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건축은식민지배의핵심네트워크
건축역사학자인저자니시자와야스히코는19세기말20세기초일본이식민지,조차지,철도부속지,괴뢰정권에의한간접지배등으로통치했던지역에건립한건축물을“식민지건축”이라부른다.저자는건축물은시대를총체적으로반영하기에건축을통해역사를말할수있다고주장하며,식민지건축으로일본의지배이데올로기와네트워크를분석한다.
“건축물을한사람이만드는것은드물고,건축주에의한발주,건축가에의한설계와감리,건설회사에의한시공이라는일련의과정속에많은사람의협동으로이루어지는것이일반적이다.거기에는건축주의의향을토대로건축가나건축기사등의전문가,목공,미장공,벽돌공,철근공등과같은직인,그리고많은노동자의협력으로하나의건축물이완성된다.”간단히말해건축물을분석하면일본제국주의통치의많은면을밝혀낼수있다는것이다.(14쪽)
대만총독부와조선총독부의관계
저자는각지역의총독부청사는식민지배시작과동시에건립되지않았다고지적한다.일본은1895년부터대만을지배했지만,청사건립은1907년에야본격적으로추진된다.일본건축역사최초의현상설계로대만총독부청사건립은시작된다.1등안을선정하지않는등우여곡절끝에다쓰노긴고의안으로확정된다.(26-30쪽)다쓰노긴고의안은빅토리아시대영국에서유행하던퀸앤양식을근간으로한것이었다.지금처럼교통이원활하지않았을뿐더러모든도면을손으로직접그려현장에서지휘해야했던시절이었기에,대만현장에서감독할건축가의역할이무척중요했다.저자는대만총독부영선과장노무라이치로가중요의사결정권자로추정한다.이이름은한국의역사에도중요한흔적을남긴다.
조선총독부가추구한‘위용’의실체
조선총독부가청사건립을위해처음촉탁한건축가는독일건축가게오르크데랄란데다.그러난그가사망하자대만총독부건립을주도한노무라이치로가후임으로선정된다.대만의경험을높이평가한것이다.조선총독부는신바로크양식에‘칸시스템’이라불린철근콘크리트구조로지어졌다.당시이구조로지어진최대규모의건축물이었다.외관은다르지만평면은대만과조선의청사가비슷한데,이연결고리에노무라이치로가있다.
철거의원인이되기도한조선
총독부의위치는건립당시에도논란이되었다.(43-46쪽)저자는조선총독부청사건립에서가장중요한고려사항은“위용”이었다고설명한다.건물의외관뿐아니라설비,조망과시선까지일본통치의도구이자상징으로사용되었다는것이다.
“그‘위용’은단지신바로크양식의외관만이아니라,양질의화강암으로마감한외벽,건물정면과맞닿는광화문거리와축선을일치시킨배치,청사앞에있던광화문의이전,내부에설치한거대한홀이나옥좌,대리석등을사용한마루나당시최첨단디자인을반영한스테인드글라스등의내장,그리고매우정교하게배치된난방장치나상시온수를제공한급탕설비,오수정화장치,벽에묻어넣은소화전등의설비등많은점이중첩되어연출되었다.
이는1912년준공된조선은행본점이나경성의새로운입구로서1925년준공된경성역,시구(市區)개정사업으로이루어진도로개수에맞춰지어진경성부청사(1926년준공),경성재판소(1928년준공)와함께도시의근대화를보여주는것이었다.”(48쪽)
괴뢰국만주국에세워진도시와건축물
최근1930년대일본이괴뢰국인만주국을건립하고경제개발계획이나국민동원체제같은통치방식이1960년대한국군사정권의모델이었다는연구가많은주목을받았다.만주국의주요도시건설방식,여러청사와철도역사건물의특징들을구체적으로다루는이책은제도와법률등에초점을맞춘기존연구와완벽한짝을이룬다.러일전쟁이후설립된만철은철도회사였지만,경영뿐아니라철로변을따라넓어진부속지에대한행정,다롄항의건설과경영푸순탄광이나안산제철소등광공업등을총괄하는반민반관(半民半官)의독특한회사였다.때문에만철은역사(驛舍),사무소,공장,학교,병원,도서관,공회당,구락부(俱樂部),호텔,사택,그리고부두시설이나전기,가스,수도관련시설등을짓고운영해야했다.1장가운데‘2.국책회사만철의건축’은만철이지은주요건축물의특징과주요인물의움직임을세세히분석하고,‘3.만주국정부의청사’는일본인,조선인,한족,만주족,몽골족이함께살아간다는선전아래설립한만주국의수도신징에들어선여러청사들을집중적으로다룬다.
