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의 낮 (개정판)

열다섯 번의 낮 (개정판)

$15.50
Description
“눈물의 무게와 질량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염분이 한창 진할 때가 있고
또 그것이 맑아질 때가 있는 것이다.”
작가이자 번역가인 신유진의 첫 산문집 『열다섯 번의 낮』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글로 세상을 만들어 내 그 속에 자신을 숨겨왔던 이가, 조심스럽게 자신이 지나온 날들을 적어 보냈다. 낮을 배경으로 한 열다섯 개의 이야기 속에는 프랑스에서 이방인으로 보내온 십오 년이, 이 글을 쓸 당시 그녀가 살아온 서른다섯 해가 온전히 녹아들어 짧지 않은 글이 되었다.
그녀가 글을 통해 붙잡으려 하는 것들, 쉬이 지나치지 못하고 기어코 마음을 줄 수밖에 없는 것들의 목록은 함부로 다루었던 가족사진이나 누군가의 그림자, 혹은 늙은 연극배우, 사라져 버린 건물 관리인, 낡은 스웨터, 버려진 냉장고, 죽은 도마뱀, 누군가의 장례식 등등… 결국 평범한 일상이거나 너무 초라해서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것들이다. 그것들이 "자꾸만 눈에 밟혀 글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저자의 말속에서 우리도 이미 마주친 적 있지만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슬픈 얼굴'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개정판에서는 2023년 오늘의 작가가 보내온 글 「촛불을 켜는 사람」이 추가 수록되었다. 작가의 지난 글과 오늘의 글을 함께 읽으며 그 변화를 눈여겨보는 것도 책을 읽는 이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절제되고 섬세한 문장으로 닦아, 그 안에 숨어있던 의미와 감정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그녀의 산문집은 한 사람의 일상의 기록이 단순히 벌어진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어떻게 아름다운 산문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

신유진

저자:신유진

파리의오래된극장을돌아다니며언어를배웠다.파리8대학에서연극을전공했다.아니에르노의『세월』『진정한장소』『사진의용도』『빈옷장』『남자의자리』,에르베기베르의『연민의기록』을번역했고,프랑스근현대산문집『가만히,걷는다』를엮고옮겼다.산문집『창문너머어렴풋이』『몽카페』『열다섯번의낮』『열다섯번의밤』을지었다.

목차

서문―8
겨울이었다―14
어느일요일―28
로자에대한짧은기억―40
마리안의장례―52
남향―66
카페드플로르―82
어느늙은배우―94
폭염―108
거리에서,혼자―120
냉장고를위한짧은단상―132
도마뱀살해사건―146
문지기,토마―158
부르고뉴호텔―172
멀리서온청춘―188
여름의맛―200
태양을마주하고―214
촛불을켜는사람―226

출판사 서평

서른다섯해의삶,십오년의이방인그리고열다섯날의기록
2023년오늘의작가가보내온글「촛불을켜는사람」추가수록

작가이자번역가인신유진의첫산문집『열다섯번의낮』의개정판이출간되었다.글로세상을만들어내그속에자신을숨겨왔던이가,조심스럽게자신이지나온날들을적어보냈다.낮을배경으로한열다섯개의이야기속에는프랑스에서이방인으로보내온십오년이,이글을쓸당시그녀가살아온서른다섯해가온전히녹아들어짧지않은글이되었다.기록한다는것은무언가를기억하기위해애쓰는것일테다.작가는기억이란결국시간이지나면윤색되고과장되어버리는것이라고믿을수없는것이라고말하면서도,그럼에도차마흘러가게내버려둘수는없던,애써붙잡지않을수없었던작은것들의이야기를기록하며기억한다.

“아무도기억해주지않는것들을쓰고싶다.그애가모두가기억해야만하는것들을쓰고싶어했던것처럼.발바닥밑에붙은하찮은것들,광원의반대편에선것들,로자를품은그애의이야기를쓰고싶다.”-본문중에서

그녀가그렇게애써붙잡으려하는것들,쉬이지나치지못하고기어코마음을줄수밖에없던것들의목록을살펴보면,함부로다루었던가족사진이나누군가의그림자,혹은늙은배우,사라져버린건물관리인,낡은스웨터,버려진냉장고,죽은도마뱀,누군가의장례식등등....결국평범한일상들혹은너무초라해서아무도기억해주지않는것들뿐이다.그것들이불러오는지나가버린시간들이다.이야기속에담긴그녀의시선의깊이와온도는우리들의발걸음을멈추어서게만든다.작은숨을불어넣고그것들이여전히존재하고있음을,가벼운것이아님을우리앞에넌지시드러내보인다.자신의결혼식사진을보고떠오르는기억을붙잡는그녀의방식을보자면우리는잠시눈을감게될지도.

“결혼식을마친날,엄마는주방에서울었다.창문을활짝열고제법쌀쌀한이른가을바람에얼굴을맞으며하얀거품같은설움을뿜어내며울었다.1993년의것과는또다른울음이었다.오히려주방옆,작은서재에서방문을걸어잠그고소리내어쏟았던나의울음이1993년의그것과닮았을것이다.말을잇지못하고입만벙긋벙긋했던엄마의미완성문장들,그뒤에올말을알수있을것도같았다.눈물의무게와질량이각기다르다는것을깨달았다.염분이한창진할때가있고,또그것이맑아질때가있는것이다.정돈하지못한감정을응축하여쏟아낸나의눈물은바닷물처럼짰고,몇번을걸러낸엄마의눈물은담수처럼맑았을테다.”-본문중에서

그녀의글속에숨은슬픈얼굴들을우리는이미알고있는지도모른다.정작작가는“서글픈글은쓰고싶지않다.이미너무많은소설과시가서글픔을노래하지않았는가.마치삶의주제가그것하나인것처럼우리는너무많은서러운문장들을만났다.”라고말하지만,사라져가는것들앞에서어떻게슬프지않을수있을까.눈에밟혀글자가되어가는것들을어떻게외면할수있을까.

“나는여전히서러운어떤것을쓰고싶지않으나사라진보라색스웨터가자꾸만눈에밟혀글자가되어가고있다.아무도읽어주지않을까봐겁이나지만어디에도기록되지않고사라지는것들에마음이쓰인다.”-본문중에서

일상속자신이바라보고귀기울였던것들을그리고떠오르는몇가지기억들을담담하게이야기하며깊은울림을전할수있는것은삶을바라보는작가의‘시선’과‘목소리’덕분일것이다.고작한사람이겪은날들이지만,그시선과목소리가책을마주한독자들에게말을건넬것이다.삶은견디는것인지도모른다고,그리고글이견딜수있는하나의방법이될수도있다고말이지요.평범한일상을절제되고섬세한문장으로닦아,그안에숨어있던의미와감정을투명하게보여주는그녀의첫산문집은한사람의일상이단순히벌어진사건의나열이아니라,어떻게아름다운산문이될수있는지를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