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키아 카르타고 이야기 : 전설로 사라진 역사, 그리스-로마 문명

페니키아 카르타고 이야기 : 전설로 사라진 역사, 그리스-로마 문명

$22.00
Description
고대 지중해를 주름잡던 항해와 상업의 민족
페니키아-카르타고의 3천 년 역사
알파벳과 갤리선의 발명자들,
그들은 왜 역사에서 지워져버렸는가?
페니키아-카르타고의 역사를 국내 최초로 소개한 통사(通史). 그리스-로마 문명의 조연으로만 머물러 있던 페니키아인들의 사라진 문명을 오롯이 복원하여 흥미진진한 고대 지중해 세계의 한복판으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세계 최초의 항구도시 비블로스의 고고학 유적지에서 출발하여 카르타고의 비극적인 멸망까지 3천 년 역사가 생생한 필치로 펼쳐진다. 책의 전반부는 페니키아인들의 이야기다. 알파벳과 갤리선의 발명자인 페니키아인들이 백향목과 자줏빛 염료로 해양 제국을 일으키고, 아시아 대륙의 거대한 제국들과 상호작용하며, 새롭게 떠오르는 강자 그리스인들과 경쟁한 역사가 소개된다. 책의 후반부는 페니키아인들의 후손인 카르타고인들의 역사다. 오늘날 북아프리카 튀니지에 터전을 마련한 카르타고는 서지중해의 교역망과 패권을 장악했지만, 3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 등 로마와 치열한 투쟁을 벌이다가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이 책은 고대 지중해 세계의 주요한 일원이었던 페니키아-카르타고인들의 이야기, 즉 그리스-로마 문명에 가려 숨겨져 있던 빛나는 반쪽을 복원함으로써 고대사의 새로운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저자

한종수

저자:한종수
서울에서태어나고려대학교중어중문학과를졸업하고,롯데관광과한국토지공사(현LH),세종시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근무했다.여의도청년회의소와역사민주올레모임,사마천학회등에서활동하고있다.전쟁사를비롯해다양한주제의역사를연구하며집필과답사,강연에전념하고있다.
지은책으로대표작『강남의탄생』(2016)을비롯하여『2차대전의마이너리그』(2015,진중문고선정),『서서울에가면우리는』(2018,세종도서선정),『구호기사단천년의서사시』(2023),『이스라엘국방군제7기갑여단사』(2023),『미해병대이야기』(2021),『라면의재발견』(2021),『제갈량과한니발,두남자이야기』(2013),『세상을만든여행자들』(2010)등이있으며,옮긴책으로는『영락제』(2017),『환관이야기』(2015),『제국은어떻게망가지는가』(2012)등이있다.

목차


머리말

1장페니키아의탄생과발전
페니키아,역사의무대에다시등장하다|세계최고最古의도시비블로스
페니키아의백향목|티레의등장과자주색염료그리고역청
고대오리엔트와페니키아의격변|국제상업도시우가리트
철기시대로의격변

2장페니키아의황금시대
페니키아의장자시돈|페니키아알파벳|티레와이스라엘왕국의밀월
대항해시대와교역거점건설|페니키아인이만든또하나의걸작
티레의패권장악과번영|페니키아의다양한산업|멜카르트의기둥
페니키아의성공이유

3장제국사이의페니키아
초강대국아시리아시대의페니키아|신바빌로니아시대의페니키아
페르시아패권아래서의부흥

4장그리스인과의전쟁과페니키아본토의쇠락
바다의라이벌|페르시아전쟁의발단이페니키아?
이오니아봉기와페니키아인|숙적아테네의부상
아테네의해군확장과페니키아의출정|아르테미시온참사
살라미스결전전야|대패와후유증|페니키아와그리스의계속되는전쟁
티레공방전|티레의몰락과카르타고의부상

