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 우먼의 기쁨과 슬픔

세일즈 우먼의 기쁨과 슬픔

$16.00
Description
〈강원도의 맛〉 〈내가 사랑한 동물들〉 전순예 작가 신작
우리를 먹여살렸던 그 시절 엄마 이야기
환갑에 글을 쓰기 시작해 70대에 작가가 되어 출판계에 ‘할머니 파워’를 선보였던 전순예 작가가 〈강원도의 맛〉 〈내가 사랑한 동물들〉에 이어 세 번째 에세이를 펴냈다. 앞의 책들이 그리운 옛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담았다면, 이 책은 먹고살기 위해 1970~1990년대 물건을 사고팔았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강원도 평창과 영월에서 문구점과 서점을 운영하며 책과 학용품 등을 팔았고 부업으로 신문지국과 주산학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틈틈이 여기저기서 생긴 사과와 배추와 더덕을 팔고, 초등학교 운동회날 운동장 바닥에서 장난감을 팔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이 셋을 돌보고 집안 살림을 했다. 1980년대 서울에 올라와 세제 방문 판매를 시작으로 빵 배달을 하고 압력솥과 분쇄기, 주방기구를 판매했다.
물건을 파는 일은 때론 체면을 구기고 모멸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가족을 위해 길가에 피는 민들레처럼 버텨냈다. 돈 버는 일은 힘들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어디에나 좋은 사람은 있어 도움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돈 버는 일이 늘 괴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슬픔만큼 기쁨 또한 존재했다. 일하며 얻는 보람, 노하우에 대한 자부심, 함께 일하는 여성들과 나누는 동료애 같은 것들. 작가는 세일즈 우먼으로 겪은 기쁨과 슬픔을, 밥벌이의 치열함과 숭고함을 진솔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담아냈다. 빛나는 인생은 아닐지라도 자기 앞의 생을 소중하게 살아낸 사람의 자긍심이 고단한 현생을 살아가는 독자에게 담담한 위로를 건넨다.
1970~1990년대의 사회상과 여성 노동의 현실을 엿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이다.

저자

전순예

1945년강원도평창군평창읍뇌운리어두니골에서농부의딸로태어났습니다.어머니를도와여섯살부터부엌일을했습니다.국민학생때큰오빠가빌려다준동화책『집없는천사』를읽고감동해작가가되기로결심했습니다.동생들을보느라비오는날만학교에갈수있었지만,학교문예반에서동시와동요,산문을쓰며꿈을키웠습니다.

하지만꿈은꿈으로남겨둔채결혼을하고아이를낳고서울에올라와먹고살기위해사고파는일을열심히했습니다.환갑이되어평생마음속에간직한작가의꿈을이루기위해다시글을쓰기시작했습니다.

지은책으로강원도산골에서해먹던소박한음식과함께나누어먹던사람들,풍성하고아름다운자연을떠올리며쓴『강원도의맛』과인생을행복하고풍요롭게해주었던,함께울고웃으며살아온동물들의이야기를담은『내가사랑한동물들』이있습니다.

목차

작가의말6

1부
사고파는일을배웠던시절,
평창1973~1979

가게를열고,아침이오는게무서웠다13
멜로디언을치는피아니스트19
풍선값이풍선처럼불어나네24
“아저씨,내가사과를봐서참아요”29
빵까지팔게된문구점35
사람들이릴레이로옮겨준배추41
우리가게만파는명물,못생긴노트46
마당에내놓고,앨범을떨이로팔다51
“여기새댁돈이어느것이오”57
왜싸우면눈물부터나는지63
꼬마들에게도대목이있다69
일일매일일하니,이러다죽겠구나74
미루나무가준선물79
시루목넘치면피난가세84
벽을문이라고밀고나간분옥이89
유치원아들도신문배달95
“괜히산다고하다가못사면창피하다”101
좋은씨앗이있다는소리만들으면106
소나기재넘어울며가는이삿길111

2부
책을팔았던시간,
영월1979~1983

문구익숙해지려니서점장사119
책훔치는아이,카드훔치는숙녀125
몸썰머리나는아저씨오토바이부대131
겨울밤나만을위한시간137
한식에서양식으로,식탁이달라졌어요143
돈갚으러와서책을잔뜩사간청년149
전재산을노름돈으로내준동생155

