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옷의 남자와 그가 주운 고양이

검은 옷의 남자와 그가 주운 고양이

$14.00
Description
‘자살한 사람들에게선 비 냄새가 난다.’
귀신을 보는 괴짜 신부와 그에게 복수를 꿈꾸는 휠체어 탄 미소녀
“넌 남들이 못 보는 세상을 보는 거야.”
아프고 어두운 현실에 삶의 빛을 더하는 심령 판타지

자살한 사람들에게선 비 냄새가 난다.
(……)
소녀가 신부의 뒤를 총총 따라오며 말했다.
우리 엄마, 잘못 없잖아요.
“누가 잘못했대?”
신부는 뒤따르는 소녀를 내버려 두고서 긴 다리로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갔다. 그러나 몸을 놓은 소녀는 나비처럼 가벼이 신부의 뒤를 따랐다.
제발, 제가 죽은 건 엄마 탓이 아니라고 말하게 해주세요. (p. 9~10)

44세의 정원은 가톨릭 요양원의 원장신부다. 자살자들이 보이며 그들에게 몸을 빌려주어 죽은 자들이 산 사람들에게 못다 한 말을 전하게 해준다. 날 선 길고양이 같은 존재, 열아홉 살 미호는 정원의 양여동생으로 장애를 안고 고립된 채 세상을 할퀴어대며 살아간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자책과 비난 속에서 두 사람 사이의 오해와 진심이 깊어갈수록 그들의 감정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보는 힘, 두려움을 축복으로 승화시킨 온기 가득한 소설이다.
저자

김리원

부산출생.장편소설『신부와의자기관리일주일』로데뷔했으며이작품은제26회부산국제영화제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E-IP마켓공식선정작이되었다.두번째소설로『검은옷을입은남자와그가주운고양이』를출간했다.

목차

1.신부
2.미호
3.정원
4.스위스

출판사 서평

신부와그의고양이는왜스위스로날아갔을까?
삶과죽음의경계를넘나드는반전과감동

신부의몸에죽은자들이머물수있는시간은단10초.『검은옷을입은남자와그가주운고양이』는삶과죽음의경계를넘나드는가운데예상치못한반전과특별한감동을선사하는판타지드라마다.무당의아들로태어난정원은죽은자들이보이는삶으로부터벗어나기위해가톨릭신부가되지만매번자살자들에게몸을빌려주고그들이한을풀게한다.그때마다어둠속슬픔이하나씩줄어들지만정원의몸과영혼은타들어가고,이런사실을아는사람은애기무당이될뻔하다정원의도움으로정신과의사가된혜수뿐이다.그리고정원이동생으로입양한미호는자신이휠체어를타게된원인이정원에게있다고생각하며복수만을위해살아간다.그런미호가신체적인장애를딛고세상에당당히나설수있도록정원은모든노력을다하지만정작자신은돌이킬수없는강을건너려하고있다.죽음처럼어두운현실속에삶의빛을더하는심령판타지소설.

귀신을보는괴짜신부와
그에게복수를꿈꾸는휠체어탄소녀
그리고애기무당이될뻔했던정신과페이닥터


죽은자들이산사람들의세상을넘나들고세상의어두운구석을조명하는이야기지만결코암울하고무거운소설은아니다.또한,‘빙의’를주제로억울한죽음을하소연하며서로얽힌사연을풀어가는가벼운소설만도아니다.주인공인신부가보는귀신은한을품고생을마감한자살자들이다.소설속에는성폭력(강간)에희생당한소녀,부모의동반자살시도로원치않은현실에내던져진아이,노동착취를당하거나장애를가진사람들이처한불평등한현실등우리사회를향한날카로운메시지가담겨있다.미호,정원,혜수등주요인물을통해저마다의삶의방식과존재가치를보여주고,타인과의관계에대해생각할거리를던져주는이소설은비극적인현실앞에따스한삶의온기를전한다.