페니키아인의이모저모

5장카르타고의탄생과발전
카르타고의건국신화|엘리사전설의진상|카르타고의위치
카르타고의대두|카르타고‘제국’의형성|그리스인과의투쟁
시칠리아를둘러싼지중해민족들의각축|말코스의쿠데타
마고왕조의서지중해패권장악|로마와의조약체결
페르시아전쟁전야|1차시칠리아전쟁|동맹의종말|농업대국카르타고
한노의대항해|히밀코의항해|카르타고의사하라진출
2차시칠리아전쟁|3차시칠리아전쟁|카르타고와그리스가서로에게미친영향
휴전과카르타고공화국|4,5차시칠리아전쟁과디오니시우스의죽음
20년의평화와티몰레온의등장|6차시칠리아전쟁|카르타고의두번째참패
7차시칠리아전쟁|시칠리아와이탈리아의전란|피로스전쟁
카르타고의마지막시라쿠사포위|카르타고-로마동맹과피로스의몰락

6장1차포에니전쟁전야
정치제도비교|군사력비교|카르타고의경제력

7장1차포에니전쟁
어이없는시작|아크라가스의혈투|로마해군의탄생|밀라이해전
넓어지는전장|에크노무스해전과로마군의아프리카침공
바그라다스전투와대해난사고|늪으로빠져드는두강대국
코끼리부대의궤멸|릴리바이움공방전|드레파눔해전
카르타고의태만과하밀카르의등장|카르타고의효웅,하밀카르바르카
전쟁의승패를가른두나라의재정정책|로마함대의부활과혁신
로마와카르타고함대의재등장|아이가테스해전과강화조약
1차포에니전쟁총평

8장두전쟁의막간
용병전쟁과하밀카르의와신상담|스페인의바르카가문
로마와의조약과한니발의등장|한니발의데뷔전

9장2차포에니전쟁
사군툼그리고개전|대원정준비|전설적인대원정의시작
알프스를넘다|북이탈리아의갈리아인|티키누스전투|트레비아전투
아르노습지횡단|트라시메노전투|마케도니아의접근
굼벵이파비우스의등장|칸나이전투|한니발의딜레마
원로원을중심으로뭉친로마인|남부이탈리아의‘지배자’한니발
시라쿠사와사르데냐가반로마연합에가세하다
한니발과필리포스5세의동맹|캄파니아의한니발|시라쿠사함락
타렌툼함락|한니발대로마|여전한한니발의위력
성문에한니발이있다|빛을잃은한니발|한니발과마르켈루스의용쟁호투
마르켈루스의어이없는전사|바르카대스키피오|스키피오의등장
카르타헤나함락|바이쿨라전투|메타우루스전투|일리파전투
너무젊은집정관|스키피오의아프리카상륙|누미디아의상실
한니발,이탈리아를떠나다!|자마전투

10장마지막번영
수페트한니발|한니발의망명|시리아의대패
한니발의2차망명|스키피오의재판과죽음
한니발의최후|카르타고는멸망해야한다!

11장포에니의바다가사라지다
3차포에니전쟁의배경|마지막전쟁의시작
결사항전에나선카르타고인들|카르타고의구조와방어
카르타고의승리|마시니사와카토의죽음|소스키피오의등장
궁지에몰린카르타고|생지옥으로변한카르타고
최후의보루비르사언덕|뒷이야기

맺음말

페니키아-카르타고연표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고대지중해하면사람들은무엇을떠올릴까?피라미드로상징되는이집트문명,그리스신화와<일리아스><오디세이아>,아테네를위시한그리스의폴리스들과페르시아제국의대전쟁,그리고지중해를자신의호수로만든끝판왕로마가떠오를것이다.하지만그들못지않게활약했고,몇세기동안그리스와로마를압도하던사람들이있었으니바로페니키아인들이다.세계최초의항구도시와해군을건설한사람들이바로페니키아인들이었고,그리스인들이지중해에식민지를건설하기훨씬전부터스페인과시칠리아등여러식민도시를건설한사람들도페니키아의후손인카르타고인들이었다.고대지중해의상업과바다를장악했지만결국그들은그리스-로마세계에패배하여역사저편으로사라졌다.알파벳의발명자임에도자신들의기록을거의남기지못했다는아이러니때문에우리는그들을서양고대사의조연으로만만날수있을뿐이다.이책에서독자들은정치·경제적으로는그리스-로마문명의라이벌이자종교적으로는이스라엘의최대강적이었던페니키아-카르타고문명의전반적인역사를생생하게만날수있을것이다.