3부
살기에벅찼으나포기하지않은세월,
서울1983~1995

미쳤지,여기를왜왔을까163
방문판매벨누를때손이떨렸다169
500타래미더덕이도착하다175
딩동,신데라빵이왔어요182
이혼한다던부부를화해시킨압력솥187
사무실에생긴내책상과전화193
“강원도사람이라말보다요리가빨라요”199
명함은민들레씨앗205
양말공장에서연요리강습회211
냄비팔아현찰로새차를산방여사217
은행자판기커피가접대였던민여사223
물리치료는커녕,몸살이나다229
배타고제주도에가서연요리강습235
냄비하나못팔던남편이달라졌어요241
밥을전부사먹는집에냄비파는방법247
눈물이뚝뚝떨어져도가장이기에253

출판사 서평

추천사

가장의어깨는무거웠지만때론두드리면문이열렸고
초라한자신을일으켜세운건스스로의용기였다

전순예작가의글을좋아한다.꾸밈없는문장에실린그많은경험과생각들,감정들에경탄한다.생명에대한애정,고통을이기고껴안는힘,반듯한삶의의지,겸손함과너그러움을존경한다.『강원도의맛』과『내가사랑한동물들』에서산골의인심과풍경,함께살았던동물과의사연을전했던작가는이제좀더무겁고알알한이야기를들려준다.물건을팔아돈을벌어야하는여성의이야기다.작가가20여년동안판매한물건은이러하다.문구,장난감,풍선,사과,배추,빵,책,크리스마스카드,물비누,더덕,분쇄기,냄비세트,압력솥.주산학원과신문배달지국도운영한다.이물품과서비스들을가게에서팔고,초등학교운동장에서팔고,5일장에서팔고,상가를돌아다니며팔고,남의사무실에서팔고,남의공장에서팔고,남의집에서팔고,아파트단지를돌아다니며판다.기쁜일,슬픈일,서러운일,억울한일을겪고,때로체면과건강을물품대금과맞바꾸게도된다.

그러나그가절대팔지않는것도있다.선량함,정직함,가족,자기신념.팔아야하는것을정직하게팔고,팔지않아야하는것을반듯하게지키는치열한삶의기록을읽으며숙연해졌다.전순예작가를더좋아하고존경하게되었다.돈벌기쉽지않고,가장의어깨는무거우며,앞날은예측하기어렵지만,두드리면때로문이열렸고,자신이초라하다여겨질때가장필요한것은누구의응원도아닌스스로의용기였다.그오랜교훈들을이렇게진실하게전할수있는작가가또있을까.
-장강명(작가)

책속에서

그러다어느날인가한탄을멈추고세상으로걸어나오는많은주부를볼수있었습니다.자기전공을살려일하기도하고새로운분야에도전해헤쳐나가며살았습니다.투자금도없이맨몸으로세일을하는많은사람을만날수있었습니다.

주부들이살림하면서직장을다닌다는것은1인2역이아니라1인3역,4역도해야하는일입니다.세일이힘들고어려워도세상살이를같이하는많은주부가있어위로가되었습니다.돈도벌고아이들도키우고살림도하느라편히잘시간도없고,쉬는날도따로없었습니다.바쁜중에도꿈을잃지않고자기도함께성장을했습니다.주부들은빛나는자리는아니라도자기자리에서최선을다했습니다.나는자식들을대학에못보낼까봐아무리어려워도일을그만두지못했습니다.또쉽게그만두면‘우리엄마도뭘한다고하다쉽게포기하던데’하며자식들이본을볼까봐그만두지못하고끝까지버텼습니다.내가그랬던것처럼일하는주부들은자기가정을야무지게꾸려갔습니다.누가뭐래도그들은책임감있는가장이었습니다.

세일을하면서야박스럽고야속스런사람을만나면내가너무초라하고못난것같아좌절할때도많았습니다.그래도격려와도움을아끼지않은많은분이있었기에길가에피는민들레처럼웃으며다시일어설수있었습니다.
---「작가의말」중에서

가을운동회가가까워오자평창장돌뱅이아줌마들이장난감을도매로달라고모여들었습니다.자기들끼리는‘똘마니부대’라고불렀습니다.이때다싶었습니다.나도똘마니아줌마들틈에끼기로마음먹었습니다.친정어머니한테돈을좀빌려달라고했습니다.뭐하는데돈이필요하냐고묻는데,쓸데가있으니한달만쓰고이자쳐서갚을테니빌려달라고했습니다.친정어머니한테빌린돈으로남편은충북제천에가서장난감을해왔습니다.

