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시의 행간에 번뜩이는 이미저리와 눈부신 메타포
- 황미광 디카시집, 『너의 잎새가 되고 싶다』
- 황미광 디카시집, 『너의 잎새가 되고 싶다』
황미광 시인의 눈에 포착된 아름다운 메타포
뉴욕에서 시인으로, 여성교육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황미광 시인의 첫 디카시집 『너의 잎새가 되고 싶다』가 도서출판 작가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은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 국립대만사범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뉴욕시립 퀸즈칼리지 교수, 미동부한인문인협회 회장, 미주가톨릭방송 사장을 역임했다. 현재 국제펜클럽(International PEN) 한국본부 이사이며, 한국디카시인협회 뉴욕지부장을 맡고 있다. 시집 『지금 나는 마취중이다』를 비롯하여 『뉴욕의 한인문인들』(공저), 『미주 한인 이민 백년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분주한 일상을 꾸려가며 우리말과 중국어 그리고 영어까지 3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 능력을 가진 시인은,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우리의 모국어로 시창작과 문학창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인의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민포장, 뉴욕주 여성교육자상, 뉴욕 올해의 한인상, 쿨투라 해외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이번에 펴내는 황미광 시인의 첫 디카시집은 4부로 구성되어 총 67편의 디카시를 수록했다. “시간과 공간, 자연과 사람, 그리고 너와 내가 디카시”의 행간에 담기어 오롯이 빛난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이 지구가 황미광 시인의 눈에 포착되어 아름다운 메타포가 되었다.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과 삼라만상의 생명체
디카시집의 제1부 〈너의 잎새가 되고 싶다〉에는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우주 자연과 삼라만상의 여러 생명체·사물·풍경들과의 관계성 문제에 초점이 가 있다. 당연히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다. 빈 그릇을 깔아둔 식탁의 사진에 ‘초대’라는 제목을 붙이고, 시인은 ‘빈 자리는 그리움, 빈 그릇은 설렘’ 이니 ‘빈 마음으로’ 오라고 초대한다. 이렇게 빈 자리, 빈 곳을 보는 눈은 웅숭깊고 입체적이다. 앞뒤로 함께 걷고 있는 새 두 마리에 ‘연인’이란 제목을 붙이고, 시인은 ‘둘만 있으면’ 된다는 만고불변 사랑의 법칙을 현시(顯示)한다. 분수대의 하트 모형에 금이 간 모습에서 ‘있을 때 잘해’를 유추하는 솜씨는 매우 ‘신박’하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그 모습이 그 모습인데
그 중에 너만 보였네
- 「부부」 전문
‘부부’라는 제목이 부여된 이 시의 피사체는 함께 선 펭귄 두 마리다. 어쩌면 이들은 저 물가에 모여 있는 동료들을 향해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의 날카롭고 따스한 관점은 나란히 이동하는 이 둘을 부부로 명명했다. 시는, 문학의 의미 부여는 이렇게 네카의 입방체를 보듯이 여러 방향에서의 관점을 수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이것이 바로 시의 애매모호성(Ambiguity)이다.
신산辛酸한 우리 삶의 여러 풍광을 포착
제2부 〈해는 져서 어두운데〉에 수록된 시들은, 제목의 워딩 그대로 신산(辛酸)한 우리 삶의 여러 풍광을 포착하고 그 배면에 숨은 뜻을 유추하는 시적 패턴을 보여준다.
예컨대 2부 첫머리의 시 「빈 의자」는, 시의 문면(文面)을 보면 이제 떠나고 없는 아버지의 의자다. ‘오래오래 고마워하다 가볍게 떠난’ 아버지다. 이 몇 줄의 행간에 숨은 말이 얼마나 많을까. 「해는 져서 어두운데」 또한 그렇다. 골프장에서 잃은 공을 두고 가면서, 모든 두고 가는 것들을 가슴 아파하는 우리 삶의 깊은 질곡을 매설했다. 「스마트 시대」에서 타자와의 단절, 「불신」에서 새의 불안감 등이 모두 그와 같은 심연을 펼쳐 보인다.
폭포라고 갈라져야 하나
우린 끝까지 함께 간다
손 꼭 잡아!
