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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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로 프랑스 문학계에서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카미유로랑스의 〈여자〉가 1984Books에서 출간되었다.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지 LIRE에서 2020년 '올해의책'으로 선정한 바 있는 〈여자〉는 여성성이 남성성보다 낮게 평가되는 세상에서 소녀, 여자, 그리고어머니로서의 개인적이고 통찰력 있는 경험을 이야기한다.

1959년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로랑스 바라케는 루앙이라는 북부 도시에서 언니와 함께 자란다. " 딸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태어난 그녀는, 남성형과 여성형으로 구분된 언어(프랑스어)가 가진 차별을 인식하고, 실제 부모의 삶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여자의 위치가 남자의 것에 비해 열등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이를테면 이 작품의 원제인 〈Fille〉가 가진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1.딸 2.계집애, 소녀 3.미혼 여성 4.매춘부, 방탕한 여자.
1964년 인구 조사에서 아이들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아뇨. 딸만 둘입니다." 라는 그녀의 아버지의 대답은 그 시대 여성으로서의 위치에 대한 사회적인 기대와 제한을 보여준다.

로랑스는 1990년대에 어머니가 되면서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다양한 측면을 직시하게 된다. 소설은 한 소녀의 성장을 거쳐 여자로서, 딸을 둔 어머니로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신분과 역할에 대한 인식을 탐구하며 세대 간의 가치 전달과 여성성에 대한 고민을 다룬다.

여성들이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암묵적이고 명시적인 방식으로 어떻게 약화되는지를 섬세하게 분석하는 카미유 로랑스는 이 감동적이고 강력한 책에서 지난 40년 동안의 자신의 경험을 제시한다. 섬세하게 여성의 내면을 드러내며 페미니즘과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반영하고 있는 그녀의 작품은 여성의 삶과 정체성에 대한 복잡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동시에 예리한 글쓰기와 철학적인 시각을 놓치지 않는다.

저자

카미유로랑스

1957년디종에서태어나자랐다.문학교수자격을획득한뒤,1984년프랑스를떠나십이년간모로코에서거주하며교직생활을했다.1994년아기를낳기위해프랑스로돌아왔지만비극적인사건으로아기는태어난지두시간만에사망했다.이사건이그녀의글쓰기에전환점이되었다.“현실과지극히개인적인일을경험한이후로순수한허구의글쓰기로돌아가는것이어려워졌다.나는문학의기능이자기자신을전하려는것이라고생각한다.”2000년에발표한『그품안에』로페미나상,르노도상을수상했으며2003년에발표한『사랑』은1944년이후〈르몽드〉를가장열광시킨100권의소설에선정되기도했다.소설『여자』는프랑스의저명한문학지LIRE선정2020년올해의책으로선정되었다.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너는목이터져라울었어.진실은냉혹하고,그냉혹한진실이너의폐를채웠지.각운은여성형이었어.네안에서분리되는거친느낌이만들어지고너는뭔가나뉘는것을느꼈어.그게다야.자르고잘려져둘이되었지.태어나면서너는당연히너처럼딸인엄마의몸에서분리되었고동시에딸이라불리지않는모든인류로부터도분리된거야.딸의반대말은당연히언급되지않았지만병실의공기중에조용히떠다니며허공에서섬광처럼번쩍였지.배아,태아,아기...이때까지성별은아들의편이었어.불과몇초전에는딸이나아들모두가능했지.남성형주어를쓰게될지여성형주어를쓰게될지누구도알수없었어.이제너의날개는잘리고(날개가아니면무엇이겠니?)너는로빈슨크루소보다더혼자가되었어.운명의주사위는태반과함께던져졌지.남자로태어났다고전해지고,한아들의아버지라고믿어지는신이주사위를던졌어.딸입니다.
---p.12