페니키아문명을일으킨백향목과자줏빛염료
고대페니키아인들은지금의시리아-레바논해안,이스라엘북부에여러도시를건설하여살았다.비록한번도정치적통일을이루지못했지만,시돈,티레,비블로스,아라두스,베리투스등페니키아의항구도시들은기원전1200~800년에황금시대를구가했다.페니키아의라이벌이던그리스인들역시정치적통일을이루지못했지만,단한번힘을모아대제국페르시아에대항해싸운역사가있다.반면페니키아인들은아시아대륙의대제국들(아시리아,신바빌로니아,페르시아,그리고알렉산드로스대왕의제국)에복속되어야했다.그리스-로마가주도권을잡은고대지중해세계에서페니키아인들은상업의민족,악명높은‘이코노믹애니멀’로폄훼되고그리스인과로마인들은명예로운전사민족으로여겨졌다.
고고학자들은세계에서가장오래된항구도시비블로스에서사람이살기시작한것을기원전8800년까지로보고있다.기원전2900년에건설된것으로추정되는석조도시도발굴되었다.비블로스유적지에는망루,도로,배수시설등이있었고성벽의두께는25미터에달했다.그러나비블로스는예고편에불과했다.이후페니키아는시돈과티레,두도시를투톱으로지중해해상무역을통해큰번영을구가했다.
페니키아의주요수출품은2,000년동안지중해최고의목재였던백향목(레바논삼나무)이었다.페니키아는주요고객인이집트와의교역에서백향목을수출하고파피루스를수입했는데비블로스라는이름이여기서파생되었다(바이블Bible의어원도뿌리가같다).백향목과함께페니키아에막대한부를가져온것은바다달팽이에서추출한자주색염료였다.매우짙은자주색을띠는이염료는상상을초월하는엄청난고가의사치재로그리스인들은이색을포이닉스phonix라고불렀으며페니키아phoenicia와포에니poeni라는이름도여기에서유래했다.백향목과자줏빛염료,이두교역품은페니키아문명을말그대로일으켜세웠다.

해상무역이촉발한알파벳발명
해상무역에나선페니키아인들은여러민족의언어를접할수밖에없었다.하지만메소포타미아의기존설형문자나이집트상형문자로는표기가너무번거로워장부나문서를쓰기어려웠다.당연히쉽고빠르게표기할수있는문자의필요성이증가했다.결국기원전11세기중반페니키아인들은우가리트문자를개량하여22개의알파벳으로구성되고,왼쪽에서오른쪽으로쓰는페니키아문자체계를만들었다.이는획기적인발명이었으므로그리스를비롯한대부분의지중해문화권에전파되었다.심지어종교적으로완전히대척점에있던이스라엘인들조차이를받아들여히브리문자를만들정도였다.
특히기원전10세기히람1세치하의티레는그유명한솔로몬왕치하의이스라엘과긴밀한경제협력관계를맺기도했다.일례로이스라엘의성전을페니키아의백향목과자재들로페니키아기술자들이건설했다.그대가로솔로몬은대량의밀과양질의올리브유를티레에보냈다.이스라엘은내륙교역로와군사적안정을제공하고페니키아는선박,상업,기술노하우를제공했다.고대세계의막강한종교적라이벌간의협력이었다(성서에나오는악명높은‘바알’신은페니키아의최고신이다.한니발[바알의은총],하스드루발[바알의도움]등카르타고남성의이름도여기서유래했다).
그러나큰그림으로보면페니키아인들은알파벳을창조했지만아이러니하게도자신들의기록을후세에남기지못했다.그래서서구문화의양대축을이룬그리스-로마세계와일신교의기초가된헤브라이즘세계는강력한라이벌인포에니세계를일생일대의적으로간주하고그들의역사를곡해하고철저히말살해버린것이다.