- 「한가족」 전문
‘한가족’이란 제목의 이 시는 폭포 직하(直下)의 안쪽에서 폭포의 등을 보며 포착한 영상이다. 그리고 거기에 그와 같은 제목을 달았다. 그렇다면 이때의 가족 구성원은 누구란 말인가. 하나하나의 물방울들이요 그것이 생산하는 포말(泡沫)들이다. 이 자연 현상에 가족이라는 개념을 덧붙인 것은 이들이 서로 헤어져 분산하지 않고 하나로 모이는 원래의 속성 때문이다. 이들은 시내와 강을 거쳐 종국에는 바다로 간다. 결국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마침내 대해(大海)를 이룬다. 시인은 ‘우린 끝까지 함께’ 갈테니 손을 꼭 잡으라고 다짐한다. 우리 인생사를 물에 비유한 하고 많은 구절들 가운데, 문득 『장자』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바다가 수천 갈래 시내와 강의 복종을 받는 것은 낮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단정하고 힘찬 폭포에 물의 미덕을 담았다.
과거와 현재를 연계하는 삶의 형식
이 시집의 제3부에서 유독 시인은 이제는 옛날이 된 기억의 언저리를 배회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태를 묻은 한국이나 현실적인 삶을 꾸려가고 있는 미국을 막론하고 두루 통용되는 시작(詩作)의 형용이다. 그러기에 ‘딸기 한 알’에서 ‘고향의 봄’을 보고 이를 ‘덥썩 집는다.’ 푸른 하늘에 게양된 태극기, 행사장이나 연주회장의 배경이 된 태극기, 운구되는 관을 덮은 태극기는 모두 시인의 조국 체험을 절실하게 반영한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나 자유의 여신상 야경은 두 번째 조국에 대한 기림을 발양한다. 이 모두 지나간 날들이 지금 여기에 잇대어져, 과거와 현재를 연계하는 삶의 형식이 되고 있음을 말한다. 이 도식 위에 고흐를 가져다 두면, 불행했던 당대와 그로부터 천양지차의 평가를 보이는 현세를 동시에 견주어 보게 된다. 그러할 때 고흐는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값있는 화가다.
친정 엄마 가시고
백년 된 장독들 함께 사라졌다
장독 속에 담긴
햇볕 못 본 이야기도
그대로 덮어졌다
- 「다시 못 들을 이야기」 전문
이 시는 평범한 시골 마을 장독대의 모습을 가져오고, 거기에 ‘백년 된 장독들’이란 호명을 부여했다. 과연 이 장독들이 백년의 세월을 지나왔을까. 그러나 이 질문은 이 대목에서 무용(無用)하다. 바로 그 앞 구절에 ‘친정 어머니 가시고’가 있기 때문이다. 이 대체할 길 없는 우주 최강의 존재로 인하여 그 백년은 천년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사진과 함께 나선 글의 힘이다. 어머니와 함께 장독들이 사라지고, ‘장독 속에 담긴 햇볕 못 본 이야기’도 그대로 ‘덮여졌다’고 하지 않는가. 누구나 잊지 못하는 고향 땅에서 이만큼의 레토릭이면, 그것은 많은 세월이 지나지 않아도 전설이 된다.
피안(彼岸)의 세계를 상정하고 그 의미를 탐색
시인은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향해 진보하고 승급하기를 소망한다. 디카시인이 포착하는 사진 또한 그렇다. 이 시집 제4부의 사진과 시가 그와 같은 정조(情調)를 지속적으로 환기하고 있다. 「그날, 그 자리」를 비롯하여 유달리 종교적 성향이 드러나는 디카시가 자주 보이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기에 성당의 첨탑 곁자리에 높이 서 있는 성자의 조각상이 ‘높은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성지 순례」나 「우문현답」 같은 시편들이 한결같이 현실적 울타리 너머의 세계, 피안(彼岸)의 세계를 상정하고 그 의미를 탐색하는 것은 시인의 정신적 지향점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황은 시의 제목으로 주어진 용서, 평등, 빈 손 등 동양문화권에서 익숙한 정신주의적 용어와도 상호 소통한다.