이어저자는정치나사법과함께식민지배의또다른중추였던경제와관련된건물을추적한다.식민지경제를일본에복속시키기위해설립한대만은행,만주중앙은행,조선은행,요코하마정금은행을누가어떤양식으로,어떤최신설비를동원해지었는지를다룸으로써,건축이식민지지배의직접적인도구였음을다시상기시킨다.(86쪽이하)
독보적인정보
『식민지건축』이독보적인지점은청사,은행본점등식민지통치의도구였다는통념을재확인하는데에서그치지않고한걸음더깊숙이들어가다른책에서는좀처럼찾아볼수없는정보를제공한다는점이다.각지배기구의건축조직이어떻게구성되어있었는지,인사이동과개인적야심등의이유로건축가들이지배지역을어떻게이동해갔는지등을낱낱이밝힌다.여기서도드라지는점은도쿄제국대학건축과출신들이압도적으로많다는사실이다.목구조중심의전통적인건축교육을탈피하고서구건축을모델로삼아만들어진도쿄제국대학의건축가들은문자그대로‘제국’을‘건축’하는데복무했다.(105,120,126-127쪽등)
다른책에서전혀찾아볼수없는또다른정보는식민지건축에동원된재료의향방이다.식민지건축은동아시아건축의전통적인재료로지은것이아니라벽돌,시멘트,철등20세기의재료로지어졌다.때문에이재료의생산과이동은그자체로시대를상징한다는것이저자의설명이다.이재료들의생산량을소개할뿐아니라,만주,조선,일본,대만사이를오간시멘트와철의물량을분석해지역별건축생산의특징을추론한다.(167,170,175쪽등)나아가각지역에설립된건축단체의정관과주요인물들을살피고이들사이의관계를분석한다.
아시아와세계전체로눈을돌려야보이는사실들
이책은식민지건축을따로떨어진하나의대상으로보기보다식민지권력,지식,인물,재료의네트워크로보아야한다고강조한다.동아시아곳곳에남은흔적으로함께조망할때식민지건축의실체가더분명히드러난다는것이다.일본의식민지에세워진초기건물들은대만과만주,조선을가릴것없이모두서양식외관을지닌다.그이유로저자는메이지유신이후일본의근대화가서구의모델로했기때문이며,당시일본의지배가서구여러국가의협조와인정속에서이루어진것이기때문이라는설명이다.
“일본의지배능력이실험대에오르게되었다.따라서홍콩,상하이,톈진등서구국가가지배하는동아시아지역에건립된건물과어깨를나란히할수있으면서자신의지배력을보여주기위해서는서양건축규범을따르는건물로지배에필요한시설을정비하는것이유효했다.유럽국가의지배지에세워진건물과비교할방법이없거나유럽사람들이이해할수없는일본건축양식·의장을띤건물은신사나무덕전이라는특수한용도에국한되었다.”(219쪽)
이런상황은1930년대후반급변한다.대만,조선,만주에서일제힌그지역전통건축지붕을닮은지붕이올라간청사나역사가준공된다.저자는만주사변발발과함께일본이유럽의동아시아지배틀을벗어났음을증명하는사건으로해석한다.(221쪽)
20세기역사의빈자리를메우다
『식민지건축』은일제강점기시절한국에세워진건축에대한새로운시선을제공한다.아시아전역을시야에포함했을때드러나는사실들을통해20세기한국건축의역사,나아가한국사서술에서비어있는자리를충실하게메운다.독자들은이책을통해전국도시도심에남아있는여러문화시설,대만과대련,신징등의여행길에서만나는역사의흔적을새롭게바라볼수있는시선을얻게될것이다.