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딸 : 아니 에르노 에세이

다른 딸 : 아니 에르노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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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건
당신을 되살린 후 다시 죽이기 위해서일까요? (p.26)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당신을 향해 편지를 쓰는 것이다, 그리움도 애틋함도 없이. 당신을 되살린 후, 다시 죽이기 위해서. 자신의 경험을 딛고 세계를 구성하는 작가 아니 에르노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당신’을 마주하는 작품 〈다른 딸〉이 출간되었다. 작가가 1984년 르노드 상을 받았던 〈남자의 자리〉에서 아버지의 삶을,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한 여자〉에서 어머니의 인생을 기록하였다면, 〈다른 딸〉이 천착하는 대상은 ‘당신’, 아니 에르노가 태어나기 2년 전에 죽은 언니 지네트이다.

Nil 출판사의 편지 시리즈 기획(‘Les Affranchis’)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한 〈다른 딸〉은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편지를 써달라는 출판사의 제안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리하여 시작되는 이 편지는 아니 에르노 특유의 아름다운 칼날 같은 문체를 통해 우아한 유속으로, 그러나 확실하게 ‘나의 흔적에 얹힌’ 당신을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으로 죽은 언니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 촉발된 어린아이의 불안과 혼란, 부재와 존재의 탐구, 그리고 마침내 ‘당신’에 대한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온전한 ‘나’로 향하고자 하는 여정이 모두 여기, 이 물결에 스며있다.
저자

아니에르노

1940년9월1일프랑스릴본에서태어나노르망디이브토에서성장했다.프랑스작가이자문학교수이다.루앙대학교에서문학을공부한뒤중등학교교사,대학교원등의자리를거쳐문학교수자격을획득했다.자전적요소가강한그녀의작품들은사회학과밀접한관계를이루고있다.유년시절과청소년기를노르망디의소읍이브토Yvetot에서보냈고,노동자에서소상인이된부모를둔소박한가정에서태어났다....

목차

다른딸-9p
'나와당신'(추천사)-93p

출판사 서평

"내가당신에게편지를쓰는건
당신을되살린후다시죽이기위해서일까요?"

더이상존재하지않는당신을향해편지를쓰는것이다,그리움도애틋함도없이.당신을되살린후,다시죽이기위해서.
자신의경험을딛고세계를구성하는작가아니에르노가‘언어로표현할수없는당신’을마주하는작품<다른딸>이출간되었다.작가가1984년르노드상을받았던<남자의자리>에서아버지의삶을,어머니의죽음을애도하며쓴<한여자>에서어머니의인생을기록하였다면,<다른딸>이천착하는대상은‘당신’,아니에르노가태어나기2년전에죽은언니지네트이다.
Nil출판사의편지시리즈기획(‘LesAffranchis’)의첫번째작품이기도한<다른딸>은한번도써본적없는편지를써달라는출판사의제안으로부터출발했다.그리하여시작되는이편지는아니에르노특유의아름다운칼날같은문체를통해우아한유속으로,그러나확실하게‘나의흔적에얹힌’당신을거슬러올라간다.처음으로죽은언니의존재를알게된순간촉발된어린아이의불안과혼란,부재와존재의탐구,그리고마침내‘당신’에대한글을쓰는행위를통해온전한‘나’로향하고자하는여정이모두여기,이물결에스며있다.

"나의위치가일순간에바뀌었으니까요.
부모님과나사이에이제당신이있어요.
보이지않지만사랑스러운당신이."

사람은누구나스스로가고유한존재이기를희망한다.그렇기에열살의어느여름,작가가우연히듣게된죽은언니의존재는영영그를사로잡는다.자신이태어나기전에죽었기에삶의궤적이겹친적은없었으나,분명히‘나’를선행한‘당신’이존재했다는것.그리하여‘나’는탄생의순간부터‘당신’의그림자가겹쳐진채로살아갈수밖에없으리라는것은어린‘나’의고유성을훼손당하는충격적인경험이다.
마주한진실은‘나’를딸(One)이아니라,다른딸(Theother)의지위로밀려나게한다.마지막순간까지착한성녀로죽어버린언니는가족들의절대적인비밀속에서‘완전히닫혀버린이야기’가되고,‘다른딸’인‘나’는영영비교의대상이되면서도죽은‘당신’을넘어설수없다.그리하여‘당신’은부재하지만불멸하는자이며,‘나’는존재하지만‘당신’의끄트머리에서탄생하는대체품이다.

"난외동딸이아니었어요.
무에서솟아난또다른아이가있으니까.
내가받았다고믿었던모든사랑은가짜였던거예요."

작가의유년시절을혼란에빠뜨린사건은고장난테이프처럼몇십년의세월을거치며삶의순간순간끊임없이복기된다.이것은어린아이가의지할수있는가장단단한기반,부모의사랑에대한신뢰마저뒤흔들만큼강력한것이다.
지금까지사랑을받았다고확신했던것들이사실은온전히‘나’를향한것이아니었다면,어쩌면내위로덧입혀진다른이를향한불멸의사랑이었다면.그들과‘나’의침묵이완전한공백이아니라‘당신’을향한어떠한맥락속에존재하는것이라면‘나’는스스로를‘나’라고부를수있을까.‘나’는온전한‘내’가되기위해어떻게해야할것인가.작가는일생에걸쳐고민해온이문제를탐구하며진정한‘나’로서존재하기위한글쓰기를시작한다.

