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을꿈꾸는줄꾼,이날치의파란만장오디세이!
“줄을작파할것이다.”
비밀을털어놓은이도,듣는이도놀랐다.
“곧면천첩을사고금강산에칩거중인송방울을찾아갈거다.
내기어코소리꾼이될것이야.함께가자.”
조선후기,전라도담양.김진사댁씨종인아홉살계동은역병에휩쓸려아비와생이별을하고남사당인화정패에들어간다.곧화정패의우두머리가노름밑천을대기위해계동을팔아버리지만그런와중에도계동은“꼭소리꾼이되라”했던아비의유언을되새기며소리를배울생각뿐이다.그리고십여년후,훤칠한도포차림에아찔한인물치레를뽐내며줄위에서신묘한재주를선뵈는최고의줄꾼이날치.구용천에게팔려갔던계동이2년만에다시화정패로돌아왔던것이다.그가줄을걸었다하면사람들이구름떼처럼모여들고,여인들이가슴앓이하며볼을붉히지만정작날치는줄을작파하고소리판에들어갈날만을학수고대하고있다.미천한신분으로임금을알현하는방법은소리꾼이되는것뿐이었기에.돈을모아반드시면천하고,금강산에은둔한명창송방울을찾아가그의제자가되리라!꼭소리꾼이되어임금앞에고해야할것이있다!
어전에나아가겠단다짐은,삶을등지고픈자신을억지로다잡기위해붙잡고늘어진망상일따름이었다.송선생의말마따나,구용천에게서명예만뺏으면그뿐이아니던가?그의악행을목터지게소리치다가속시원히죽는것도나쁘진않을성싶었다.날치는마음을굳게먹었다.그리고피를토하여속을게워내는심정으로붓을휘둘렀다.필사적이었다.선지가급하게채워졌다.눈알에성성한핏발이일었다.무서운몰입이었다.천인들도완창을들을수있도록짧게만든,일각짜리사설이었다.몇번의해가뜨고또다시몇번의달이기울었다.드디어빼곡하게찬서책앞에제목이박혔다.아무개전.(p.378)
[리디북스]1위를기록한『탄금』에이은
장다혜작가의두번째조선서스펜스풍물드라마
현재TV드라마제작중인『탄금』의장다혜작가가첫소설을펴낸지2년만에조선후기광대이자판소리명창‘이날치’를소환하는두번째이야기로찾아왔다.『이날치,파란만장』은실제로특히「춘향가」와「심청가」를잘불렀던〈서편제〉의제일명창,이날치(李捺治,1820~1892.본명이경숙)의파란만장한일대기를소설적긴장감으로생동감넘치게그려냈다.날아다니는물고기인날치처럼날쌔게줄을잘탄다하여‘날치’라는예명이붙었고조선후기8명창중한명이라는사실이외남아있는다른기록들은찾아보기힘들지만,줄꾼과소리꾼으로서이날치의탁월한면모를고리삼아작가는소설속에실존인물이면서상상이가미된새로운역사적인물을탄생시켰다.전통적인판소리에현대적인팝스타일을적절하게조화시킨국내팝밴드인‘이날치’가전세계적인인기를얻으면서덩달아조선명창이날치에대한관심도높아졌는데,소설속에서는「춘향가」,「심청가」를비롯하여「적벽가」,「수궁가」,「사랑가」등판소리한마당을절절한스토리와함께감상할수있으며무엇보다〈아무개전〉완창대목에서는짜릿한반전의결말을맛볼수있다.
도성이텅비었다.광통교에도,운종가에도,용산나루에도,송파시장에도행객이없었다.일년내내점포를여는갖바치,수철장,갓일장이,옹기장이도금일만은점포문을걸어잠갔다.도성문지기들은하릴없이하품만쩍쩍해대었다.그많은사람이다어디갔나했더니,다들강가에우뚝솟은취화루앞에장사진을치고있었다.주변모래사장은이미발디딜틈없이복작대었다.일각짜리소리『아무개전』을듣기위해서였다.바람마저얼어붙은동절의복판이었건만이대단한기회를놓칠세라지팡이짚은노인부터코흘리개아이들,쓰개치마를뒤집어쓴여인들까지모두취화루로모여들었다.해코지를당할까봐좀처럼우마골에서벗어나지않는백정들과무당밭에모여사는무녀들,저자를주름잡는무뢰배며,시주받으러떠도는걸립승까지죄다거동하였으니사람이사람을구경하는진풍경마저벌어졌다.(p.443)
팝밴드'이날치'보컬안이호,소설『이날치』를추천하다!
"하늘위를날던줄광대는슬며시땅으로내려와
이야기를건네는소리광대가되었다"
하늘위를날던줄광대는슬며시땅으로내려와이야기를건네는소리광대가되었다.그리고급기야사람들의웃음을타고세상을넘어스스로이야기가되었다.이소설은명창이날치의삶을파헤친역사물이아니다.기쁘면노래하고슬프면곡을하는당연함을꿈꾸고결국이루어낸,그를위한찬가이다.냉혹한세상은줄광대이날치에게서웃음을빼앗고눈물을갈취하였으나소리꾼의갈증에허덕이던그는끝내삶을내던져부서지며소리쳤으니그야말로‘파란만장’을살아내었다할수있겠다.소리로‘이야기를풀어내는삶’을살았던명창이날치를‘이야기자체’로존재하게끔만들었다는점에서,그어떤자료도설명해주지못한인간이날치의모습을눈앞에그려보여주는것만같다.-안이호(소리꾼,팝밴드‘이날치’보컬)
핏빛의원한과회심의복수,못다이룬연정
그러나……
소설『이날치,파란만장』에는줄타기와판소리만있는것이아니다.신분의귀천에따른군림과복종그리고온갖비리가비루한삶을더욱비참하게물들이는가하면,그로인한끔찍한장면들이등골을오싹하게할만큼정교하게묘사된다.