정원,미호,혜수.그들이채워가는따스한삶의온기

이정원베드로신부(44):가톨릭노인요양원의원장신부.무당의아들로자살자들이보이며,귀신들에게몸을빌려주어산사람들에게못다한사랑과후회의말을전하게해준다.아무도알아주는이없지만자신을희생해가며사회의어두운면을밝히기위해노력하는인물.신부의몸이축날때마다외진곳,폐건물옥상,지하철계단등지에서원인모를추락사고가줄어든다.그자신또한어긋난출생으로내면의아픔을지닌채절망을안고살아가지만아무런대가없이,아무런잘못도없이자책하고자신을혹사하며타인을위해무조건적인희생을감내한다.그러는가운데정원은자신의삶이다하고있는지조차모른다.

죽은사람을몸에담고나면온몸이뒤틀리는듯한통증이왔다.이런식으로10초가지난뒤면그는자기몸의뼈가어긋나지도않고팔다리가붙어있다는게늘믿기지않았다.그통증을알면서도자신이외면하면누군가가또몸없이헤매게될까봐무서웠다.왜내가쓸데없이죄책감을느껴야하지?내가왜이쓸모없는짓을해야해?
무엇보다몸을빌려주면서서로의지난날을주마등처럼훑게된다는게가장싫었다.그는남의내밀한고통을아는것도,자신의고통을남이알게되는것도싫었다.그럼에도.누군가가죽은자를따라몸을놓을까봐두려워이짓을감수하고있다니.(p.16~17)

한미호(19):정원의양여동생.동반자살을시도하려던부녀를목격하고정원이목숨을구해주었으나,그일로아이는다리를다쳐휠체어를타게된다.어릴때일을기억하지못하고자신의장애가정원탓이라믿어그에게복수할기회만을노리며살아간다.반면은인이아니라원수가된정원은미호가제아비를원망하기보다남을미워하는편이낫다고여겨온갖상처가되는말들을오롯이받아내는가운데미호의재활치료에필사적이다.좀더일찍구하지못했다는자책과더불어오해와비난속에서도,겉으로는미호를사나운고양이취급하지만남몰래물심양면으로챙겨주고지켜주는정원의속뜻을미호가알리없다.

소녀의이름은미호微虎였다.작은범이라면자라서큰맹수가된단뜻이아닌가.(……)소녀는날카롭게찢어진커다란눈매가유독인상적이었다.넘어질때마다일으켜주면손톱으로긁어신부의팔에상처를내는것이맹수보다는고양이같았다.상처가나을때까지거둘뿐,다리가부러진새끼고양이를키워서달라질게있겠는가.신부는그리생각하고는,미호를돌볼가사도우미와활동보조인을구했다.(p.55)

유혜수(29):정신과페이닥터.보육원에서자라며귀신을보아애기무당이될팔자였으나그고통을누구보다도공감하는정원이남몰래후원자가되어학비를지원해준덕에정신과의사가된다.정원은자살자들을달래주고지칠때마다혜수를찾아가고혜수는정원이가장안락함을느끼는병원의자에서잠들게해주는동시에그런정원을애처로운눈으로바라본다.정원은혜수만은자기처럼귀신을보며고통스러운삶을사는대신평범한삶을살기를진심으로바란다.

정원의새치가늘어가고피로가깊어질때마다,폐건물옥상과지하철계단에서원인불명의추락사고가줄어드는이유를아는이는세상에서하나뿐이었다.
혜수는정원을뒤따르는죽은자들곁에서결국식사약속을깨는그를말리지않았다.미안하다며대신그녀가근무하는병원에들르겠다는신부를향해웃어주고돌아설뿐이었다.볼수있기만할뿐,어차피그녀가할수있는건없었다.(p.71)

절망과고통끝에서마주한빛과같은선물,사랑그리고희망

죽은자들이보이고귀신들에게몸을내어준다는다소진부한주제일수있으나그안에깃든진실과반전이잔잔한감동과여운을남긴다.소설의말미,절망과고통의원인이되었던것이빛과같은선물이었음을알게함으로우리가가진사랑과희망을이야기한다.남들이보지못하는것을보는힘,그것이축복이었음을정원이좀더일찍깨달았다면그의삶은달라졌을까.
자신의희생은생각지않고다른사람을구하지못했다는후회와자기자신에대한원망으로만살아가는신부가감당해나가야할시련은안타깝고애처롭다.자신이죽는것보다세상에홀로남겨질미호의앞날을걱정하면서정원은또다시자책하며두려움에휩싸인다.

