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걸 구술집

유걸 구술집

$30.00
Description
목천건축아카이브 한국현대건축 시리즈 아홉 번째 책. 그간의 구술채록이 1930년대에 태어나 1960-90년대에 걸쳐 우리나라 고도 경제성장기의 건축을 견인했던 전후 현대건축 첫 세대의 증언을 담았다면, 유걸은 1940년대 출생으로 한국이 고도 압축 성장을 겪던 70-80년대에 미국에서 건축 활동을 활발히 한 남다른 이력이 있다.
저자

목천건축아카이브

목천건축아카이브는사라져가는20세기한국건축물의자료를수집하고,이를바탕으로건축문화에대한사회적인식을제고하기위해설립되었다.구축된아카이브를통해미래한국건축의연구와창작에기여할수있는초석을마련하고자한다.원로건축가의구술집발간과건축가와작품의자료수집과연구등을주사업으로하고있다.

목차

살아있는역사,현대건축가구술집시리즈를시작하며
『유걸구술집』을펴내며

1가족과성장기의경험들
출생과가족/한국전쟁의경험/경기중고등학교시절/취미와여행경험/서울공대진학

2대학과건축초년시절
공대건축과시절/무애건축시절

31960년대작업과도미
김수근연구소시기의작품들/〈정릉주택〉(1969)/〈정릉교회〉현상설계(1970)/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공간』과김수근/60년대말/결혼/도미/가족/덴버.정착기/RNL디자인시절

41970~1980년대초미국에서의활동과교훈
도미전의작업들추가/RNL에서의초기작업/한국과의차이/〈성제임스천주교회〉설계과정(1972~1973)/〈덴버시경찰서〉(1974~1975)/〈제너럴인슈어런스빌딩〉/주택사업/김수근의방문/미국에서얻은교훈

51980년대중반귀국과초기작업들
〈서세옥주택〉(1986)/주택3제(1991)/80-90년대개인작업시기/열린공간

61990년대대형프로젝트의시작
고속철도/〈요코하마터미널〉과〈국립중앙박물관〉(1995)현상/〈명동대성당건축설계경기〉(1996)/1990년대중반-2000년대중반개괄/〈밀알학교〉(1995~1997)/〈밀알학교2차〉(2002)/밀알학교3차〉(2007~2008)

72000년대전반기의작업들
학교강의/2000년대프로젝트의시작/〈벧엘교회(밀레니엄커뮤니티센터)〉(1999~2005)/〈배재대학교프로젝트〉(2002~2010)/아이아크파트너십/〈계산교회〉(2005~2007)

82000년대후반기의작업들
〈DDP〉현상(2007)/비정형건축물/〈아산정책연구원〉(2008~2009)/〈서울시청〉(2005~2012)/주거프로젝트3건/〈아시아문화전당(ACC)〉현상(2005)

92010년이후의작업들
〈다음스페이스닷투〉(2012~2013)/〈제주동문시장-플라잉마켓〉/〈드래곤플라이DMC타워〉(2009~2013)/〈카이스트시설〉(2012~2013)/〈RMT〉(2015)/〈서울대학교예술계복합교육연구동〉(2012~2015)/〈페블앤버블〉(2014)/건축계이야기와건축관/마무리