자신있는건아니지만몇날며칠을밤새워울면서연구하고잘할수있을거라고다짐했습니다.계촌학교운동회가그해첫번째날이었습니다.어둠이가시지않은새벽,아직자고있는아들을남편한테맡겨놓고이웃몰래떠납니다.새벽4시에똘마니아줌마들과버스부(터미널)에모여4시30분에출발하는차에각자의짐을싣고계촌으로향했습니다.‘전순예,울어서는안돼.이것은잘살수있는기반을닦는거니용감하고씩씩하게잘해내야해.’먼산을바라보며눈을껌벅거리고갔습니다.
---p.19

오랜만에분옥이가살아온이야기를들었습니다.시집은논이아주많은부자라고소문이났답니다.자기는논이없는산골짝에서강냉이밥먹는게싫어서시집가면쌀밥만먹겠다고내심좋았답니다.막상시집와서보니논몇마지기에산비탈밭이전부여서간당간당하게겨우밥먹고사는집이었답니다.분옥이신랑도국민학교를나오고한문을좀배운것이전부입니다.시할아버지에시동생이둘,시누이가둘이었습니다.시아버지나신랑이나다들순하기만해서제털빼서제구멍에박는답답한사람이었답니다.시어머니는시장도안가고집안에만곱게계셨답니다.

어떻게살아야하나난감해잠이오지않았다고합니다.친정어머니는수단은없었지만살림은야무지게하는분이셔서독하게일을가르쳐줬습니다.그때는혼자두부도만들고엿도고면서어머니가많이야속스러웠다고합니다.초가을에시집와서그해겨울에엿장수로나섰답니다.양반이고한학자인시할아버지는어린것이집안망신시킨다고노발대발하셨답니다.하루이틀생각한게아니기때문에벽을문이라고여기며밀고나가기로했답니다.겨울에는엿을고아서팔고여름에는나물이며집에없는건사서라도팔았답니다.

식구들이놀지못하게없는소와배냇돼지(주인과나눠갖기로하고기르는돼지)도얻어다키우면서억척을떨었답니다.그렇게억척떨고살아서시누이와시동생을다고등학교까지뒷바라지할수있었답니다.살림하면서짜고짜고(아끼고)모아땅도늘렸답니다.“팔자좋은너는고생이무엇인지모를거여”합니다.나같이고생하고사는사람이어디있겠나생각할때가많았습니다.사람들을만나고보면나는입도못벌릴정도로고생한이야기를전해줍니다.그런이야기를듣고는감히내처지를불평할수없게됐습니다.
---pp.95~96

겨울은밤이길어책을읽기에딱좋은계절입니다.낮에는여러일로마음놓고책읽을시간이없습니다.1980년겨울책읽기특별작전을세웠습니다.밤12시부터새벽5시까지책을읽기로했습니다.모두가잠든밤,나혼자앉아서책을읽습니다.다행히도나는초저녁잠이많아서초저녁에한잠자고나면밤을새워도괜찮습니다.반대로남편은새벽잠이많아서내가저녁에자고일어나밤새워도알지못하고잡니다.혹시나깨면남편은“안자고뭐해?”합니다.나는“응,조금만더읽고잘게”합니다.그겨울에《이민》,《가시나무새》,《카인과아벨》,《빙점》,《양치는언덕》,《난장이가쏘아올린작은공》을읽었습니다.하루라도안읽으면무슨큰일이라도나는것처럼책을읽었습니다.
---p.139

어느봄날,서울강동구길동의보험회사지국이있는고층빌딩에엘리베이터를타고꼭대기까지올라갔습니다.위에서부터한층한층내려서들를작정이었습니다.건물꼭대기층에서아래를내려다보니너무막막하고,모르는사무실문을열고들어갈용기가나지않았습니다.내가꼭이렇게해야하나생각하니이일을그만둬야겠다싶어서그대로내려와집으로왔습니다.

집앞에서짐보따리를잔뜩든옆집아주머니와마주쳤습니다.“오늘처럼따땃한봄날,같이고수부지로소풍이나가자”고했습니다.웬소풍이냐고물어보니집에있기가따분해밥과김치만싸서가려던참이라합니다.반가운일이었습니다.나도집으로혼자들어가봐야별볼일없는날이었습니다.얼른따라나섰습니다.가다가빵과음료수를사서고수부지안민들레가한창핀풀밭에자리를폈습니다.하늘을쳐다보며아주한가한여인들처럼행복해졌습니다.먹고떠들며한참을있다보니옆에피어있던민들레꽃대가눈에보이게쑥자라면서솜털같은씨앗이멀리날아가고있었습니다.어디서날아왔는지내옆풀밭에는솜털같은씨앗이내려앉고있었습니다.

바로이거다싶었습니다.내가가진주무기인명함을많이뿌리면민들레씨앗처럼어딘가에서싹이날거란생각이들었습니다.강가풀밭에서날던민들레씨를보고용기가났습니다.다음날다시길동보험지국을찾아갔습니다.주부들을만나기에는보험회사만큼좋은곳이없습니다.용기를내회사문을열고들어갔습니다.
---pp.208~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