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의 밤 (개정판)

열다섯 번의 밤 (개정판)

$15.50
Description
작가이자 번역가인 신유진의 첫 산문집 『열다섯 번의 밤』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열다섯 번의 낮』에서 화려한 빛에 가려진,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허망함과 아름다움을 잊지 않기 위해 제 살에 문신을 새겨 놓는 타투이스트가 되었다면, 『열다섯 번의 밤』에서는 밤의 시간과 공간 속 기억들을 유령처럼 떠돌다 그것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목수가 되었다.
입안에서 부서지던 고소한 어린 시절의 밤을 지나 마약 없이 취했고 권총 없이 자살했던 청춘의 밤을 거쳐 후회와 추억을 공유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오늘의 밤까지, 그녀의 얼굴을, 표정을, 몸짓을 만들어 온, 그 모든 밤의 기억들이 쓸쓸하지만 단단한 문장의 다리로 이어졌다.
개정판에서는 2023년 오늘의 작가가 보내온 글 「슬픔의 박물관」이 추가 수록되었다. 작가의 지난 글과 오늘의 글을 함께 읽으며 그 변화를 눈여겨보는 것도 책을 읽는 이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저자

신유진

파리의오래된극장을돌아다니며언어를배웠다.파리8대학에서연극을전공했다.아니에르노의『세월』『진정한장소』『사진의용도』『빈옷장』『남자의자리』,에르베기베르의『연민의기록』을번역했고,프랑스근현대산문집『가만히,걷는다』를엮고옮겼다.산문집『창문너머어렴풋이』『몽카페』『열다섯번의낮』『열다섯번의밤』과소설집『그렇게우리의이름이되는것이라고』를지었다.

목차

서문―8
너는,―14
그밤,우리가말했던언어―28
커트코베인에대해배웠던모든것―42
루앙시―56
우리의그림자를덮은밤―68
나는지난밤을삼켰다―80
록키―94
시차―108
에리송의밤―124
여름,크리스마스,로베르―140
흔적―152
바다라고부르는것들―166
당신은슬픕니까?―180
여름의끝―198
파리는축제다―210
2012년6월26일,파리에서―226
슬픔의박물관―238

출판사 서평

신유진의문장은사라져가는것들의바스락거림이다.그녀는허망함속에숨겨진아름다움을잊지않기위해제몸에문신을새겨놓는타투이스트이고,허공에아슬하게매달려끊어진기억의다리에못질하는목수이며,황무지가될지도모를밭앞에서기꺼이곡괭이를드는농부이다.그문신은슬프게도아름답고,그다리는위험을무릅쓰고건널만하며,그밭을함께가는일이내게는큰기쁨이다.

I,밤의기억들

그런밤을알고있다.단편적이고불연속적인기억들이어둠의적막과함께내몸을타고기어오른다.입은굳게닫혀누군가를부를수없고,누구도나를부르지않는다.눈을뜨든감든,내가보는것은어둠속에서잠시반짝이는무언가다.시선은오직그반짝임에매달리고,나도모르는사이에그일에매료된다.언젠가이것은내가아니라밤이한일이란사실을알아챘다.목에매달린밤이제뜻대로나를이끌어가는일이다.나는그일을거스를수없다.아니,오히려밤과공모하여그가하는일에기꺼운조력자가된다.그와함께이기억과저기억사이를넘나든다.운이좋다면그것들사이에다리를놓아줄수있을것이다.그러나대개는낡고허름한기억들이라그사이어디쯤에서끊어져허공에매달리기일쑤이다.박명의푸른빛이거리를물들일때가되어서야밤은지칠대로지친나를놓아준다.안도와아쉬움이동시에찾아온다.그러나그것도잠시뿐임을잊지않는다.얼마지나지않아안도와아쉬움의가면이벗겨지고제얼굴인두려움과기대를고스란히드러낸채로,밤이다시찾아올것이다.다시한번내몸을타고목에매달릴것이다.밤이나를끌고다닐것이다.