너는매일산채로땅에묻혔지.그럴만했어.네가아들이어야했는데.그러면딸만있는엄마아빠에게큰위로가되었을거야.네동생은한번죽었지만너는날마다죽었어.더이상너를봐주지않는엄마의눈으로,더이상아들을기대하지않는아빠의좌절로,언제가너에게뜨거운맛을보여줄것이라벼르고있는언니의질투로너는날마다죽었어.심지어동생의죽음으로도너는죽었어.동생을대신할수없다는이유로말이야.
---p.43

나중에아빠가거실탁자에놔둔서류에서‘성’이라는단어를발견하고사전에서그단어를찾은적이있다.(아빠는남성이라고적힌칸에표시를했다.남성밑에여성칸이있었다.)‘성sexe’이라는말은‘자르다’라는뜻의라틴어‘세카레secare’에서기원한다고되어있었다.거기서동사‘자르다scier’,‘절단하다sectionner’그리고명사‘전지가위secateur’같은단어들이파생되었다.그렇다.모든것이확실해졌다.남자의자지를‘자르면sexe-tionner’여자가되는것이다.그런데언제,어디서내고추가잘린거지?지독하게아팠을텐데.피도엄청나게났을것이고.자전거타다가넘어져무릎에피나는것하고는비교가안될정도로많이흘렸을것이다.흉터도있다!가랑이사이에가늘게금이가있지않은가.나는자지가잘린적이있는지기억해내려고애썼다.기억이나지않았다.그런데잘리지않고가지고있는사람들은뭐지?누가결정하는거지?아빠는절대아닐것이다.결론적으로여자는상처가난남자다!
---p.72

나의울부짖음은내몸안에숨겨져있어밖에서는보이지않았다.
---p.89

수치심은새로운발견이었다.내몸을한번에집어삼켜버리는감정이었다.남학생들의비웃음에나자신이너무초라하게느껴졌다.수치심은그리오래가지않았지만다시돌아왔다.나를조롱하던남학생들이꿈에나타난것이다.남학생들이나를내려다봤다.나도내몸밖으로나와나를내려다봤다.여자아이가고개를숙이고날개를파닥거린다.덫에서벗어나려고몸부림을치지만소용이없다.한번더몸부림을친다...다시한번더...점점힘이빠지고...포기하고만다.이것이여자와나비의운명일까?
---p.96

로랑스야,누구한테도말하면안돼.알았지?더러운빨래는집에서빨아야하는거야.밖으로나가면안돼.알겠지?싹잊어버려!입을아예꿰매버리라고.절대말하면안돼!알았지?(...)아이는잠이오지않았다.칼이아니라면뭐지?피범벅이된잠지가보였다.의사들이갈색얼룩으로뒤덮인손으로수술을하고있었고할머니들은실과바늘을들고입술을꿰매고있었다.아이는베르트고모할머니가한말을떠올렸다.더러운빨래는집에서빨아야하는거야.이상한말이다.그날밤수염난여자들이거름이잔뜩묻은바지를빨랫방망이로내리쳤다.
---p.106

19세기파리살페트리에르병원에는아이의언니처럼아무이유없이몸이마비되거나말을못하거나눈이안보이는여자들이있었는데이런여자들을‘히스테리’환자라고불렀다.듣기좋은말이아닌히스테리의어원은‘자궁’이다.사실그여자들에게는아무것도없었다.그것이문제였다.남자들에게는있는데왜여자들에게는없는가!이다름이여자들을좌절시켰다.자신에게는없다는사실을받아들일수없고또없는이유를알수없어여자들의몸과마음이뒤틀린것이다.아이는루앙시립도서관에서히스테리에대한정보를모두얻었다.하지만왜라는물음에대한답은찾을수없었다.
---p.114

계집애.이말이자꾸생각나아이를괴롭혔다.계집애는욕이다.물론계집애garce는사내아이garcon의여성형일뿐이지만여성형이되면가치가떨어지고권위가상실된다는것을아이는언제부턴가알고있었다.사내아이는사실이고계집아이는가치판단이다.사내아이가계집아이가되면나쁜뜻이된다.말은힘을가지고있다.
---p.128

