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김종해 산문집)

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김종해 산문집)

$14.00
Description
‘시’가 된 유년 시절의 삽화에서 시인의
‘문학 요람’을 흔들어주었던 이들에 이르기까지,
문단 활동 60년 희로애락을 담은
김종해 시인의 처음이자 마지막 산문집
“시단 등단 60년-
시인으로 시만 쓰면서 시 하나에 매달려 살아온 지 60년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모든 산문은, ‘시’와 ‘시인’으로 귀결됩니다.
제가 쓴 모든 산문은 시와 시인을 이야기하고,
시와 시인이 그 구심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날까지 저는
누구보다 시를 사랑했던 한 사람의 시인의 이름을 갖고 싶습니다.”

1963년 문단 데뷔 이래 처음으로 펴내는 이 산문집에는 김종해 시인의 젊은 시절부터 오랜 세월 시인으로 살아온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와 접목된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시를 향한 시인의 구도자적 마음가짐을 엿보게 하고, 2부에서는 시인이 60년간 문단 활동을 해오며 인연을 맺었던 문인들의 면면을 읽게 할 뿐만 아니라, 시인과 시 세계를 함께 걸어온 우리 문단의 지성들이 빚은 에피소드를 통하여 낭만과 서정의 감상에 빠져들게 한다. 또한 3부에는 시인으로서 삶의 바탕이 된 저자의 어린 시절과 가족 이야기가 실려 있고, 4부에는 시 작품의 배경과 단상이 적혀 있다.
저자

김종해

시인

부산에서태어났다.1963년《자유문학》지와《경향신문》신춘문예시당선으로문단에데뷔했다.문학세계사(1979년)를창업,지금까지3천여종의문학관련도서를발행하였고,시전문계간지《시인세계》를간행하였다.자유실천문인협의회창립발기위원,대한출판문화협회이사,제34대한국시인협회회장을지냈다.현대문학상,한국문학작가상,한국시협상,구상문학상본상,공초문학상,PEN문학상등을수상했고,그밖에한국출판문화상,대한민국문화훈장보관을수훈했다.시집으로『인간의악기』『신의열쇠』『왜아니오시나요』『천노,일어서다』(장편서사시)『항해일지』『바람부는날은지하철을타고』『별똥별』『풀』『봄꿈을꾸며』『눈송이는나의각을지운다』『모두허공이야』『늦저녁의버스킹』이있고,시선집『누구에게나봄날은온다』『그대앞에봄이있다』『무인도를위하여』『우리들의우산』『어머니,우리어머니』(김종해·김종철형제시집)등이있다.

목차

서문:불켜진시인의주마등走馬燈을바라보며
1부:시인이여,시를떠나라!
시인선서
시인이여,시를떠나라
나는이런시가좋다
자기속의독자를살해하라
시란무엇인가1
시란무엇인가2
시인을위한메시지
시여,나는아직도너를모른다!
가장절실하고소중한것
길위에서이름을부르며
허공을보았다
사람의몸은악기
형태파괴의시
한통의전보가나를시인으로깨웠다
시는혼자쓰지만,읽는이는여럿이다
2부:나의문학요람을흔들어주었던이들
나의촛대에아직도촛불이……
우째그래주량이작노
남포의갈매기
나의문학요람을흔들어주었던이들
《현대시》동인들의젊은날
우리의종로3가시절
“선생님,똥잡수이소,똥!”
‘지봉池峯’이라는아호에대하여
시인과요리사
신新실크로드의음식기행
박남수시인과나
내가만난이건청시인
미당의목탁은우리의술
내인생,단한권의책
평생의지음知音에게띄우는편지

3부:시가된유년삽화
어이구,시근다들었구나
시가된유년삽화
나의10대,눈물과노래「오대니보이」
첫사랑의추억
어머니,우리어머니
서른다섯살의사랑과불꽃
젊은시인의시와삶
나의시는무인도,바닷속에있다
찬란한축복
절실한마음이일어날때,그때시를쓸거예요
못과나의가족사
아우김종철시인
아버지와「항해일지」