아니면당신과당신의그림자로부터떠나기위해
당신을되살리고다시죽게한것일수도있고요.
당신에게서벗어나려고
죽은자들의오래지속되는삶에대항해투쟁하려고.

그리하여작가는편지를쓴다.‘나’의존재에덧입혀진‘당신’을부르면서,그러나스스로를향해서.글을통해‘당신’을되살리고,낱낱이밝히고,‘나’에게스민‘당신’을벗어나오로지나로서존재하기위해서.탄생의순간부터드리워진‘당신’의그림자를분리해내고,온전한‘내’가되기위해서.
물론이편지에적힌‘당신’은더이상세상에존재하지않고,이편지를받을수없을것이다.이편지의수신자는'당신'이아니다.주소가적히고우표가붙은편지봉투가아닌,한권의책에담긴이편지를받을사람은바로독자들이다.그렇지만괜찮다.아니,그래야만하는지도모른다.어떤'상상할수없는신비한아날로그방식으로당신에게'닿을지도모를일이기때문이다.

"물론,이편지의수신자는당신이아닙니다.당신은읽지않을테니까요.편지를받을사람은다른사람들,바로독자예요.내가이편지를쓸때,당신만큼이나보이지않았던자들이지요.그러나내마음깊은곳에서는이편지가우리는상상할수없는신비한아날로그방식으로당신에게닿기를원하고있습니다.아주오래전여름의일요일에,어쩌면튀렝의방에서파베세가자살했던그날에,나역시수신자가아니었던이야기를통해당신이라는존재에대한소식을들었던것처럼말입니다."


<책속의문장>

이일을이야기로만드는건,60년전부터벽장안에처박혀있던필름을꺼내어현상하듯,흐릿해진경험을끄집어내어이야기에끝을내려는것이기도합니다.-14p

해가지날수록나는이이야기에서멀어졌다고생각했지만그건착각에불과했습니다.당신과나사이에는시간이존재하지않아요.한번도나누지않았던언어들만있을뿐.-20p

현실은서로배척하는단어들이만들어냅니다.더/덜,또는/그리고,전/후,존재하거나존재하지않거나,삶이나죽음같은단어들에의해.-60p

당신과나에관한두이야기는시간의흐름에따른순서와는거꾸로놓여있습니다.당신이죽는이야기이전에내가죽을뻔했던이야기가있거든요.확실한건,상상하지도못한당신의죽음에대해들었던1950년여름의일요일을내가기억한다는것이에요.나는이제야훨씬더세밀하게봅니다.릴본의방과창옆에놓여있던부모님침대,그바로옆의분홍색나무로된내침대를.나는내자리에누워있는당신을봅니다.죽은아이는나예요.-35p

나는당신이죽었기때문에글을쓰는것이아닙니다.당신이죽은것은내가글을쓰도록하기위함이에요.여기에는큰차이가있습니다.-39p

당신이거기있어요.보이지않지만,그들사이에.그들의고통으로.-47p

이편지를시작하기전에는무심코당신을떠올려도아무런생각이들지않았어요.하지만지금은평온하던마음이산산이부서졌습니다.글을쓰면쓸수록마치꿈을꾸듯이끼만잔뜩돋은인적없는습지에서걸음을내딛는듯하고,단어들의틈새를헤치고나아가불분명한것들로가득찬공간을넘어가야할것만같아요.내겐당신을위한언어도,당신에게말해야할언어도없으며,부정적인방식을통해지속적인비존재상태로있는당신에대해무슨말을해야할지모른다는생각도듭니다.감정과정서의언어바깥에있는당신은비언어입니다.-60p

당신은내흔적에얹힌당신의흔적을통해서만존재할뿐이지요.당신에대해쓰는건존재하지않는당신주위를맴돌며,남겨진부재를묘사하는것에지나지않아요.당신은글쓰기로채울수없는텅빈형체입니다.-62

나는그들의고통속에서산것이아니라,당신의부재속에서살았습니다.-64p

나는내가있었던그곳에당신을데려다놓을수없고,내존재를당신의존재로바꿀수없습니다.죽음이있고,삶이있지요.당신또는나.나는존재하기위해서당신을부인해야만했어요.-82p

물론,이편지의수신자는당신이아닙니다.당신은읽지않을테니까요.편지를받을사람은다른사람들,바로독자예요.내가이편지를쓸때,당신만큼이나보이지않았던자들이지요.
그러나내마음깊은곳에서는이편지가우리는상상할수없는신비한아날로그방식으로당신에게닿기를원하고있습니다.아주오래전여름의일요일에,어쩌면튀렝의방에서파베세가자살했던그날에,나역시수신자가아니었던이야기를통해당신이라는존재에대한소식을들었던것처럼말입니다.-9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