한편,소복을입은눈먼곡비와연모하는여인을끝내취할수도,버릴수도없었던의빈채상록의연정그리고백연과이날치의구슬프고애달픈사랑의말로가가슴을적신다.날치는달밝은밤마당에매어놓은줄위에서홀로연습을하던중용두재뒷골방에사는백연과기이한통성명을하게되고그녀가소리판담너머로소리를서리하는걸본후‘소리’라는공통점으로가까워진다.실상백연의유일한바람은다음생에뜬눈으로태어나는것.그러기위해서는제시신이방치되어까마귀에게눈을쪼아먹히는불상사가없도록,꼭입관되어제대로땅에묻혀야한다.해서108명의망자를모신후자결할결심을하고차곡차곡제관값을모을뿐이다.그녀의본심을알리없는채상록은정월초하루,광나루에서초주검의백연을구한인연을언급하며날치에게그녀를보살필것을부탁하지만정작가까워지는두사람을보며까닭모를불쾌감과질투심을느끼는데…….
얼굴은텅빈채였다.세상그무엇에도미련이없는듯표정도,핏기도,생기도없었다.명과암,생과사의경계에서있는듯아슬아슬하기만했다.쪽볕한번쬔적없는듯새하얀살결때문에더그리보이는지도몰랐다.그흰낯에박힌요요한눈동자가별빛아래쨍그르르빛났다.안보이는것이기이하다여겨질만치커다란눈이었다.그맹안盲眼에삼라만상이다들어있는듯하다가도,또만사무심한듯보이기도하였다.지척에서보니아리잠직할뿐,소녀라기보단막피어나는여인이었다.조막만한얼굴에꽉들어찬이목구비가앳된면모에도강단이묻어났다.사내의침묵이길어지자여인이입술을앙다물며고갤돌렸다.흐드러진월광에,삼베옷을입은여인의몸태가희다못해푸르게발광했다.날치는순간눈이시렸다.찬서리에봉우리째꺾여버린목련.그무엇으로도되살릴수없는낙화에얼굴이있다면바로이럴것이라고,그는생각했다.(p.50)
◈등장인물소개◈
·이날치(23세):줄꾼으로살지않겠다,소리꾼으로죽겠다!
아찔한인물치레로여인들을구름같이몰고다니는조선최고의줄꾼.제얼굴반반한것이야저도알지만부질없는인기따윈믿지않는다.줄위에선환호받지만,줄아래선천대받는광대신분으론그무엇도할수없으니까.반드시면천하고소리꾼이되어해야할복수가있다.
·백연(18세):독초를꺽지마소서!
장님곡비.가냘픈몸씨엔단단한심지가느껴지고,커다란맹안엔삼라만상이깃든듯오묘하다.구슬프게곡을하는건망자를위한것이아닌,복을지어다음생엔뜬눈으로환생하기위함이다.외톨밤처럼가시를세운채홀로살아가지만생전처음날치에게한줌온기를느끼고흔들린다.
·채상록(23세):백연을가져야겠다!
한때조선신검으로불리던무인이었으나공주에게'간택'당해날개꺽인의빈이되었다.공주의요절로한량처럼소리판을전전하다가날치와신분을초월한친구가되었다.다부진체격엔묵직한기품이흐르고선굵은얼굴엔사람좋은미소를띠고있으나가슴속엔세상을향한분노뿐이다.정월초하루,초주검의백연을구하고격정에휩싸인다.
·묵호(40대):화정패의줄꾼이자전직약초꾼.
말수가없고무뚝뚝하지만날치를친아들처럼묵묵히챙긴다.
·꼭두쇠(40대):화정패의우두머리이자노름에환장한투전꾼.
빚으로마누라를잃고손가락까지잘렸으나당최노름병은나을기미가없다.
·비금(23세):화정패의칼춤꾼이자꼭두쇠의딸.
남사당패에서자라외모,말투,하물며곰방대를물고짝다릴짚는폼까지딱사내놈같다.날치에게꾸준히들이대지만매번퇴짜를맞는다.
·구용천(40대):예인집안의장남으로태어나소리조기교육을받은소리꾼.
잘난소리꾼동생에게자격지심을느껴몸보신에집착하지만끝내임금께벼슬을하사받아국창이된인물.
·박상궁(50대):공주의보모상궁출신
채상록을성에안차는사위다그치듯한다.사사건건'아니되옵니다'를연발한다.
·얼쑤와절쑤(놀랍게도20대):화정패의쌍둥이살판쇠.
경상도사투리를쓰며날치를놀려먹는낙으로산다.산적같은풍채,넙데데한얼굴이꼭한쌍의해치같다.
·돌삼(20대):전라도사투리를쓰는화정패의조동아리.
입담이좋은뺀질이지만무슨일이있으면눈시울부터붉어지는순수청년.
·춘봉(40대):화정패의버나꾼.
충청도말투에매사가늘쩍지근하지만생존본능인지접시만은기가막히게빨리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