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 사마천 사기 34 (양장)

신주 사마천 사기 34 (양장)

$30.00
Description
《신주 사마천 사기》 전 40권 완간

《사기》는 〈본기(本紀)〉, 〈표(表)〉, 〈서(書)〉, 〈세가(世家)〉, 〈열전(列傳)〉의 다섯 부분 으로 구성된 기전체(紀傳體) 역사서이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는 2020년 4월 《신주 사마천 사기 본기(전9권)》를 시작으로 2021년 《신주 사마천 사기 표·서(전7권)》, 2022년 《신주 사마천 사기 세가(전9권)》을 거쳐 2023년 《신주 사마천 사기 열전(전15권)》으로 《신주 사마천 사기》가 전 40권을 완간했다. 사마천이 쓴 《사기》 본문뿐만 아니라 ‘삼가주석’이라고 불린 배인의 《집해》, 사마정의 《색은》, 장수절의 《정의》까지 모두 번역한 세계 최대의 《사기》 번역본이다. 또한 우리 관점의 〈신주〉를 달아서 사마천의 《사기》뿐만 아니라 삼가주석에 담긴 의미를 짚었다.
이를 통해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을 견뎌내고 《사기》를 편찬한 이유는 하화족(夏華族)의 중국사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음을 밝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기》, 특히 삼가주석에는 사마천이 그토록 지우려고 했던 동이족(東夷族)의 역사가 담겨 있음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간 《신주 사마천 사기》를 읽고 “역사의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는 많은 독자들의 독서평이 이를 번역한 연구진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저자

사마천,배인,사마정,장수절

저자:사마천

사기(史記)의저자(BC145~BC86).자는자장(子長).용문(龍門:현재韓城縣)출생.사마담(司馬談)의아들.7세때아버지가천문역법과도서를관장하는태사령(太史令)이된이후무릉(武陵)에거주하며고문을독서하던중,20세경낭중(郎中)이되어무제를수행하여강남(江南),산둥(山東),허난(河南)등의지방을여행하였다.BC111년에는파촉(巴蜀)에파견되었고,BC110년에는무제의태산봉선(封禪)의식에수행하여장성일대와하북요서지방을여행하였다.이여행에서크게견문을넓혔고,'사기'를저술하는데필요한귀중한자료를수집하였다.기원전110년사마담이죽으면서자신이시작한'사기'의완성을부탁하였고,그유지를받들어BC108년태사령이되면서황실도서에서자료수집을시작하였다.BC104년(무제태초원년)천문역법의전문가로서태초력(太初曆)의제정에참여한직후'사기'저술에본격적으로착수하였다.그러나저술에몰두한그는흉노의포위속에서부득이투항하지않을수없었던벗이릉(李陵)장군을변호하다황제의노여움을사서,BC99년남자로서가장치욕스러운궁형(宮刑)을받았다



저자:배인

자가용구龍駒로서남북조시대남조송(420~479)의하동문희(현산서성문희현)출신이다.진수의《삼국지》에주석을단배송지의아들로서《사기집해》80권을편찬했다.



저자:사마정

자가자정子正으로당나라하내(지금하남성심양)출신인데굉문관학사를역임했다.사마천이삼황을삭제한것을문제로여겨서삼황본기를추가했으며위소,두예,초주등여러주석자의주석을폭넓게모으고자신의견해를덧붙여《사기색은》30권을편찬했다.



저자:장수절

당나라의저명한학자로,개원24년(736)《사기정의》서문에“30여년동안학문을섭렵했다”고썼을정도로《사기》연구에몰두했다.그가편찬한《사기정의》에는특히당나라위왕이태등이편찬한《괄지지》를폭넓게인용한것을비롯해서역사지리에관한내용이풍부하다.



역자: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사기연구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는1998년창립된이래한국사학계에만연한중화사대주의사관과일제식민사관을극복하고한국의주체적인역사관을세우려노력하고있는학술연구소다.독립운동가들의역사관계승작업을꾸준히진행하는한편《사기》본문및‘삼가주석’에한국고대사의진실을말해주는수많은기술이있음을알고연구에몰두했다.지난10여년간‘《사기》원전및삼가주석강독(강사이덕일)’을진행하는한편사기연구실소속학자들과《사기》에담긴한중고대사의진실을찾기위한연구및답사도계속했다.《신주사기》는원전강독을기초로여러연구자들이그간토론하고연구한결과의집대성이라고할수있다.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는《신주사기》출간을시작으로역사를바로세우기위해토대가되는문헌사료의번역및주석추가작업을꾸준히이어갈계획이다.