출판사 서평

유걸구술집』을펴내며중에서
목천건축아카이브한국현대건축구술채록시리즈의신간으로,김정식선생,안영배선생,윤승중선생,4.3그룹,원정수선생과지순선생,김태수선생,김종성선생,서상우선생의구술집에이은아홉번째출간이다.예외적으로1990년대초의그룹활동을조명했던네번째구술집을제외한다면,그간의구술채록은1930년대에태어나1960-90년대에걸쳐우리나라고도경제성장기의건축을견인했던전후현대건축첫세대의증언을담았다.반면유걸선생은1940년생으로출생이조금늦을뿐아니라건축가로서인생의궤적이꽤나남달랐다.대학졸업후사회초년생시절은앞선구술자들과어느정도활동영역이유사하나(특히김수근선생문하의시기는윤승중선생과겹쳐당대의진술에또하나의층을더한다),1970년도미이후의행보는확연히다르다.우리의사회적,경제적격변기인1970-80년대를,그리고건축가로서가장활동적일30-40대시절을,
선생은미국콜로라도주의주도인덴버에정착하여지역사무소인RNL에서프로젝트디자이너로활동했으며직접작은주택사업을벌이기도했다.국내에서는1980년대중반부터〈서세옥주택〉등몇몇프로젝트를맡기시작하여90년대에는한국에도작은조직을두고두나라를오가며활동하다가,본격적인상주는2002년경희대학교건축전문대학원의전임교수로임용되면서비로소시작되었다.이때부터2010년대후반까지가선생이아이아크조직을기반으로우리건축계에서가장활발한활동을했던시기이다.50대만돼도설계가아닌경영으로물러나곤하는우리건축계의일반경향과달리,선생은70대까지현역건축가로서의위치를유지했다.〈밀알학교〉,〈밀레니엄커뮤니티센터〉,〈서울시청〉,〈트라이볼〉등대표작들이이시기에배출되어,1960년대에독자적인설계를시작한선생이지만21세기건축가라는표현이전혀어색하지않다.선생의많은작품들은기존의틀을깨는공간적개방성과조형성을띠었으며,과감한구조적표현역시우리건축계에서는낯선것이었다.대표적으로〈서울시청〉은독특한조형적·공간적제안으로우리현대사에서김수근의부여박물관,자하하디드의동대문디자인플라자와더불어건축계의범위를넘은세간의주목과비평을가장광범위하게이끌어낸사례이다.‘종로에다시담을쳐본다.북악에고층건물을세워본다’등자연과전통에대한급진적인생각들또한,이에대한찬반의문제를떠나,우리사회의문화적기류속에서으레받아들여지던가치들에대해재고할기회를주는것이었다.이렇게차별화된개인사와활동시기,작품성향과건축철학으로유걸선생의구술은지금까지진행된구술채록과는다른영역의이야기를펼쳐나갔다.

새로움에대한열망역시선생의건축을이끈동력으로,종심의나이에여전히새로운시도에대한호기심과추진력을잃지않는예는세계건축사에서도매우드문것이다.(참고로미스는“나에게새로움이란아무런의미가없다”고말한바있다.)건축의구조와공간,시공법을완전하게새롭게정의하고자한〈RMT〉와같은근작은젊은이들의작품과비교해봐도그도전적실험성이결코떨어지지않는다.그리고이러한급진적상상을현실화시킬수있다는자신감에는,일찍이학창시절부터공터에벽돌집을쌓아만들정도로실제의짓기에관심이있어왔고,미국에서주택을서너채직접시공하며현장의현실을터득한경력이든든하게작용했을것이다.
유걸선생에게자유는건축의주제인동시에실천형식이었다.선생은자신이건축에서구현하고자하는바를외적제약이나경직된조직의속박없이최소한의인원과협업체계로현실화시킬수있는방법을지속적으로탐구한건축가였다.프리랜서,대형사무소혹은건축가와의일시적협업,프로젝트의유무에따라모이고흩어지는유동적인직원조직,셰어오피스형식의연합,개별성을인정해주는파트너십체제등선생의다양한실무적시도들은오늘날변화하는시장상황속에서대안적인설계업무방식을모색하는이들에게많은시사점을제시한다.

【구술자】

유걸兪杰
건축가
1940년에광주에서태어났다.1963년서울대학교건축공학과를졸업한후,무애건축과김수근건축연구소에서실무를쌓았다.1967년에유-아틀리에(U-ATLIER)를설립하고〈성북동K씨주택〉(1968),〈정릉주택〉(1970),〈정동제일교회〉(1970)등다수의프로젝트를발표했다.1970년12월미국덴버(Denver)로건너간그는‘R.N.L.Architects&Engineers’에서프로젝트디자이너로활동한후1979년에유걸건축연구소(K.Y.Architects)를개소했다.1985년부터진행됐던〈1988올림픽선수·기자촌〉의설계·감리를계기로국내활동을다시시작했다.〈서세옥주택〉(1986),〈강변교회〉(1992-1998),〈고속철도천안종합역〉(1993-2004),〈밀알학교〉(1995-2008),〈벧엘교회〉(1999-2005)등을발표했고,2002년부터2005년까지경희대학교건축전문대학교에서후학을지도했다.
2006년‘아이아크’(INTER-ARCHITECTS)로사무소이름을새롭게명명하고파트너십으로운영체제를변경했다.이후〈배재대학교프로젝트〉(2002-2010),〈대덕교회〉(2003-2007),〈서울시청〉(2005-2012),〈트라이볼〉(2007-2010),〈아산정책연구원〉(2008-2009),〈다음스페이스닷투〉(2012-2013),〈서울대학교예술계복합교육연구동〉(2012-2015)등을발표했다.김수근건축상과한국건축가협회상,미국건축가협회명예상등을수상했다.현재아이아크의고문으로활동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