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외롭지만 따뜻한 수프로도 행복해지니까 (소설가가 식탁에서 하는 일 | 한은형 에세이)

우리는 가끔 외롭지만 따뜻한 수프로도 행복해지니까 (소설가가 식탁에서 하는 일 | 한은형 에세이)

$13.00
Description
“음식 앞에서 동심으로 돌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다”
“한 번도 되어본 적이 없는 아이”가 되는 방법

우리가 어렸을 때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누군가는 활발한 아이였을 수도 있고, 또다른 누군가는 조용한 아이였을 수도 있다. 내가 어떤 아이였느냐에 따라 유년기의 색채는 변하기 마련이다.
유년은 이미 지나가버렸고, 지나간 시절로 돌아가기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그러나 한은형은 음식 앞에서라면 자신이 “한번도 되어본 적 없는 아이”가 될 수 있노라 말한다.

“음식을 상상하면 ‘동심’이 생겨나는 것을 느낀다. 한 번도 되어본 적이 없는 아이가 되는 기분… 이 기분이 이렇게나 좋을 줄 몰랐다.”_프롤로그 중에서

한은형은 음식을 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음식을 먹으며 다른 세계를 상상한다.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바쁜데 상상을 하며 본 적 없는 세계로 건너간다니. 이는 저자가 ‘한은형’이기에, ‘소설가’ 한은형이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잃어버린 유년을 찾아내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 수 있다.

“내게 음식을 상상한다는 것은 이 세계를 상상한다는 것이다.
이제 알겠다.
상상이란 나를 움직여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다.”_프롤로그 중에서

나에게 ‘첫’음식은 무엇이었나.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자. 내가 왜 그 음식을 먹겠노라 말했는지에 대해서도. 한은형은 자신이 어렸을 때 누군가를 모방해서 음식을 먹은 적이 있다고 말한다. 모방한 그 사람은 “소설에서 나오는 인물”이었다고도. 그를 흉내 내어 여태껏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을 주문하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이야기한다. 근사한 말이다. 소설가란 그런 것이다. 자신이 처음 주문한 음식을 떠올리면서,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을 생각하게 되는 이라면 소설가의 기질을 갖춘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내가 최초로 누군가를 따라해본 것은 ‘간짜장 시키기’였다. 짜장이 아닌 간짜장을 시키는 것. 중국집에서 주문을 할 때, 가족들이 짜장면과 짬뽕과 볶음밥 중에서 고를 때 짜장면이 아닌 간짜장을 선택하는 거다. ‘나는 간짜장’이라고 말하면서 묘한 우월감과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창피하지만 부인할 수 없다.
내가 모방한 그 누군가는 소설에서 나오는 인물이었다.”_171쪽
저자

한은형

추운겨울과뜨거운여름을오가며살아가는소설가다.글을쓸때는서늘하고날카롭지만,맛있는음식을먹는순간만큼은그누구보다다정하고상냥하다.다른이의취향을발굴해주는취향전문가이기도하다.이성과감성,그무엇하나도놓치지않는한은형의글은놀라움그자체다.
한은형은장편소설『거짓말』로제20회한겨레문학상을수상했다.소설집『어느긴여름의너구리』를썼으며테마소설집『도시와나』,『안녕,평양』에도작품을실었다.에세이로는『당신은빙하같지만그래서좋다고말하는사람이있어』,『오늘도초록』,『베를린에없던사람에게도』등의책을썼다.

목차

프롤로그참새의혀

1부인생은한조각의케이크
샌드위치고르기
하와이의해변에서
계란밥의세계
크레이프타임
나태한요리의미덕
우메소면과상대성이론
주사기햄버거집
치마와망토
음식의기쁨과슬픔
스프와담배
크루아상의시간
깨있는인생

2부마녀의식탁에흐르는것들
피와술
섬약한루겔러흐
우아한여자의오리우동
정신분석과토마토파스타
신비의파다포도
경상도식뭇국
나폴리와나폴리탄
야생아스파라거스스토킹?
송어에서는정말로수박향이나는가
스타벅스에간다는것