하늘 결 곱게
와인 한 잔 내려온다
바위를 타고
내 목을 적신다
이는 내 피다
- 「와인 한 잔」 전문
아마도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엔텔롭 캐년의 동굴 속에서 촬영한 사진이 아닐까 싶다. 형형색색의 빛깔을 자랑하는 그 지형이 디카시인의 눈에는 보화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시인은 이 태깔 고운 바위의 결을, 하늘 결 타고 곱게 내려온 ‘와인 한 잔’으로 명명한다. 바위를 타고 내 목을 적시는 순간, 요한복음 6장의 ‘이는 내 피다’라는 성경 구절을 소환한다. 하늘과 바위와 동굴 그리고 그 결을 관통하는 빛의 임재를 감각하면서, 가장 고귀한 종교적 희생의 원리를 수긍할 수 있다면 이 시인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시는 어떤 장문의 신앙 고백보다도 힘이 있다. 가장 소중한 것은 언제나 우리 삶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하얀 좁은 문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데
네가 신기루처럼
녹아버릴까 봐
여기서 멈출게
- 「여기까지」 전문
짐작건대 북극의 빙하가 아닐까. 이곳으로 여행하고 그 행중(行中)과 더불어 이 광경을 보고 디카시를 남길 수 있었다면, 누구나 할 수 없는 특이한 체험의 기회다. 비단 이곳뿐일까. 우리가 사는 세계 처처에, 그 범주 너머를 상징하는 신비한 곡절이 숨어있지 않겠는가. 시인은 ‘하얀 좁은 문’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으나, 여기서 멈추겠다고 한다. 시어(詩語)로서도 삶의 태도로서도 바람직한 금도(襟度)다. 디카시는 이렇게 좋은 영상과 좋은 시가 조화롭게 만남으로써 한 편의 좋은 작품을 완성한다.
김종회(한국디카시인협회 회장) 문학평론가는 “이 시집을 채우고 있는 황미광의 시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악수는, 그의 시와 더불어 우리가 행복한 독자가 되기를 권유한다.”며, “그런 만큼 앞으로도 그가 더 수발秀拔한 디카시의 세계를 형성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평한다.
독자들이여, “오늘밤 맨해튼은 내가 접수”(「독립기념일」)하겠다는 뉴욕의 잔다르크, 황미광 시인의 디카시집을 읽으며, 시의 행간에 번뜩이는 이미저리와 눈부신 메타포를 만나보자.
뉴욕에서 시인으로, 여성교육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황미광 시인의 첫 디카시집 『너의 잎새가 되고 싶다』가 도서출판 작가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은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 국립대만사범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뉴욕시립 퀸즈칼리지 교수, 미동부한인문인협회 회장, 미주가톨릭방송 사장을 역임했다. 현재 국제펜클럽(International PEN) 한국본부 이사이며, 한국디카시인협회 뉴욕지부장을 맡고 있다. 시집 『지금 나는 마취중이다』를 비롯하여 『뉴욕의 한인문인들』(공저), 『미주 한인 이민 백년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분주한 일상을 꾸려가며 우리말과 중국어 그리고 영어까지 3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 능력을 가진 시인은,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우리의 모국어로 시창작과 문학창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인의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민포장, 뉴욕주 여성교육자상, 뉴욕 올해의 한인상, 쿨투라 해외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이번에 펴내는 황미광 시인의 첫 디카시집은 4부로 구성되어 총 67편의 디카시를 수록했다. “시간과 공간, 자연과 사람, 그리고 너와 내가 디카시”의 행간에 담기어 오롯이 빛난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이 지구가 황미광 시인의 눈에 포착되어 아름다운 메타포가 되었다.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과 삼라만상의 생명체
디카시집의 제1부 〈너의 잎새가 되고 싶다〉에는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우주 자연과 삼라만상의 여러 생명체·사물·풍경들과의 관계성 문제에 초점이 가 있다. 당연히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다. 빈 그릇을 깔아둔 식탁의 사진에 ‘초대’라는 제목을 붙이고, 시인은 ‘빈 자리는 그리움, 빈 그릇은 설렘’ 이니 ‘빈 마음으로’ 오라고 초대한다. 이렇게 빈 자리, 빈 곳을 보는 눈은 웅숭깊고 입체적이다. 앞뒤로 함께 걷고 있는 새 두 마리에 ‘연인’이란 제목을 붙이고, 시인은 ‘둘만 있으면’ 된다는 만고불변 사랑의 법칙을 현시(顯示)한다. 분수대의 하트 모형에 금이 간 모습에서 ‘있을 때 잘해’를 유추하는 솜씨는 매우 ‘신박’하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그 모습이 그 모습인데
그 중에 너만 보였네
- 「부부」 전문
‘부부’라는 제목이 부여된 이 시의 피사체는 함께 선 펭귄 두 마리다. 어쩌면 이들은 저 물가에 모여 있는 동료들을 향해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의 날카롭고 따스한 관점은 나란히 이동하는 이 둘을 부부로 명명했다. 시는, 문학의 의미 부여는 이렇게 네카의 입방체를 보듯이 여러 방향에서의 관점을 수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이것이 바로 시의 애매모호성(Ambiguity)이다.
