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

$16.00
Description
문사 전통을 잇는 김강 작가의 문학 클리닉
이번에 펴낸 소설집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에 실린 작품들은 나와 우리, 존재와 관계의 이중성이 부딪치고 엇갈리는 지점마다 찍어둔 좌표들이다. ‘용의자 A의 칼에 대한 참고인 K의 진술서’에서 시작된 그의 비타협적인 질문은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 마지막 순간까지 끝나지 않는다. 「용의자 A의 칼에 대한 참고인 K의 진술서」를 비롯한 「아담」 「민의 순간」 「으르렁을 찾아서」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 「검은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나」 「그는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다」 등 총 7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었다.

그의 소설이 지닌 매혹의 핵심은 이중성이다. 김강은 작가의 말에서 “작은 상처를 주고받아 아픈 날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사랑이었다고, 바람 부는 세상 서로 기대며 살았고 꽃 같은 세상 온전히 서로의 것이었다”며, “지키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 거짓과 진실이 뒤바뀐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밤”이 다가오는 지금 “우리가 건져내야 할 것이 지난 사랑의 각인”뿐인지 묻는다. ‘용의자 A의 칼에 대한 참고인 K의 진술서’에서 시작된 그의 비타협적인 질문은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 마지막 순간까지 끝나지 않는다.
저자

김강

소설집『우리언젠가화성에가겠지만』(2020,아시아,아르코문학나눔권장도서),『소비노동조합』(2021,아시아),장편소설『그래스프리플렉스』(2023,아시아),그외다수의공동소설집이있다.2017년단편소설「우리아빠」로21회심훈문학상소설부문대상을수상했다.

목차

용의자A의칼에대한참고인K의진술서9
아담47
민의순간81
으르렁을찾아서113
착하다는말내게하지마141
검은고양이는어떻게되었나169
그는집으로돌아와발을씻는다195
해설|문사(文士)의전통을잇는문학_이경재221
작가의말|곧,그밤이또온다249

출판사 서평

내과의사이자책방주인인김강작가의새소설집『착하다는말내게하지마』가도서출판작가에서출간되었다.잘알다시피저자김강은2017년단편소설「우리아빠」로21회심훈문학상소설부문대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이후소설집『우리언젠가화성에가겠지만』(2020),『소비노동조합』(2021),장편소설『그래스프리플렉스』(2023)과다수의공동소설집을출간하며맹렬하게문단활동을펼치는현역작가이다.


부끄러워할줄아는최초의인간
『착하다는말내게하지마』에는‘최초의인간’이라일컬어지는‘아담’을표제로한매우독특한소설이한편수록되어있다.이작품에는김강이생각하는인간의가장원형적인모습이그려져있다.「아담」은기인이라할수있는‘그’에관한일종의보고서이다.
그는‘나’에게자신이죽으면“한문장으로신문에부고를내어주십시오”라는부탁을한다.그문장은바로“부끄러워할줄은알았다고.부끄러워서그랬다고.”라는것이다.이러한이야기를들으며,‘나’는그가겪은일이“직장을그만두고이혼을하고집을나와야할정도로부끄러운일”인가라는의문을표하기도하며,끝까지“그의부끄러움”을믿지못한다.그러나이후의일들을통해결국‘나’는그가가진부끄러움의진정성을믿게된다.

『그것만잘라내면될줄알았는데…….이왼손모가지를잘라야하나?그러면해결이될까?자꾸떠올라.그것도,손모가지도잘라내었는데자꾸떠오르면다음엔?그다음엔?하긴기억이사라질수있겠어?이머릿속어딘가영원할테지…….』
『하긴세번째눈은잘못이없어.그것이오기전에도그는그랬었잖아.그랬고말고.그눈동자그혓바닥,그가가진모든감각으로탐했지.상상으로머릿속으로.』
『그는운이좋은놈이기는하지.왼손바닥에있는그것이없던시절에는달랐을것같아?그저들키지않았을뿐이지.하지못했을뿐이지.그게운이좋은거지.』

이노트에는근본적인욕망과부정에서벗어나지못하는자신에대한근원적인자책과염오의식이가득채워져있다.결국소설가인‘나’는신문사에가서그의부탁대로부고를전하기로한다.‘내’가전한부고의문장은“그는부끄러움이많았다.”이다.김강이조형해낸‘최초의인간’은자신안에있는그릇된욕망과감각들을예사로이보지못하는,강박적일정도로염결한모습이었다.이러한예민함과엄격함에바탕해보았을때,지금의이세상은너무나많은문제와오점으로가득하다.그렇기에이에대한반응으로서의소설창작은결코늦춰질수도멈춰질수도없는절대의과제일수밖에없다.