4부:그약을다먹으면나는잠들리라
시를쓰고싶지않았다
텃새는동물병원에갈수조차없다
나뭇잎은떨어질때비로소보인다
저쪽을열수있는손끝의쾌감
엄마와함께걸었던황톳길
눈오는날은귀가먹먹하다
‘나’를스스로‘짐朕’이라고사칭하였다
국화꽃한송이를창밖으로던지다
봄날,하느님이예배당에계시지않는이유
머리카락한올마다삶이새겨져있다
그약을다먹으면나는잠들리라
까마귀가우짖는그대구對句를나는알아들었다
평양다녀와서
「항해일지」에대하여
개여,사라져다오
나무연필로시를쓰는이유
무인도가내삶의마지막이아니다

출판사 서평

김종해시인이말하는“나는이런시가좋다.”
시로써사람을느끼며,그래서사람으로태어난것을자랑하고싶은시,
울림이있는시,향기있는시!

“아침에짤막한시한줄을읽었는데,하루종일방안에그향기가남아있는시.
사람의온기가담겨있는따뜻한시.영혼의갈증을축여주는생수같은시.
눈물이나이슬이묻어있는듯한,물기있는서정시를나는좋아한다.”(p.16)

시인과요리사의동행,여행은시의재료가된다!시인으로서저자는각종시인대회와세미나,시낭송등으로세계곳곳을여행하며여러나라시인들과의교류를통해삶과문학의시야를넓혀왔다.책에는저자가시인으로서글을짓는일뿐만아니라,타지에서음식으로고역(?)을치르는지인들을위해요리사의역할을자처하곤했던에피소드들도소개하고있다.맛있는요리는고작몇시간동안만그미각이몸속에녹아있지만맛있는시는섭취한지1년이지나도록그향기가몸속에서사라지지않는다고했다.맛있는시는먹을수록공복이된다고.요리사도지향하고시인도지향한다고말하는저자는이렇게쓰고있다.“음식이든시든사라지지않는것도필요하지만사라지는것또한필요하다.우리의마음과정신속에서사라지지않는일용의양식,시는그영원성을추구한다.시의영원성과함께있는시인을나는하례한다.”(p.87)
“지금무인도에서홀로살고있더라도우리의삶이무인도가마지막삶이아니란것을우리는알고있다.혹한의겨울이끝나면봄이온다는것을우리는안다.
내가쓰는시의메시지는여기서부터시작이다.”

알마크호의선원이었던17세문학소년,삶속을항해하는시인이되다!

서정주와박목월,황순원,김춘수를좋아했고칼릴지브란의『예언자』와콜린윌슨의『아웃사이더』를문학등대의빛으로삼았던시인.그는파랗게불꽃을내뿜는철공소용접기를들었고500톤여객화물선을탔다.그러나가슴속이글거리는10대의열정은앞으로나아가고자하는절실한삶의기록을끊임없이시화詩化하고있었다.그리고그절실함은이후「항해일지」연작시로이어진다.더거슬러올라가김종해시인의문학은그가어린시절을보낸부산서구소재의천마산에서출발함을볼수있다.그는말한다.“내시의식의원천이며모태인초장동은언제나꿈속에서시공을뛰어넘어나타난다.”(p.136)

▲김종해시인의17세문학소년시절

중학교를졸업한후어머니를돕기위해나는야간고등학교에다니면서점원생활을했다.그것마저여의치못해야간고등학교를휴학하고부산에서속초를운항하는500톤짜리알마크호여객화물선을타게되었다.이때의선상생활체험은시인이된이후나에게중요한시의소재를제공했는데,연작시「항해일지」가바로그것이다.「항해일지」는바다를항해하는수부의기록이아니다.도시에서살아가는소시민의삶,도시에서노를젓고,삶속에서허우적거리며살아가는소외된사람들의이야기가시화되어있다.(p.157)

“우째그래주량이작노?”
치기와낭만으로물들었던젊은날,≪현대시≫동인들과함께한시절

「내란內亂」이라는시가《경향신문》신춘문예당선작으로선정된1965년,김종해시인은당시심사위원이었던박목월,조지훈두시인을처음만났다.이산문집에는저자가존경하고의지했던박목월선생과한국시인협회일을함께하고또《현대시》동인들의정신적지주였던박남수선생과인연을이어오며겪은이야기들이마치그시대를옮겨온것처럼생생하게실려있다.또한그안에는웃지못할여러에피소드와더불어한편으로60년대,우리문학의순수참여논쟁의한극을담당했던《현대시》동인젊은시인들의초상이그려져있다.