신산辛酸한 우리 삶의 여러 풍광을 포착
제2부 〈해는 져서 어두운데〉에 수록된 시들은, 제목의 워딩 그대로 신산(辛酸)한 우리 삶의 여러 풍광을 포착하고 그 배면에 숨은 뜻을 유추하는 시적 패턴을 보여준다.
예컨대 2부 첫머리의 시 「빈 의자」는, 시의 문면(文面)을 보면 이제 떠나고 없는 아버지의 의자다. ‘오래오래 고마워하다 가볍게 떠난’ 아버지다. 이 몇 줄의 행간에 숨은 말이 얼마나 많을까. 「해는 져서 어두운데」 또한 그렇다. 골프장에서 잃은 공을 두고 가면서, 모든 두고 가는 것들을 가슴 아파하는 우리 삶의 깊은 질곡을 매설했다. 「스마트 시대」에서 타자와의 단절, 「불신」에서 새의 불안감 등이 모두 그와 같은 심연을 펼쳐 보인다.
폭포라고 갈라져야 하나
우린 끝까지 함께 간다
손 꼭 잡아!
- 「한가족」 전문
‘한가족’이란 제목의 이 시는 폭포 직하(直下)의 안쪽에서 폭포의 등을 보며 포착한 영상이다. 그리고 거기에 그와 같은 제목을 달았다. 그렇다면 이때의 가족 구성원은 누구란 말인가. 하나하나의 물방울들이요 그것이 생산하는 포말(泡沫)들이다. 이 자연 현상에 가족이라는 개념을 덧붙인 것은 이들이 서로 헤어져 분산하지 않고 하나로 모이는 원래의 속성 때문이다. 이들은 시내와 강을 거쳐 종국에는 바다로 간다. 결국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마침내 대해(大海)를 이룬다. 시인은 ‘우린 끝까지 함께’ 갈테니 손을 꼭 잡으라고 다짐한다. 우리 인생사를 물에 비유한 하고 많은 구절들 가운데, 문득 『장자』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바다가 수천 갈래 시내와 강의 복종을 받는 것은 낮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단정하고 힘찬 폭포에 물의 미덕을 담았다.
과거와 현재를 연계하는 삶의 형식
이 시집의 제3부에서 유독 시인은 이제는 옛날이 된 기억의 언저리를 배회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태를 묻은 한국이나 현실적인 삶을 꾸려가고 있는 미국을 막론하고 두루 통용되는 시작(詩作)의 형용이다. 그러기에 ‘딸기 한 알’에서 ‘고향의 봄’을 보고 이를 ‘덥썩 집는다.’ 푸른 하늘에 게양된 태극기, 행사장이나 연주회장의 배경이 된 태극기, 운구되는 관을 덮은 태극기는 모두 시인의 조국 체험을 절실하게 반영한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나 자유의 여신상 야경은 두 번째 조국에 대한 기림을 발양한다. 이 모두 지나간 날들이 지금 여기에 잇대어져, 과거와 현재를 연계하는 삶의 형식이 되고 있음을 말한다. 이 도식 위에 고흐를 가져다 두면, 불행했던 당대와 그로부터 천양지차의 평가를 보이는 현세를 동시에 견주어 보게 된다. 그러할 때 고흐는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값있는 화가다.