3부찻집에모인술꾼들에게
활활타는화주와터프한북극의잼
아시시의살라미
겨울에냉면을먹는다는것
부엉이맥주에서고양이맥주로
감자칩의세계
꿀과술과시
정겨운맛이나는막걸리
나의길티플레저
만둣국은왜따뜻한가
겨울밤의무알코올맥주
맹물야채국,그리고

4부겨울이지겨운어른아이라면
복어말고복
달걀프라이혹은달걀지단
달밤의체조와간짜장
반질반질거리지않는콩나무
검정장갑과코코아
하이라이스와태교음악
이상적인스키야키
마멀레이드와토끼굴
랄라랄라빵
PB&J
귤냄새

출판사 서평

소설가가식탁앞에서하는일,
음식을먹으며펼치는상상

소설가는식탁앞에서무슨일을할까.이책에서바로그궁금증에대한답을찾을수있다.자신이가본적없는미지의세계를상상하기도하고,오래전에거쳐갔던여행지를떠올리기도한다.그상상을풀어내는방법역시매력적이다.소설가한은형특유의묘사력이빛을발한다.

“주머니에손을찔러넣고걷는다.플립플롭을신고서어슬렁어슬렁.캠핑카를개조한하늘색ㅍ푸드트럭이보인다.저쪽에서반바지만입은남자아이들이서핑보드를끼고서달려온다.발자국위에물방울이떨어진다.바다에는전신수영복을입은열여섯살쯤됐을여자아이가파도를타고있다.머리는포니테일이다.바람을휘젓는포니테일은말갈기처럼보이고,그는아테네여신만큼이나위풍당당하다”_18쪽

한편의잘짜인소설을읽는것처럼머릿속에한은형이만들어낸풍경이그려진다.상큼하면서도맵고싸한한은형의문장이입안에서춤춘다.

미식가이자취향전문가인한은형이보여주는세계

한은형소설가가미식가라는사실은그의전작에서도확인할수있다.맛있는식사한끼를위해서라면먼곳으로떠나는것도마다하지않는다.특정여행지에서만맛볼수있는음식은놓치지않고반드시챙긴다.한은형에게는미식가가지녀야할덕목,꼼꼼함과부지런함이있다.

“외국에갈때마다내가최선을다해가져오려고애썼던것이바로이돼지고기가공육이다.흔히‘소시송’이라고부르는,말려서만든드라이한소시지.육포보다는촉촉한질감에,결과결사이에하얀지방이점점이박혀있고,소금과후추,펜넬씨드등으로절여콤콤구수한풍미로가득한,게다가짠맛이덜하고,썰어서바로먹을수있으며,와인안주로도좋고,청포도와기가막히게어울린다.”_120쪽

“나는아시시에머물기로한날을헤아려살라미를샀다.아시시에있는동안,아침이면살라미와요거트와에스프레소로아침을먹을생각으로벌떡일어났다.살라미욕이차오를때면,아시시에서의향락을복기한다.혀위에펼쳐지던,그짜릿한오후를말이다.”_122쪽

음식의맛을문장으로재현해내는것이얼마나어려운일인가.방송에서음식의맛을묘사하기위해음식을먹는사람의표정을클로즈업하는것은그러한이유때문이다.그러나한은형은자신이느낀맛을묘사하는일을아주근사하게해낸다.마치처음부터맛이단어로,문장으로존재했다는것처럼말이다.
이렇게음식을사랑하는사람은당연하게도취향의전문가가될수밖에없다.싫은일이가득한세상에서좋아하는것을하나씩발견하는기쁨을,이책을통해알아갈수있다.

“아침겸점심으로샌드위치만한게없다.가지와토마로,양파,주키니호박같은야채를구워서잔뜩넣고발사믹소스를흥건하게뿌린샌드위치를좋아한다.빵은바싹구운파니니여야할것이다.버터를바른빵위에살짝씨겨자를덮어준다면더좋다.처음에는나이프와포크로음전하게먹는다.그러다참지못하는순간이온다.와인색소스를입과손에묻히며먹게되는.”_14쪽

“사실,‘계란’보다는‘달걀’을좋아한다.그래서왜계란밥이라고하지달걀밥이라고는하지않는걸까하고생각해왔다.
날계란보다날달걀이더맛있게느껴지지않나요?그리고또저는날계란파보다는날달걀파가되고싶습니다.”_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