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소설가가 책상에서 하는 일 | 한은형 에세이)

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소설가가 책상에서 하는 일 | 한은형 에세이)

$13.00
Description
“시대에 의해 숨겨졌던
세계문학 속 여성 인물을 이야기하다”
유별나고 까다로운 사람이 자신과 똑같은 성격의 사람에게 끌릴 확률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접해온 이야기, 고전문학이자 세계문학으로 불리는 소설 속에서 여성 주인공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고전문학 목록에 여성작가가 등장하는 것은 근현대로 넘어와서다. 남성 소설가의 시선을 통해 재현된 여성 주인공들은 어딘가 납작하게 느껴지곤 한다. 남성 소설가의 세계 속에서 여성 인물들은 ‘전형성’을 띠고 등장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렇게 납작하게 묘사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편하게 읽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고전은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는 걸까? 오직 비판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는 작품인 걸까? 소설가 한은형은 지금의 우리가 고전문학을 어떤 시각으로 읽을 수 있는지 자신만의 답을 내놓는다.
한은형은 책 읽기를 좋아하고 어른들의 허위의식을 경멸하는 한 아이의 이야기 『거짓말』로 제2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 속 여자아이의 취미는 자살수집가였는데, 만약 이 아이가 자랐다면 『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를 쓰는 작가가 되었을 게 분명하다.

“나는 편한 사람이 못 되어서 ‘유별나다’라거나 ‘까다롭다’라는 말을 들으며 아직껏 살아왔는데, 그래서 다른 ‘문제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들에 끌렸던 것 같다.
성격으로 인해 곤란을 겪기도 하고, 무언가를 얻기도 하고, 또 잃기도 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느낀다. 그들이 그런 성격으로 살고 싶어서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는 걸, 그들도 자기 자신을 어쩔 수 없다는 걸 말이다.
나도 이런 성격으로 살고 싶어서 이렇게 사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_프롤로그 중에서

한은형은 모난 곳 없이 매끈하고 부드러운 인물보다 문제적 성격을 가진 인물에게 더 끌린다. 이것이 소설가 한은형의 매력이다. 스스로 유별나고 까다로운 사람이라 말하길 주저하지 않으며, 그런 이유로 같은 성격을 가진 인물을 채집하는 데에 즐거움을 느낀다.
유별난 내가 유별난 타인에게 끌릴 수 있을까. 그런 일은 드물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편한, 나와는 다른 사람을 찾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은형은 다르다. 나와 같은 까다로운 인물들에게서 오히려 지지받는 느낌을 받는다.

“자세가 꼿꼿하고, 자신감이 있고, 사근사근하지 않고, 단단하다. 나는 이런 인물들에게, 특히 이런 여성 인물들에게 매료되는 편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들은 애교나 사랑스러움을 가지라는 식의 내면화된 교육을 받고 자라는데, 내가 “왜 이렇게 애교가 없어?”라며 종종 비난받았던 사람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그녀들을 통해 느꼈고, 그런 그녀들로부터 지지받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_122쪽
저자

한은형

서늘하고날카로운시선을가진소설가다.물이얼어얼음이되어가는모습을가만히지켜보며기록하는사람이기도하다.마냥차갑기만한것은아니다.무언가를숨기지않는,솔직함이한은형의미덕이라말할수있겠다.그는때때로놀라울정도로관조적인시선으로자신을바라본다.자기자신을풍경처럼놓을수있는사람이있다면,그가바로한은형일것이다.
한은형은장편소설『거짓말』로제20회한겨레문학상을수상했다.소설집『어느긴여름의너구리』를썼으며테마소설집『도시와나』,『안녕,평양』에도작품을실었다.에세이로는『우리는가끔외롭지만따뜻한수프로도행복해지니까』,『오늘도초록』,『베를린에없던사람에게도』등의책을썼다.