친정 엄마 가시고
백년 된 장독들 함께 사라졌다
장독 속에 담긴
햇볕 못 본 이야기도
그대로 덮어졌다
- 「다시 못 들을 이야기」 전문
이 시는 평범한 시골 마을 장독대의 모습을 가져오고, 거기에 ‘백년 된 장독들’이란 호명을 부여했다. 과연 이 장독들이 백년의 세월을 지나왔을까. 그러나 이 질문은 이 대목에서 무용(無用)하다. 바로 그 앞 구절에 ‘친정 어머니 가시고’가 있기 때문이다. 이 대체할 길 없는 우주 최강의 존재로 인하여 그 백년은 천년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사진과 함께 나선 글의 힘이다. 어머니와 함께 장독들이 사라지고, ‘장독 속에 담긴 햇볕 못 본 이야기’도 그대로 ‘덮여졌다’고 하지 않는가. 누구나 잊지 못하는 고향 땅에서 이만큼의 레토릭이면, 그것은 많은 세월이 지나지 않아도 전설이 된다.
피안(彼岸)의 세계를 상정하고 그 의미를 탐색
시인은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향해 진보하고 승급하기를 소망한다. 디카시인이 포착하는 사진 또한 그렇다. 이 시집 제4부의 사진과 시가 그와 같은 정조(情調)를 지속적으로 환기하고 있다. 「그날, 그 자리」를 비롯하여 유달리 종교적 성향이 드러나는 디카시가 자주 보이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기에 성당의 첨탑 곁자리에 높이 서 있는 성자의 조각상이 ‘높은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성지 순례」나 「우문현답」 같은 시편들이 한결같이 현실적 울타리 너머의 세계, 피안(彼岸)의 세계를 상정하고 그 의미를 탐색하는 것은 시인의 정신적 지향점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황은 시의 제목으로 주어진 용서, 평등, 빈 손 등 동양문화권에서 익숙한 정신주의적 용어와도 상호 소통한다.
하늘 결 곱게
와인 한 잔 내려온다
바위를 타고
내 목을 적신다
이는 내 피다
- 「와인 한 잔」 전문
아마도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엔텔롭 캐년의 동굴 속에서 촬영한 사진이 아닐까 싶다. 형형색색의 빛깔을 자랑하는 그 지형이 디카시인의 눈에는 보화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시인은 이 태깔 고운 바위의 결을, 하늘 결 타고 곱게 내려온 ‘와인 한 잔’으로 명명한다. 바위를 타고 내 목을 적시는 순간, 요한복음 6장의 ‘이는 내 피다’라는 성경 구절을 소환한다. 하늘과 바위와 동굴 그리고 그 결을 관통하는 빛의 임재를 감각하면서, 가장 고귀한 종교적 희생의 원리를 수긍할 수 있다면 이 시인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시는 어떤 장문의 신앙 고백보다도 힘이 있다. 가장 소중한 것은 언제나 우리 삶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하얀 좁은 문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데
네가 신기루처럼
녹아버릴까 봐
여기서 멈출게
- 「여기까지」 전문
짐작건대 북극의 빙하가 아닐까. 이곳으로 여행하고 그 행중(行中)과 더불어 이 광경을 보고 디카시를 남길 수 있었다면, 누구나 할 수 없는 특이한 체험의 기회다. 비단 이곳뿐일까. 우리가 사는 세계 처처에, 그 범주 너머를 상징하는 신비한 곡절이 숨어있지 않겠는가. 시인은 ‘하얀 좁은 문’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으나, 여기서 멈추겠다고 한다. 시어(詩語)로서도 삶의 태도로서도 바람직한 금도(襟度)다. 디카시는 이렇게 좋은 영상과 좋은 시가 조화롭게 만남으로써 한 편의 좋은 작품을 완성한다.
김종회(한국디카시인협회 회장) 문학평론가는 “이 시집을 채우고 있는 황미광의 시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악수는, 그의 시와 더불어 우리가 행복한 독자가 되기를 권유한다.”며, “그런 만큼 앞으로도 그가 더 수발秀拔한 디카시의 세계를 형성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평한다.
독자들이여, “오늘밤 맨해튼은 내가 접수”(「독립기념일」)하겠다는 뉴욕의 잔다르크, 황미광 시인의 디카시집을 읽으며, 시의 행간에 번뜩이는 이미저리와 눈부신 메타포를 만나보자.
너의 잎새가 되고 싶다 - 한국디카시 대표시선 8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