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드로잉 편지 (죽음의 문턱에서 유치원 친구 이경희에게 보내온)

백남준의 드로잉 편지 (죽음의 문턱에서 유치원 친구 이경희에게 보내온)

$19.50
Description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백남준이
첫사랑 이경희에게 보내온 73장의 러브 레터
“약속한 드로잉을 보내겠는데 그것들은 전부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만든 것이니 일괄 취급 요망….”

1996년 4월 9일 뇌졸중으로 쓰러진 백남준은 몇 달간의 재활 치료 끝에 회복에 성공했는데, 퇴원 후 작업한 첫 작품을 그해 9월 유치원 친구 이경희에게 항공우편으로 보내면서 팩스로 이와 같은 메시지를 덧붙였다. 내용물은 55.5×74.5cm 크기의 고급 판화지 73장에 사진 이미지를 붙이고 색깔 펜, 크레용 등 다양한 필기구로 어릴 적 기억들을 낙서해놓은 듯한, 난해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었다.

이 73장의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 이 책 ?백남준의 드로잉 편지?다. 작품에 대한 전문가의 해설과 당사자인 이경희의 해석을 붙여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선보이는 것은, 이경희가 이 작품을 받은 지 24년 만, 백남준이 세상을 떠난 지 14년 만인 셈.

이 작품을 받아 본 이경희가 백남준에게 전화를 걸어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작업을 하다니요?”라고 묻자 돌아온 답은 이랬다.

“어떻게 경희와의 약속을 잊어버려? 약속은 지켜야지. 직업이 예술가인데 쉬고 있으면 어떡해. 구상은 머리로 하고 작업은 오른팔로 할 수 있는데, 머리도 정상이고 오른팔도 정상이니까 할 수 있었지. 작품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처음으로 구상한 작품이니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공공미술관에서 한번 전시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그 작품에는 특별한 뜻도 있고 하니까. … 경희에게 보낸 작품들은 병원에서 퇴원한 후 첫 번째로 한 작업이야. 그것들은 지금껏 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고, 앞으로도 그런 작품은 다시 하지 않을 거야.”

작품을 끌러 본 이경희는 불편한 몸으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작업을 했다는 것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마냥 슬프기만 했었다고 24년 전을 회고한다. 그래서 그 작품을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고 백남준이 보낸 상태 그대로 다시 포장하여 장속에 넣어두었다가,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 2010년 포항시립미술관 개관기념전 때였다. 그리고 이 작품을 연구하듯 분석하고 해석하여 제대로 된 작품집으로 선보이는 것이 이 책 ?백남준의 드로잉 편지?이다.
저자

이경희

1932년서울에서태어나백남준과같은창신동에살면서함께애국유치원에다녔다.서울대학교약학대학을졸업했고,대학2학년때부터라디오와TV방송의퀴즈프로패널리스트로20년간출연했다.1970년첫수필집『산귀래』로문단생활을시작했으며,수필「현이의연극」은문교부발행중학교국정국어교과서에30여년간수록되었다.그밖의수필집으로『뜰이보이는창』,『현이의연극』,『백남준이야기』,『이경희기행수필』,『백남준,나의유치원친구』,『이경희,창신동에서지금여기』외다수가있다.현대수필문학상,조경희수필문학상,올해의수필가상을수상했다.국제꼭두극연맹(UNIMA)한국본부를설립하여회장을역임하고현재평생이사로있으며,한국수필가협회이사,백기사(백남준을기리는사람들)공동대표로활동중이다.

목차

작품집을펴내며_이경희
Preface_KyungHeeLee

백남준의루트기억을함께더듬는시간_김남수
TimetoTraceNamJunePaik’sMemoryTogether_NamSooKim

작품-73장의드로잉편지
Works-73DrawingLetters

인류세(人類世)시대의현자(賢者)_김원
ASageinAnthropocene_WonKim

‘백남준의드로잉편지’에부쳐_서진석
Vis-?-visNamJunePaik’sDrawingLetters_JinsukSuh

출판사 서평

죽다가살아난대예술가가과거를소환하는방법

이작품으로볼때,세계적인예술가백남준이죽음의문턱에서다시살아나자마자,그의머릿속을지배한것은‘과거의소환’이었다.이작품은백남준의과거기억의편린에서시작하여,그기억을은유하는언어,시구,이미지,기호들로가득차있다.작품은모두포토콜라주형식인데,각장마다붙어있는이미지들은크게‘백남준의할아버지장례때상여차가창신동큰대문집을지나가는장면’,‘첫개인전〈음악의전시-전자텔레비전〉(1963)의실험TV속유동하는화면’,‘존케이지,샬럿무어먼,조지머추너스,플럭서스등과함께하던젊은날의사진’,‘비디오설치가된어떤공간’,‘비디오설치앞의누드여성퍼포먼스’,‘수학기호루트(3.5√)’등인데,이에대해해설을쓴전백남준아트센터학예연구원김남수는이렇게말한다.