목차

프롤로그세발달린개가없었더라면

너무많이느끼는안나-레프톨스토이,『안나카레니나』
죽음을사랑하기로한안나-레프톨스토이,『안나카레니나』
불멸할수밖에없는로테-요한볼프강폰괴테,『젊은베르테르의슬픔』
결혼하고싶지않은엠마-제인오스틴,『엠마』
제멋대로사랑하는리디아-피에르드리외라로셸,『도깨비불』
누구보다세련된엘렌-이디스워튼,『순수의시대』
배울기회가없었던테스-토머스하디,『더버빌가의테스』
시대를갖고논사라-존파울즈,『프랑스중위의여자』
거짓속에서산브리오니-이언매큐언,『속죄』
돈으로가득한데이지-F.스콧피츠제럴드,『위대한개츠비』
아몬드냄새가나는페르미나다사-가브리엘가르시아마르케스,『콜레라시대의사랑』
끝내지루함을선택한캐서린-에밀리브론테,『폭풍의언덕』
순수와격정을오가는요코-미즈무라미나에,『본격소설』
열세살에권태를느낀에스메-J.D.샐린저,「에스메를위하여,사랑그리고비참함으로」
한번에담배두개비를피우는조던베이커-F.스콧피츠제럴드,『위대한개츠비』
세상모두에게잔혹한나스따시야-표도르도스토옙스키,『백치』
죽을때까지왕녀인마틸드-스탕달,『적과흑』
서른에사랑을처음배운레날부인-스탕달,『적과흑』
‘격’있는사랑을하고싶었던보바리부인-귀스타브플로베르,『마담보바리』
세상으로부터버림받은델핀루-필립로스,『휴먼스테인』
미칠수밖에없었던에스더-실비아플라스,『벨자』
남자없는여자,에스텔러-찰스디킨스,『위대한유산』
고아가되기로한테레사-밀란쿤데라,『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
애벌레에게도상냥한앨리스-루이스케럴,『이상한나라의앨리스』
검은모자가된사비나-밀란쿤데라,『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
인생의즐거움을누리는쇼샤부인-토마스만,『마의산』
운명의자매인세마녀-윌리엄셰익스피어,『맥베스』
내가꿈꾸는사람,바베트-이자크디네센,『바베트의만찬』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성격채집가한은형이찾아낸29명의여성,
그들과함께타오르는새파란불길

이책은,소설가는책상앞에서어떤책을,어떤생각을하며읽을까?라는독자들의궁금증을해결해준다.
소설가이자성격채집가인한은형은자신의책상에서서늘한세계를만들어낸다.여성소설가의시선에서새롭게태어나는여성인물들은새파란빛을발한다.한은형의문장을따라나아가면고전소설속에서전형성을대변한다믿었던여성들의기개과폭발성을발견하게된다.그들의아름다움과추함의매력에대해서이야기하며우리안에잠들어있던또다른‘나’를찾을수있게돕는다.
한은형이채집한29명의여성인물은제각각다른성격을갖고있다.그들의성격은세상에의해종종부정적인것으로폄하되기도했다.그러나이책속에서는그렇게평가절하된성격이한은형의시선을만나긍정적인것으로변모한다.인물에게다시활기와생기를부여해주는것이다.
안나카레니나와테스와『폭풍의언덕』의캐서린을비극적인인물,남자에미쳐인생을버린인물로읽어왔다면한은형은바로그들의이런점을다른언어로말한다.

“안나카레니나,레날부인,보바리부인,테스,엠마,데이지,쇼샤부인……
여자들의이름을적다가충격에빠졌다.이여자들은남자없이는존재할수없는,사랑없이는살수없는인물들이었던것이다.
그럴수밖에.여자들에게는달리할수있는일이없었다.제대로된직업을가질수있는기회는극히한정되었고,제대로된‘유리한’결혼을하는게삶을바꿀수있는유일한길이었다.
그렇다면남자들은?돈키호테,로빈슨크루소,파우스트,오이디푸스왕,율리시스,데미안……
역시,남자들은달랐다.그들에게는전쟁이,모험이,출세가,입사入社가있었다.세상을누비고다녔다.그러고도여유가있을때남자들은연애를,때로는사랑을했다.
여자들에게는육체적모험과정신적모험이허락된길,그러니까다른세계로갈수있는방법은단하나뿐이었던것이다.연애혹은사랑.그러니전부일수밖에.”
_30쪽

세간에서는히스테리적인인물,이해할수없을정도로격정적인인물로읽어내는『본격소설』의요코에대해서도한은형은다르게말한다.평가절하되는인물의성격을하나씩채집해나가며,이인물에게는기개가있다고이야기한다.2021년을살아가는우리에게꼭필요한지침서가있다면그건바로이책일것이다.