목차


머리말《사기》〈열전〉의넓고깊은세계에관하여

전숙열전(사기제104권)
제1장대도를안전숙
제2장저소손의보충기록

편작창공열전(사기제105권)
제1장명의의대명사편작
제2장태창공순우의
제3장순우의의남은이야기

오왕비열전(사기제106권)
제1장반란의조짐
제2장오초칠국의반란
제3장제압된반란
제4장반란의사후처리

위기무안후열전(사기제107권)
제1장두영과전분
제2장운명의개입자관부
제3장몰락한두사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사기》〈열전〉의세계는한마디로“역사의흐름은도도하게흐르는황하의물길과같다.”는것이다.대부분의인간은그흐름에몸을맡겨살아가지만소수의인간은그물길을바꾸려하거나그흐름을거슬러올라가려하는데《사기》〈열전〉의주인공들은대부분시대의흐름에순응하기보다는시대의흐름을거스르거나그흐름을이용해자신의족적을남긴사람들에대한이야기를담고있다.

“《사기》〈열전〉이지금껏인구에회자되는것은사마천이당위성만추구한것이아니라당위성과실제현실사이의괴리를포착해한인물의부침을서술했기때문이기도하다.”

사마천이가진의문,즉“하늘의도는친함이없고항상선한사람과함께한다.”라고했는데선한사람인백이·숙제같은사람이왜굶어죽었고도적·도척은천수를누렸느냐는질문은지금도유효하다.지금세상에도,아니지금세상은더욱선한사람보다는그렇지못한사람이늘득세하는것처럼여겨진다.그래서사마천이〈백이열전〉을첫머리로삼은것은이(利)를추구하는삶보다의(義)를추구하는삶이중요하다는생각했기때문이다.조선중후기학자김득신이〈백이열전〉을11만3천번이나읽은것또한사마천의이런질문에답을찾기위해서였을것이다.

《사기》를기전체(紀傳體)라고부르는것은제왕의사적인〈본기〉와신하의사적인〈열전〉이중심임을시사하고있다.〈본기〉가북극성이라면〈세가〉와〈열전〉은북극성을향하는뭇별들이라는구성이다.〈열전〉은모두70편으로구성되어있지만한편의〈열전〉에여러명을수록하는경우가여럿이어서실제수록된인물은300여명이넘는다.
또한반고(班固)의《한서(漢書)》가한왕조만을다룬단대사(斷代史)라면《사기》는사마천이중국사의시작으로설정한오제(五帝)부터자신이살던한무제(漢武帝)시기까지를서술한천하사(天下史)이다.〈열전〉또한방대한내용이기에시기별로나누어정리할필요가있다.
첫째시기는춘추(春秋)시대이전부터춘추시대까지활동했던인물들이다.〈백이열전(伯夷列傳)〉부터〈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까지7편이그런경우로서백이(伯夷)·숙제(叔齊),관중(管仲),안영,노자(老子),손자(孫子),오자서(伍子胥),공자(孔子)의제자들등이이에속한다.
둘째시기는전국(戰國)시대와진(秦)조정에서활동한인물들이다.〈상군열전(商君列傳)〉부터〈몽염열전(蒙恬列傳)〉까지21편이해당하는데상앙,소진(蘇秦),장의(張儀),백기(白起),왕전(王剪),전국(戰國)4공자,여불위(呂不韋),이사(李斯),몽염(蒙恬)등이이에속한다.
셋째시기는초(楚)와한(漢)이중원의패권을다투던시기에활동했던인물들이다.〈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부터〈전담열전(田列傳)〉까지6편으로장이,진여,한신(韓信),노관등이이에속한다.
넷째시기는한고조유방부터경제(景帝)때까지의인물들을서술하고있다.〈번역등관열전(樊灌列傳)〉부터〈오왕비열전(吳王列傳)〉으로번쾌,육가(陸賈),계포(季布),유비등이이에속한다.
다섯째시기는한무제때의인물들이다.〈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侯列傳)〉등으로두영,이광(李廣),위청(衛靑),곽거병등과사마천자신에대해서서술한〈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이이에속한다.
〈열전〉이역동적인것은한사람의인생을나열식으로서술하지않았기때문이다.사마천이관심을가진것은한인물이어떤사상을가지고그시대를어떻게헤쳐나갔는가,또는그시대에어떤영향을미쳤는가하는것이지인생전반을세세하게서술하는것은아니었다.그래서《사기》〈열전〉을통해한인간의역경을통해서그가산시대의생생한분위기도엿볼수있다.

《사기》〈열전〉이지금껏인구에회자되는이유는많다.그중에서도사마천이한인물이살아가면서추구해야하는당위성과실제현실사이의괴리에서그가어떤선택을하는가에따라서인생이달라짐을서술했기때문이기도할것이다.그가〈열전〉의첫머리를〈백이열전〉으로삼은것이나〈세가〉의첫머리를〈오태백세가(吳泰伯世家)〉로삼은것은이(利)보다는의(義)를높였음을말해준다.
〈백이열전〉뿐만아니라초나라를부흥시키려고노력했던〈춘신군열전(春申君列傳)〉이나〈자객열전(刺客列傳)〉등도모두의를앞세운인물들을서술했다.〈자객열전〉의형가(荊軻)가남긴“장사한번떠나면다시돌아오지않으리[壯士一去兮不復還]”라는시가를대일항전기의열단원들이국내에잠입할때읊던시가라는점은시대와장소를넘어의(義)의실천에목숨을건사람들이깊은동질감을느꼈음을말해준다.