고등학교를중퇴하고검정고시를통과한미호가또래와어울리지못하고고립되다가,정원이죽은후성인의나이가훌쩍지나서까지세상에적응하지못하고포기하게될까봐두려웠다.성범죄자로오해받고발칵화를내며뒤돌아서는대신,바로쫓아갔다면애를구할수있었을텐데.실패로끝나면서아이에게고통만안긴몇번의수술을할필요도없었을텐데.(p.101)

소설은자살,강간,폭행비리등우리사회의어두운문제들과장애인을바라보는부당한시선과그들의고립,그리고여전히개선되지않은부조리한현실의모습을보여준다.한편으로는가족의의미를돌이켜보게하고,요양원에서쓸쓸한말년을보내는노인들의모습도투영된다.타인에의해또때로는사회적구조로인해고통받는자살자들의고뇌와떠난자들뒤에남은사람들의슬픔도담겨있다.이모두를안타까운시선으로바라보게하는인물로신부라는캐릭터와‘죽은사람들을보는신부’라는주제를엮은아이러니가무엇보다흥미롭다.자신에겐멀게만느껴지는따뜻한세상,마음의그늘을벗어날수있는밝은세상을소설의주인공은과연마주할수있을까?

이십대도삼십대도내내자신의고통속에서헤매기만했다.부모의눈물과늙어감도미처알지못했다.자신을입양해마지막까지지원해준부모를돌보지도않고,평범하게살길바라는그들의소망도모른채오로지자기자신의문제에만파묻혀헤매었다.자신에게매달리는자살자들을향해막말을퍼붓고,동생으로입양한아이에게도상처를주었다.내가거두었으니내가책임지겠다생각했으나,아이의고통을모르는체했다.스스로만으로도버거워알려고들지도않았다.제아비를미워하는것보다야남을미워하는편이아이에게낫다여겨사실을숨기고아이와대거리하며받은대로내쏘기만했다.아니,내쪽에서먼저긁고울리는일도여러번.어쨌든돈을대고있지않으냐는핑계를나혼자면죄부로삼아있는대로상처만주었다.(p.147)

소설속에서죽은자들은하나같이산자들을염려하느라한마디당부의말을건네고싶어한다.슬픔에겨워자신의길을따라오지않도록말이다.스스로목숨을버린자신과같은선택을하지말라고.그청을들어주는정원자신은늘두렵고외롭고쓸쓸하다.자신의고통을외면해가며다른사람의불행과슬픔을바라봐주기만했던정원은그럼으로써자기자신의육체와영혼을돌보지않고방치했다.그리고마침내진정한삶의환희를깨달았을때는모든것을되돌리기엔이미늦었다.하지만자신도모르는사이정원은세상에또다른새로운빛을남기게된다.

가장두려운것은,나도몰랐던내바닥을나와타인에게드러내는것이아니다.먹을것과배설의해결만이관심사인상태로사는것도,살다보면익숙해질터이다.그러나,그러한나를전혀모르는상태로사는것만은두렵다.죽은이들에게몸을내어주고무슨일이벌어질지모르는내가나일까.수치심을모르는내가과연나일수있을까.어떠한개선의여지도,갱신의여지도,변화의가능성도없는상태가과연삶이란말인가.그러한삶에도내가모르는의미가있을것이다.내가감히짐작도못하는뜻과빛이있겠지만,그러나,그게내삶이라면나는백번이라도고개를저을거야.(p.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