활발한식민지건설과갤리선의탄생
그리스인들은지중해각지에식민도시를건설했다.나폴리,이스탄불,마르세유,타란토,시라쿠사등이그리스인들이건설해아직도남아있는도시들이다.그러나지중해세계에서그리스인들의활약은역사의절반에불과했다.페니키아인들은그리스인들보다먼저해외에식민지를건설했다.그들이세운스페인의카디스,카르타헤나,바르셀로나,말라가,리스본,탕헤르,리비아의트리폴리,사르데냐의칼리아리,시칠리아의팔레르모등은지금도건재하다.그리스인들의도시가대부분동지중해와흑해에있었던것과달리페니키아인들이건설한도시는대부분서지중해와대서양연안에있었다는사실을보면그들의항해술이얼마나뛰어났는지짐작할수있다.그리스인들이‘헤라클레스의기둥’이라고불렀던오늘날지브롤터해협의원조명칭은페니키아인들이칭한‘멜카르트의기둥’이었다(멜카르트는페니키아의신이다).
백향목이라는최고의선박용자재를가진페니키아인들은타고난엔지니어이기도했다.페니키아인들은사람으로치면척추에해당하는용골과갈비뼈에해당하는빔과프레임으로선체의뼈대를만들어원양항해에적합한배를만들었다.이미기원전9세기부터노를이층으로배치하는바이렘식갤리선을건조했고선수에는충각을달아전투에사용했다.고대지중해를주름잡던갤리선의탄생이었다.갤리선은점점대형화되어훗날카르타고는5단노선까지보유했다.페니키아인들은이최첨단선박으로지중해를사실상‘페니키아의바다’로만들었다.페니키아인들이계속해서서쪽으로진출했던이유는무엇일까?그들이찾고자한것은바로금속이었다.특히스페인은금속의보고였고틴토강유역에유명한은광이있었다.『박물지』로유명한플리니우스는“이집트인은왕조를만들었고,그리스인은민주주의를만들었으며,페니키아인은상업을만들었다”는명언을남기기도했다.

페니키아본토의몰락과카르타고의부상
오리엔트에아시리아,신바빌로니아,페르시아등의대제국이들어서면서페니키아의처지는저항과복속이반복되는역사였다.페르시아제국의관대한지배아래에서페니키아는다소자율성을회복하고번영을누렸지만그리스라는강력한라이벌의등장으로점차해상에서패권을상실하게되었다.페니키아는두차례의그리스-페르시아전쟁에해군력으로참전했지만대패했고,이후페르시아를멸망시키고오리엔트를통일한알렉산드로스대왕에의해티레가정복당해파괴되었다(기원전332년).페니키아본토의몰락으로새롭게지중해의여왕이된것은티레의주민들이이주해건설한카르타고였다.
카르타고건설시기는기원전814년으로보는데,이는로마가건국되었던753년보다약반세기이상앞선다.카르타고는페니키아인들의무역망중간지점인북아프리카튀니지에건설되었다.페니키아본토와다른점은카르타고가군사적인성격을띤다는것이었다.카르타고인들은지중해를두고그리스인들과지속적으로투쟁하며제국으로성장했고기원전3세기까지서지중해의교역을거의독점하기에이른다.지정학적으로특히중요한곳은지중해에서가장큰섬이자지중해패권을노리는국가라면반드시차지해야할시칠리아였다.카르타고와범그리스세력(주요하게는시라쿠사)은시칠리아섬을두고7차례나전쟁을치렀다.그러는사이이탈리아에서는카르타고의최대적수가될로마가빠르게성장하고있었다.