〈열전〉중에는각부문의사람들을주제별로묶어서서술한〈열전〉들이적지않다.좋은벼슬아치를뜻하는〈순리열전(循吏列傳)〉은이후많은기전체역사서가따라서서술하고있다.후세벼슬아치들에게역사의포상을가장큰상으로여기고좋은벼슬아치가되려고노력하라는뜻을담고있다.또한혹독한벼슬아치를뜻하는〈혹리열전(酷吏列傳)〉은반대로역사의비판이가장무거운형벌임을깨닫고백성들을가혹하게대하거나가렴주구를하지말라는권고를담고있다.
사마천은비록유학을높였지만유자(儒者)는칭송을받는데유협(游俠)은비난을받는현실에대해서도불만을갖고있었다.그래서유협들도수백년이지난후에도제사를받든다면서〈유협열전〉을서술했다.〈유협열전〉같은경우《사기》,《한서》와그전편이모두전하지않는《위략(魏略)》정도가이어서유협에대해서술하였고이후대부분역사서에서는외면받았던인물들이다.
사마천은또한‘기업가열전’이라고할〈화식열전(貨殖列傳)〉을서술했다고비판받았지만그가지금껏역사가의전범(典範)으로대접받는밑바탕에는경제를무시하지않았던역사관이깔려있기때문이다.그러나〈화식열전〉은이후《사기》와《한서》정도만서술하고있을정도로여러사서는벼슬아치와학자들만높였지사업가는낮춰보았던것이동양유학사회의현실이었다.
《사기》에만실려있고,다른기전체사서는외면한〈열전〉이〈골계열전(滑稽列傳)〉,〈일자열전(日者列傳)〉,〈귀책열전(龜策列傳)〉이다.〈골계열전〉은보통세속을따르지않고,세상의이익을다투지않는것을귀하게여기는사람들의풍자정신에대해서술한것으로해석된다.사마천이보기에는천문관측에관한〈일자열전〉이나길흉을점치는복서(卜筮)에대한〈귀책열전〉도나라를다스리는데필수적이라는생각에서이를〈열전〉에서술했다.

사마천이〈열전〉에서창안한형식중하나가외국에대한〈열전〉이다.사마천은〈흉노열전(匈奴列傳)〉을필두로〈남월열전(南越列傳)〉,〈동월열전(東越列傳)〉,〈조선열전(朝鮮列傳)〉,〈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등이그것이다.‘외국열전’은공자가《춘추》에서높인존주대의(尊周大義)와함께중국의전통적인화이관(華夷觀)을만들어낸것으로볼수있다.
사마천이외국열전을서술한것은현재중국이고조선과고구려를자국의역사라고우기는것에대한통쾌한반박이된다.그러나사마천이이족(夷族)의역사를무리하게하화족(夏華族)의역사로편입시키려했던시도의재연으로볼수도있다.흉노를하(夏)의선조하후(夏后)의후예로서술하고,남월,동월등도그뿌리를모두하화족(夏華族)과연결시킨것등이이를말해준다.〈조선열전〉에서사마천은단군과기자의사적은생략하고연나라출신위만(衛滿)에대해서만서술했다.사마천은《사기》의여러부분에서기자(箕子)에대해서술했고,공자가《논어》에서기자를미자(微子),비간(比干)과함께삼인(三仁)으로꼽았으므로그의사적을몰랐을리가없다.동이족은나라왕족기자는주무왕(周武王)에의해석방된후‘조선(朝鮮)’으로갔는데,그가간조선이‘단군조선(檀君朝鮮)’이라는사실을사마천은알았을것이다.그러나사마천은단군과기자는생략하고위만조선서술했다.

이제〈열전〉15권이상재되면서40권에이르는《신주사마천사기》번역및주석작업의대단원의막이내려졌다.《신주사마천사기》는지금까지전세계에서발간된가장방대한《사기》번역서및주석서일뿐만아니라그간《사기》에서간과했던여러내용을우리의주체적관점으로풀어낸최초의저작이다.《신주사마천사기》는그간중국인의시각으로읽어왔던《사기》를우리시각으로재해석한최초의책이다.그만큼《사기》에는동이족을필두로우리선조들의이야기가많다.그래서《신주사마천사기》는완간은중국사의범주속에숨어있던우리역사를풍부하게만들어주는1차사료의역할을수행할것이라는점도큰의미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