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자네를잘안다네.내가자네를잘안다네.자네가조국을얼마나사랑하고있는지.자네가얼마나억울한지내가잘안다네!친구여!자네가얼마나고생했는지!애국심때문에자네가그토록비난을받고살아온것을내가잘안다네,친구여!”
이승만대통령의평생친구였던장의사보스윅은눈을감은이승만의얼굴을만지며흐느꼈다.이장면에서가슴이먹먹해지고눈시울이붉어졌다.대한민국의독립을위해해외에서수년을달려온그의말로가왜이리참담해야할까?
4월총선이다가오는가운데,대한민국초대대통령인우남이승만의삶을다룬다큐멘터리영화「건국전쟁」이센세이션을일으키고있다.영화진흥위원회의자료에따르면,2월22일기준으로영화의누적관객수는82만명에달하고,주말관객의증가를기점으로100만명돌파가예상된다고한다.다큐멘터리장르에서5만명의관객이손익분기점인것을생각하면이는예외적인성공사례로꼽힌다.
정치적으로이렇다할영향력을발휘하지못하던국민의힘(여당)을비롯한보수진영에서는이영화를둘러싼인증릴레이가활발히이어지고있다.영화를제작한김덕영감독은「건국전쟁」의관객수가조만간100만명을돌파할거라며대중의성원에힘입어「건국전쟁2」제작에착수할계획이라고밝혔다.
「건국전쟁」이이승만의공적에만주안점을두고그의과오는거의언급하지않았다는비판이제기되어왔지만,이작품은북한을포함한국내좌파진영이어떻게이승만대통령을악마화했는지그경위에주목하고있다.이를테면,북한은공식백과사전을통해6·25전쟁당시김일성의적화통일야욕을좌절시켰다는이유로이승만대통령을지속적으로악마화해온반면,이승만과대립하며김일성과일정한관계를맺었던김구와김규식,여운형및조봉암등을두고는비교적우호적인평가를내린것으로알려졌다.이처럼북한의역사관은대한민국의좌파진영에영향을주어이승만을폄훼하는수단으로전락하고말았다.
『조선대백과사전』은이승만대통령을“친미매국역적이요,남한의첫괴뢰(꼭두각시)대통령”으로치부하여,그의생애와정치경력을부정적으로기술했다.예컨대,그는1919년3·1운동이후미국에서활동하며임시정부의집정관및국무총리를역임했으나임시정부로부터외면받고오랜기간미국에거주하며친미반공인사로변모했다는것이다.또한1945년10월에는미군정의지원에힘입어서울로돌아와여러정치적직위를거치며1948년8월남한의첫대통령이되었다고한다.
이승만대통령의집권당시행적을두고는그가북진통일을주장하며미국의지원으로1950년6월25일북한을공격하기시작했고,이로써남한은미국의식민군사기지로전락했다고주장했다.널리알려진바와같이,김일성이소련의스탈린과중국의마오쩌둥으로부터사전승인을받아시작되었다는남침설과는크게대립되는대목이다.그럼에도북한은여전히6·25전쟁을이승만과미국의북침으로오도하고있다.북한을비롯한좌파세력의날조된주장과‘런승만’을둘러싼오해와진실,그리고미국에서국가의위상을드높인우남이승만대통령의진면목은무엇인지활자와이미지로다시생각해보길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