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암집(상.중.하) 세트 (양장본 Hardcover | 전 3권)

분암집(상.중.하) 세트 (양장본 Hardcover | 전 3권)

$200.00
Description
구한말 호남이 배출한 이채로운 학인(學人),
분암 안훈의 사상의 자취
『분암집』은 분암(憤庵) 안훈(安壎, 1881-1958)의 유작을 모아 편집한 책이다. 안훈은 조선왕조가 쇠망의 길로 접어들던 시기에 출생하여 일제 식민기, 해방공간, 한국전쟁 등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정통 유학자로, 그의 학문적 특성은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에서 면우 곽종석으로 이어지는 주리론(主理論)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특정 학파나 당파에 구속되지 않으며 학문에 전념한, 구한말 호남유학을 대표하는 견실한 학인이었다. 『분암집』은 원집 23권 8책, 속집 3권 1책으로, 총 26권 9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번에 선보이는 『분암집』은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되는 영인본으로, 모두 세 권으로 나누어 편집했으며, 영인본 책머리에 면우 곽종석의 후손인 곽진 상지대 명예교수가 상세한 해제를 썼다.
저자

안훈

1881년전남곡성군오지리(梧枝里)에서태어났다.이른나이에서당공부를시작해15세이전에사서오경과시문,육예(六藝)를익혔고,제자백가,문학,역사,유설(類說)등을두루읽었다.1902년면우곽종석을찾아가사제지간의연을맺고학문에전념했다.1907년천덕산아래에완계정사(浣溪精舍)를짓고저술과강학에전념했으며,이때부터그의이름이세상에알려졌다.경술국치이후의병장이석용(李錫庸)이비밀리에조직한임자동밀맹단(壬子冬密盟團)에관여하여,이로인해전주형무소에서옥살이를치르기도했다.1921년동문들과함께『면우집(?宇集)』을감수,교정했으며,1937년『죽계세헌록(竹溪世獻錄)』간행을주도했다.2003년건국사업에헌신한공을인정받아건국포장이추서되었다.

목차



畵報
『분암선생문집(憤庵先生文集)』해제-곽진

憤庵集一
目錄
卷之一詩
卷之二詩
憤庵集二
卷之三書
卷之四書
卷之五書
憤庵集三
卷之六書
卷之七書
卷之八書



憤庵集四
卷之九書
卷之十書
卷之十一書
憤庵集五
卷之十二書
卷之十三書
卷之十四雜著
憤庵集六
卷之十五序
卷之十六記
卷之十七跋·箴·銘·贊·昏啓·上梁文·祝文·祭文·哀辭



憤庵集七
卷之十八碑·墓誌
卷之十九墓表
卷之二十墓表
憤庵集八
卷之二十一墓碣銘
卷之二十二墓碣銘
卷之二十三行狀·遺事·傳
憤庵集九(續)
目錄
卷之一賦·詩·書·雜著·序·記
卷之二碑·墓表·墓碣銘·行狀·傳
卷之三附諸子記聞
憤庵集附錄
憤庵安先生墓碣銘幷書
憤庵安先生講學碑銘幷書
浣溪精舍記

출판사 서평

분암안훈은누구인가

분암안훈은1881년전남곡성군오지리(梧枝里)에서태어났다.이른나이에서당공부를시작했는데,매일자신이읽을분량을스스로정한뒤읽은책을통째로외울정도였다.15세이전에이미사서오경(四書五經)과시문(詩文)그리고육예(六藝)를익혔고,이어서제자백가,문학,역사,유설(類說)등을두루읽으며6~7년간학문에매진했다.22세되던1902년그는경남거창다전(茶田)에서강학하던면우(?宇)곽종석(郭鍾錫)을찾아가사제지간의연을맺었다.이후매년면우에게나아가가르침을청하면서,한편으로는해봉(海峰)하겸진(河謙鎭),낭산(?山)이후(李?)등과도학을논하고예설을토론했다.

을사늑약이후1907년천덕산(天德山)아래에완계정사(浣溪精舍)를짓고저술과강학에전념했는데,이때부터그의이름이점차세상에알려져배움을청하는이들의발길이이어졌다.경술국치이후유학자로서성리학탐구와제자양성에힘쓰는한편,의병장이석용(李錫庸)이비밀리에조직한임자동밀맹단(壬子冬密盟團)에도관여했으며,이와관련하여전주형무소에서옥살이를치르기도했다.

이후완계정사로돌아와다시강학과저술활동에전념했는데,경전공부의중요성을강조하고공자,맹자,주자,퇴계,율곡,면우로이어지는학문전통을지키려고힘썼다.1958년완계정사의북서쪽에스승면우를모시고자산앙재(山仰齋)를세우려고터를닦기시작했는데,이듬해인1959년준공을보지못하고78세의나이로별세했다.1921년동문들과함께스승의문집인『면우집(?宇集)』을감수,교정하였으며,1937년『죽계세헌록(竹溪世獻錄)』간행을주도했다.2003년광복절날,나라에서는건국사업에헌신한공을치하하고건국포장을추서(追敍)했다.

『분암집』의내용과의미

『분암집』은원집23권8책,속집3권1책으로,총26권9책으로구성되어있는데,이번에선보이는『분암집』은처음으로일반에게공개되는영인본으로,모두세권으로나누어편집했으며,영인본책머리에면우곽종석의후손인곽진상지대명예교수가상세한해제를썼다.

우선,이책에는분암이남긴유작들이모두수록돼있는데,그내용은시(詩),서(書),잡저(雜著),서(序),기(記),발(跋),잠(箴),명(銘),찬(贊),혼계(昏啓),상량문(上梁文),축문(祝文),제문(祭文),애사(哀辭),비(碑),묘지(墓誌),묘표(墓表),묘갈명(墓碣銘),행장(行狀),유사(遺事),전(傳),부(賦),부제자기문(附諸子記聞)등이다.그리고부록으로원집과속집에도없었던,분암선생의묘갈명(憤庵安先生墓碣銘幷書)과강학비명(憤庵安先生講學碑銘幷書),완계정사기(浣溪精舍記)도덧붙여졌다.

20세기초분암이자리잡고있던전남곡성의완계정사(浣溪精舍)는일상의강학당이아니라,시대의민감한정보들이소통되고학맥이교차하는전선(戰線)이었다.송사(松沙)기우만(奇宇萬)을중심으로분암안훈과기암(起庵)이중업(李中業)이교류하였으며,그리고회봉(晦峰)하겸진(河謙鎭),대연(大淵)곽윤(郭奫),운거(雲擧)최익한(崔益翰)등이서신을주고받으며시대를걱정하고편당(偏黨)을넘어서려했던영호남학인들의학술교류처였다.

곽진교수는“『분암집』에는이렇듯학문에대한열정과소통의개방성을추구했던흔적이,그리고‘나라독립’이라는절절한시대과제와씨름했던행정(行程)들이고스란히담겨있다.”고하면서,“분암이선배유학자들과비교해서지명도가그다지높지않았고,그의학문적업적도세상에제대로알려지지않은게사실이지만,학문에대한열정과소통의개방성은평가받아야할것으로믿는다.”고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