▲1969년《현대시》동인들과함께왼쪽부터(시계방향)오탁번,주문돈,박의상,이유경,이승훈,
이해녕,그리고한가운데책을펼치고있는사람이김종해시인.

상을쾅치고나서나는,“목월선생,할말있소!”하였다.좌중은경악했다.“와그라노?할말있거든해봐라.”목월선생의부드러운말이었다.다음순간나의주먹이음식상을또내리쳤다.음식그릇들과술잔들이또튀었다.“남수선생,할말있소!”또다시그릇들과술잔들이튀어올랐다.“한모선생,할말있소!”(중략)전날일어났던그무례함과추태는나자신으로서도도저히용서할수없는모욕감을주었다.심한위축감과죄책감과숙취로찌든채,아침에원효로의목월선생께전화를드렸더니선생은화들짝웃어댔다.그웃음은부끄러움속에꽉꽉밀폐해놓은나의문을활짝열어주었다.“그래,닌술을고거밖에못마시나,우째그래주량酒量이작노?하하하…….”(p.50~51)

한국현대시사現代詩史를장식하였던수많은별들……
김종해시인이만난평생의스승과지기,그들의진솔한모습
그리고시인이가장존경하는대상인어머니와가족의이야기가담긴산문집
김종해시인의60년문단활동을통틀어처음출간되는산문집『시가있으므로세상은따스하다』는박목월,박남수,서정주등한국시사에큰발자취를남긴대가들을비롯하여최하림,이건청,김종철시인에이르기까지수많은문인들의젊은시절이야기를접할수있는기회를제공해준다.또한박남수시인과의개인적서신왕래등시단이면의내밀한이야기들은독자의눈길을붙잡는다.
특히부산천마산자락의초장동어린시절가난을헤쳐가며4남매를키우신어머니와가족에대한추억,까까머리고등학생이세살연상의여대생에게사랑을고백한첫사랑이야기,형제시인으로함께문단생활을한아우김종철시인에대한회상등은시인의삶을보다가까이에서입체적으로바라보게한다.

미당과목월은스승의예로써숭배하였고,스승의댁이있는공덕동과원효로는우리젊은시인들의성지였다.무엇보다공덕동의미당선생댁은명절날이아닌데도항시북적대었다.미당선생이목탁을두드리면그소리를듣고방옥숙사모님이술과안주를끊임없이내오셨다.미당선생은아들또래의우리를술친구처럼격의없이대해주셨다.문단에갓등단한60년대중반부터이미우리는미당의아호앞에‘시성’이라는호칭을각자마음속에새겨놓고있었는데,미당만그것을모르고있었다.(p.118~119)

“선생님,똥잡수이소,똥!”
문인들의사랑방이자리했던종로3가시절
당시종로3가에있던문학세계사사무실은한국시인협회사무실도겸하고있어서문인들의사랑방구실을했다.또각일간지의문학담당기자들도무시로드나들면서어김없이바둑판과고스톱판의장이서곤했다.미국으로이민을떠났던원로시인박남수선생도귀국하면들러후배시인들과회포를풀던곳,최하림시인과김원호시인의출판사도잠시둥지를틀었던곳,1980년대문학세계사흑백사진에찍힌추억의한풍광이다.

바둑과고스톱과술판은그칠날이없었고,만나면즐거웠다.고스톱을막배우기시작한정한모선생에게박현태시인이옆에서훈수를두었다.“선생님,똥잡수이소,똥!”좌중은웃음판이되었다.(p.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