여자에게중요한것은처녀성이고남자에게중요한것은경험이다.남녀관계에서남자와여자가중요하게생각하는것은다르다.여자는모를수록,남자는많이알수록더좋다.그것이법칙이다.여자는적게알수록더존중받는다.
---p.133

아이는쾌락을알게된후몇년이지나욕망이라는것을발견하게되었다.결핍은아이를살아나게했고밤은시들게했다.쾌락은아이를사라지게했고욕망은생명력을불어넣었다.쾌락은짧고욕망은무한하다.모든것을빼앗긴삶,무無로가득한죽음.아이는무를알았으니이제모든것을정복하는일만남았다.그런데욕망은정확히무엇일까?
---p.159

너는그아이를기억하니?갑작스럽게분출된,태어나서처음경험한욕망을기억하니?물론이다.나는기억하고있다.갑자기새로운세계가형태를갖추고의미를갖게되었고그세계에서남자는여자를위해존재했다.물론남자는여자와다르다.다르기때문에남자는도전이고모험의대상이었다.그들은젊고아름다웠다.근육은울퉁불퉁꿈틀거리지만두눈에는불안이서려있었다.오만하게웃을때조차불안이스쳐갔다.남자의몸에내몸을밀착시키는것보다세상에더급한것이있었을까?불안과도취가공존했고영리하면서도무지했던시절이었다.
---p.160

드디어네남편이병원에도착했어.어두운얼굴로몸을떨며병실에들어서자마자너를껴안고울음을터트렸지.숨을쉬기힘들정도로너를꽉껴안았어.너희부부는그렇게서로를붙들고한참을흐느꼈어.그러다가갑자기크리스티앙이일어나더니병실한쪽으로가서벽에등을기대고혼자우는거야.너는남편이우는것을처음봤어.어찌나서럽게울던지네아빠는사위를위로해줄수밖에없었어.“힘을내야지.”어린나이에부모를잃은남편은장인의따뜻한모습에무너져네아빠품에서목놓아울었어.네아빠는사위의등을두드리며위로해주려고노력했지.“자네,힘을내게.”남편의울음소리는더커졌어.그러자아빠가네남편의어깨를붙잡고일으켜세우며말했어.“어허!이러면안돼!”(결혼하고처음으로아빠가네남편에게말을놓았어!)“자,힘을내!사내답게굴어!”아빠는붙잡고있던사위의어깨를벽으로밀어붙였어.너는두사람을물끄러미쳐다봤어.그런데왜여자답게굴라는말은하지않지?
---p.221

너는몸이마비라도된것처럼꼼짝할수가없었어.누구에게나일어날수있는일이라고요?나에게일어난일이에요!나,로랑스,당신딸에게일어난일이라고요!도움이필요한사람은나예요.나는그런일을당할만한사람인가요?너는아빠에게따지고싶었지만어떻게말을해야할지몰랐어.프로테스탄트는아빠에게물려받은공허한말에불과했고,사람들이너의말에귀를기울이게하는방법은아무도가르쳐주지않았어.
---p.223

트리스탕이죽고몇주지나서의료감정보고서를받았어.보고서서문에‘의사에게는치료할의무가있지만치료결과를책임질의무는없다’라고쓰여있었어.보고서가내린결론은의료과실이아니라기회손실이었어.제왕절개를했으면아기를살릴기회가있었을텐데제왕절개를하지않아서손실을입었다는뜻이야.기회손실...그것이결론이었어.너는이말의무게를가늠해봤어.그무게가너를짓눌렀어.주사위를한번만던진다고해서기회가없는것은아니야.그런데출산하던날너에게는기회가없었어.바로그거야.전혀없었는지아니면조금은있었는지알수는없지만,어쨌든기회가없었던거야.너는속물들의제단에못박혀서발걸이에다리를올리고의사들에게제물로바쳐졌어.네몸은무영등태양아래서갈기갈기찢겨나갔지.무엇과도비교할수없이잔인한시나리오의실물수업이었어.네가상상하지못한시나리오...그런데기회손실은어제오늘의얘기가아니야.아주오래된것이어서다른세상다른시대에일어나는일로오해하지.하지만여기,지금,우리가있는곳에서도기회손실이발생하고있어.선택권이없는사람,이용당하는사람,거짓의노리개,음모의대상,암묵적합의의희생자,자신의운명과삶과희로애락이자신도모르게,자신과상관없이,자신의뜻에반하여,부모,선생님,남자들에의해결정되는사람이되는것이기회손실이야.그러니까너도알겠지?여자가되는것은기회손실이야.
---p.231

