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저자:김정희 경남창원출생 2013년《시와경계》등단 2013년경남소설신인상수상 동아대학교문예창작과대학원수료 현재《시와경계》《디카시》편집장
시인의말제1부모노드라마모노드라마12몽유병14패러독스16일기18영생20옥상텃밭22너의전성기24숨줄26욕지28윤회30립싱크32선녀들의합창34가을밤36제2부슈뢰딩거의고양이슈뢰딩거의고양이40You’re독존42입동근처44족집게무당46고백48넝쿨50난간에서52세다54안부56유전병58확신60고비62허장성세64제3부임금님귀의행방짜라투스트라가이렇게말했다고?68개죽음70실직72전생혹은74시선76임금님귀의행방78켈로이드체질80불법시술82지귀의사랑84기억86외사랑88갱년기90함정92김정희제4부천일야화무소유96심장98천일야화100곡예사의섬102변신104첫사랑106회억108숙제110황혼엽서112적멸보궁114확인사살116봄의길목118아수라120낡은사랑122해설/세상너머를담아낸렌즈의마술_김종회124
사유는깊되정서는경쾌하고비장미와아이러니가가득하다세상이미워지는날,슬퍼지는날에읽기좋은디카시집이다아이는이제자신으로돌아갔다덧없이먼지를일으킨하루를묻어두고쓸쓸하고외로운자신으로돌아갔다-「일기」전문‘일기’라는제목으로된시다.어린이놀이터를사진으로선택했으면얼핏아이가자기놀던곳을일기에썼을법한데,시는그아이의행적을관찰한시인의관점이다.왜이처럼평범한풍경이시의소재로설득력을얻을수있을까.그아이의행동반경에이제는어른이된모든어른의기억이숨어있는까닭에서다.집으로,자신으로돌아간아이가타자가아니라관찰자스스로일수있기때문이다.그러기에윌리엄워즈워스는시의한구절로‘어린이는어른의아버지’라고사뭇단호한표현을사용했던것이다.가로등불빛과놀이기구의그림자만남은이공간은‘덧없이먼지를일으킨하루’를묻었다.아이를‘쓸쓸하고외로운자신’이라고쓴발화방식은,이시인의눈이아이와어른을동일시하는이른바회상시점에의거해있음을증명한다.2부의시13편은대체로눈에보이는그림과그뒤편에숨은의미사이의중층적구조를긴장감있게배열하는데중점이있다.이러한시의지속적형식은이시집이미더운예술적바탕위에서있음을납득하게한다.「슈뢰딩거의고양이」는오스트리아의물리학자슈뢰딩거가1935년에제안한사고실험의명제를제목으로가져왔다.이는양자역학의불완전성을비판하기위한것으로,어떤상자를열기전에그안에있는고양이의생사를알수없다는이야기를내포한다.시인은이를케이블카속의사람들과그들이가진의식의불확실성으로치환했다.「You’re독존」은건널목을건너는목발짚은노인의과거와현재를,「세다」는계절이이울어가는것과‘네게가는길’의대비를,각각겹친꼴눈길로제시한다.그리고「허장성세」는어느산마루에선장군의동상과그의공허한외침을한데묶었다.허공에매달린생명의흔적풍성한그녀의식탁보-「입동근처」전문입동근처’라는제목을보면늦가을지나겨울로접어드는길목의풍광인듯하다.건물바깥쪽에거미줄을치고아직힘이있어보이는거미오른편으로그에게생명을헌납한곤충들의잔해가보인다.매우평화로워보이나기실은참혹한생존경쟁전장戰場의모습을담고있다.우리가살아가는삶의현장이이와다를바있을까.그런점에서보면아주중의적인시의형용이다.시인은이처럼‘허공에매달린생명의흔적’을두고‘풍성한그녀의식탁보’란창의적인언사를사용했다.누구에게는삶을위한식탁인데,다른누구에게는삶의종착점이되는잔인한현실세계를,시가가진특유의부드럽고상징적인어투에실었다.누구에게나삶은만만하지않다.때로는비싼인생수업료를치러야하는경우도있다.오죽하면A.랭보가“계절이여마을이여상처없는영혼이어디있는가”라고했을것이며,오죽하면P.발레리가“바람이분다.살아야겠다”라고했을것인가.3부에실린시13편에서는그렇게생이힘든존재들을따뜻하게응대하는시인의시선을느낄수있다.