러로는부족해,600만달러로늘려”원조증액지시한해너처장
세계과학기술정책의흐름을주도하는‘대통령과학고문제도’
20년지나KAIS와KIST통합과정에서KAIST로
한국과학원병역특례주저하던박정희대통령,과학기술처설득에OK
장관바뀌자한국과학원초대원장전격교체,이해못할인사발령
과학기술처는내가맡은부원장자리없애고,코넬대는초빙교수제안
한국과학원첫입학시험평균5대1의경쟁률보이며본격적인가동

Chap5.무에서유를창조하며‘한강의기적’이끌던시기
“미국의과학기술정책은누가주도하고있습니까?”
‘공포의균형’으로핵전쟁막으려던닉슨,롱교수에SOS
코넬대연구마치고귀국,한국과학원의첫연구소STS연구실열다
‘왕관의보석같은성과’호평받은10개개도국개발프로젝트
백색전화가집한채값이던1970년대,인도에가서무릎을탁치다
강기동박사가74년세운‘한국반도체’,글로벌삼성의밀알되다
땅굴탐지레이더만든나정웅,탱크주의배순훈,한국과학원스타교수들
컴퓨터가뭔지도잘모르던70년대,한국인전공자찾아삼만리
카이스트학생들졸업도하기전경쟁적인취업제안받고산업현장으로

Chap6.가난한나라의살길은오직기술자립뿐
열살아들의불치병선고,가족에게소홀했다는죄책감만
아들에게내신장줬지만,설상가상C형간염까지전염시켜
미국스리마일원전사고충격,안전장치개발로과학적대응
“귀국해서기술자립위해힘써주게”김재익수석전화에목이멨다
우리나라원전산업을종속형에서자주형으로
한국전력기술에한국첫사내대학원,인재끌어모은‘신의한수’
아웅산테러,희생자명단에나라이끌던최고관료와외교관들
중국누르고따낸원자력국제회의,미국과막후협상이결정타
1986년체르노빌원전사고로지역주민9만명이주
고등기술원만든김우중“나라위한것,대우이름넣지마시오”

Chap7.과학기술처장관두번맡다
한국첫위성‘우리별’아버지최순달로부터한국과학재단바통넘겨받다
우수연구센터지원막히자조순부총리가‘특별예산’내줘
1989년IAEA총회의장놓고경합,한국인최초국제기구의수장으로선출
노태우대통령의한밤전화,“과학기술처장관맡아저를도와주세요”
‘IR52장영실상’힌트준사람은전두환정부때쫓겨난과학자
‘안면도핵처리시설’에성난민심,정부는희생양이필요했다
YS,칼국수오찬에불러장관제의,고사했지만임명강행
장관수명1년,이벤트는차관에맡기고고등과학원과우수연구센터에올인
활성단층의저주,굴업도핵폐기장건설없던일로
‘한국표준형원자로’첫상업운전,장관두번한보람느껴
섭씨1억도‘인공태양’만들어,7개국연합프로젝트이끌다
YS지시로IAEA사무총장도전,‘보이지않는손’에막혀좌절

Chap8.미국한림원에휘날린태극기와해비타트운동
몸둘곳없는이들위한집짓기,해비타트운동으로또다른삶
호서대총장직을맡은중에도이어간해비타트운동
수술받은아들“왜천사세분이와계시죠?”,두달뒤먼저하늘로
지미카터와함께해비타트운동전국순회
21세기시작하며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명지대총장직함께수행
김영훈대성그룹회장,아시아인두번째세계에너지협의회회장선임
UAE원전수주계약소식전해진순간,한전지하상황실에서환호의눈물
대한민국1호미국한림원회원이되다

