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韓龍雲,만해,한유천
1879년충남홍성에서한응준과온양방씨사이에서차남으로태어났다.본관은청주이며자(字)는정옥(貞玉),속명은유천(裕天),법명(法名)은용운(龍雲),법호(法號)는만해이다.기울어가는국운속에서홍주에서전개되었던동학농민전쟁과의병운동을목격하면서더이상집에안주하고있을수없었던그는1896년집을나서여러곳을전전하다가설악산오세암으로들어갔다.여기서불교의기초지식을섭렵하면서수도하다가다른세계에대한관심으로노령시베리아등지를여행하기도하였다.귀국후1905년선생은다시설악산백담사로들어가속세와인연을끊고연곡선사를은사로출가하여승려가되는첫발을내딛었다.1914년4월에는방대한고려대장경을독파하고[불교대전]을간행하였으며,1918년월간지『유심』을발간하면서작품활동을시작하였다.주로일제에저항하는민족정신과불교에의한중생구제를노래했다.1919년선생은천도교,기독교,불교계등종교계를중심으로추진된전국적이며거족적인3.1운동계획에주도적으로참여하였다.그리하여불교측인사들과의접촉을위해범어사까지다녀오는등동분서주하였고,해인사승려로서서울에올라와있던백용성선사를민족대표로서명하게하였다.이3.1운동당시에는33인을대표하여독립선언서를낭독하고피검되어3년간의옥고를치렀다.불교의대중화와항일독립사상의고취에힘을기울였으며,1944년입적하였다. 불교학교교원,조선민립대학기성회상무위원,불교청년회회장,신간회중앙집행위원,경성지회회장,만당당수등을역임하였으며조선의불교계및독립운동에지대한업적을남긴점을평받아,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중장이수여되었고,1967년탑골공원에용운당만해대선사비가건립되었다. 저서로는시집『님의침묵』외에『조선불교유신론』,『십현담주해』,『정선강의채근담』등이있으며,사후에『한용운전집』『한용운시전집』이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