「전생혹은」에서는‘이고지고든’노인의뒷모습을주목하고,「지귀의사랑」에서는신라시대부터전해오는불火의신이자이루지못한사랑의대명사인‘지귀志鬼’를소환한다.「외사랑」의나리꽃대하나는사랑을잃고서성이는모습이며,「갱년기」의스산한나무와그산발의형상은사춘기아이들과실랑이하는교사또는부모의심경을반영한다.다들배가불렀지?보릿고개를생각해봐옛날엔죄다논이었다니까-「짜라투스트라가이렇게말했다고?」전문이시에는지금의현실로부터꽤멀리있는독일의철학자니체와그의‘짜라투스트라’를불러왔다.니체는기독교문명의몰락과새로운시대의도래를선언하고삶의허무에맞설것을주문했다.그러나그자신부터그렇게살지는못했다.시의사진은가을의들녘을보여주면서곡식이아닌풀과꽃이점령한곳의넓이에초점을맞추었다.그리고이렇게묻는다.‘다들배가불렀지?’근자에논에다관상용꽃을심고관람객들을모아경제적부가가치를높이려는지자체가여럿이다.그처럼세월이달라진터이다.시인은‘보릿고개’를이끌고와서옛날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었던시대의사상을돌이켜본다.그시간의풍화작용앞에니체인들더할말이있을까.영국의시인P.B.셀리가「서풍부」에서노래한이름있는구절이있다.“예언의나팔소리,오바람이여!겨울이오면봄또한멀지않으리.”지금여기의사정이각박할수록우리는보다나은내일을꿈꾼다.이를위해숱한아픔과슬픔,그리움과기다림을대가로지불해야할지도모른다.그러기에그내일의소망은아름다운것이다.이시집4부의시14편에서그러한내면적신호를읽어낼수있다면,시인과독자는함께어깨를겯고나갈수있다.「곡예사의섬」에서‘다다를수없는어떤나라’에의기대,「황혼엽서」에서‘너’에대한질문이그와같은징후를드러낸다.그런가하면「적멸보궁」에서그렇게제목을호명(呼名)하고목욕탕에서사람없는빈자리를보여주는데,어디에도부처가없다는말은어디에나부처가있다(皆有佛性)는말의동의어가아닐까.뒤이어「봄의길목」에서는아직앙상한나뭇가지로부터과감하고은밀하게봄을내다본다.불사조가날면밤은죽지않는다-「천일야화」전문『천일야화』는아라비아지방의민화를중심으로페르시아,인도,이란,이집트등지의설화가첨가되어이루어진작자미상의설화집이다.한자표기는‘千一夜話’로되어있다.천일하고도하루가더있는밤의이야기.시인이이시에그제목을붙인것은,어두운하늘과땅이맞물리는지점에불을밝히고있는도시의야광탓인데,기묘하게도그외양이불사조를닮았다.그래서시인은말한다.불사조가날면밤은죽지않는다고!이한장의사진과이짧은시두줄은참으로많은정보를함축한다.불사조(不死鳥,Phoenix)는고대이집트신화에나오는상상의새이지만,어떤곤경에부딪쳐도좌절하거나기력을잃지않는사람을비유적으로이르는어휘다.곧이시집의4부에서시인이확보하려애쓴소망의언어이기도하다.김종회(문학평론가,한국디카시인협회회장)교수는해설에서“시집전체를관통하는절제의의지,극도로말을아끼는이시인의자기통어력이이렇게말미에이르도록흔들리지않는것은상찬賞讚할만하다.우리는참좋은디카시집한권을만났다.”고밝혔다.최광임(두원공대겸임교수)시인은“김정희의디카시는생활에서나온다.삶의문학이다.김정희삶의반경안으로들어온존재에대하여천착하고관계에숙고한다.사유는깊되정서는경쾌하고언술에는비장미와아이러니가가득하다.”며,“세상이미워지는날,슬퍼지는날에읽기좋은디카시집”이라고추천한다.세상이미워지고,슬퍼지는그런날에는김정희시인의‘세상너머를담아낸렌즈의마술’디카시집『슈뢰딩거의고양이』를만나보자.시인의말늘뭔가를그리고싶었다목이마를때면바깥으로나갔다그리고싶은것이거기있었다한번씩,느낀다나를사랑하고아끼는어떤신이계신다는것참,감사한일이다.2023년겨울,김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