알겠어요.알겠다고요.그런데내가어떻게해야하냐고요?어떻게요!”내슬픔은누가달래줄것이며,내가슴을짓누르고있는이돌덩이는누가치워줄것이며,세상이정한틀에맞지않아서,아무것도할줄몰라서(어떻게옷을만들고,어떻게여자가되고,어떻게사랑받는지몰라서)두려움에떨고있는나를누가위로해줄거냐고?누가나를보살펴주며누가나를꼭껴안고사랑한다고말해줄거냐고?
---p.267

모든여자들이두려움속에살고있기때문이에요.그게이유예요.너무일상적이고너무내재화되어있어서두려움속에살고있다는것조차의식하지못하고살아요.위협받는여자라는말은동어반복이라고요!―나도동의해.하지만남자들도두려움이있어.기대에미치지못할까봐,잘하지못할까봐,성공하지못할까봐,실패할까봐말이야.안그래?너도알다시피요즘여자들이너무...”알리스가갑자기일어서서다깐감자를물에담그고감자칼을손에든채떨리는목소리로내게말했다.“엄마,남자와여자의차이는말이죠,남자는명예를잃을까봐두려워하지만여자는목숨을잃을까봐두려워한다는거예요.웃음거리가되었다고죽지는않아요.하지만폭력으로는죽어요."
---p.306

안타깝다고요?엄마,도대체왜그래요?뭐가문제예요?―가끔너무걱정이돼.그래서혹시...앞으로남자는절대좋아하지않을거니?불가능한거야?”알리스는어깨를으쓱했다.이런대화가짜증나기시작한모양이었다.“몰라요.남자를만날수도있죠.불가능이란것은없으니까.내눈에잘생겨보이는남자들도있어요.하지만...사람을사랑하는거잖아요.그사람이남자일수도있고여자일수도있고.우리는사람을사랑하는것이지물건이나특정성을사랑하는것이아니에요.그래서이론적으로는내가남자를좋아할수도있지만...난소피를사랑해요.엄마도알잖아요.소피와잘지내고있어요.우리는서로사랑하고있어요.”거기서멈췄어야했다.거기서입을다물어야했다.하지만오래되고케케묵고뿌리깊고우글거리는벌레들처럼게걸스러운공포에서벗어나야할것만같았다.나를붙잡고있는수많은흙묻은손들이나의등을떠밀었다.“그러면남자와는절대성관계를갖지않겠다는거야?”나는계속말했지만,사실그건절규에가까웠다.알리스가특유의비웃는듯한얼굴로크게웃었다.그웃음소리에나는더대담해졌다.“한번시도라도해보지않겠니?어떤지보려고말이야.응?”나를쳐다보는알리스의눈길은다정했지만왠지나를한심하게생각하는것같았다.알리스가기지개를켰다.“그럼엄마는여자와관계를시도해본적이있어요?어떤지보려고요?”나는하늘을보고고개를가로저었다.말도안돼.나는난처함을숨기려고,어쩌면알리스가불편할까봐그냥웃었다.“거봐요.엄마에게는누구도한번시도해보라고말하는사람이없는데왜나는그런소리를들어야하는거죠?”
---p.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