출판사 서평

◎가난한조국에서과학입국의꿈을실현할전초기지KAIST설립과
표준원전설계로희망을쏘아올리다
‘어떻게하면우수인재를해외에빼앗기지않을수있을까?’전후가난한대한민국에서가장절실한문제는과학불모지인조국을떠나해외유학을선택한우수인재들이조국으로돌아와조국의과학기술발전을위해일하게만드는것이었다.
이문제의해결책으로KAIST(한국과학기술원)가세워졌고,KAIST는현재우리가모두아는대로대한민국산업의핵심인재를키우는대표적학교가되었다.KAIST가없었다면삼성전자도없었다고말할수있는대한민국과학기술입국의전초기지였다.이KAIST설립을주도한사람이바로23세에해외최연소물리학박사가되어천재과학자로이름을드날렸던정근모박사이다.그는세계최고인미국유수의연구기관을마다하고조국발전을위한한알의밀알이되고자귀국을선택한1세대과학자였다.
최고인재들만모이는경기고교,서울대학교에서최연소수석입학과조기졸업으로‘천재’라는수식어가따라다닌그가서울대학교행정대학원에수석합격하자일간지가이사실을기사로다루었고,이를본이승만대통령이그에게미국유학의기회를주었다.그는프린스턴,MIT,하버드대학교행정대학원,뉴욕공대등세계적인명문대학곳곳을다니며선진과학기술과과학기술정책을배워나갔고세계적으로주목받는과학자가되었다.
이후그는‘대한민국발전’이라는숙제를해결하기위해가장시급한일이조국에서과학자를키우는일이라생각하고,과학기술인재영입과후배과학자양성을위해KAIST설립을주도한다.그는하버드대학교행정대학원에서수학할때쓴‘개발도상국의인재유출방지를위한방안’에대한논문을들고미국국제개발처(USAID)를방문하여한국의이공계특수대학원설립을위한원조를약속받아카이스트설립의산파역할을했다.이렇게세워진KAIST는명실공히대한민국을오늘날의과학기술입국으로만든대표과학기술고등교육기관으로자리잡았고,지금은세계의희망이된대한민국이있기까지산업발전,경제성장에필요한인재양성이라는과제를넉넉히해냈다.
한국형표준원전개발의토대를마련한것도저자의대표적인업적이다.세계적인핵융합연구소인프린스턴플라스마물리연구소에들어가한국인최초로핵융합연구를한정근모박사는한국의전력난을해소할미래의에너지원으로원자력발전에주목했고,이후한국전력기술사장,과학기술처장관등에재임할당시‘한국의태양’으로불리는인공태양사업을추진하고,원전산업과핵융합산업의발전을이끌었다.무엇보다정근모박사는원전을우리의기술과손으로지어야한다고생각해한국형표준원전기술의설계를주도했다.추진당시우려가많았지만,대한민국은결국국제적으로인정받는원전수출국가의반열에오르게되었다.

◎최빈국에서과학기술입국의기적을만들어낸1세대과학자들의
헌신과열정의기록을책으로남기며
‘과학기술이국가의동력’이라는선진국의지침대로정근모박사는뛰어난과학기술자가되었지만,나아가그것이진정한동력이되려면적절한‘정책’이필요하다는생각에행정가로나서기를마다하지않았고,그가추진한일들은줄곧탁월한성과를냈다.
과학기술처장관을두번역임하고,주요기업의수장을맡고,대학총장을역임하는동안행정가로서의타고난능력을아낌없이쏟아부었다.고등기술연구원(IAE),고등과학원(KIAS),‘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KINGS)등의교육기관과연구기관을설립하여인재양성을이어갔고,우수연구센터(SRC/ERC)사업,IR52장영실상제정등을추진하며과학기술자들이장기간,그리고집단지성을통해깊이있게연구할수있는길을열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총회의장으로한국인최초국제기구의수장이되고,스웨덴공학한림원을거쳐대한민국1호미국공학한림원회원이된것은정근모박사가과학자로서의능력뿐아니라과학기술을토대로한경제발전에평생을헌신한공로를국내뿐아니라국제적으로도인정받은것이다.조국이세계최강과학기술입국이되기까지애써온1세대과학자로서정근모박사의삶은그대로우리나라가만들어온과학기술역사의기록이되었다.
이책에는그외에도조국의미래를꿈꾸며열악한환경에서함께했던초기과학자들의열정과헌신이고스란히담겨있다.백색전화가집한채값이던1970년대에전자식교환기시스템을개발하여통신산업을키워야한다는정근모박사의역설을바로정책실현에옮긴김재익경제수석비서관,글로벌삼성의밀알이된한국반도체의설립자강기동박사,기업가로서고등기술원과같은인재양성에지원을아끼지않은김우중회장,자신의열정과능력을아낌없이쏟아부은KAIST교수진,과학기술처관료들등많은사람의노력이어떻게지금의대한민국을만들었는지를생생하게볼수있다.
정근모박사는1세대과학자들의발자취를꼭기억해야한다고말한다.이들의정신과열정이깊이뿌리내려야대한민국이더든든히성장할수있다고믿기때문이다.그래서중앙일보에칼럼〈남기고싶은이야기〉를82회연재했고,그것이기반이되어이책이출간되었다.온생을쏟아부었던1세대과학자들의‘과학기술입국’의의지와그들이만들어낸위대한역사가우리의아주오랜기억의저편으로넘어가기전에,이들의발자취를기록으로남기기위함이다.작은밀알이모이고모여쏘아올렸던대한민국의희망을이제젊은세대들에게숙제로남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