인간의본원적폭력성과공동체를향한윤리감각
김강의작가적레이더가가장날카롭게반짝이는것은공동체구성원으로서의기본적인자질을문제삼을때이다.이번작품집의입구에놓인「용의자A의칼에대한참고인K의진술서」는공동체에대한김강의예민한인식을제대로보여주는작품이다.
「용의자A의칼에대한참고인K의진술서」에서는수십년의시간을격한두개의서사가나란히진행된다.병렬되는두개의서사는어린시절에아파트공터에서1동과2동아이들이연탄재를가지고벌이던전쟁놀이와두번째는사소한일로동네사람들이갈등을벌이다가살인사건으로까지이어지는현재의이야기를말한다.
‘나’는어린시절의연탄재전쟁에서나지금의살인사건에서나뜻하지않게범행도구를제공하는역할을떠맡게된다.‘나’는마지막까지“명확히해두어야겠습니다.A의손에쥐어져있던칼은저의칼이아닙니다.제손에오만원권지폐가쥐어지던순간그칼은A의칼이된겁니다.이론의여지없는분명한사실이지않습니까?”라며항변한다.그렇지만,「아담」에서와드러난것과같은엄격한윤리의식과감각에바탕해본다면,그리고조금만더A의주변상황에관심을기울였다면,‘얇고뾰족한,비교적긴칼’을아무런걸림없이판매하지않을수도있었던일이다.이와같은공동체에대한섬세한윤리감각은,「용의자A의칼에대한참고인K의진술서」에서강조되는인간의본원적인폭력성을생각한다면절대적인과제일수밖에없다.
이작품에서는어린시절의소위‘개구리놀이’가상세하게펼쳐진다.어린시절동네의한형이개구리를잡아오자,대장형은개구리의입에폭음탄을물린다.폭음탄에불을붙여터뜨리자,개구리는서너바퀴공중제비를하다가떨어진다.어린아이들의마음속에도생명을향한가학적인폭력성이잠재되어있었던것이다.개구리를향한폭력성은언제든지인간을향한것으로변모할수도있다는점에문제성이있다.상황이이러하다면우리에게는과도할정도의공동체를향한윤리감각이요청될수밖에없는것인지도모른다.

‘착하다는말제게하지마세요.’가아니라‘착하다는말내게하지마.’라고대답하기
김강이제시하는새로운가능성은전혀상투적이지않다.그는자발적개인의담대한주체선언을중요시한다.이러한작가적인식을간명하게드러내는작품이바로「착하다는말내게하지마」이다.
이작품의‘나’는유흥주점에갔다가세희라는여성과인연을맺게된다.세희는옛날‘내’가돌보던환자의딸이었다.‘나’는무수한입원당시주치의중의한명이었고,세희아버지의사망선고를내렸던의사였다.
세희는이사회에존재하는‘을’로서의모든성격을지닌존재이다.우선세희는계급적,젠더적억압을모두받고있다.그녀는옛날이나지금이나술집에서자신을팔아야살수있는계급적약자이며,오빠대신가정내부담을떠안고살아가는젠더적약자이기도하다.게다가그녀는의료현장에서한없이무력한중환자의보호자일수밖에없다.
세희의아버지김완수가인공호흡기를단지한달이지났던그날,술에취한세희는병원을찾아와“인공호흡기뽑아달라고,환자가그저죽게,그냥가만히좀두라고소리지르고난리”를친다.세희는“고치지도못할거면서살리기는왜살리는데.저게살아있는거야?”라거나“착한척,친절한척하면서.저게뭐냐고,저게사람이냐고.우리아빠어디에갖다놓고,저런살덩어리를두고우리아빠이름을붙여놓았냐고.”라고누구나공감할법한말들을주절댄다.
결국‘나’는매뉴얼에도없는문장까지서약서에쓰도록강제한다.“나는현재의치료가중단될경우,환자,즉나의아버지인김완수가사망할수있다는것을알면서도이렇게판단하며,이판단에후회하지않는다.”‘나’는매뉴얼에도없는이문장을불러주며세희남매가“종이를찢어버리고서로를부둥켜안으며주저앉는것으로오늘의일이마무리”되거나,그렇지않다면마지막문장이“결코잊히지않는한마디가되어그들의삶을괴롭혀야한다생각”했던것이다.그런데‘나’의의도는반은이루어지고,반은이루어지지않는다.세희는종이를찢어버리지는않았지만,대신지금까지도죄책감에시달리며살아왔기때문이다.
얄궂은인연으로‘나’와다시만난세희는,‘나’에게정말물어보고싶은것이있다면서“내가우리아빠죽인것아니죠?그렇죠?”라고묻는다.‘나’는천사같은태도로“그래.원래그렇게하는거야.세희가죽인것아니야.넌착한딸이었어.”라며,꼬박꼬박존댓말을하는세희와는달리‘따뜻한’반말로응대한다.그러자“빨간실핏줄이가득한눈”으로한참동안나를바라보던세희는“착하다는말내게하지마.”라고처음이자마지막으로단호한반말로대답한다.마지막에‘내’가세희에게건넨말은,세희를온전한주체이전의존재로묶어두려는말이자세희가아닌자신의죄책감을덜어내는말에지나지않았던것이다.이에맞서세희는마지막순간에비로소당당하게자신이당당한주체임을선언한것이라할수있다.

이경재평론가는해설에서“김강은사르트르가말한‘영구혁명의담당기관으로서의소설가’이자시대의스승을자처하는‘문사로서의소설가’라는문학사적전통위에서있다.그의소설은늘공동체의올바른존재양태에대한탐색과그것을가로막는힘에대한비판정신으로가득하다.그리하여그가노벨을벗어나SF나알레고리로훌쩍뛰어넘는순간에도역시나그의관심은이시대와공동체를결단코벗어나지않는다.실로소설의본령에해당하는이러한영역은한동안한국소설계에서는상당히결여되어있었던부분이다.김강은맹렬한기세로이결여의영역을채우며한국문단의중심으로육박해들어오고있다.그렇기에김강은무척이나귀한작가이며,그의작품에감동이라는요소까지예술적으로녹아든다면그는희망의깃발이되어한국문단의창공에서오래도록펄럭일것이라믿는다.”고평한다.

이처럼문사의계보를잇는김강의소설집『착하다는말내게하지마』는예민한감각으로인간의원형을탐구하며동시에공동체의올바른윤리성을좇는다.그의날카로운,어쩌면과도한윤리의식이지금우리시대에가장우선되는요구는아닐는지.김강의감동이있는문학클리닉에서잠자고있던우리의빛나는감수성과윤리감각을깨워보길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