“요코를보면서사람의성격이라는게참재미있다고생각했다.난폭은격정이될수도있고,어두움은은밀함이될수도있고,험상궂은기운은용기가될수도있는것이다.어떤상황이어떤상황을만나는지에따라달라진다.버티기도하고,폭발하기도한다.폭발은제대로할수도있고,불발되기도하는데,어떤폭발은‘히스테리’라불리고또어떤폭발은‘기개’가되기도하는것이다.”
_112쪽

새하얀눈을걷어내면드러나는잿빛의흙처럼,
적나라하고날카로운한은형의문장

한은형소설가특유의서늘하고날카로운문장은이책과더할나위없이잘어울린다.세계문학속문장을인용함에있어서도군더더기가없으며,그문장을재해석하는한은형만의문장은그보다더아름답다.
한은형은자신의소설『거짓말』에관해이야기하며“잔인하게보기,잔인하게쓰기가자신의리얼리티이기에계속잔인한소설을쓰고싶다”라고말한바있다.그런소설가이기에,그가바라보는세계문학에대한시선은서늘할수밖에없다.
예리한눈빛으로소설을읽어내려가며다시촘촘하게엮어내는소설가는세계문학속여성인물을어떻게이야기할까.단순히소설가라서궁금한게아니다.‘한은형’이기에궁금한것이다.
『폭풍의언덕』을읽으며받은느낌도간편하게진술하는게아니라,구체적으로묘사해낸다.한은형이재해석하고묘사하여구축하는세계는견고하고매력적이다.

“예전의내가먼거리에서워더링하이츠를올려다보았다면,지금의나는비바람이치는워더링하이츠에서서미칠듯이일렁이는히스들과함께흔들리고있는것이다.길지도않은내머리카락은바람에날려산발이되고…
나는그런채로완악한바람이대기중으로풀어놓는히스입자들을보고있다.”
_100쪽

소설가가만들어내는지적인세계로의초대

소설가란무엇인가.한은형은이질문에대해“소설가는쓰지않고는견딜수없는사람”이라고답한바있다.책을읽으며그저고개를끄덕이기만하는것이아니라,그안에서발견한의문과진실을자신의세상으로확장해나가는것이다.그러니소설가가만드는세계는필연적으로지적일수밖에없다.
‘메타포’에대해한은형은이렇게말한다.

“메타포란무엇인가.사전적정의에따르면‘은유’다.‘A’를‘B’라고말하는것.은유에대해들어본적없는어린아이에게말해야한다면나는이렇게말할것이다.둘사이에선긋기를하는일이라고.상식적인선에서선긋기를하면고개를끄덕거리지만,상식을뛰어넘어성공적으로선긋기를하면그메타포는잊을수없는게된다.
『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에서결정적메타포는‘중절모’다.사비나는토마스와중절모를둘러싼메타포를공유하지만프란츠와는그러지못한다.토마스와맺는관계에서는관능을더하고,또여러감정을증폭시켰던중절모가프란츠에게는우스운것일뿐이다.”
_199쪽

이‘메타포’가소설에서어떤역할을하는지,인물들의관계에있어서어떤영향력을발휘하는지에대해이토록쉽게이해할수있게끔이야기하는사람이또어디에있을까.자신이갖고있는정보를그대로읊기만하는것은어렵지않다.그러나그것을자신의언어로,읽는이로하여금곧바로이해가되도록말하는것은다른차원이일이다.한은형의글을통해서우리가고개를갸웃했던장면을다시읽어보는건그것만으로도귀한체험이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