“이러한귀환의시간이미지는…다름아닌작가자신이어린시절느꼈던체험과감흥,일상적인단편의느낌,유치원친구이경희와함께했던놀이의추억,큰대문집의공간적느낌,1930년대와1940년대식민지근대의느낌등등현재의시간속에고스란히농축되어있는과거의시간이소환되는것이다.그소환은단순한회억이아니며,즉추억을곱씹는것이아니라작가자신의삶의시간을물고들어가서그시간의본질속에서일상적이면서무심하게드러내는것이라고할까.”

그래서일까.이작품에대해제대로된해석을할수있는사람은애초부터이경희뿐이었다.백남준이1950년에한국을떠나서35년만인1984년에귀국했을때누가보고싶냐는기자의말에“유치원때친구이경희가보고싶다”고했던일화는유명하다.이경희가이책을출간하면서가장큰뜻을둔것은자신밖에는할수없다고생각한,“작품속에있는문자드로잉들을해석”하는것이었고,그럼으로써“앞으로백남준을연구하는데이드로잉해석들이큰도움이되기를바라는마음”이었다.

한편,김남수는이작품의제목으로‘백남준루트의기억’을붙일것을제안했는데,다름아닌이작품거의대부분에‘3.5√PAIK’96’이라는특이한서명이들어있기때문이다.백남준은“노스탤지어는피드백의제곱근이다”라는유명한명제를제출한바있다.이작품에서가장중요한감흥은다름아닌유년기로되돌아가고싶은‘향수’다.그러하기에곳곳에“자,밥먹자”,“기동차를타고뚝섬에원족가자”,“칙칙폭폭기차가떠난다”,“수송학교교사”,“세검정에원족가자”등의문자드로잉(그래피티)이나타난다.

‘3.5√’에대한해석에서는이경희와김남수의해석이약간은다르다.먼저이경희는“백남준은1950년에한국을떠나서35년만인1984년에돌아왔다.‘3.5√’의3.5는한국을떠난지35년만에나를만난,그동안의햇수로생각된다.10년의세월을하나의단위로하여3.5로표기한것이다.자신의뿌리라할수있는35년전의기억,즉그시간으로의회귀를갈망하는마음이루트라는기호로표현된것이다”라고해석한다.김남수는이러한해석을존중하면서도“좌우간수학적으로만풀이하면,이3.5라는숫자가의미하는것은노스탤지어를두번이나세번가지라는것이아니라세번하고도절반을더가지라는것이다.제곱이3제곱+1/2제곱인것”이라고하면서,백남준의문자드로잉중반복해서나타나는김소월의시구에주목한다.“당신이속으로나무라면/‘무척그리다가잊었노라’”에서의‘잊었노라’는“잊었음과잊지못했음사이에서흔들리는마음,그것이「먼후일」의정감적표현이며그표면너머의정서일것”이라면서,이처럼망각과기억이교차하는영역에서의노스탤지어에는1/2제곱이포함되었을거라는해석이다.“잊으려하면잊지못하고,그리움이나면어느덧잊힌다는묘한역설”,이것이이작품의시간이미지에깃든노스탤지어의작용이라면서,‘3.5√’에서0.5즉1/2제곱의노스탤지어가부가된이유가아닐까하고추측하는것이다.그러면서“이모호하면서도모순적인경계지대로안내하는노스탤지어는그야말로백남준특유의미디움(medium)감각이가장예리하게빛을발한다”라고말한다.이외에도이작품에는김소월의시「진달래꽃」,「산유화」,김기림의「바다와나비」,정지용의「해협」,「난초」등의시구절이백남준의언어로적혀있다.

1980년대어느인터뷰에서백남준은이렇게말한바있다.“인생은일장춘몽인데,빠르고늦은것이있는가?”김남수는이작품역시이러한백남준의명제에맞닿아있음을지적하면서,“이73장의그래피티작품역시그러한반문속에서피어나는동아시아의‘꿈의형식’이라고볼수도있다”라고말한다.이작품은일장춘몽일지모르지만『장자』에나오는‘나비꿈’의상대적차원,‘몽곡읍자(夢哭泣者)’에담겨있는‘꿈속의해몽’의깊이의차원,이두가지의묘한특성이깃든꿈일것이며,그러한꿈은시간을자르고편집하고농축하는힘을보유한것,즉과거,현재,미래,사이의경계가없다는삼계무법(三界無法)과같다고말한다.

이책은‘태학사’의주도하에‘백기사’(백남준을기리는사람들)공동대표인건축가김원의‘도서출판광장’과공동출판으로탄생했다.책말미에백남준의명작‘다다익선’을함께만들었던건축가김원의글,그리고전백남준아트센터관장서진석의이책에부치는글이수록되어있다.또한외국독자들을위해모든텍스트들에영문을함께수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