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되는 것이라고 (개정판)

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되는 것이라고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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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파리에서 테러 사건으로 연인을 잃은 소은의 이야기(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되는 것이라고), 끝나버린 연극처럼 막이 내린 세계와 나의 사랑(끝난 연극에 대하여), 마지막 순간을 맞은 오랜 연인을 향한 독백(첼시 호텔 세 번째 버전), 때로는 간절했고, 때로는 무책임했던 시절의 얼룩들(얼룩이 된 것들), 먼바다에 빠졌을지도 모르는 청춘을 부르는 절망의 노래(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다섯 편의 소설을 담은, 신유진의 『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되는 것이라고』에는 상실을 마주하는 인물들이 살고 있다. 사랑을, 사람을, 시절을 잃은 이들의 하루, 낮은 목소리로 상실을 읊조리는 절망들, 체념들, 스스로를 향한 위로들, 그리고 다짐들. 소설은 이제 없는 것들의 부재를 기록하며 그것이 언젠가는 분명히 존재했음을, 그것들을 잃었으나 결코 잊지는 않았음을 말한다. 그러니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비록 보잘것없는 얼룩으로 남았을지라도.

저자

신유진

파리의오래된극장을돌아다니며언어를배웠다.파리8대학에서연극을전공했다.아니에르노의『세월』『진정한장소』『사진의용도』『빈옷장』『남자의자리』,에르베기베르의『연민의기록』을번역했고,프랑스근현대산문집『가만히,걷는다』를엮고옮겼다.산문집『창문너머어렴풋이』『몽카페』『열다섯번의낮』『열다섯번의밤』과소설집『그렇게우리의이름이되는것이라고』를지었다.

목차

그렇게우리의이름이되는것이라고―10
끝난연극에대하여―42
첼시호텔세번째버전―86
얼룩이된것들―118
바다에빠지지않도록―154
작가의말―186

출판사 서평

"거기분명,내가구할수있었으나구하지못한것이있었으리라.
내기억의눈보라에얼어죽은,구원의손길을간절히기다렸던어떤것이."

「그렇게우리의이름이되는것이라고」에서소은은파리에서일어난테러사건으로연인을잃고한국으로돌아온다.어느날TV에서방영된다큐멘터리를보게되면서,테러사건생존자들의인터뷰를보게되고이안과함께한시간과그날의사건을다시떠올린다.애틋해서더아픈소은의기억을지나면‘적절할때내리는비’라는뜻의이름을가진‘시우’와의마지막대화에서우리는작은희망하나를발견한다.

“소은씨가땅을잘모르시는구나.눈이내려야지층아래깊숙한곳까지물이스며드는거예요.그래야다음해에싹이잘트죠.땅에물기가있어야.”
“그래도거기있는것들이차가워서얼어죽을지도모르잖아요.”
“그렇게쉽게얼어죽지않아요.왜얼어죽어요,반드시봄이올텐데”

「끝나버린연극에대하여」는연극지문조차제대로읽지못하는‘세계’와그런세계를알아본나의이야기다.서로의마음을실은작은배는현실이라는거대한파도앞에서난파하지만,무대에오르고무대에서내린,하루끝의노을처럼잠시아름다운순간이었던,‘세계’와‘나’가주인공이었던삶의무대는기억속에여전히남는다.

‘우리가처음함께살았던집은작은방한칸이었다’라는문장으로시작하는「첼시호텔세번째버전」에서화자는기억속에서,자신이머물렀던가장소중한세계,그곳을다시한번방문한다.기억속장면들을독백으로이야기하며소설은진행되지만,그것은분명한대상을향한말이자,일방적이긴하나오히려‘대화’라고해야할것이다.

평생시를쓰며살아온화자에게유일하게남아있는‘시’는‘너의기타를멘나의등’이다.그것은‘종이를탈출’하여‘감각으로생생하게존재’한다.과거에사랑하는이의기타를대신멨던그‘등’이현재에도‘감각으로생생하게존재’할수있다면그세계는사라지지않는것이겠지만,‘사라져가는기억’앞에서그곳은더는‘머물수없는세계’가된다.그러니그녀의독백은사랑하는이를보내기위한어떤의식에가깝다.

작가는화자의독백으로밖에들을수없는,사라져가는그세계를글로옮겨적었다.장르는‘한사람이한사람의세계를다녀와서기록한여행기’.레너드코헨이재니스조플린이라는세계를다녀와노래한〈첼시호텔,no.2〉처럼.그리하여소설은한번에끝나는의식이아니라,종이를탈출하여감각으로생생하게존재하는,녹음된노래처럼언제든지반복해서들을수있는,사라지지않고언제든다녀올수있는,슬프고아름다운문장으로빚어진세계가된다.

