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땅

떠도는 땅

$13.50
Description
그리움이 삶의 전부인, 떠도는 땅 위에 부유하는 사람들
시리고 날 선 어둠 새로 스며드는 그들의 이야기
읽는 이의 마음에 자국을 남기는 작가 김숨. 그의 집요함과 세심함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힘과 서사의 밀도는 독자와 평론가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많은 에너지와 감정 소모를 필요로 하는 작품을 써내며 쉼표 하나, 말줄임표 하나에도 온 마음을 쏟는 그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써내려간 문학의 자리엔 숭고함이 남는다. 일본군 위안부, 입양아, 철거민 등 소외된 약자와 뿌리 들린 사람들을 보듬어왔던 그가 이번 작품에선 ‘디아스포라’를 노래한다. 집필 기간 4년, 소설가 김숨이 1년 9개월 만에 장편 『떠도는 땅』을 내보인다.

『떠도는 땅』은 1937년 소련의 극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 17만 명이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화물칸이라는 열악한 공간을 배경으로 열차에 실린 사람들의 목소리, 특히 여성의 목소리를 빌려 디아스포라적 운명을 이야기로 확장시킨 이 소설은 슬픔과 그리움이 고인 시간을 걸어온 고려인들의 비극적 삶, 그리고 오랜 시간 ‘뿌리내림’을 갈망했던 그들의 역사를 핍진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구상부터 탈고까지 총 4년이 걸린 작품으로 격월간 문학잡지 《Axt》에 연재했던 소설을 2년 6개월 동안 개고하였다.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김숨의 장편소설 《떠도는 땅》이 출간되었다. 올해로 등단 23주년을 맞은 김숨은 인간 존재의 근원과 존엄성에 대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며 문단과 독자의 많은 호평을 받았다. 인간 존엄의 역사를 문학으로 복원해온 그가 한국문학장(場)에 뜨거운 숨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특히 이번 신작은 고려인의 150년 역사를 응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선정 및 수상내역
- 제51회 동인문학상

저자

김숨

소설가김숨은1974년울산에서태어났다.1997년[대전일보]신춘문예에「느림에대하여」가,1998년문학동네신인상에「중세의시간」이각각당선되어등단했다.동리문학상,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허균문학작가상등을수상했다.

장편소설『백치들』,『철』,『나의아름다운죄인들』,『물』,『노란개를버리러』,『여인들과진화하는적들』,『바느질하는여자』,『L의운동화』,『...

출판사 서평

그리움이삶의전부인,떠도는땅위에부유하는사람들
시리고날선어둠새로스며드는그들의이야기

1937년가을.소비에트경찰은금실이살고있는신한촌으로몰려와집집을돌아다니며일주일치식량과당장입을옷가지만챙겨사흘뒤혁명광장에모일것을명령한다.날벼락처럼떨어진갑작스런통보에사람들은그이유를묻지만경찰들은그저“너희조선인들에게이주명령이내려졌다”라고말할뿐이다.금실은보따리장사꾼인남편이집으로돌아오길기다렸다함께출발하겠다고말하지만,그들은남편도곧뒤따라올것이라며금실을다그친다.결국그녀는남편에게짧은편지를남기고준비해둔비상식량과당도할땅에심을씨앗들을챙겨열차에몸을싣는다.

“떠나라는통보를받고아버지무덤을찾아갔지요.그앞에넙죽엎드려시든엉겅퀴를쥐어뜯으며아버지를원망했지요.죽으나사나고향땅에서살것이지,남의땅에와서자식이집에서쫓겨나는수모를당하게하느냐고요.”_본문에서

사람들은제대로된화장실도,마음편히누울자리도,밖을제대로볼수도없는동굴같은화물칸바닥에앉아보이지않는금을긋고가족끼리모여있다.양쪽벽면에널빤지를가로놓아2층을만들어그곳에도사람들을태웠다.그들이탄열차는사람이아닌가축을실어나르는화물열차.금실과같은칸에실린사람들은모두스물일곱명이다.그중엔몸이불편한노인,배가제법부른임신부,호기심많은아이들,심지어갓태어난아기도있다.참담할정도로열악한환경에놓인사람들은막막하고커다란두려움에휩싸여실의에빠져있다.밖을내다볼창문조차없어어디쯤왔는지도가늠할수없다.괘종시계를들고탄남자는아내의재촉을듣고계속해서태엽을감는다.그간며칠이흘렀는지알수있게,지금이밤인지낮인지가늠할수있게.질긴소시지,절인돼지고기,누룽지,말린빵…….그들은얼마안되는식량을조금씩아껴먹으며서로를의지해막막하고어두운시간을그저견디고또견딘다.임신7개월차에접어든금실은어딘지모를낯선땅에서아기를낳게될것이라직감한다.

어둠저편에서열병을앓는듯한소년의목소리가들려온다.
“엄마,우린들개가되는건가요?”_본문에서

지난한삶을살아온그들의사연이금실,따냐,들숙,인설,오순등의목소리를타고차례차례들려온다.병원간호사로일하다강제이주로인해갑작스레해고된사람,러시아인남편과결혼했지만매몰차게이혼당한후아이와단둘이열차에실린사람,출산한지얼마되지않은젖먹이아이를안고열차에오른사람…….그때누군가입을연다.우리는지금‘카자흐스탄’으로향하고있는중이라고.

뿌리를찾아떠도는이들을그리는섬세한시선
그들을호명하고그들의이야기에숨을불어넣다

러시아에서태어나고자랐지만끝내이방인일수밖에없는그들에게땅은‘땅’그이상의의미를가지고있다.무언가를심고,작물이자라나고,황무지가비옥해지고,그렇게다시정착하여뿌리내릴수있을것이라는‘희망’.하지만그들은몇대에걸쳐일궈온그희망을하루아침에빼앗기고만다.고려인연구센터소장윤상원교수는《떠도는땅》을읽고“고려인의150년역사를응축하고있”는,“디아스포라민족인고려인이겪은비극을잊지않게하는비망록”이라고말했다.김숨은방대한양의자료를꼼꼼하게살피고정리하여고려인의디아스포라적운명을한편의작품으로완성시켰고이야기속인물들에게이름을부여해차례로그들을호명한다.특히소설전체를가득채우고있는밀도높은대화에선이야기를끌고나가는부드러운힘이느껴지는한편각각의인물에빈틈없는입체성을부여한다.뿌리내릴땅을애타게갈망했지만끝내빼앗기고그땅위에하염없이부유하는사람들.김숨은《떠도는땅》을통해암흑처럼드리워진어둠을거두고다시대지의녹진한빛을향해나아갈그들의단단한걸음과굳은결심을글로써피워냈다.

소설가전성태는《떠도는땅》을두고“한번도개인의발화를박탈하지않으면서도때로는주인없는목소리가되어인간의운명을,여성의수난을울림있게노래한다”고평했다.김숨은비극적인역사에매몰된인간의숭고함을담담한문체로풀어내며“뿌리를잃고떠도는존재들”에대한이야기를완성시켰다.이소설은다시는반복되지않아야할과거의역사를기억하게하고,더나아가우리주변,경계에놓인사람들의떠도는삶까지도다시돌아보게한다는점에서큰의미를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