1차포에니전쟁과지중해제해권의상실
지중해패권을두고벌어질카르타고와로마의충돌은불가피한것이었다.카르타고는명목상공화국이었지만상업귀족들이국가권력을장악하고있었다.그리고군사령관들은정치적힘이약했고전쟁에서패배할시에사형등가혹한벌을받았다.국민개병제를기반으로한로마와달리평민세력이없었던카르타고는군대를외국의용병에의존했다.한마디로카르타고는경제력은강하지만군사력에는문제점이많은나라였다.카르타고는해외식민지와의관계도일방적인지배와예속관계였던반면로마는동맹세력들에게로마의사업에참가지분을주었다.이런이유로로마는가용병력이상당했고기원전4세기말에는50만명에달하는군대를활용할수있었다.알렉산드로스가동방원정에동원한병력이5만명이었고,페르시아가그리스를침공할때동원한병력도20만명수준이었음을감안할때로마의동원력은엄청난것이었다.이런무지막지한동원력덕분에로마는전투에는져도전쟁은지지않는나라가되었다.
1차포에니전쟁은지중해의침몰하지않는항공모함인시칠리아에로마가진입하자카르타고가대응함으로써벌어졌다.전쟁은두나라중어느한쪽이시칠리아를완전히장악하기전까지는계속될수밖에없었다.승자는서지중해의지배자가될것이었다.전통적인육군강국이었던로마는새롭게해군을건설했다.당시해전은충각의충돌로승패가결정되었는데이는해양민족인카르타고에게전통적인우위를가져다주었다.그러자로마는선수에까마귀라고불리는상선교를장착하여선상백병전을펼침으로써열세를만회하려고했다(상선교끝의쇠뿔이까마귀부리를닮았기때문에그러한이름이붙었다).까마귀는전장에서강력한힘을발휘했고로마해군에큰승리를가져다주었다.하지만1톤에달하는무게때문에선수가과도하게무거워져항해에악영향을미쳤고폭풍우를만났을때는대규모해난사고를일으켰다.몇번의심각한해난사고로수많은병력과선박을잃은로마는해군을아예포기하기까지했는데,카르타고는이기회를이용하지못하고태만하게날려버렸다.당시카르타고는내륙진출파와해외진출파로국론이분열되어있었기때문이다.결국함대를재건한로마에패배한카르타고는시칠리아를포기하게되었고사르데냐섬과코르시카섬까지로마에빼앗겨버렸다(기원전241년).
한니발이로마본토에서전쟁을감행하다
1차포에니전쟁후카르타고의유능한장군하밀카르(한니발의아버지)는스페인남부를정복했다.사위하스드루발은장인의기반을더욱견고히하여스페인을사실상바르카가문의왕국으로만들었다.한니발바르카가매형하스드루발의대권을이어받은후2차포에니전쟁이일어난다.알렉산드로스이후역사상최강의명장인한니발의기본전략은이탈리아가전쟁터가되어야한다는것이었으며이를통한로마연합의붕괴였다.1차전쟁당시카르타고는제해권을이미상실했기때문에한니발은스페인에서육로로북상하여이탈리아로진격했다.이과정에서코끼리부대를이끌고알프스를넘은한니발의전설이생겼다.본토를침공당해경악한로마인들은급히대군을보냈지만트레비아전투와트라시메노전투,칸나이전투등에서수만명의희생자를내며대패했다.
한니발은당시로마의지배가시작된지오래되지않은남부이탈리아를로마로부터떼어놓기위해로마를바로치지않고남하했다.남이탈리아에서그는해방자를자처하며자신의세력을형성했다.로마는퀸투스파비우스를중심으로야전에서우월한한니발과정면대결하지않고지구전·소모전으로대결하는전략을취했다.한니발의전략은이탈리아본토에서싸우며로마의동맹을해체하고,본국으로부터병력충원과물자보급을받고로마를포위해서치는것이었다.그러나로마가시칠리아를재정복함으로써그의계획은산산조각났다.
한니발이조국의도움도없이이탈리아한복판에서초인적으로버티는사이,로마의명장푸블리우스코르넬리우스스키피오는스페인으로가서바르카가문의기반을붕괴시켰다.그는승리의기세를몰아카르타고본토로침공해한니발을이탈리아에서아프리카로불러들였고마침내자마전투에서승리했다.이로써2차포에니전쟁이종료되었고지중해에서의완전한로마우위시대가열렸으며아프리카기반의지중해제국이탄생할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