「얼룩이된것들」의주인공수연은아버지의부도로도망치듯서울을떠나소도시에도착하지만그곳에서도역시‘다리건너에사는아이’로분류된다.또다른‘다리건너에사는아이’인은희는수연과친구가되고,함께집으로가는다리를건너며서울에가는것을꿈꾼다.어느날,수연은옆동에사는은희의방창문에비춘그림자를통해,은희의아버지가그녀를폭행하는장면을목격한다.수연의어머니는그러한환경에놓인은희를불쌍하게여기나,동시에‘불행은감기처럼전염되기쉬운것’이라며은희와의관계에서수연을보호한다.
신유진은자신의산문집『열다섯번의밤』에서불행에관하여말한적이있다.

“슬픔을나누는것과불행을나누는것은다르다.슬픔은위로를원하지만,불행은불행자신외에다른어떤것도원하지않는다.그것은불행한상태,그자체를가장좋아하며변화를싫어하고매우친화적이어서어떻게든자신이있는쪽으로모두를끌어당기려한다.사람을말하는것이아니다.불행이란놈이그렇다는것이다.그러니귀를막고달아나야하는것이아닌가.소돔과고모라를탈출하듯이귀를막고돌아보지말고가야하는것이아닐까.그럴수있을까.불행을버리고가면,불행과함께남은사람은어떻게될까.불행을버리고사람을끌어안는방법은없는것인가.그런기술을배우고싶다.사람의말과불행의말을구분하는법,사람의마음과불행의마음을알아보는법,그것을안다면예의없이손을내미는불행에게완벽한거절의의사를표현할수있을지도모르겠다.불행한사람을구하러갔다가불행에빠져죽지않고사람만을건져오는법,지금우리에게는그것이절실하다.”

우리는무엇으로부터자신을보호하고있는것일까?슬픔이었을까,불행이었을까?슬픔과불행을구분하는것이쉬운일은아닐것이나그둘을구분하려는노력을포기하고있지는않았는지묻지않을수없다.

“아무것도아닌데아무것도아니지가않아자꾸만눈을감게된다.”
“보이니까,눈을감았는데도보이니까어쩔수없는거지”

우리는늘다리위에있다.이쪽과저쪽의경계에서더풍요로운쪽으로고개를향하며열심히발을옮긴다.그러나등뒤의남겨둔어떤것들이늘우리를따라다닌다.다리저편에두고온것과또는붙잡을것없어다리위에서떨어진것들,어쩌면우리가쉽게놓아버린것들,불행이아니라슬픔이었던것들.그런것들이시대의흔적처럼,누군가의팔뚝에,얼굴에,손바닥에얼룩으로새겨진다.눈을감았는데도보이니까어쩔수없는것이되어,아니눈을감으면더욱선명하게보이는잔상처럼.

마지막소설인「바다에빠지지않도록」의줄거리를요약하는것은불필요하다.그러니깐이소설은이를테면기다림의노래와절망의몸짓과체념의눈빛으로이루어진것이다.

다섯소설속,상실이주는아픔과더불어상실을대하는저마다의태도들역시눈여겨볼만하다.막이내린무대처럼끝난사랑은고작카레의맛이나좌지우지할뿐이라는담담함이있고레너드코헨의〈첼시호텔〉처럼짧지만영원히불릴노래가있다.누군가의한마디에다시봄이올것을기대하는옅은희망이있으며마지막한대라며끊었던담배를다시피우게되는짙은체념도있다.

얼룩으로남은다양한무늬의상처들은지금은잃었으나그때에는있었던시간의얼굴들이다.그얼굴을제대로마주하는것으로저마다의상처가아물것이라는것은지나친긍정일지모른다.그러나〈작가의말〉에남겨둔고백처럼그것은잘아물지는못했으나잘여무는일이될수있지않을까.그러므로잊지않는것을넘어서다시는잃지않으려는다짐으로손을더세게움켜쥐어보는그작은행위만으로도(「얼룩이된것들」)한걸음더나아가는일이될수있을것이다.

소설속엔섬세한묘사로그려진풍경이있고아픈문장으로쓰인상처가있어서그녀의글을읽을때면지나온어떤장면들을계속떠올리게되는데,그때마다하게되는질문이란이런것이다.자꾸만뒤돌아보게만드는그것은풍경인가상처인가,잊음과잃음사이를서성대는그것은기억인가마음인가.

“우리에게찾아왔던아름다운것들은이야기속에여전히있다.다끝난후에도‘여전히있다’라는말을허락하는세계는이야기와마음뿐.
아직여기있다.
이야기와마음이.”-신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