작가이자번역가인신유진의첫산문집『열다섯번의밤』의개정판이출간되었다.『열다섯번의낮』에서화려한빛에가려진,사라져가는것들에대한허망함과아름다움을잊지않기위해제살에문신을새겨놓는타투이스트가되었다면,『열다섯번의밤』에서는밤의시간과공간속기억들을유령처럼떠돌다그것들사이에다리를놓는목수가되었다.입안에서부서지던고소한어린시절의밤을지나마약없이취했고권총없이자살했던청춘의밤을거쳐후회와추억을공유할누군가가있다는사실만으로도위안이되는오늘의밤까지,그녀의얼굴을,표정을,몸짓을만들어온,그모든밤의기억들이쓸쓸하지만단단한문장의다리로이어졌다.

개정판에서는2023년오늘의작가가보내온글「슬픔의박물관」이추가수록되었다.작가의지난글과오늘의글을함께읽으며그변화를눈여겨보는것도책을읽는이에게또다른즐거움이될것이다.

II.알몸을마주하는일

『열다섯번의밤』에서작가는자신의내밀한이야기로독자를이끈다.‘밤’이란그런것아닌가.홀로견디는시간이고홀로남겨진공간이다.밤이라는시간과공간속에서저자는자신의어린시절로돌아가상처를아이처럼긁어보거나,

"나는벌거숭이밤이아팠다.맨살이찔리는줄도모르고바닥을구르는그것이아파서앓아누웠다.”

20대의시절의끝나지않을것같던지루함과불안함을다시견뎌내보기도하는데,

“나는하이네켄에완전히물려버렸고,히스테리걸린윗집여자는진즉에이사를가버렸다.커트코베인의자살혹은타살에관한이야기는너무흔한소설같아서다시쓰거나읽고싶지않았다.무언가에취해열반을말하기보다땀을흘리며사는삶이수행이라생각했다.나는근육한점없이마른우리의몸이,커트코베인을몰랐던그때보다더부끄러웠다.

그것은수치스럽게여기는자신의알몸을마주하는것과같아서눈을감고싶은본능에사로잡히는일이다.

"나는나의알몸이수치스러워서매번눈을감았다.그저눈을감으면괜찮을줄알았다.”

III.포복으로기어오는밤,덩어리진어둠,그속을더듬거리며나아가듯쓰인문장들.

지나고나면모든것이아름다웠다는말을나는믿지않는다.어떤상처들은이마위의주름처럼시간과함께더욱뚜렷해진다.다만,상처의주름과함께살아가는법을배울뿐이다.지나간모든것은생각보다조금더아팠고,생각보다견딜만했다는그녀의첫중편소설〈여름의끝,사물들〉의주인공처럼,살아간다는것은그런것이므로.젊지도늙지도않은나이,서른중반이되어서작가는자신의수치스러운알몸을보는일이생각보다더아플지모르나견딜만한일임을자신의소설속주인공으로부터배운것일게다.똑바로눈을뜨고,거울에비친자신을바라보듯,되살아나는감정에휘둘리지않고상처들을바라봤을게다.감정에휘둘리지않는다는것,그것은20대부터새로배워온언어덕분이다.아이의언어,즉각적이고즉흥적인언어,감정이아닌감각의언어.이렇게생각하는것은지나친것일까,이제부터그녀가쓰려는모든글들이감정에매몰되지않고,감각에지배당하지않으며,어둠을,허공을더듬거리며나아가듯쓴글이될것이라고.

"외로움,그것은어쩔수없다.……나는외로움을그냥제자리에두려한다.그리고그것이나의언어가되어버렸음을받아들인다.다만거기에감각을더하고싶다."

IV.밤과함께

되살아나는아픔들과황무지가될지도모를두려움과자신이옮겨낸,또앞으로옮겨올인물들을향한미안한마음에도불구하고,
그녀는글을쓸것이다.“다른곳은없다”.곡괭이를들고밭을가는사람처럼,온몸에땀을흘리며적을것이다.
잃어버리고잃게될,수없이많은밤을.
그것들이불러올모든절망에도불구하고
아니,모든절망과함께,
그녀만의언어로글을쓸것이다.
나는아무래도이글이밤과그녀가공모하여벌인일인것만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